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가장추웠던설날,가족들과북촌에서지내기로했다.하룻밤자보며동네의속내를느끼고싶었다.삼청동·가회동·계동·원서동·재동·안국동에이름도낯선팔판동·사간동·소격동·송현동·화동으로11개나되는동중가장가고싶었던곳은계동.그것도135번지언덕위작은사랑채였다.지금은게스트하우스가돼빌릴수있었다.
대문을지나면,어른키보다조금높은석축(石築)이마주하고,왼쪽으로투박한돌계단이보인다.제짐을들고씩씩거리며계단을오르던큰애(11)와둘째(9)가고개를들고는‘와~’하고탄성을지른다.하늘로가지를뻗은나무들,시원한선을그리며지붕을드리운사랑채가나타났다.물결처럼펼쳐진기와지붕들너머로멀리인왕산과북악산이보인다.작은집이품은풍경의용량이어마어마하다.서울에이런곳이다있구나!
북촌의한옥은1233채로,서울한옥의10%(2008년조사)에달한다.이곳한옥을조선시대의오래된집들이라생각하기쉽지만,대개는1930년대부터지어진것이다.
조선말,그리고일제강점기를거치며유지되던권문세도가의큰땅이나임야가쪼개져중소규모의한옥이들어섰다.도시로사람이몰리고,자본력을가진주택경영회사가등장하며벌어진개발의풍경이다.이들한옥은이전것과달리마당을가운데두고주변을채우듯들어선컴팩트한모양이다.수없이많은한옥이온땅을덮듯지붕의물결을이루며들어선것이당시북촌의풍경이자,도시한옥이점령한근대도시서울의풍경이었다.
밤이다가오자북촌의고요한정취는더욱더선명해졌다.멀리송아지만한개가짖고,계동길을따라올라가는오토바이소리가들려온다.북악능선으로산을타듯하얀불빛이성곽을따라빛나기시작했다.이불을뒤집어쓴채,산들이검은그림자가될때까지누마루에앉아있었다.시간은천천히흘렀다.해가지고밤이찾아오는걸이렇게느긋이본건참오랜만이다.
지도로보는계동길은곧아보이지만길위에서면저끝이보일듯말듯굴곡을이루고있다.골짜기를이루고하천이흘러생긴흔적이다.
굽이치는옛길은지금도그폭그대로고,주변의건물도나지막해정겹고따스하다.동네의다른말‘고을’은골짜기의‘골’에서유래했다.골이졌으므로사람들은그주변을하나의공간으로생각하고동네를이뤘다는게다.북촌에서보면계동과가회동이그런‘한골짜기한동네’를이루는셈이다.다만가회동은길을넓히며동네가동서로나뉘어버려아쉽다.
계동에는또동네다운가게들이건재하다.한옥문간채에자리한미용실,참기름집간판을단방앗간,작은복덕방,앞과옆으로물건을가득쌓은철물점,길목의수퍼와교회,그리고목욕탕이있다.64년부터장사를해온계동한가운데의중앙탕이다.떡본김에제사지낸다고온가족이들어가목욕을했다.돌아와모두들‘가장기억에남은일’로꼽았다.
북촌은나를건축가로성장시킨곳이다.2001년처음설계를하기위해오래된한옥을봤을때의막막함은지금도생생하다.기울어진기둥,비바람에부식된문짝,여기저기덧단공간과알수없는부재와명칭들.이렇게낡은것들이과연좋아질수있을까,하나씩고쳐서언제다동네가살아날수있을까회의마저들었다.
하나둘한옥을설계하고고쳐가면서,사람은늙어가지만집은다시새로운활력을얻을수있음을알았다.비뚤어진것이바로서고,원래모습을되찾고,현대의생활을담아내면서하나하나집들이좋아지고,골목이살아나는걸보았다.
첫한옥작업을했던11번지그장소에1991년건축가6인이주거공간을제안한프로젝트가있었음을알게됐다.당시많은주민이몰려큰관심을보였다고했다.제안엔골목과마당,장소의기억을다루는흥미로운개념이많았지만한옥을살리며풀어보는안은없었다.처음부터그건전제가될수도없었다.20년도더된일이다.
그러나지금북촌에서한옥을고치고사는것을가치없다하는이는거의없다.오히려한옥과골목의멋에사람들이살고싶은동네로,북촌은옛명성을되찾는분위기다.
한옥작업을테마로하는현대건축가들이나타나고,현대한옥들이곳곳에서태어나고있다.시대의패러다임이바뀌어,과거우리가버렸거나살아남지못할거라믿었던우리도시의역사환경과생활속의건축이새로운의미로부활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