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정구의 서울 진(眞) 풍경 ③ *-

조정구의서울진(眞)풍경③종로구광장시장

100년역사광장시장,6개길만나는‘로터리’숨어있다

광장시장은서울시민의활기찬일상을상징한다.먹고,입고,자고,지난한세기한국인의얼굴과도같다.시장먹거리장터한가운데좌판의자위에올라가찍은파노라마사진이다.주변건물의가게들도거의식당으로바뀌었다.

도시는동네와시장이어우러져만들어진다.포도송이같은동네들과활기찬시장을빼고서울을말하기는어렵다.누군가몇시간밖에서울구경할시간이없다면나는그사람을데리고광장시장에가겠다.마약김밥과육회,빈대떡과막걸리가빠지지않겠지만,5,000여개의가게로넘쳐나는시장속을누비는것은참으로진기한경험이될것이다.

 서울광장시장엔얼굴이없다.그냥몸속이다.길에서들어서는순간왁자지껄사람과물건들이가득하다.어디가어딘지분간이안되는건기본이고,어느한모퉁일돌거나,문하나만지나도금방다른물건과사람들을만나게된다.투명하게덮인하늘에선빛과그림자가쏟아지고,아래에는가게간판과매달린전구들이눈부시다.2층에올라헤매다보면,어느새종로가청계천이되고,낮은밤이되고만다.

 

광장시장은종로4가와5가,청계천과종로사이의블록안에들어있지만,모태가된배오개(이현)시장은종로한복판에있었다.지금종로4,5,6가의넓은길이그대로장터가된것으로,차가없던시대에종로큰길로사람이모여들고장이선것은어쩌면당연한일이라하겠다.하지만대한제국기전차가등장하면서커다란변화가밀려온다.도로를정비하고전차선로가건설되면서,배오개시장상인들은장사할다른곳을찾아야했다.

 1905년회사를설립하고계획대로라면광장시장은지금쯤청계천위에지어진특이한한옥상가로남았을지모른다.개천을복개하고1층은상가,2층은집으로쓰는주상복합의한옥(架橋建屋)을짓고,위치도종각아래광교와장교일대로잡았다.하지만일본자본이들어온남대문시장의견제와때마침일어난큰홍수로계획은취소되고,‘광장’이란이름만흔적으로남게되었다.

 처음대지9,400㎡(약2800평)에한옥245칸,함석집53칸,188개점포로시작하여,지금은전체블록4만1300㎡(약1만2500평)에,5000여점포가동서330m,남북160m에들어선‘거대하고입체적인시장’이되었다.직물,의류,한복,구제품,수의,혼수,침구에야채와생선같은농축산물과반찬,먹거리가있으며,지하의의류부자재나,3층위로자리한맞춤이나가공,수선가게와창고들이가게들과긴밀히연계돼있다.

 그래도간단히보자면,광장시장은크게광장시장주식회사에속한가게들과,속하지않은다른상가와노점들로구분된다.특이한것은광장시장주식회사와다른상가들이서로다리를놓아2층에서하나로통하고있다는점이다.지상만큼이나커다란시장이입체적으로펼쳐져있는셈이다.

 한편블록내에는은행지점7개와새마을금고3개가고래에붙어있는빨판상어처럼시장안팎에자리한다.엄청난물량과사람이오가는광장시장의에너지가그대로현금의흐름이됨을보여주는대목이다.

 광장시장의중심을이루는건축물은1957~59년사이에차례로지어졌다.서울역사박물관의‘서울영상민속지구술로보는상인이야기’외다른자료를종합해보면,당시폭력조직을이끌고상인연합회회장자리를거머쥔이정재의주도로일본인설계자를데려와지었다.하나를짓고분양을한후,그돈을받아다음건물을짓는방식으로진행했는데,완성되었을때광장시장은일대에서가장크고현대적인건물이었다고한다.

 그런데그속에‘와,이런데가다있네!’할정도로밝고높은공간이있다.동서로4개,남북으로2개,모두6개의길이통하는원형의공간이다.건축에서는‘로톤다(rotonda)’라고하지만,시장사람들은‘과일로터리’라고부른다.싱싱한과일이자동차처럼빙빙원을그리며도는장면이떠오르는흥미로운이름이다.로톤다가아직도어려운분들은로마의판테온이나뉴욕의구겐하임미술관을떠올리면좋을듯하다.

 안에들어서면,두계단이마주보며둥근벽을따라올라가고,벽에는‘100년전통광장한옥부’라는글씨가붙어있다.그아래로고급과일과폐백,이바지음식과침구,수의,한복을파는가게들이펼쳐져있다.

위대한건축물과비교할수는없어도,소박한건축공간과우리의삶이어우러진묘하고역동적인도시의풍경이다.‘광장시장로톤다’는밖으로드러나지않는다.마치몸속깊이들어있는심장처럼,광장시장의중심에서자리를지키고있다.한국인의지난한세기와동고동락하면서발전해왔다.

-중앙일보201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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