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히말라야 50년 등반사 [8] *-

[한국히말라야50년사특집|명등반가들]

고미영의매니저로서14좌완등한김재수

경남김해태생인김재수(51·대한산악연맹이사)는1991년시샤팡마남서벽등반당시엄홍길을비롯해막강한클라이머들을물리치고김창선과함께남서벽등정조로뽑혔다.1996년에는엄홍길과함께남미최고봉아콩카구아(6,959m)최단시간등하산을해낸국내에서손꼽히는고산속도등반가였다.그러나그가14좌완등을마무리하는데에는1990년에베레스트등정이후21년이란오랜세월이걸렸다.

어린시절어려운가정형편때문에시작한신문배달을통해하체를강하게다진그는암벽등반강습회나다른사람의등반을곁눈질해가면서등반을익히고,부산금정산에서사귄클라이머들과함께기량을키워나갔다.

1987년말,제대직후다니기시작한회사를그만두고신발안창회사인백산실업을차린그는1989년해외여행자유화가되자곧바로히말라야로달려간다.세계최고봉에베레스트가어떻게생겼는지직접보고픈마음때문이었다.그리곤이듬해한-일에베레스트원정대대원으로등반에나서세계최고봉등정에성공한다.

에베레스트원정을앞두고아침저녁20km씩달렸을정도로강한훈련을견뎌낸김재수는1991년대한산악연맹원정에서김창선과함께남서벽알파인스타일등반에나서시샤팡마정상에올라등반력을인정받았다.이후1992년로부제동벽,1993년캉텐그리,초오유단독등정,1994년포베다단독등정,1995년에베레스트남서벽,로체서벽등반,1996년아콩카구아최단시간등하산,1997·1998년엘부르즈등반,1999년가셔브룸4봉등반으로이어지는열정적으로펼친다.

그러나이후그는너무오랜시간자리를비우면서회사일이제대로돌아가지않자장기간의원정을자제하고매킨리나십튼스파이어등한달남짓한원정에한해활동한다.그런와중에2002년일본산악인들의청소등반에참가했다가로체등정에성공한그는2007년후배들에게길을열어준다는마음으로에베레스트원정을꾸린다.

거기서그는고미영과인연을맺는다.이미에베레스트등정을한번실패한바있는고미영은북릉~북동릉루트로정상까지올라가는사이김재수의능력을인정하고그해여름브로드피크원정에동행해달라는부탁을한다.김재수는딱한번만이란전제로등반에참가했으나브로드피크로향하는사이고미영의14좌완등에대한꿈을듣고매니저역할을맡기로약속한다.

김재수는고미영과함께브로드피크와시샤팡마를등정하고,이듬해2008년로체,K2,마나슬루3개봉등정에이어2009년에는봄시즌마칼루,캉첸중가,다울라기리3개고봉을오르는등승승장구했다.그러나그해여름고미영은낭가파르바트정상등정에성공한뒤하산길에실족사한다.

김재수에게는K2원정때경남지역후배산악인3명이정상에서내려오다보틀넥일원에서세락붕괴사고로목숨을잃는비극도견디기힘든사고였지만2년반동안10개고봉을함께등정하며히말라야에대한꿈을나누고키운고미영의죽음은엄청난충격이아닐수없었다.더욱이무리한등반을자제시키지못했다는책임까지그에게얹어져한동안갈등을겪을수밖에없었다.

그러나김재수는고미영과의약속을지키는것이산악인으로서의의리를지키는일이라생각하고나머지고미영이오르지못한나머지3개고봉등정길에나선다.그리하여2010년여름가셔브룸1,2봉등정에이어2011년봄안나푸르나등정에성공하고,같은해가을1993년불법월경등반으로공식적으로인정받지못한초오유정상에올라8,000m급14개고봉등정레이스의종지부를찍는다.

▲지현옥

설산에서맹위떨친여성산악인지현옥

남자산악인들에비해수적으로는비교할수없지만몇몇여성산악인의활동은남자산악인들을능가했다.그중지현옥(1961년생)은히말라야등반에관한한대모(大母)로꼽힐만한여성산악인이다.

1999년4월29일안나푸르나를등정하고하산중실종한지현옥은한국여성산악인으로서히말라야고산등반에관한한독보적인존재였다.지현옥이실종되기이전까지국내여성산악인가운데한번또는두번정도고산등반을해본사람은있지만,그녀처럼지속적으로고산등반을추구해온여성산악인은없었다.

서원대산악부시절부터독종으로꼽혀온지현옥은원정을앞두곤하루종일훈련에몰두할만큼준비에철저했다.1988년매킨리(6,194m)를시작으로1989년안나푸르나,1990년캉첸중가원정에참가한바있는지현옥은남자후배들로구성된서원대산악부를이끌고중국고봉무즈타그아타등정에성공하면서대장의자질을인정받고,그로인해1993년여성에베레스트원정대대장을맡는다.대산련집행진과의갈등으로무산될위기도있었으나지현옥은꿋꿋하게견뎌내고후배두명과함께세계최고봉정상에올라선다.

그러나귀국후대산련집행진과의갈등뿐아니라원정중있었던대원들간의불화가불거져나오면서지현옥은산악계에회의를느끼고한동안산과멀리떨어져지낸다.그러나산을향한지현옥의열정을사그라지지않고다시활활타올랐다.대신여러명의원정을홀로준비하고현지인들을고용해등반을펼쳤다.그렇게해서1997년가셔브룸1봉에이어1998년가셔브룸2봉을등정하고,이듬해1999년선배인엄홍길씨의제의로안나푸르나원정에동참했으나안타깝게도등정후하산길에유명을달리하고말았다.

▲고미영

스포츠클라이머에서고산등반가로변신한고미영

2009년11번째8,000m거봉인낭가파르바트(8,125m)등정후하산길에사고를당한고미영(1967년생)은후배산악인들에게의지의표상이었다.그녀에게산은끊임없는도전의대상이자자기계발을위한장이었다.고미영은특히스포츠클라이머들에게는우상과같은존재였다.그녀는무엇보다변신과도전을거듭하면서도단한번도꺾이지않고나아가는후배들에게나아갈방향을제시해주었다.

스포츠클라이머로서산악계에모습을드러낸그녀는1994년부터2003년까지전국등반경기대회9연패를달성하고,아시아스포츠클라이밍대회에서도1997년부터2003년까지단한번을제외하곤여섯차례나우승을차지했다.아시아대륙은그녀에게좁았다.세계제패를위해달렸다.그로인해2000년월드컵랭킹6위에이어2001년에는5위에입상했다.스포츠클라이밍에만안주하지않았다.1999년빙벽등반을배운지3년만인2002년세계선수권대회4위에오르고,이듬해2003년월드컵랭킹5위에올랐다.

이렇게스포츠클라이머로서명성을쌓아올린고미영의꿈이하얀산으로이어지리라고는그누구도예상치못했다.첫번째대상은파키스탄의드리피카(6,447m)였다.거기서그녀는등정길에서60m나추락하는위기를맞았지만이를극복하고목표를달성했다.그꿈은이듬해세계최고봉도전에서꺾이는듯했으나이를쓴약으로삼고와신상담,이듬해2007년봄에베레스트재도전에성공했다.이후불과2년2개월만에8,000m급11개거봉등정에성공했다.그러나고미영의멈추지않을듯했던고봉등정행렬은11번째거봉인낭가파르바트등정소식이TV를통해전해진지하루뒤인7월11일오후7시경추락사고로막을내리고말았다.

▲오은선

14좌완등공표했으나캉첸중가등정의혹에시달린오은선

오은선(46·블랙야크)은2010년4월27일KBS의위성중계를통해전국민에게안나푸르나등정과정이방영되면서14좌등정을감동적으로마무리한여성산악인이다.

수원대산악부출신인오은선은1993년여성에베레스트원정대멤버로히말라야등반에데뷔한다.그등반에서눈에띌만한모습을보여주지못했으나고산등반에대한꿈을저버리지않고1997년대학산악연맹원정대에합류해가셔브룸2봉등정에성공한다.오은선은이후박영석원정대대원으로서활동,1999년브로드피크와마칼루,2001년에는K2원정에동행했으나,등반마다한명씩목숨을잃는사고만겪고등정은하지못한다.

오은선의두번째고봉등정은2004년에베레스트에서이루어진다.14좌에도전하는것은너무도멀고힘든일이라판단하고7대륙최고봉완등의일환으로나선원정이었다.오은선은그등반에서세계최고봉등정의목표를달성했으나전날정상에올랐다하산길에서설맹에의한탈진사고를당한동갑내기산꾼박무택의주검을목격하고도그냥정상에올랐다는점때문에논란의대상이되기도했다.

2005년스키를타다가정강이가복합골절되는부상으로한해동안등반을중단했던오은선은2006년시샤팡마등정에성공하고,이듬해봄초오유등정을해낸데에이어여름시즌K2재도전에서한국여성최초로K2등정에성공한다.

이후오은선의꿈은14좌완등으로커졌다.이어2008년마칼루,로체,브로드피크,마나슬루,2009년캉첸중가,다울라기리,낭가파르바트,그리고가셔브룸1봉등2년연속한해4개고봉등정에성공한다.이렇듯오은선이한해4개씩원정에나설수있었던것은엄홍길과박영석이그랬듯이바싹좇아오는고미영의추격때문이기도했다.그러나낭가파르바트등정이틀뒤고미영이사고를당했을때는고산등반에대한회의를느끼기도했다.

이렇듯우여곡절끝에오은선은2010년4월27일위성생중계를통해정상에올라서는과정이전국민에게생중계되는감격속에서14좌등정페이스를마무리지었으나,그한해전올랐다고발표한캉첸중가등정사진이불확실하고등반과정에대해정확한설명이뒷받침되지않아아직도한국산악들사이에서14좌완등을인정받지못하고있는상황이다.

중급고봉에서난도알파인등반추구하는유학재

한국히말라야등반을대표하는산악인은8,000m급고봉에서만탄생한것은아니다.6,000~7,000m대고봉에서신루트나알파인스타일등반을멋지게구사한클라이머들도여럿이다.

그중유학재(51·필라스포츠고문)는대표적인알파인거벽등반가다.1988년한국최대빙폭인토왕성빙폭을1시간38분만에오르는기록을세우기도한유학재는러시아의코뮤니즘(7,445m)등정을시작으로1992년알래스카의키차트나스파이어동벽신루트등반에이어1994년미국요세미티의거벽등반을해낸다음인1995년히말라야고봉에첫진출한다.대상은카라코룸히말라야를대표하는거벽인‘빛나는벽’가셔브룸4봉(7,925m)서벽이었다.

한국산악회원정대의선봉장으로나섰던가셔브룸4봉서벽첫도전은해발7,800m지점에서끝을맺었으나이태뒤인1997년두번째도전에서그는중앙립신루트개척등반에성공한다.이후잠잠하게지내던유학재는높이를더욱낮춘다.생활에지장을주지않을정도의기간안에해낼수있는산을대상으로하되대신난도높은암빙설혼합벽을택했다.

그는이후2001년콩데리(6,093m)북동릉동계등정에이어2005년콩데샤르동계등정에성공하고,2008년에는한국산악회후배들과함께파키스탄히말라야의오지에솟아있는CAC샤르(5,942m)와코리안샤르(6,000m)초등에성공한다.그리고2010년1월파릴랍체신루트등반에성공했으나안타깝게도황기용대원이하산길에서심한복통끝에숨을거두고말았다.하지만유학재의알파인등반은앞으로도계속이어질것으로보인다.

▲(위)유학재/(아래)김형일(왼쪽),장지명

동생형진과같은난도높은길좇다유명달리한김형일

지난해가을촐라체에서후배장지명과함께목숨을잃은김형일은알파인스타일거벽등반을추구하는등반가였다.김형일은동생형진씨가1998년탈레이사가르북벽에서추락사한이후전문등반에몰입하기시작한클라이머다.

김형일은1999년캐나다부가부등반으로혼합거벽등반을처음경험하고2001년로체등반을통해해발7,500m대고도를경험해본이후인도탈레이사가르(6,904m)북벽등반(2004년)과,파키스탄네임리스타워(6,239m)신루트등정(2005년)을해낸데에이어카라코룸히말라야의아딜피크(5,300m)신루트등정(2008년)에성공하고2009년파키스탄스팬틱(7,027m)신루트등정으로절정에이룬다.

이러한등반업적으로2006년대한민국산악상개척상을수상한데이어2009년한국산악회황금피켈상을받기도했던김형일은2008년K2클라이밍팀장을맡으면서더욱열정인등반을펼쳤다.지난해가을촐라체등반에서함께사고를당한고장지명과등반한가셔브룸5봉(7,321m)북서벽(2010년)과자누(7,719m)동벽(2011년)같은등반은국내산악인으로서는첫시도였다.

김형일은거벽등반과알파인등반기술보급에도힘썼다.김형진이1998년사고전문을연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강사로서거벽등반기술전파에힘쓰는가하면2011년1월에는설악산에서개최한동계산악인모임에일본의세계적인알파인등반가들을초청해강연회를열기도했다.

더욱많은클라이머탄생하기를기대

앞서거론한산악인외에도한국히말라야등반사를장식한산악인들은무수히많다.1998년탈레이사가르북벽등반에성공하고정상설원에서추락사한신상만·최승철·김형진세악우는히말라야혼합거벽등반을상징하는인물들이다.이들은등정보다는난도높은벽을도전의대상으로삼은이들이었다.

2007년봄에베레스트남서벽에서추락사한오희준과이현조는8,000m고봉을단지등정하는것보다는새로운,자기만의길로올라가려는알피니스트정신을추구했던클라이머들이다.게다가2011년가을안나푸르나남벽기점에서박영석대장과함께눈사태사고를당한신동민·강기석,또한그에앞서2009년가을히말출리(6,441m)북벽에서실종한민준영과박종성역시머메리즘에입각해높이보다난이도를추구했던클라이머들이다.

이들모두히말라야고산등반에경험이많고,앞으로더욱진보적인첨단등반을통해한국히말라야의발전에크게기여할이들이었기에많은산악인들이안타까워하는것이다.

물론앞으로한국히말라야등반사를장식할만한클라이머들로서현재히말라야등반이진행중인클라이머도적지않다.13개고봉무산소를기록하고있는김창호와함께다이내믹부산희망원정대의14좌완등을향해레이스를펼쳐온서성호는이제K2와브로드피크2개고봉만남겨놓은상황이다.양손가락장애에도불구하고히말라야14좌완등을꿈꾸는김홍빈(광주송원대OB),역시14좌완등을향해레이스중인김미곤(버그하우스),요세미티의거벽에서기량을닦은뒤히말라야고봉거벽에서멋진등반을펼쳐왔고올여름라톡1봉(7,145m)북벽에도전하는거벽등반가김세준(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강사)과탈레이사가르북벽한국초등외에도8,000m급3개봉등정자인구은수(서울시재난구조대)역시빼놓을수없는명클라이머들이다.

올여름한국히말라야등반사50주년을맞는8월15일까지수많은히말라야니스트들이탄생해왔듯이앞으로50년이지나한국히말라야등반100주년을맞는2062년에는한권의책에다적어넣을수없을만큼많은클라이머들이나오기를기대한다.

-글·/한필석월간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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