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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신선을만나는바위문이라는방선문(訪仙門)의안쪽에서내다본모습.제주의하천이그렇듯비가오지않으면물이없지만계곡을타고밀려내려온거대한암석에는풍류를즐기던옛선인들이새겨놓은글귀들이빼곡하다.
제주에서가장빼어난명소를꼽으라면어디를들수있을까요.한라산이나일출봉,혹은우도나천지연폭포….아마도이런곳들이꼽히겠지요.그런데지금으로부터300~400년전에는이곳이제주최고의명소로꼽혔던모양입니다.다름아닌제주시의‘방선문’계곡입니다.옛사람들은한라산에신선이있다고믿었습니다.계절을가릴것없이운무가척척걸리거나산수화풍경을그려내는한라산의모습에서신선을보았던것이지요.옛선비들이그신선을만나러갔던계곡이방선문계곡입니다.‘찾을방(訪)’에‘신선선(仙)’,그리고‘문문(門)’자를쓰니풀어보면‘신선을찾아가는문’이란뜻입니다.
방선문은한라산에서흘러내린계곡한가운데있는구멍이뚫린바위문입니다.이바위문주변에서옛사람들은계절을감상하기도하고,풍류를즐기기도했으며,돗자리를깔고선비들끼리시서화를겨루기도했다지요.방선문계곡에는옛사람들이남긴글귀들이빼곡한데,요즘으로치자면대학가앞선술집의낙서처럼어지럽습니다.곳곳에숨어있는글귀까지다헤아려보면줄잡아200여개가넘는다는군요.제주의다른계곡이다그렇듯큰비가아니면물이없는곳이지만,그거야예전에도그랬을터.거대한돌들이뒹구는계곡속에돌문이신비롭기도했지만,옛사람들이신선을만나러왔다가못만나고돌아간다는한탄과아쉬움을담은글귀의풍류도못잖았습니다.
제주야누가뭐래도이국적인분위기와빼어난자연풍광이으뜸이어서여행지로는물론이거니와‘살고싶은곳’으로도꼽히지만,한때제주는육지에서온유배객들에게가혹한형벌의땅이었습니다.그유배의흔적과이야기를더듬어찾아갑니다.추사김정희의대표적인걸작인‘세한도’는그가제주유배때그린그림입니다.방선문도조선말엽의대쪽같았던선비면암최익현의유배행로를따라가다만난곳입니다.여기다가유배이야기중에서가장극적이면서압권이었던붉디붉은홍랑의사랑이야기까지보태서들려드릴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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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안덕면사계리의조선시대향교인대정향교.추사김정희는유배생활을하면서이곳에서후학들을가르치기도했다.명륜당에는추사의솜씨로쓴현판이걸려있다.명륜당주변의소나무는추사의대표적인걸작‘세한도’에등장하는소나무의모델이었다는이야기가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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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27년유배를견디다
이즈음이야제주는이국적인풍경과아름다운자연을품고있어모두들살고싶어하는곳이지만,오래전에는멀고낯설고거친유배의땅이었을뿐이다.삼남대로를따라땅끝까지간뒤다시뱃길을건너야하는제주유배길은목숨을장담할수없는험난한행군이었다.제주에무사히당도한뒤에도유배인들은누구든고통을호소했다.높은습도와거센바람,비루한먹을거리와낯선풍습때문이다.이런제주에서30년가까운유배생활을했던이가있다.
조정철.제주에왔던유배객중에서가장오래유배생활을했던인물.제주에유배당한기간만자그마치27년에이른다.육지에서보낸유배기간까지합친다면모두30년이넘는다.무려30년의유배형벌을받았다니무슨죄가그리도무도했던것일까.그의유배는순전히막강한세도를누렸던처가때문이었다.정조는집권하자마자아버지사도세자를죽음으로몰고갔던이른바‘노론벽파’에대한복수를시작한다.그표적이된대표적인가문이바로조정철의처가였다.조정철의장인홍지해는사도세자를억울한죽음으로몰고갔던주범중의한사람이었다.정조가쥐고있는복수의칼날이다가오자궁지에몰린홍지해는급기야정조를시해하고정조의이복동생을왕위에올리려는위험천만한계략을세웠다.그리고조카와함께암살단을결성해궁중에난입시키는초유의사건을일으킨다.이게이른바‘정조시해모의사건’이다.궁중에숨어들었던자객들이붙잡히면서사건은만천하에드러나고시해모의의주모자인홍씨일가는피바람으로풍비박산이나고만다.
이런와중에천신만고로목숨을건진조정철은제주유배형에처해진다.남편의유배가모두자기집안의책임이라여겼던부인홍씨는집안의몰락과남편의유배를괴로워하다여덟살난아이를둔채목을매고만뒤였다.조정철은한순간에모든것을잃었다.그야말로‘비극과비극의징검다리’를딛고서거칠고험한섬제주로유배를떠나야했던것이다.그때그의나이고작스물다섯이었다.
제주땅으로유배간이가어디조정철한명뿐일까.그럼에도유독조정철에게눈길이가는것은그의유배가워낙극적이었던데다,유배기간동안의애절한사랑이야기가스며들어있기때문이다.조정철은제주에서홍윤애를만난다.홍윤애는유배지인근에서오빠와살며조정철의의복이며식사수발을도와주던여인이었다.어찌어찌둘은사랑에빠졌던모양이다.조정철의입장에서야자신을돌봐주는홍윤애에게서사랑을느꼈을수있었을테지만,홍윤애는임금을시해하려는음모에연루된대역죄인이었으니살아도산목숨이아닌조정철에게기꺼이사랑을바쳤다.홍윤애의사랑은헌신적이었다.사랑이깊어지고홍윤애는조정철의딸을낳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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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애월읍유수암리의구릉에자리잡은홍윤애의묘.중죄인의신분으로제주땅으로유배왔던조정철과사랑을나누다가끝내죽음을맞았다.조정철이유배가끝난뒤30여년만에제주목사로부임해서가장먼저이묘소를찾아지었다는묘비명이비석에아직남아있다.
#죽음으로바꾼사랑이야기
제주유배중조정철은책도읽지못하고마당에도나오지못하는가혹한형벌을견뎌야했다.수시로관리들이드나들면서사소한일까지트집잡아모욕을주는것쯤은예사였다.잠자리에는아예불을때지못하게했고,제대로된음식도먹지못하도록했다.제대로먹지도자지도못했으니날로수척해갔을터인데,관리들은‘얼굴이통통하게살이올랐으니필시쌀밥을먹었을것’이라며주위사람들까지매로다스리며문초했다.
급기야새로부임해온제주목사는조정철의죄를만들려고홍윤애를불러다가문초를하기시작했다.조정철의유배지에서의죄상을고하라는얘기였다.홍윤애는입을다물었고그럴수록매질은더해졌다.형틀은잔인한매질로피가낭자했다.결국홍윤애는형틀에묶인채죽고말았다.자신을보호하기위해죽음을당할때까지도입을열지않은그녀를보고조정철은얼마나가슴이아팠을까.얼마나애처롭고한스러웠을까.홍윤애가죽은뒤에도가혹한유배는계속됐고,이같은유배를조정철은제주에서만27년,그리고육지에서3년을더견뎠다.
조정철의유배는30년만에끝나게된다.길고긴유배의어두운터널을지나온조정철은곧사면복권된다.그리고유배지제주에첫발을내디딘지35년만에이번에는자원해서제주를다스리는도지사혹은군수격인목사가돼서돌아온다.스물다섯의나이에당도했던유배지에환갑의나이로그땅을다스리는관리가돼서돌아오게된것이다.유배자가목사가돼서돌아오는이장면이야말로제주유배사에서가장극적인장면이라할만하다.
제주에당도한그가가장먼저한일은무엇이었을까.그는열일을제쳐두고홍윤애의묘부터찾아가통곡한뒤묘비명을짓고애도시를적어넣었다.조선시대를통틀어목사신분의사대부가정혼한사이도아닌여인의무덤에서통곡을하고추모시로비석을세운것은아마도여기가유일하다싶다.그렇게남겨진시의한구절이이렇다.“…아름다운두떨기꽃글로짓기어려운데,푸른풀만무덤에우거져있구나.”여기서‘두떨기’라함은홍윤애와참판의부실이었던그의언니를함께이르는말인데,언니도참판이죽자독약을먹고따라순절했다.목사로부임한조정철은뒤늦게홍윤애와의사이에서낳은딸을찾았지만이미죽고없었고,사위또한그가제주에부임하던해에죽고말았다.
홍윤애의무덤은제주시애월읍유수암리에있다.삼도동의공동묘지에있다가1937년제주농업학교가이설되면서손자인박규팔의무덤곁으로이장됐다.1135번도로인평화로를따라가다유수암교차로에서나와S오일유수암주유소를오른쪽으로끼고평화10길을따라200m정도만들어가면왼쪽으로돌담안에함께있는홍윤애와손자박규팔두기의무덤을만날수있다.홍윤애무덤앞의이끼낀비석에는홍의녀지묘(洪義女之墓)란글씨가뚜렷하다.일대의풍광이빼어난것도아니고,묘소를찾아가기도그리쉽진않지만,고즈넉하게들어선무덤곁에앉으면수백년전의사랑이느껴진다.
#유배의땅에서신선을기다리다
제주로유배온인물들은제법알려진이들만해도손가락으로꼽자면두손이모자란다.제주에서비극적최후를맞은광해군을비롯해고승보우,우암송시열,백산이세번,김정,정온,김상헌등이모두이곳제주로유배왔던인물이다.제주땅에유배된이들중에서가장화려한조명을받는이는단연추사김정희다.마른붓질로황량함을그려낸대표작‘세한도’가바로이곳제주유배당시에그려진그림이다.추사는제주에서9년여의유배기간동안추사체를완성하기도했다.
서귀포시대정읍안성리에복원된추사유배지는관광객들에게도널리알려진명소.추사의서찰과글씨기록을한데모은전시장인추사관까지지어져있다.일대의유배흔적을돌아보는‘추사유배길’도만들어져있다.3개코스로나뉜추사유배길중에서안덕계곡과대정향교,세미물등을돌아보는제3코스‘사색의길’이가장추천할만하다.굵은소나무와아름드리팽나무로둘러친대정향교에는한여름의초록이무성하다.추사의‘세한도’속에등장하는소나무와잣나무의거친맛에는비할수없겠지만,그정신만큼은느낄수있는곳이다.
이에비견할만한곳이면암최익현의유배길이다.최익현은조선말기역사적격변에앞장서부딪쳤던지식인이자조선선비의마지막자존심이었다.그는대원군의실정을낱낱이열거하고왕의친정과대원군퇴출을주장했다가체포돼제주로유배를가게됐다.최익현은앞서송시열과김정희가유배를가면서걸었던삼남대로를따라제주로향했다.조천포에도착한그는제주목관아부근에있던아전의집에서유배생활에들어간다.거기가바로유배길이시작되는연미마을회관이다.유배길에는최익현의유적과귤암이기온의덕을추모하기위해향불을올리던제단인문연사(文淵社)가있고,한일병합후유림들이광복투쟁을결의하며석벽에글을새겨놓았다는조설대(朝雪臺)도있다.조설대는‘조선의수치를설욕하겠다’는뜻에서붙여진이름이다.
유배길은민오름을지나방선문계곡에당도한다.면암유배길의종착지인방선문계곡은제주에서가장긴하천인한천의상류에자리잡고있다.유배길코스가아니더래도방선문계곡은그풍경만으로능히아름다움을지니고있다.제주의하천들이대부분그렇듯비가내린직후가아니면계곡에는물이말라버리지만,거대한바위에뚫린구멍과뒹구는집채만한바위들이마치신선을만나러가는문처럼여겨지는곳이다.누가새긴것인지알수없지만바위문안에는‘신선을만나는곳’이란뜻의‘방선문(訪仙門)’이란이름부터‘신선을부른다’는뜻의‘환선대(喚仙臺)’란이름까지다양한글귀들이새겨져있다.‘흰사슴타고놀던신선이떠나가고없다’는시구절이있는가하면,바위구멍이‘안개그림드리워오랜세월잠가놓았다’는시구도있다.그한쪽에는담박한필치로쓴면암최익현의이름석자도뚜렷하다.이렇게방선문일대에새겨진글귀만200여개에이른다.
일대의선비들은물론이고벼슬아치부터유배객까지앞다퉈방선문계곡에이름과시를새겨두었으니아마당시로서는방선문계곡이제주최고의명소로꼽혔던모양이다.지금이야곳곳에아름다운바다와어우러진제주의명소들이즐비하지만,자연풍광대신문향(文香)과사람의따스한체온,그리고감동이느껴지는곳으로홍윤애의묘와방선문계곡에버금할만한곳이어디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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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가는길=방선문계곡은제주시내에있다.제주국제항에서차로20분남짓이면당도하는곳이다.공항에서신제주로터리와연동사거리를지나서아연로를따라가다오남로쪽으로우회전.물길의흔적을따라오르면방선문이다.바위에뚫린구멍인방선문으로닿을수있도록계곡으로내려서는길이잘다듬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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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묵고,무엇을맛볼까=제주의숙소야특급호텔부터게스트하우스까지다양하다.휴가시즌을살짝비낀이즈음이라면롯데호텔제주의에어텔패키지를이용해볼만하다.9월15일까지왕복항공료와2박숙박,2인조식서비스등이제공된다.54만원부터.신한카드플래티늄등급이상카드결제시1박당5만원의특별할인이제공된다.1577-0360.하얏트리젠시제주도20일부터9월27일까지마운틴뷰객실1박,2인조식,칵테일2잔,중형렌터카24시간이용등을합쳐23만4000원에판매한다.064-735-1234
제주에서관광객을겨냥한맛집이식상하다면현지인들에게인기있는곳을찾아가보면어떨까.서문시장의‘대우식당’(064-722-7085)은저렴한가격에질좋은제주한우를맛볼수있는곳.정육점에서고기를사다가1인당5000원씩의차림요금을내면된다.제주시조천읍교래리는토종닭으로유명한지역.‘교래토종닭’(064-782-9799)이가장유명하다.통째로구워낸호박과훈제오리,오리탕등을푸짐하게내오는‘모메존가든’(064-756-0332)도빼놓을수없는맛집이다.도남동의‘추자본섬’(064-702-9942)은가을이제철인삼치회로유명한곳이다.
제주=글·사진박경일문화일보기자/2012년8월14일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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