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숨가쁘다.건축도그렇다.초고층스카이라인과낡은연립주택이공존한다.건축가조정구(46)씨는13년째서울의골목골목을누비고있다.매주시장통을,쪽방촌을,그리고오랜주택가를순례하며건축의자양분으로삼는다.조씨가격주로‘서울진(眞)풍경’을연재한다.우리네삶에대한사회학적보고서이자,우리도시의앞날에대한제안이다.
집과노숙의경계,도시쪽방은그지점에있다.우리가누릴수있는마지막주거이자,살수있는최소공간이다.연말연시뉴스메뉴에서빠지지않지만정작그안의모습이어떤지,어떻게형성됐는지아는사람은많지않다.그래서찾았다.현재동대문밖창신동일대엔54개건물에490개의쪽방이있다.서울역사박물관에서하는창신동일대생활문화자료조사에참가,쪽방골목과건물의실측조사를맡았다.지금기록하지않으면언젠가사라져버릴곳이다.
지난달20일오후9시,북적대는동대문에서옛기동차길로들어섰다.뚝섬에서동대문을오가며,유원지가는이들과채소를실어나르던기찻길이다.1932년개통돼63년까지다닌디젤기차인기동차도,선로도없어지고이름만남았다.캄캄한길위에모텔간판만등불처럼떠있다.길양쪽으로쪽방촌이있다.위쪽은오랜골목에쪽방으로변한여인숙과한옥이,아래쪽은불타버린판자촌에빼곡히들어선70년대쪽방건물이다.
아래쪽골목,춥고사람하나보이지않는다.어느집에선가나온아저씨의안내로방을찾아들어갔다.길로바로난문을열고들어선통로는폭60㎝도안됐다.길보다낮은바닥.주인할머니를따라방두개를지나쳐맨끝으로갔다.방엔기척이있었다.안내하고나오는할머니를비켜설공간이없어다시길밖으로나왔다들어가야했다.
작고낡은방,미닫이문을닫는다.때낀작은냉장고위에볼록한브라운관TV가놓였다.그옆3단서랍위엔전에살던이의세간인지도시락만한나무도마,이쑤시개가담긴플라스틱통이놓여있었다.선반엔보호커버가벗겨진작은선풍기,할머니가걷어놓은이불과베개가있다.
춥고작은방,머리를서랍장옆으로끼워넣듯밀어넣어가까스로몸을펴고누웠다.10㎝정도남았다.등과허벅지정도에나전기보일러의온기가전해졌다.외풍이소용돌이를일으키며내무릎위를맴돌았다.쪽방은‘하나로온전한방이쪽이나서나뉘게됐다’는뜻이다.제대로된방이아니라는것이다.그날그날하루치방세를내고묵는간이숙소를일본선‘도야’라한다.도야는숙소라는뜻의‘야도-宿’를거꾸로말한것.쪽방이든도야든그이름엔가난한이들의애환과해학이담겼다.
주인할머니어씨(72)는함경남도흥남출신이다.피난나와부산서하꼬방을짓고살았다.어머니가먼저서울의지금이곳에자리잡고식구를불러올렸다.그게1957년,열일곱살때였다.이하꼬방동네에선한방에10명,많게는20명도살았다.동네엔색시집도많았다.69년에큰불이났다.근처살던아이들이라이터에가스를넣으려다벌어진일이었다.동네가모조리타고,동문시장도사라졌다.그와함께많은것이사라졌다.아편하던한센병환자들,망태를메고다니던넝마주이재건대로사라졌다.몇년이지나자사람들은블록으로다시집을지었다.하꼬방판자집은지금의쪽방이됐다.
이근처는모두월세다.한달14만원,최근엔난방비로1만원을더받는다.투숙객은모두남자.폐지줍는이,기초생활수급자,노인,장애인,인력시장에드나드는이들이라했다.살다살다여기까지흘러든이들이다.
쪽방,고맙기도쓸쓸하기도하다.이나마몸을누일수있다는게고맙고,이조그만방의고독과추위가쓸쓸하다.고른곳하나없는벽에엉긴벽지를보며가까스로잠을청했다.화장실은좁은복도를지나문을열고길가로나와다시다른집문을열고들어간계단밑에있었다.방에누울때보다한층더몸을구긴채일을봐야했다.
쪽방은이지역중심이다.동대문쪽방의경우1호선전철이있고,시내가가깝지않았다면,그곳에쪽방이형성되지않았을거다.보기싫다해서거주자들을시설로보낸다고쉽사리없어질곳도아니다.개발의여러계산에도좀처럼없어지지않는것,쪽방의생명력엔이유가있다.주거의최후전선이다.서울의어제가그대로담겨있다.이를도시공간으로되살리는일,우리건축가에게떨어진일이다.
글·사진=조정구(건축가)
실측조사=강동균·황주현·윤다원·홍혜리·최수연
◆조정구=건축가.2000년구가도시건축설립.‘우리삶과가까운일상의건축’을화두로삼고있다.대표작으로서울가회동‘선음재’,경주한옥호텔‘라궁’등이있다.2007년대한민국목조건축대상을받았고,2010년베니스비엔날레국제건축전에한국관작가로참여했다.서울서대문한옥에서4남매를키우며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