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지질학의 선구자 이상만 명예교수의 ‘빛나는 米壽(미수)’ *-
BY paxlee ON 8. 12, 2012
한국지질학의선구자이상만명예교수…시인·화가·서예가·수필가로’빛나는米壽(미수)’
오늘도난뭔가에미친다…팔팔청춘,"이문세의장인?무용가육완순의남편?
나는나‐아직도최고의날을위해뛴다"
나는지질학자다…난나이먹는게좋다…달에서가져온月塵(월진)연구…
지질학의매력은답사여행…젊은이여,아프리카가보라…
가수이문세의장모가한국현대무용을개척한육완순(79)한국현대무용진흥회이사장인것은잘알려져있지만,그의장인이한국의지질학선구자인이상만(86)서울대명예교수인것을아는사람은드물다.1950년서울대지질학과를졸업한뒤미국과캐나다에서석·박사를받고귀국해64년부터91년까지27년간서울대교수로일하면서한국고기(古期)기반암연구에평생을바친이가이교수다.그는1964년제주도화산암을최초로연구했으며식수를용천수에의지하던제주에서1970년지하수를개발한인물이기도하다.아폴로11호가달에서가져온월진(月塵)을한국최초로연구했는가하면,유네스코산하위원장으로12년에걸쳐아시아지질도를편찬한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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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미수(米壽)를맞는이상만명예교수는서울홍대앞와우산공원근처언덕에30여년째살고있다.한국지질학의선구자인그는은퇴이후시·그림·서예로자신의세계를확장해가고있다.자신의나이를‘121세’라고하는그는“시세계를더꿰뚫어볼까.추상화의경지에도전해볼까,하고싶은게많다”고했다./이진한기자
65세에정년퇴임한뒤로그는더욱부지런해져서시인과수필가로등단했으며동양화가와서예가로도인정받고있다.그는오는31일옛서울역사(驛舍)를개조한’문화역서울284’에서미수(米壽)기념서화전시회와자서전출판기념회를열예정이다.
지난6일서울창전동자택에서만난그는"이문세보다내가훨씬더유명한사람"이라며"유명하다는건다른사람들이인정해주는게아니라내가얼마나보람있게살았느냐로말하는것"이라고말했다.육완순무용원이있는4층짜리건물에서딸부부와함께사는그의집세간은검소하기짝이없었다.거실엔’아남’25인치브라운관TV가있고,깨끗하게관리한가구들에는꽤오랜세월의흔적이있었다.
―1926년생이면미수는아직1년더남았습니다만.
"내생일이음력으로1925년12월29일이에요.그렇게세면올해가미수(88세)죠.나는나이먹는걸좋아해요.그게내자랑이거든.우리사위가나더러’5관왕’이라고해요.지질학박사,시인,화가,서예가,수필가라고.그런데그런5관왕은자랑이아니야.값진경험의총화가나이예요.나이를왜’먹는다’고하겠어요.모든먹는것을잘먹으면에너지가돼서얼굴이밝고화색이돌아요.그런데나이를잘못먹으면허약하고망나니가될수있어요.우리옛말에술도’먹는다’그랬어요.송강정철이’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한잔먹세그려/또한잔먹세그려’했잖아요.나이나술이나잘먹어야몸에이롭고사람됨됨이가되는법이에요."
―요즘은주로강원도평창에머무신다고들었습니다.
"평창에작업실겸기거하는데가있어요.내평생자연과학을해왔으니퇴임한뒤로는’자연이나에게뭐라고하는지들어보자’하면서자연을파고들었어요.인간은자연의인자(因子)이기때문에나이들면자연으로돌아가야해요.자연속에서글쓰고그림그리고하다보면자연과친구가돼요.그러면서자연과대화하는법을배우는거죠."
그의호(號)는도암(�岩)이다.’말오고갈도’와’바위암’,돌과대화하는사람이란뜻이다.한학자였던그의친구가’바위처럼생겼고바위를공부했으며바위와대화한다니까’1980년에지어준것이다.
―돌과대화한다는게무슨뜻입니까.
"돌마다제각기모양도색깔도구성물질도달라요.돌을오랫동안연구하다보면돌을보기만해도짐작이가요.돌을손에쥐었을때그돌에대한내지식을전부퍼부으면돌이여과장치가돼서필요없는말은다흘러내리고필요한말은튕겨나와요.그게돌과의대화예요.나는답사다닐때학생들이돌을막두들기면’야이놈들아,그렇게막두들기는게아니야.돌아,미안하다.내가좀공부하기위해서너를두들겨야겠다,이렇게말하고두들겨라’고가르쳤어요.지리산바위하나에도21억년짜리돌과17억년짜리돌,7억년짜리돌이섞여있어요.그런걸알아야돌과대화가되는거죠.그런대화를하다보면돌하나가소우주(小宇宙)라는사실을깨닫게되고,더나아가서돌이우주그자체라는걸알게되는거예요."
―강변의흔한자갈과도대화가됩니까.
"그런자갈은다마모가된상태예요.한번보면어디서굴러왔는지바로알수있죠.지리산골짜기에가봐요.계곡상류가각지고큰바위로시작해서각진놈과둥근놈이섞이고,그다음엔둥근놈들그리고하류엔자갈만있어요.그경로가훤히다보이죠.어디서얼마만큼굴러왔구나하는걸짐작할수있어요."
―월진(月塵)연구는어떻게하게됐습니까.
“아폴로11호가달에서광물을캐왔는데그걸꼭내손으로연구해보고싶어서과학기술처에의뢰했더니1970년에나사(NASA)를통해5g이왔어요.그때공항에서월진을실은차를경찰차가미국대사관까지호위하고난리가났지요.혹시나누가훔쳐갈까봐언론에다가는‘서울대연구실에보관하고있다’고발표하고사실은우리집에서연구했죠.연구가끝난뒤엔충북청주의‘홍산박물관’에기증했어요.”
―그런학문이재미있습니까.
“재미있어요.지질학은상상력이에요.물리학은숫자가딱들어맞아야하는데지질학은상상력으로하는공부예요.빅뱅이라는게아무것도없다가어느순간쾅하고터져서수많은별이생겨난거잖아요.그렇게은하수가되고태양계가되고지구가태어난것이죠.사람은물론동물과식물도처음에는아무것도아니었던거죠.그러니까돌멩이를무생물이라고말하는건뭘잘모르는거예요.현미경으로암석을관찰해보면호화찬란해요.빛깔이광물마다다다르잖아요.굴절률도다다르고.다이아몬드가뭐예요?탄소결정체잖아요.탄소결정도어떤놈은숯이되고어떤놈은다이아몬드가되는거죠.”
―평생돌을연구하다보면경외심도생깁니까.
“동해안에가면시대가다른해안단층을볼수있어요.어마어마하게오래된지구의역사가그단층에새겨져있지요.지구역사가46억년이라고하고인류역사는원인류부터시작해도100만년이에요.지구역사를1년으로치면인류역사는3초도안돼요.그럼나는얼마나보잘것없는존재인가.대자연앞에머리를숙일수밖에없는거예요.”
―시인·화가·서예가이면서도자서전서문은‘나는지질학자다’로시작하던데요.
“지질학을했기때문에시도쓰고그림도그린거죠.어릴때부터자연을사랑했기때문에지질학을공부하게됐고,지질학을공부하니까세계유명산천을다돌아다닐수있었어요.그덕분에자연을더욱더사랑하게됐지요.그러니까내시,그림,글씨의뿌리는지질학이에요.나는어디가서화가라고해본적이없어요.”
―어려서부터자연을좋아한계기가있습니까.
“내가경북김천황악산밑에서태어났는데감천냇가에서씨름하고놀던때가아직도생각나요.초등학교4학년때몸이안좋아전북정읍에있는병원까지혼자기차여행을한적이있어요.그때역전에앉아있는데빗줄기가무척쏟아졌거든요.그걸보고전율을느낄만큼좋았어요.그때부터여행을좋아하고자연을좋아했어요.”
―6·25직후에미국유학을떠났는데당시로써는매우드문일이었겠죠.
“전쟁에서국군이마지막으로서울에서후퇴할때였어요.군대에가야하는상황이었는데공군기술장교후보생모집하는걸보고지원했지요.보병으로가는것보다는기술장교가돼서내가배운것을가르쳐야겠다는생각이었죠.공군사관학교에서독도법과군사지형학을가르쳤지요.전쟁끝난뒤까지3년6개월을복무했어요.의무복무연한이7년이었는데,어느날‘진짜공부를한번해보자’는생각이들어서미국콜로라도대학원에지원했고입학허가를받았죠.이허가증을들고사관학교인사국장을찾아가‘군에있는것보다조국을위해10배이상좋은일을하겠다’고설득했지요.결국남은3년6개월을감면받아전역하고미국으로갈수있었어요.1954년8월이었지요.”
―미국유학시절심한고학(苦學)을했다고들었습니다.
“그때집에돈이있어도달러를바꿀곳이없었어요.그래서미군들이쓰는‘군표(軍票)’100달러와어머니가빼주신금가락지하나들고미국으로갔어요.군표는미국본토에서쓸수가없었고금가락지도당장현금으로바꿀수가없었죠.가자마자그릇닦기부터시작해페인트칠,가게허드렛일까지안해본일이없어요.그때는볼링장에서쓰러진핀을사람이손으로일일이세웠는데,그아르바이트도했어요.1시간에45센트주는일이었지요.손이느리다고‘갓댐(Goddamn)’소리도많이들었죠.볼링장일을마치고허겁지겁강의실에뛰어오면온몸이땀에범벅이되고….”
―그때‘익명의후원자’도만났다면서요.
“하루는학교의외국인학생상담사가찾아서갔더니‘어떤익명의기부자가착실하고가난한학생에게주라고했다’면서100달러를주는거예요.아무리가난해도‘까닭없이돈받는건거지다’라는생각에‘이름을알아야받겠다’고고집했더니미네소타에사는줄리아마셜이라는할머니라고해요.100달러면그당시에굉장히큰돈이었어요.그돈으로책과운동화를비롯해서필요한물건들을산뒤에목록을죽적고감사편지를써서보냈어요.‘주신돈으로이런물건을샀습니다.훗날반드시갚겠습니다’라고요.그랬더니고맙다는편지가오고하면서교류를시작했죠.캐나다맥길대에서박사학위받을때까지5~6년간몇천달러는받았을거예요.나중에캐나다자원조사국지질조사관으로일하면서한달에2000~3000달러씩벌게됐어요.그래서그할머니를찾아가그간받은돈을내밀었죠.그랬더니그할머니가‘그돈은너를위해서준게아니라인류를위해서준것이다’면서사양하시는거예요.얼마나감탄했겠어요.그감사한마음을어떻게할까하다가그마을신문사에찾아가이런사연을얘기했고,그신문에할머니이야기가대서특필되었지요.”
이교수는훗날부인육여사와함께마셜할머니를다시찾았고,육여사는그할머니의기부로그마을에지어진‘마셜홀’에서무용공연도했다.그리고이듬해그할머니는100세를넘겨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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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2000년중국윈난성쿤밍의소수민족마을에답사갔을때찍은사진.그는중국의대자연에매료돼나이여든에중국어를배워중국자유여행에나섰다./이상만교수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