-* 속리산 르포 [4] *-

[백두대간대장정제8구간]속리산지명

‘속리’는높음의뜻인‘수리’
늘재는‘비탈이길게늘어진재’란의미

‘법주사가창건된지233년만인784년(신라선덕왕5년)에진표율사(眞表律師)가김제고을의금산사(金山寺)로부터이곳에이르자,들판에서밭갈이하던소들이모두무릎을꿇고율사를맞았다.이를본농부들이‘짐승도회심이저리존엄한데,하물며사람에게있어서랴’하며머리를깎고진표율사를따라이산으로입산수도하는사람이많았다.이때부터사람들이‘속세를떠난다’는뜻에서속리산(俗離山)이라부르게되었다.’

▲속리산능선.속리(俗離)를음역된지명으로보고,이를옛날식우리음을따라유추해보면결국’수리’가된다.속(俗)은중국음으로는’쉬’이고,우리의옛음으로는’수’이니,속리는결국’쉬리’,’수리’이거나,아니면이에근사한어떤음일것이다.<사진허재성기자>

문헌이나구전을통해전해오는속리산의이름유래다.속리산은그산이름자체에서뿐만아니라이산의여러봉우리이름에서도신앙적요소를찾아볼수있다.최고봉인천왕봉(天王峰)이그러하고,비로봉(毘盧峰),관음봉(觀音峰)등이그러하다.

‘세속을떠난산’의의미를가진속리산

백두대간의남쪽줄기는한반도의남부내륙을활모양으로휘어내려영호남을구분지어놓았는데,이산줄기중에는태백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등잘알려진산들이많다.이러한산들중불교적색채가유달리짙은이름이속리산이다.따라서그이름만으로도우리신앙과어떤관련이있지않나여겨지게한다.

속리산우리나라8경의하나로,예로부터소금강,또는제2금강이라고도불러왔다.또,구봉산(九峰山),지명산(智明山),미지산(彌智山),형제산(兄弟山),자하산(紫霞山),광명산(光明山),이지메등의다른이름도갖고있다.

그런데,우리는여기서속리라는이름을보고,한자그대로풀어‘세속을떠나’라는지명풀이에머물러야할까?세속을떠난다는뜻을한자로나타낸다면조어의관행상‘이속(離俗)’이어야더옳을것인데,왜‘이속’이아닌‘속리’가되었는지도한번생각해볼필요가있다.

우리는여러산이름들을살펴보면서순우리말에서출발한이름들이한자로붙여지는과정에서뜻의혼동을가져온경우를많이보아왔다.특히,음역(音譯)에서그러한경우가많은데,큰산,신성한산의뜻인‘감뫼(검뫼)’가검산(劍山),감악산(紺岳山)이된것이라든지,밝은산,양지쪽산의뜻인‘(밝달)’이박달산(朴達山),백산(白山)으로된것이그예가될것이다.

승려나풍수가들이만든지명수두룩

무릇모든땅이름이거의다그렇지만,산이름도처음부터특별히어떤이름이정해져있던것이아니고,단순히그대로산이나꼭대기의뜻인달,두리,술,수리,부리,모로,모루,모리,마루,마리,자,재등으로불려왔다.지금과같이어떤큰생활영역을별로필요로하지않던오랜옛날에는사람들이자기집,자기마을주위만알면그만이어서,무슨산이라는이름의필요성을그렇게크게느끼지않았다.

따라서,‘산’이라는말자체가그대로이름처럼사용됐고,부득이어느산을따로지칭할필요가있을때에는큰산,작은산,앞산,뒷산,동산,남산식으로불렀던것이다.이렇게오랫동안불려온관계로전국의수많은산들이몇개의아주큰산,잘알려진명산을빼놓고는모두비슷비슷한이름이었다.그래서지금까지도같은산이름이무척많이남아있게된것이다.

그러나,생활권의확장,고장과고장사이의교류왕래에따라서로같거나비슷한산이름이조금씩구분지어불려지기시작했고,더욱이지명의한자화에따라같은산이름을두고도표기를각기달리하는방법을써서이름의다양화를꾀하였다.그래서,‘한밝’이태백(太白),대박(大朴),함박(咸朴),함백(咸白)등으로되고,‘감뫼(검뫼)’가신산(神山),가마산(可馬山),검산(劍山),웅산(雄山),흑산(黑山)등으로되었다.

순우리말산이름을한자로바꿔붙일때,우리조상들은가급적뜻이좋은한자를취하였다.특히,불교가성해지고풍수사상이널리퍼지면서산이름을붙임에있어산과관련이많은승려나풍수지리가들이산이름을그러한쪽으로이끌어간흔적을많이볼수있다.이런면에서‘속리’를한자풀이의차원이아닌,우리말의유추차원에서도생각해볼필요가있다.

속리는‘수리’의차음일듯

한자는우리나라,중국,일본등에서쓰고있지만,잘알다시피그뜻은같되,읽는법은나라마다다르다.예를들어‘天(천)’이란한자하나만보더라도중국음으로는‘톈’이요,우리음으로는‘천’이며,일본음으로는‘덴’인것이다.

그런데,‘天’은우리의옛자전에‘하늘텬’하는식으로‘텬’으로읽은것으로보아처음에는세나라가이글자를거의같은음으로읽어왔음을알수있다.이것은한자발생지가중국인점에비추어우리가현재쓰고있는한자의음이처음에는중국본래의음에가까웠으리라는추측을가능케한다.한자로기록된삼국시대의옛지명을우리말로유추해보면이추측은더욱굳어진다.

따라서,음역이확실한어느한지명을가지고우리본래의음으로유추할때,지금의우리식한자음에맞추기보다는음역되었을당시의발음상황을고려해야더욱확실한우리본래의땅이름을찾아낼수있다.

속리(俗離)를음역된지명으로보고,이를옛날식우리음을따라유추해보면결국‘수리’가된다.속(俗)은중국음으로는‘쉬’이고,우리의옛음으로는‘수’이니,속리는결국‘쉬리’,‘수리’이거나,아니면이에근사한어떤음일것이다.

수리는꼭대기를뜻하는옛말로서,오늘날의머리의정수리도바로이말에서나온것으로보고있다.수리는그원말이‘술’일것이며,폐음절(閉音節)이주를이루었던원시언어로까지올라가면‘숟(숫)’일것이다.

·수리<술<숟(숫)
·마리<말<맏
·가리<갈(갇,갓)

그렇다면,수리의뿌리말인‘숟(숫)’은원래어떤의미를지녔던것일까?이에대하여학자층에서는높음(高)이나힘셈(强)의뜻이었으리라고보는견해가많다.지금의말에숫놈,숫소등의그‘숫’과도연결지어볼만하다.

신라시대의벼슬로,지방민에게만수여한외위(外位;外職)11관등중에술간(述干)이란것이있는데,여기서의‘술’도높음의의미로새겨볼수있을것이다.간(干)이나한(汗)은신라시대고위직(벼슬)이름에서접미사처럼많이붙는음절이다.따라서산이름에서술뫼나수리뫼처럼‘술(수리)’이들어가있을때는큰산(大山)의의미로볼수있을것이다.

수리를음역으로한산이름에는수리산(修理山·안양시),소래산(蘇來山·시흥시),소리산(所伊山·강원도이천군*대동여지도상의지명),소의산(所衣山·가평군),소라산(所羅山·황해도평산군)등이있다.차산(車山),차령(車嶺),취령(鷲嶺)등도모두‘수리’를수레(車)나수리(鷲)로보고한자로취한것이다.

늘재는‘늘어진줄기의산’의뜻

▲늘재.’늘’은땅이름에서는대개’늘어진’의의미로들어간것이많은데,이것이고개이름으로쓰일때는느릅재,느랏재,늘재등이된다.

상주시화북면장암리와용유리사이의늘재라는고개는늘티라고도하는데,한자로는유티(楡峙)또는어치(於峙)라고쓴다.‘늘’은땅이름에서는대개‘늘어진’의의미로들어간것이많은데,이것이고개이름으로쓰일때는느릅재,느랏재,늘재등이된다.

·느릅재:동해시발한동,춘천시사북면고성리등의유치(楡峙)/춘천시동면감정리,원주시귀래면운계리,인제귀둔리,괴산장연면방곡리,제천시송학면시곡리등의유현(楡峴)

·늘째(늘재,느럿재,느릇재):경주시덕동,정읍시고부면용흥리,문경시농암면율수리

·늘티(늘티고개,눌티재):보은군회남면판장리,옥천군군북면구건리등의판치(板峙)/상주시화북면용유리/계룡시계룡면기산리

위에서보다시피늘어짐의‘늘’은한자로판(板)또는유(楡)로옮겨간것이많다.전국에는판(板)을앞음절로하는지명이허다한데,이것은대개늘어지거나너르다(廣)의의미를가진토박이이름들이그바탕인것이많다.

늘다와넓다는큰의미로보아서는같은뜻이기때문에판(板)지명중에산관련에서는대개가늘어짐의뜻으로보아야하고,들관련에서는너름(넓음)의뜻으로보는것이타당할것이다.

너름과느러짐은큰의미로는같아 

판교(板橋)라는지명은전국에무척많다.서천시의판교면과판교리,성남시분당구의판교동,순천시서면,강릉시사천면등의판교리(板橋里)등이그성이다.판교의앞글자를한자뜻그대로풀면널빤지가되겠지만,땅이름에서널빤지라는뜻이그렇게많이들어갈까닭이없다.즉,판교를널빤지로놓은다리로무조건푸는것은크게잘못된일이라고보는것이다.

가장잘알려진성남시의판교는옛날에너들또는너드리(너더리)라고불리던곳이다.다리(橋)와는전혀관계가없는지명이며,단지너른들의의미일뿐인것이다.경상도지방에서는‘늘’을‘널’로발음하는경향이많으므로‘늘’관련땅이름들이한자로옮아간것중에는광(廣)자가취해진것이많다.

서울한강의섬중에는넓다는뜻이들어간이름이있는데,그것이바로여의도다.여의도전에는딴이름으로도불렸다.동국여지승람에나오는이름은잉화도(仍火島)다.그러나,잉화도는밤섬과여의도를하나의섬으로해서붙인이름이었다.밤섬과여의도는한강물이높지않을때에는서로붙기때문이다.

동국여지비고에는나의도(羅衣島)로나와있고,대동지지에는여의도(汝矣島)로나와있다.이렇게여러이름을가졌지만,그뜻은모두너른벌의섬이란뜻을담고있는것으로보인다.즉,‘너벌섬‘이원이름일것이다.나의주의‘나‘는‘너‘의소리빌기,의(衣)는‘벌‘을취한한자표기로보인다.옷의옛말이’벌‘이기때문이다.따라서,나의(羅衣)는너른벌의뜻인‘나벌‘또는‘너벌‘의표기로보인다.

잉화도(仍火島)에서잉(仍)도‘너‘또는‘나‘의옮김일것이다.이잉(仍)은‘니‘로도읽어왔는데,이글자는예부터땅이름에서‘너‘,‘니‘등의소리빌기로많이써온글자이다.잉화의화(火)는’불‘로,‘벌‘과음이근사하니,잉화도는결국‘너벌섬(니벌섬)‘의한자표기라여겨진다.

따라서,여의도,잉화도,나의주는모두‘너벌섬‘의다른표기로보이는데,항간에떠도는여의도이름풀이와는거리가멀다.즉,여의도를쓸모없던땅이라고해서’너나가질섬‘의뜻에서나왔다고보는사람들이있는데,이는한낱얘기좋아하는사람의입에서나온근거없는말이다.

‘늘다’나‘너르다’와관련한산지(산줄기나고개)지명에서는한자로광(廣)자가들어간것을그리많이볼수없다.더러보이는광현(廣峴)이란지명은대개‘넉고개’나‘늦고개’가그바탕인것으로보아이는고개의폭이넓어서라기보다비탈이길게늘어져서붙여진것일것이다.

산지지명에서는‘늘다’의‘늘’의뿌리말같은인상을주는느릅나무유(楡)자나‘늘’의취음으로적합한어조사어(於)같은한자가들어간것이많다.따라서,백두대간상에있는상주시의늘재(유치,楡峙)도늘어진고개의뜻을가지고있음이거의확실하다.

-글/배우리한국땅이름학회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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