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선물은 ‘무병장수’ *-

당신께드리고싶은새해첫선물십장생도

▲작자미상‘십장생도10곡병’19세기,비단에색,151.0×370.7cm,삼성리움미술관

우와!오셨군요.드디어오셨군요.1년동안당신을기다렸는데이제야도착하셨군요.밤길에오시느라얼마나힘드셨어요.더디오셔서폭설때문에못오시나했어요.군불지펴놨으니어서들어와뜨뜻한아랫목에서몸좀녹이세요.그동안저는아침상을차릴게요.찬은없지만현미밥에시래기국을끓여놨으니맛있게드세요.동치미국물도적당하게익었고요.된장에박아둔깻잎도,간장에절여둔고추도마침맞게간이배었어요.여행길에서지친당신의입맛을되돌려줄거예요.우선식사부터하신후커피마시면서밀린얘기함께나누어요.아참,제가당신을위해1년동안준비한선물이있어요.마음에드실지모르지만제가식사를준비할동안호박죽드시면서편안히감상하고계세요.당신을향한새해첫선물이랍니다.

그림속에해,달,구름,거북을그린이유

‘십장생도(十長生圖)’는세화(歲畵/설맞이그림)를대표하는작품이다.새해를축하하고한해동안액운대신경사스러운일이많이생기기를기원하는뜻을담아정초(正初)에왕이신하들에게나누어주던그림이기도하다.세화를주는풍속은고려시대부터세시풍속의하나로행해졌는데벽사(辟邪)와진경(進慶)을기원하는마음에서시작되었다고한다.나쁜일은막아주고좋은일만생기게해달라는뜻이다.십장생(十長生)이란불로장생을상징하는10가지경물과동·식물로자연에선해(日)·달(月)·산(山)·내(川),식물로는대나무(竹)·소나무(松)·영지(靈芝·불로초),동물로는거북(龜)·학(鶴)·사슴(鹿)등을일컫는다.때로는바위(石)·물(水)·구름(雲)을꼽기도하고신선이먹는다는천도(天桃)를그려넣기도하였으며,문헌마다장생물이약간씩다르게표현되기도하였다.


십장생에선발된사물은해와구름같은자연물에서부터학과거북,소나무와영지등의동식물까지분포지역의스펙트럼이아주넓었다.한장소에그려놓았지만그림속으로초청받기전까지는서로얼굴도모르는사이였다.이렇게‘가까이하기에는너무먼’그들이한자리에모일수있는공통점은단한가지.‘상서롭다’는것이었다.그저바라만보아도기분을좋게해주는존재들이니누군들반기지않겠어요.사람도마찬가지예요.서로가서로에게십장생같은존재가된다면굳이이런우의적(寓意的)인사물을빌리지않더라도만남자체가상서로워지겠지요.

십장생은우리조상들이신선사상과민간신앙을결합하여만들어낸독특한도상이며관념체계이다.중국과일본에는십장생그림이없을뿐만아니라장생은있어도십장생이라는개념은없었던듯아직까지중국문헌에서십장생이라는단어를확인하지못했다.십장생에관한가장오래된기록은고려말목은이색이"우리집에는세화(歲畵·설맞이그림)십장생이있는데10월인데도아직새그림같다"고노래한것이다.또조선초성현은연초에임금으로부터하사받은십장생에대해시를남겼다.

십장생도의도상은기본적으로는궁중에서사용된십장생병풍<사진부분>이었다.8곡내지10곡병풍을대폭의화면으로삼아험준하면서도환상적인산자락을화면가득메우고아래쪽으로는소나무,천도복숭아가줄지어펼쳐지며그사이로는냇물과사슴,거북,영지가점점이배치된다.화면위로는해와달이떠있고학이무리지어날고있다.불로장생의현장같기도하고신선의세계풍광같기도하다.진채(眞彩)로그려진궁중십장생병풍은장엄한청록산수화이다.고려시대에고려불화가있었다면조선시대엔십장생병풍같은궁중장식화가있었다는찬사를보낼만하다.

조선시대왕실에서는왕실의혼례나환갑같은큰잔치때는그행사를위해서별도로새십장생병풍을만들기도했다.때문에오늘날에도제법여러틀이전해져현재알려진것이20점정도된다.국립고궁박물관에는불발기창이나있는실내장식용만도10여점남아있다.이십장생병풍들은거의똑같은도상의청록진채화(靑綠眞彩畵)로대개19세기작품이다.시대가오랜것이없다.그이유는실제로사용했던장식병풍이기때문에낡으면새로제작하며계속교체했고,이때문에왕조말기에남아있던것만이전해지는것이다.

미국오리건대박물관의십장생병풍

본래궁중의십장생병풍은민간에있을수없었다.이것이일제강점기에와서는’이왕가(李王家)유물’로전락되고관리가허술한틈에외부로흘러나오게된것이다.한동안십장생병풍은장식그림이라고해서본격적인회화작품보다예술성이낮게평가되기도했다.그러나외국인들은일찍부터한국적특색이강한이왕실유물에주목했다.미국오리건대박물관의십장생병풍(사진,부분)은1924년에서울에있던테일러무역상회에서구입한것이다.

이병풍은특이하게도8폭의십장생그림에별도로영중추부사이유원(李裕元)등13명의좌목(座目;이름과관직)이2폭붙어있다.박본수학예연구사(경기도박물관)는이인물들은고종16년(1879),6세나이의왕세자(순종)가천연두에걸렸을때치료를맡았던의약청의관리들임을’승정원일기’에서확인했다.왕세자의병이완치되자이를경하하면서세자의장수를기원하며그린기념화로그제작동기를명확히알려주는유일한십장생병풍이다.그러나본래궁중장식화에는화원의낙관이찍히지않았기때문에여기서도화가의이름은나와있지않다.

[십장생(十長生)은열가지장생불사를표상한것이다.이에해당하는물상은,····소나무·구름·불로초·거북··사슴이다.신선사상에서유래됐으며,이모두가장수물이므로자연숭배의대상이다.]


십장생도를그림의소재로쓴가장큰이유는장수(長壽)에대한갈망때문이었습니다.유한한생명을가진인간으로서조금이라도더오래살고싶은욕망과기원이예술작품으로표출되었어요.이런작품의배경에는‘불로장생(不老長生)’을추구하던도교(道敎)의신선사상(神仙思想)이큰영향을미쳤을거예요.십장생이있는공간이바로신선들이사는‘선경(仙境)’이자불사(不死)의‘파라다이스(樂土)’이니까요.

당신은왕보다귀한사람

어때요?너무눈부신가요?화려하다고요?새해잖아요.오늘만큼은결핍이니곤궁이니하는헐벗은단어는쓰지않기로해요.고립이니소외니하는외로운단어도마찬가지고요.이렇게떠들썩한축복을받으며날렵하게한해를시작해도조금걷다보면어느새생의피로가실타래처럼뒤얽힌길을뚫고가야하잖아요.그러니지금은그저차분히이순간을즐기고누려야할때.오늘만큼은스스로를따뜻하게토닥거려주고격려해주세요.

원래십장생을포함한길상도(吉祥圖)는그림으로만그려진것이아니었어요.자수,도자기,나전칠기,금속공예품등가능한모든매체에길상도를그렸어요.오늘은제가장수를기원하는‘십장생도’만준비했지만세화로그려지는길상도는이뿐만이아니에요.부귀·영화·다남(多男)·출세·재물·건강·장수등등인간의소망을담아줄수있는소재라면무엇이든길상도로환영받았어요.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백동자도(百童子圖),모란도,송학도(松鶴圖),석류도,군접도(群蝶圖),약리도(躍鯉圖),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놀랍지않나요.눈이닿고손이닿는곳이면어디든길상도를그렸다는사실이말이에요.길상도가넘치게풍부하다는사실은그만큼하루하루를사는것이힘들다는것을역설적으로말하는것일지도몰라요.우리의삶이얼마나다치기쉽고부서지기쉬우면매순간힘을얻고확인할수있는증거물이필요했을까요.

그런데당신,갑자기왜웃어요?우리같은서민들이누리기에는너무사치스러운그림이라고생각하는군요.물론잘알아요.그러나이젠시대가달라졌어요.저한테당신은왕보다더소중한사람이에요.대통령이나장관이나재벌총수만이이런사치를누릴수있는것은아니에요.당신도그들만큼충분히이런사치를누릴권리가있어요.집이좁다고걱정할필요없어요.이그림은넓은공간이필요하지않아요.컴퓨터바탕화면에깔아놓으면충분해요.문화와권리는소유하는자의몫이아니라누리고향유하는자의몫이에요.

새해선물은‘무병장수’

아침준비다됐어요.어서식탁으로오세요.장수의지름길은아침밥을챙겨먹는것에서부터시작된대요.작년이맘때당신과헤어져돌아서는순간부터내내생각했어요.당신한테주는세화에올해는어떤내용을담을까하고요.처용(處容)상이나종규(鐘馗)상이좋을까.닭이나호랑이가좋을까.요지연도(瑤池宴圖)나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같은축수적인그림은어떨까.그런데얼마전에당신이고혈압에걸렸다는소식을들었어요.그때생각했어요.당신에게지금가장필요한것은‘무병장수(無病長壽)’가아닐까하고요.오늘아침상에흰쌀밥과고깃국대신현미밥에시래기국을올린이유도다그런배려에서였어요.

내가사랑하는당신.이제헤어져야할시간이에요.저는1년후새해첫날에다시올게요.내년이맘때다시만날때까지한가지만꼭기억해주세요.제가삼백예순다섯날동안당신을위해아침마다눈부신태양을준비하고있다는사실을요.‘새벽’이라는이름으로불리는저는오로지당신의삶이풍부한지혜와행복으로충만하기를기원하며하루도잊지않고동쪽창문을비출게요.행복하세요.사랑하는당신.

-글/조정육성신여대미술사/유홍준명지대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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