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삼촌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날 *-

외삼촌과마지막작별을하는날

지난5월19일오후에대구외삼촌이돌아가셨다는슬픈소식이전해왔다.외삼촌과의추억은산처럼많은데,갑자기돌아가섰다는소식을접하니눈앞이캄캄하다.조금일찍퇴근을하여집에도착하니19:30분이다.사워를하고간단히저녁을먹고출발을하였다.서울역에서21:30분동대구행KTX을타고출발을했다.다행인것이문상은밤늦게가도되는관행이나의불안을해결해주었다.동대구역에내리니23:43분이다.택시를타고병원영안실에도착하니자정의시간이다되었다.

다시는뵐수없는외삼촌영정앞에무릎을굻고한없이마음은울고있었으나,간단하게예를올리고,외사촌에게그동안의외삼촌의병세이야길들었다.지난2010,08,22일외삼촌께서어머니가계신요양병원을방문할때부터병세가시작한것같다.그래서외삼촌은누님들을두루만나는마지막여행을하신것같다.병명은페암이라고하셨는데,병세로인한통증은오지않아고생을하시지는않았다고하였다.외삼촌은올해81세이시다.구기한삶을사셨지만2남2녀의자식들이그자리를굳게지키고있었다.

12시가지나면서문상객은오지않았으나,친지들이이곳저곳에모여앉아외삼촌과의마지막밤을보내는화투판이벌어지기도하고술자리는계속되었다.외삼촌이마지막가는밤은길기만하였다.아침에일찍영구차가도착하고외삼촌에대한마지막예를드리고영구차를타고화장장으로출발을하였다.순서를기다렸다가시간이되어외삼촌과영원히이별을고하는그화로에들어가는것으로끝이났다.

그곳으로들어갈때이세상에서의가장슬픈표정으로보내드리고화장이끝나고재가되어우리앞에다시나타났을때우리는인생의허무함을또한번눈여겨보아야하였다.이제납골당으로이동하여그곳에외삼촌의유골을모셔놓고이세상에서의마지막인사를드리고돌아왔다.외삼촌과의만남과헤어짐에잊혀지지않는추억을곱게간직하고싶다.삼가명복을빕니다.외삼촌!

요양병원앞에서어머니와외삼촌

외삼촌을보낸오랜시간동안나는외삼촌과의관계를정리하느라고많은시간이필요했다.외삼촌은내가초등학교를다닐때군복을입은용감한군인으로내앞에나타나섰다.그때의외삼촌모습이지금도잊혀지지않는다.외삼촌은6.25사변이일어나고19세때무조건강제입대해야하는시대의부름을받고부산에서1주일간군사훈련을받고바로전투에참전하였다고하였다..

유엔군총사령관맥아더장군이총반격전을위한인천상륙작전을계획하고,그양동작전으로시작된전투로육군본부직할독립제1유격대대대원772명중의한명으로상륙함인문산호에탑승하여1950년9월14일새벽에동해안의영덕군남정면장사리해안에기습상륙하는작전을참전하였다고말씀해주셨다.새벽상륙을감행하던학도병들에대하여공산군은무차별사격을가하여130여명이사망하고300여명이부상을당하였으며상륙함인문산호는좌초되는피해를입게되었다.

이상륙작전에참전해적후방의보급로를차단하고퇴각로를봉쇄하여인천상류작전을성공시키고수도서울을수복하는데가장큰역할을한’장사상륙작전’에외삼촌이참전하였다고하셨다.장사상륙작전에서대원772명중90%가학도병으로겨우총쏘는훈련을받고전투에임한유격대의돌격전은진격과후퇴를거듭하면서격렬한전투에임했다고회상하였다.낮에진격을하고,밤에는공격을받아몇차례진격과후퇴를하는과정에많은희생자가발생하였다고한다.

격렬한전투에서포로가되었다가다시탈출을하였으며,전투에임하는과정에서두번이나포로가되었다가도탈출을하는전투에서총과모자등소지품을모두를잃고산을해매다가산에서총과모자를습득하여그것으로생명을담보로싸웠다는생생한이야기를들려주었다.주은모자를쓰고돌아와그모자의계급장이그사람의계급이된경우도있다는이야기도들려주었다.전쟁의소용돌이속에빚어진일이지만그만큼경황이없었다는것을말해주는것같다.

그러나당시아군은막대한피해를무릅쓴상륙작전결과해안교두보를장악하는데성공하였으며도주하는적을추격하므로서인천상륙작전의성공을지원하였을뿐만아니라북진의발판을마련하는데큰기여를하였다고전한다.역사적인인천상륙작전의성공에는서해안인인천지역과달리동해안에서장사상륙작전을양동작전으로전개하므로써적의관심을분산시키는효과가컷다고한다.

한달가까이전개된전투에서많은희생자를내고겨우170여명이살아돌아왔다고하니얼마나숨막히는전투가전개되었는지상상이가는대목이었다.다시배를타고부산으로돌아가서새로운부대배치를받고군대생활을계속하였다는하셨다.그래서해마다9월14일영덕장사상륙작전전몰용사위령제가열리고있어,외삼촌도이행사에해마다초대를받고있다고하셨는데,이제는이세상의모든시름은놓고하늘나라에가셔서다시외숙모님을만나행복한세상을사시기를기도드립니다.외삼촌!삼가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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