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어려운가정형편때문에시작한신문배달을통해하체를강하게다진그는암벽등반강습회나다른사람의등반을곁눈질해가면서등반을익히고,부산금정산에서사귄클라이머들과함께기량을키워나갔다.
1987년말,제대직후다니기시작한회사를그만두고신발안창회사인백산실업을차린그는
그러나이후그는너무오랜시간자리를비우면서회사일이제대로돌아가지않자장기간의원정을자제하고매킨리나십튼스파이어등한달남짓한원정에한해활동한다.그런와중에2002년일본산악인들의청소등반에참가했다가로체등정에성공한그는2007년후배들에게길을열어준다는마음으로에베레스트원정을꾸린다.
거기서
김재수는고미영과함께브로드피크와시샤팡마를등정하고,이듬해2008년로체,K2,마나슬루3개봉등정에이어2009년에는봄시즌마칼루,캉첸중가,다울라기리3개고봉을오르는등승승장구했다.그러나
그러나
남자산악인들에비해수적으로는비교할수없지만몇몇여성산악인의활동은남자산악인들을능가했다.그중
서원대산악부시절부터독종으로꼽혀온지현옥은원정을앞두곤하루종일훈련에몰두할만큼준비에철저했다.1988년매킨리(6,194m)를시작으로1989년안나푸르나,1990년캉첸중가원정에참가한바있는지현옥은남자후배들로구성된서원대산악부를이끌고중국고봉무즈타그아타등정에성공하면서대장의자질을인정받고,그로인해1993년여성에베레스트원정대대장을맡는다.대산련집행진과의갈등으로무산될위기도있었으나지현옥은꿋꿋하게견뎌내고후배두명과함께세계최고봉정상에올라선다.
그러나귀국후대산련집행진과의갈등뿐아니라원정중있었던대원들간의불화가불거져나오면서지현옥은산악계에회의를느끼고한동안산과멀리떨어져지낸다.그러나산을향한지현옥의열정을사그라지지않고다시활활타올랐다.대신여러명의원정을홀로준비하고현지인들을고용해등반을펼쳤다.그렇게해서
스포츠클라이머로서산악계에모습을드러낸그녀는1994년부터2003년까지전국등반경기대회9연패를달성하고,아시아스포츠클라이밍대회에서도1997년부터2003년까지단한번을제외하곤여섯차례나우승을차지했다.아시아대륙은그녀에게좁았다.세계제패를위해달렸다.그로인해2000년월드컵랭킹6위에이어2001년에는5위에입상했다.스포츠클라이밍에만안주하지않았다.1999년빙벽등반을배운지3년만인2002년세계선수권대회4위에오르고,이듬해2003년월드컵랭킹5위에올랐다.
이렇게스포츠클라이머로서명성을쌓아올린고미영의꿈이하얀산으로이어지리라고는그누구도예상치못했다.첫번째대상은파키스탄의드리피카(6,447m)였다.거기서그녀는등정길에서60m나추락하는위기를맞았지만이를극복하고목표를달성했다.그꿈은이듬해세계최고봉도전에서꺾이는듯했으나이를쓴약으로삼고와신상담,이듬해2007년봄에베레스트재도전에성공했다.이후불과
수원대산악부출신인오은선은1993년여성에베레스트원정대멤버로히말라야등반에데뷔한다.그등반에서눈에띌만한모습을보여주지못했으나고산등반에대한꿈을저버리지않고1997년대학산악연맹원정대에합류해가셔브룸2봉등정에성공한다.오은선은이후박영석원정대대원으로서활동,1999년브로드피크와마칼루,2001년에는K2원정에동행했으나,등반마다한명씩목숨을잃는사고만겪고등정은하지못한다.
오은선의두번째고봉등정은2004년에베레스트에서이루어진다.14좌에도전하는것은너무도멀고힘든일이라판단하고7대륙최고봉완등의일환으로나선원정이었다.오은선은그등반에서세계최고봉등정의목표를달성했으나전날정상에올랐다하산길에서설맹에의한탈진사고를당한동갑내기산꾼박무택의주검을목격하고도그냥정상에올랐다는점때문에논란의대상이되기도했다.
이후오은선의꿈은14좌완등으로커졌다.이어2008년마칼루,로체,브로드피크,마나슬루,2009년캉첸중가,다울라기리,낭가파르바트,그리고가셔브룸1봉등2년연속한해4개고봉등정에성공한다.이렇듯오은선이한해4개씩원정에나설수있었던것은엄홍길과박영석이그랬듯이바싹좇아오는고미영의추격때문이기도했다.그러나낭가파르바트등정이틀뒤고미영이사고를당했을때는고산등반에대한회의를느끼기도했다.
이렇듯우여곡절끝에
한국히말라야등반을대표하는산악인은8,000m급고봉에서만탄생한것은아니다.6,000~7,000m대고봉에서신루트나알파인스타일등반을멋지게구사한클라이머들도여럿이다.
그중
한국산악회원정대의선봉장으로나섰던가셔브룸4봉서벽첫도전은해발7,800m지점에서끝을맺었으나이태뒤인1997년두번째도전에서그는중앙립신루트개척등반에성공한다.이후잠잠하게지내던
그는이후2001년콩데리(6,093m)북동릉동계등정에이어2005년콩데샤르동계등정에성공하고,2008년에는한국산악회후배들과함께파키스탄히말라야의오지에솟아있는CAC샤르(5,942m)와코리안샤르(6,000m)초등에성공한다.그리고2010년1월파릴랍체신루트등반에성공했으나안타깝게도황기용대원이하산길에서심한복통끝에숨을거두고말았다.하지만유학재의알파인등반은앞으로도계속이어질것으로보인다.
이러한등반업적으로
김형일은거벽등반과알파인등반기술보급에도힘썼다.김형진이1998년사고전문을연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강사로서거벽등반기술전파에힘쓰는가하면2011년1월에는설악산에서개최한동계산악인모임에일본의세계적인알파인등반가들을초청해강연회를열기도했다.
앞서거론한산악인외에도한국히말라야등반사를장식한산악인들은무수히많다.
이들모두히말라야고산등반에경험이많고,앞으로더욱진보적인첨단등반을통해한국히말라야의발전에크게기여할이들이었기에많은산악인들이안타까워하는것이다.
물론앞으로한국히말라야등반사를장식할만한클라이머들로서현재히말라야등반이진행중인클라이머도적지않다.
올여름한국히말라야등반사50주년을맞는8월15일까지수많은히말라야니스트들이탄생해왔듯이앞으로50년이지나한국히말라야등반100주년을맞는2062년에는한권의책에다적어넣을수없을만큼많은클라이머들이나오기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