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란 무엇인가’ 기획자 박은주 김영사 대표 *-

‘정의란무엇인가’기획자박은주김영사대표

출판인생30년베스트셀러1000종일군김영사방식,박은주스타일

박은주김영사대표

박은주(54)김영사대표는많이팔리는책을만드는기획자다.밀리언셀러만꼽으려해도시간이꽤걸린다.‘세계는넓고할일은많다(김우중,1989)’‘닥터스(에릭시걸,1998)’‘성공하는사람들의7가지습관(스티븐코비,2003)’‘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문선명,2009)’,그리고지난해우리나라를떠들썩하게만든‘정의란무엇인가(마이클샌델,2010)’까지.그의손에서탄생한책은성공한경영자의후일담이거나청춘을잠못들게만드는성장소설뿐아니라딱딱한철학개념을파고드는인문서일때조차독자의눈을사로잡았다.

내로라하는출판관련상을휩쓴박대표의이력중에는2002년모델라인이선정한‘베스트드레서’상훈도있다.책잘만들고옷잘입는사람이라니,분명트렌드를읽는데능한타고난경영자리라.서울가회동한옥마을에서단연눈에띄는,새하얀외벽의김영사사옥앞에서이렇게생각했다.가정집을고쳐만든사옥은현대적인외관과달리마룻바닥으로돼있었다.신발을벗고들어서니반들반들올라오는나무의윤기가마음을편안하게한다.알고보니전직원이매일아침8시30분부터45분까지청소를하는덕분이란다.직급,성별의차별없이사장부터말단까지함께걸레질하고변기를닦는회사,그러고나서는조회를하며“안녕하십니까,반갑습니다,좋은하루되십시오”인사를나누는회사.책내는얘기에앞서회사소개부터듣기로했다.뭔가많이독특해서다.

이회사에는규칙이많다.“슬리퍼에는각자이름을쓰고,본인슬리퍼만신도록하며,자기이름이쓰여진신발장을이용한다”“화장실사용후꼭주위를점검하고,나와서불을끈다”“개인컵을사용하고,각자씻어서보관한다”….김영사에입사하는사람은이런규칙23개가적힌‘김영사신입직원이알아둘일’을전달받는다.

마음에새겨실행할일

또하나‘김영사사람이알고마음에새겨실행할일’이라는제목의글도받는다.이내용으로입사후7일안에시험을치르기때문에대충읽어서는안된다.“김영사는우리의행복을실험하고,실현하고나아가이웃과나라와온세상에까지널리펴기위한우리공동의터전이다.이에우리는다음을잘알고마음에새겨실행한다”로시작되는일명‘명심문’은박대표에따르면“수천년동안여러성현들이강조해온지혜의결정체”다.

이글은모두박대표가직접썼다.김영사새내기들이입사해가장먼저배우는것은,어떻게하면재시험없이이테스트를통과할수있는가하는것이다.선배들은저마다노하우를갖고있다.장재경미디어기획부팀장은“전체내용을녹음한뒤반복해서들었더니한번에통과했다”고했다.옆자리누군가는주요단어를체크해줄기를잡아가는키워드학습법을활용했단다.각자자신에게맞는암기법을몸에익혀두는건중요하다.시험이끝나도‘명심문’외우기는끝나지않기때문이다.

김영사직원들은매일아침조회때마다한항목씩‘명심문’내용을낭송한다.역시독특하다.회사에대해조곤조곤설명하는박대표도‘냉철한경영자’와는거리가멀어보인다.알고보니그는강원도백담사근처의인제군용대리에서태어났단다.상대가오해하지않을까걱정하지않고“우리회사깨끗하죠”“우리회사멋있죠”자랑하는품이서울깍쟁이는아니다싶었다.“제바람이회사가집보다깨끗하고편안한공간이되는거거든요.어쩔때는집보다더긴시간을보내는곳인데마음이불편하면안되잖아요.”

그래서1층거실밖으로잔디가펼쳐진정원을만들었다.한옥마을을향해난창으로는소나무가로수사이드문드문드러난기와지붕과가회동성당첨탑이내다보인다.새소리가들리고,시원한바람도자유롭게드나든다.곳곳에놓인책장에는,당연하지만,책이가득하다.회사라기보다는집같은곳.이공간에서그는마치아버지같아보였다.

이쯤에서한번짚고넘어가야할것같다.김영사는꽤잘나가는출판사라는것.금융감독원전자공시시스템에공개된사업보고서에따르면2010년매출이475억원에달한다.직원수가100명을왔다갔다한다니,1인당5억원가까운매출을올린셈이다.매년150권쯤책을내는데그중상당수가베스트셀러가된다.막노동꾼출신서울대수석합격자장승수씨의자전에세이‘공부가가장쉬웠어요’‘1만시간의법칙’으로화제를모은‘아웃라이어(말콤그래드웰)’,영화와드라마로각색돼우리음식신드롬을일으킨‘식객(허영만)’,1200만부넘게팔린‘먼나라이웃나라(이원복)’등이김영사간이다.‘새로운시작을위하여(김대중)’‘내가정말알아야할모든것은유치원에서배웠다(로버트풀검)’‘만들어진신(리처드도킨스)’등제목을들으면고개를끄덕이게만드는베스트셀러들도여기서나왔다.

월급쟁이의식VS사장의식

지금까지김영사가출간한책은3000여종.그중베스트셀러반열에오른책이1000여권에달하니‘가장많은베스트셀러목록을보유하고있는출판사’라는세간의평도틀린말은아니다.그러니이제물어볼차례다.요즘은‘가족같은조직’보다‘집은집,회사는회사’선을긋고사원들의개성을존중하는조직에서오히려창의적인결과물이탄생하는것아닌가.“자신이소속한사회의발전이진정나의발전의길임을알아서,김영사의발전을통하여나의발전을꾀하고나아가우리의가장높은목표를달성한다”니,이‘다짐’에정말모든사원이공감하는지말이다.박대표는“그렇지않다면도대체왜이회사에다니는가”라고반문했다.

“제가가장이해하지못하는게월급쟁이의식이에요.회사는스스로원하는일을하면서자아를실현하고세상에기여할수있는공간이잖아요.단지월급을받기위해일한다면너무불행하지않을까요.오전9시부터오후6시까지,하루중가장빛나는시간을어쩔수없이보내야할이유가없죠.저는누구에게나자기삶의주인으로살라고말해요.스스로살아움직이고하고싶은일을하고,그렇게해서행복해지라고.명심문에서세상의근본은‘나’이고목표는‘나의행복’이라는게그런뜻이에요.”

박대표가그렇게일했다.이화여대수학과에서컴퓨터를전공한그는졸업뒤동기들이기업전산실프로그래머등으로진출할때“평생컴퓨터앞에앉아있을자신이없어서”출판사문을두드렸다.중학교때부터아버지방에서헤르만헤세와니체키에르케고르를즐겨읽었을정도로철학에관심이많았다.우리는어디에서왔다가어디로가는가,인생은무엇인가에대한풀리지않는의문때문에대학시절철학을부전공하기도했다.1979년공채로입사한평화출판사는작은규모였지만그래서더좋았다.출판사사람들이하는모든일을거기서배웠다.

“주인으로일하라”

“사장이아침마다일의진척을체크하느라정신이없었어요.편집장한테우리가먼저회의를해서매일할일을보고하는게낫지않겠느냐했죠.그런데왜시키지도않은일을하느냐고,하고싶으면미스박이나하라는거예요.”그날부터아침마다혼자업무보고를했다.사장이쓸만하다싶었는지점점중요한일을시키기시작했다.그렇게3년이되자사장이하는일은그도다할수있게됐다.출판계에는‘평화미스박이일잘한다’는소문이퍼졌다.1982년김영사창업주김정섭당시사장의스카우트제의를받고회사를옮겼다.

백성욱전동국대총장의제자로재가수도자였던김사장은아침저녁으로금강경을읽었다.그렇지않아도삶과죽음,우주와인간,영원과무한등에대해호기심이많았던박대표는매일아침업무보고를하러들어가는길에그와선문답을주고받곤했다.그러던어느날퇴근하던김사장이그의책상위에툭,금강경을두고갔다.불교집안에서자라불교책을제법읽었던박대표로서도도무지이해하기어려운책이었지만그날부터,그러니까1984년부터그는매일아침저녁으로금강경을읽었다.지난27년간단한번도거른적이없다고했다.108배도함께올렸다.

가회동한옥마을이내려다보이는김영사사옥의박은주대표.

기자를만난날도새벽4시30분에일어나108배로하루를시작한참이었다.두손을한데모으고몸을구부려온전하게자신을낮춘뒤절을마치면방석에무릎을꿇고앉아‘금강경’을읽는다.금강경을처음부터끝까지독송하는데걸리는시간은약30분.지금껏2만일넘게읽어온덕에이제는저절로뜻이통한다.다음순서는명상에드는것이다.탐욕이나이기심에물들지않도록마음의때를씻는다.108배와명상을마치고회사에도착하는시간은오전7시쯤.이때부터차를마시며하루일정과계획을점검한다.특별한일이없으면오후6시쯤퇴근하는박대표는잠들기전또한차례108배와금강경독송으로하루를정리한다고했다.

한창책만들기에재미가붙었던그시절,김영사에서그는마음을다해책만드는자세에대해서도배웠다.한번은서점에납품한책을전량회수하라는지시가내려왔다.콘텐츠에문제가있는것도아니었다.디자인과제본상태가김사장의마음에들지않았기때문이다.“우리는수천수만권의책을만들지만독자들에게는각각단한권뿐인책이다.‘이만하면됐다’는건말이안된다.”절로고개가끄덕여졌다.

그리고1989년1월4일,만31세로김영사주간이던박대표는불쑥회사사장이된다.김사장이신년식에서“오늘부터박주간이사장이다.여러분이잘공경하고,따라주기바란다”며작별인사를한것이다.그에게의견을물은적도,미리뜻을비친적도없었다.“아주간단히그말씀만하고나가시더라고요.당신이앉았던자리를그대로제게물려주셨죠.그후다시회사에오시거나업무에관여하신적이없어요.지금은전북부안에서수도생활을하고계십니다.가끔씩혈연도인연도없는제게회사를물려주신마음이뭐였을까깊게생각하곤해요.그분은정말제게스승이에요.”

31세여사장

아무준비없이사장이되다니,처음엔잠시당황스러웠다.하지만곧즐거워졌다.그의말마따나“늘사장처럼일해왔기때문에”두렵지않았던게다.게다가이제는마음은사장이어도몸은직원인탓에눈감고지나가야했던것들을하나하나고칠수있게되지않았나.그가처음한건사내에서‘미스’‘미스터’라는호칭을없앤것이다."그때저는주간이면서도늘‘미스박’이라고불렸거든요.당시문화가그랬어요.남자는직책을불러주고여자는‘미스’라고하고.그게불편해서사장이되자마자싹없앴어요.모두를직책이나이름으로불렀죠.또후배한테도존댓말하는문화를만들었고요.경리보는어린여직원이다른사람들뒷일봐주느라제일은못하는게안타까워서‘자기가사용한컵은스스로닦자’‘책발송업무를한뒤에는주위를깨끗이치우자’같은규칙도정하기시작했어요.”

‘김영사신입직원이알아둘일’은그때부터그렇게하나씩만들어졌다.박대표는“회사에서는모든사람이마음편하게지내며자신이하고싶은일을통해자아를실현할수있어야한다.그런데규칙이없으면나이어리거나,직급이낮거나,여자라는이유로누군가불편을겪게된다.청소도마찬가지다.모든사람이한꺼번에하지않으면하는사람만하게되지않나”라고했다.회사에서함께지내는사람들이불필요한감정소모를하지않도록,모두평등하게책임과의무를부담하도록시스템을만드는것,그것이그가23개에달하는사내규칙을만든이유다.‘명심문’도그과정에서나왔다.

“제가사장에취임했을때만해도직원이10명남짓했거든요.그때는눈빛만으로도‘즐겁게일하자’‘좋은책만들자’하는서로의마음을나눌수있었어요.그런데회사가커지고사람들이바뀌면점점그게어려워지잖아요.20년전쯤‘더이상안되겠다’싶어정리를하기시작한거지요.‘이게김영사의정신이다,우리는이런철학갖고이렇게일한다’그런걸공유하고싶었어요.머리로만아니라마음속으로요.깊이체화되도록하기위해암기시험을시작한거죠.”

세계는넓고할일은많다

어느날갑자기사장이됐는데잠시당황하다가이내“하고싶은일마음껏할수있으니신난다”고생각했다는사람.그는일도재밌게했다.취임첫해에김우중전대우회장자서전‘세계는넓고할일은많다’(이하‘세계는넓고~’)를펴낸것.출간6개월만에100만부가판매된이책은한국최초의밀리언셀러이자최단기간최다판매라는기네스기록도남겼다.곧이어출간한‘빵장수야곱’‘내가정말알아야할모든것은유치원에서배웠다’도폭발적인인기를얻으며‘세계는넓고~’와함께그해베스트셀러순위1~3위를싹쓸이했다.박대표이름앞에‘미다스의손’이라는수식어가붙은건이때부터다.“첫해부터줄줄이대박을치다니,정말타고난기획자이신가보다”말을건네자“그게바로사람들의오해”라고말을받는다.

“사장취임을한첫해였던거지,이미출판기획자로는10년차였어요.종종저를보고‘처음부터잘했다’고하시는분들이있는데아닌거죠.한분야에서10년동안일하며최선을다해저자신을닦아왔던게그때드러난거예요.”말투는겸손하지만안에담긴메시지에는힘이있다.출판기획자로서최선을다해살았다는,반짝행운이아니라스스로의노력으로좋은책을만든것이라는속뜻이다.박대표는‘세계는넓고~’가많은사람의사랑을받은이유로“내가읽고싶은책을만든것”을꼽았다.

“기업인의자서전은그전에도많았어요.하지만대부분성공스토리를나열하는,일종의위인전이었죠.저는그틀을깨고싶었어요.사람이라면누구나성공과더불어실패도하는데그경험을솔직히털어놓는게독자들에게더도움이되지않을까싶었거든요.제가읽고싶은책이바로그런거였고요.그마음을김우중회장께전했고김회장도동의하셔서‘세계는넓고~’를출간하게된거죠.”

지금도박대표가책을기획할때가장먼저던지는질문은‘내가이책을읽고싶은가’이다.그다음엔‘가족에게읽히고싶은책인가,이웃에게권할수있는책인가,아끼는사람에게추천할수있는책인가’라고차례로묻는다.이질문에‘Yes’라는답을할수있을때만기획을시작한다고했다.

“일단마음이정해지면최선을다하는거예요.결과를제가어떻게알겠어요.다만내가이책을읽고싶듯이그렇게다른사람들에게도이책이필요하다면많은독자를만날수있겠지라고생각합니다.”

그렇다면그는참운이좋은사람이다.자신에게필요한책,자신이읽고싶은책이언제나‘대중’의기호와맞물려왔으니말이다.그것이어떤때는소설이었다가평전이되기도하고,인문철학종교자기계발서의영역까지넘나드는데말이다.“관심분야가다양한건출판기획자로서정말감사한일이에요.또살아오면서관심을계발해온면도있는것같아요.벌써30년동안책을읽어왔잖아요.그것도아주날카롭고눈밝은독자로책과만나왔어요.그러니까이제책을보면마음의문이열려요.내가아닌다른사람들에게이책이필요할거야,하는판단이아니라제마음이저절로움직이는거죠.아,이책이다,지금이게읽고싶다.”

2010년대한민국을뒤흔든밀리언셀러‘정의란무엇인가’도그렇게탄생했다.2007년미국에있는김영사의스카우터가출간예정도서목록을보내왔다.그때는아직저자가책을쓰기도전이라기획안만첨부된상태였다.그런데숱한책제목가운데유독‘Justice(정의)’한단어가눈에들어왔다.강렬한끌림이었다.‘읽고싶다’바로그느낌.그는바로출간계약을맺었다.우리사회가이제한번쯤정의에대해논의할때가된것같다라는논리적인판단은그뒤에따라왔다.

정의란무엇인가

사실‘Justice’는현지에서큰반향을일으키지못한책이다.영미권에서10만부가팔렸을뿐이다.그러나우리나라의경우‘정의란무엇인가’라는제목을달고출간된직후부터뜨거운반응을얻기시작해교보문고개장이후30년만에인문분야도서로는최초로연간최고베스트셀러가됐다.지난4월100만부를돌파하며2000년대이후최초의인문학밀리언셀러기록도세웠다.박대표가무엇보다뿌듯하게생각하는건이책이우리나라전반에공정함과정의에대한열망을일으키며하나의사회현상이됐다는점이다.그는“책을기획할때나는결과에대해전혀모른다.내가읽고싶은책을최선을다해만들뿐이다.그래도가끔이정도는되겠지생각할때가있는데이책은내짐작보다훨씬긍정적인방향으로예상이빗나간경우”라고했다.

한동안자기계발서가장악했던출판계에서딱딱한‘정의론’의성공이일으킨반향은대단했다.또한번박대표의‘선구안’에대한찬사가쏟아졌다.그러나박대표가단지‘감’만으로이책을성공시킨건아니다.마음이끌리는일을찾아최선을다해일하는그의업무자세는‘정의란무엇인가’출간과정에서도유감없이발휘됐다.2009년말미국에서출간된‘정의란무엇인가’원서를받아들고그가가장고민한것은출간시기.2010년에는밴쿠버겨울올림픽,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광저우아시안게임등굵직한스포츠행사가연이어있어새책을내놓을시점이마땅치않았다.박대표는월드컵위험을무릅쓰고6·2지방선거직전책을내놓기로마음먹었다.

선거기간다양한정치적논의가폭발할때이책이하나의잣대가돼줄수있을것이라고믿었기때문이다.또정치인과언론인등오피니언리더가선거를앞두고이책에관심을기울이면입소문효과도일어날것이라고생각했다.실제로많은칼럼니스트가선거관련원고에이책을언급했고,‘정의란무엇인가’는6월베스트셀러2,3위에오른뒤7월부터부동의1위가됐다.책의마케팅콘셉트는‘하버드대교수의강연’으로잡았다.우리나라에서‘하버드’라는브랜드가가진힘은,하버드의대생의이야기를담은소설‘닥터스’로밀리언셀러를기록한적있는박대표가누구보다잘알았다.

게다가샌델교수의하버드대강의는로마시대원형극장을연상케하는웅장한강의실에서수백명의학생이빼곡히모여있는상태로진행된다.그는이사진을구해표지에싣고젊은독자들이딱딱한주제를친근하게받아들일수있도록그주위에밝은주황색테두리를둘렀다.한국판‘정의란무엇인가’는흰색바탕에‘Justice’라는제목만적혀있는미국판책과표지부터완전히다르다.책광고문안도‘하버드대학생들은정의를어떻게배우는가?하버드가전세계에최고의강의실을개방한다’등‘하버드’를부각시키는내용으로정했다.

좋은책을고르는혜안과그것을베스트셀러로만들어내는능력.그래서사람들이필요로하는책을정말읽게만드는힘.박대표가‘미다스의손’으로불리는건‘양수겸장’의명장이기때문아닐까하는생각이스쳤다.실제로‘정의란무엇인가’는출간초기부터인문서분야에관심이적은것으로여겨진20대젊은이와여성들사이에서폭넓은관심을모았다.교보문고인터넷구입고객을기준으로여성구입자비율이남성을넘어섰을정도다.20대의구매율도37%로전체연령대중가장높다.저자인마이클샌델은한국젊은독자들의관심에크게고무돼현재주니어김영사와함께청소년버전‘정의란무엇인가’를준비중이다.

‘정의란무엇인가’의사례에서보듯이,사장이된지20여년이지난지금도박대표는필드플레이어다.그는자신의업무중기획·편집이차지하는비중이90%쯤된다고했다.경영에는힘의10%정도만쏟는다는뜻이다."모든직원이행복하게일할수있는시스템을만들어두면그뒤엔경영자가할일이별로없잖아요.명심문이랑신입직원수칙,그런시스템을운영하는것외에제가하는건거의책과관련된거예요.우리회사에서나오는책은콘셉트잡을때부터참여해디자인,제목,마케팅전략까지다같이보죠.”

0.1㎜예술

물론보통책의기획·편집업무는대부분직원이한다.하지만마지막10%는자신의몫이라고,스스로생각하고직원들도그리믿는다."제가경력30년된기획자이자편집자잖아요.우리직원들은길어도10년미만이거든요.책의방향을정하기위해고민할때제가한마디해주는게아무래도힘이되니까요.”그래서매년김영사에서나오는150여종의책가운데그가관여하지않는건단한권도없다.1995년재충전을위해미국뉴욕대로유학을떠났을때,3년간아예회사일을떠나있었던적은있다.귀국후돌아온김영사는예전의모습이아니었다.CEO의부재에외환위기충격까지겹쳐66억원에달하던매출이22억원으로떨어져있었다.

1998년복귀한박대표는과학대중서‘앗!시리즈’를필두로연이어베스트셀러를내며김영사재건에나섰다.이후1999년55억,2000년97억,2001년156억원으로가파르게상승한매출은500억원을바라보는올해까지단한번도감소한적이없다.그는분명많이팔리는책을만드는기획자다.하지만많이팔리는책을쫓지는않는다고말한다.‘독자에게필요한책을만들겠다’는진심이좋은책을만들어준다고믿기때문이다.

2004년‘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수목원’의초판3000부를찍었다가전량회수한것도그런경우다.표지본문의디자인과제본방식이책의콘셉트와맞지않는데,‘이만하면됐다’고눈감을수는없었다.책을다폐기한뒤새로디자인하고제본방식을바꿔펴낸일은이외에도몇번더있다.최근출간한정민교수의새로쓰는‘조선의차문화’도2쇄부터표지디자인을바꿨다.“제가제대로챙기지못한채로책이나오는경우가있어요.출장을가있었다거나,믿거니하고넘겼는데아니었다거나,아니면인쇄전까지는괜찮아보였는데막상책이나오니이상하거나같은거죠.어느쪽이든잘못은제가한거예요.독자를존중하려면늦게라도책임을져야합니다.그래서수거하고폐기하고표지를바꾸는거죠.”

박대표는“출판은0.1㎜예술이다.점하나선하나,글자의작은간격차이가세련됨과유치함,촌스러움과고급스러움을결정짓는다”고했다.편집과정에서도마찬가지다.밀리언셀러‘성공하는사람들의7가지습관’은세차례나번역을새로하는산고끝에나온책이다.

마음공부,마음세수

한창이야기를나누고있는데직원두명이회의실문을두드렸다.막나온책표지를들고사장의조언을들으러온참이다.박대표는색상과서체,종이종류등을꼼꼼히체크한뒤“여기마침표는빼는게좋겠다.그외엔아주아름다워졌다”고했다.“마음에드시죠?어때요?”하는그의질문에직원들도활짝웃었다.“실은몇시간전에두명이저표지를들고왔었거든요.제가문제를지적하고고쳐준대로다시만들어온거예요.다시보니마침표가좀거슬려서….이렇게일해요.하하.”

아주사소한것부터큰것까지,책을만드는일은선택의연속이다.

자신의직관과감각을신뢰하지않고는즐겁게해나갈수없을것같다.스티븐킹은‘유혹하는글쓰기’에서글쓰기가사람의일이고편집은신의일이라고했다.“내가하는이선택이옳을것이라는것을어떻게확신하느냐”는질문에그는“내마음의소리를듣고바른선택을하기위해끊임없이마음공부를한다”고했다.“아침저녁세수하듯,하루도거르지않고마음을닦는거지요.책만드는사람은마음이맑아야해요.호수의물이맑으면사물이어느것하나왜곡됨없이그대로비쳐보이잖아요.그런눈을가져야세상을제대로바라보고필요한책,마음으로읽고싶은책,지금꼭만들어야하는책을찾아낼수있어요.마음에때가끼면그릇된욕심이생기고,결국모든걸망치게됩니다.”

조석으로빼놓지않는다는108배와금강경독송이야기다.경기도용인에서부모님과함께살고있는그는“처음10년은힘들었는데이제는습관이돼저녁약속끝내고오전1시에들어가도귀찮지않다”고했다.주말이면‘몸뻬’입고텃밭농사를짓는다.매일하는절과농사일덕분에그는골프한번치지않고도건강하고늘씬하다.“세상에서가장어려운게자신을속이는거잖아요.한번약속을어기고저자신을속이게되면얼마나괴롭겠어요.나태해지고게을러지고싶을때는‘지금내마음흔드는적군이나타났구나’하고빨리마음을다잡아요.”

그렇게30여년을살아왔다.규칙을지키고절제하며사는것이힘들지않으냐는질문에그는“내가스스로를정돈할줄아니까직원들이나를신뢰하고필요로한다.독자들도김영사를신뢰하고인정해준다.그이상행복한게어디있냐”고했다.“제가아침저녁조금만불편하면세상이편안하잖아요.그러니까감수해야죠.좀편하자고마음을닦지않으면갈등과번민이생기고,그럼우리회사에문제가생기고,나아가출판계가혼란해지고,결국은나라전체가혼란해져요.”그는농담처럼웃었지만,막중한책임감의일면은진심같았다.박대표는“세상모든사람에게삶의중심은자신아닌가.누구나자신이흔들리면세상이흔들린다는마음으로살아야한다.그때더충실히살수있다”고했다.

박대표가금강경에서가장좋아하는구절은‘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마땅히이와같이세상을보라’는뜻이다.“우리를둘러싼세상은완벽해요.지금이순간이얼마나찬란하고아름다운것인지.그걸받아들이라는뜻으로저는이해하고있어요.여기서이렇게숨쉬고있는나.이게사실모든것이거든요.그걸알게될때세상모든것은나를향하게돼요.모든것은다필요해서일어난일이라는걸받아들이게되고요.응작여시관을이해하면세상에불만이없어지고있는그대로행복해집니다.”다시한번명심문제1항이떠올랐다.그는진심이다.삶의순간순간이.그리고일하는순간순간이.

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

박대표는지난4월부터‘모던·클래식’이라는제목으로인류의지성사를빛낸고전을출간하는프로젝트를진행중이다.‘상대성이란무엇인가(알베르트아인슈타인)’‘냉동인간(로버트에틴거)’‘마이크로코스모스(린아굴리스,도리언세이건)’등과학사적으로큰의미가있지만우리나라에소개되지않았던고전3권을이미출간했다.이외에도50여권의책이번역중이거나번역이완료된상태다.‘정의란무엇인가’등으로큰돈을벌었는데뭔가사회에기여하는책을내야하지않겠느냐는마음에서다.

“역시내가읽고싶고우리가꼭읽어야하는책이라는생각이들어서하는일입니다.당장은1000권이팔리든2000권이팔리든최선을다해만들고싶어요.”그의꿈은그렇게순간순간,최선을다해행복하게살아가며김영사를일궈언젠가그자체가한권의책이되게하는것이다.책을만들며사는게행복하고시간이흐를수록출판이천직임을느낀다는그는그렇게사람들이읽어보고싶어하는,세상에꼭필요한의미있고가치있는‘김영사’라는책을만들다언젠가김정섭전사장처럼홀연히떠나겠다고했다.박대표가늘일하는책장앞에는‘물흐르듯이’라는글귀가적혀있다.

-Interview/송화선기자/신동아-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