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잘 쓰는 법 [4] *-

글쓰기노하우글쓰기는내삶의표현

내게는문학이반찬,미술이밥이다.둘이다투는경우는거의없다.두우물에서나온물은행복하게뒤섞여공존한다.김병종(화가)

많은사람들로부터받는한결같은질문이있다.화가인당신은왜글을쓰느냐.한우물만파도될까말까한세상에그렇게여러가지를하면화가로성공할수있겠느냐와같은것이다.

가끔호의적인반응을보내오는분도있기는하다.전문적으로글쓰는일에종사하지도않는당신이어쩌면그렇게글을잘쓰느냐는물음이그것이다.지난30년간이런질문을하도많이받다보니이제는누가물을라치면속으로,또그얘기,하고실소해버린다.이런질문을받을때마다나는사람들의머릿속은참으로토지등기등본처럼영역가름이선명하구나하는것을느끼곤한다.

나는왜글을쓰는가.한마디로말해서글쓰기가내겐삶의한방식이기때문이다.그림그리기가내삶의한방식인것처럼글쓰기도나의유력한삶의방식이기때문이다.그점에있어서는독서나여행도마찬가지다.

나는서음(書淫)이라할만큼의독서광에,세계를예순나라이상돌아다닌여행광이다.독서나여행또한내삶과분리해서생각할수없는삶의한방식임은물론이다.

그런데도허다한사람들의뇌리속에는그림은언제그리나하는‘껄쩍지근함’이있는것같다.그러나그런염려일랑접어두어도좋을듯하다.나는충분히,그리고열심히화가라는역할을감내하고있기때문이다.

많은사람들이‘문학의시대는갔다’는비관적인견해를피력한다.더나아가인문학은죽었다고말하기도한다.어느정도사실일것이다.그러나아무리전자매체가발달한다해도문학이나글쓰기의행위는죽을수없는사항이다.인간이사색하는한글쓰기는계속될것이다.오늘도나는사색한다.그리고그사색의결정물들을성격에따라글과그림으로나누어표현한다.

내가글쓰기에별어려움을느끼지않는것은물론수십년동안의왕성한독서때문이라고생각하지만,내나름의회화적(繪畵的)글쓰기스타일을갖게된것에는그림의상상력이많은도움이되어주었다.마찬가지로그림그리는작업에는문학적상상력이많은영향을끼치게되었다.

그래서내게는문학이반찬,미술이밥이다.둘이다투는경우는거의없다.두우물에서나온물은행복하게뒤섞여공존한다.

문학과글쓰기가죽어버린시대인지는모르겠으되요즈음문학과글쓰기의영역이현저히줄어버린것은사실이다.

이것은유감스러운일이다.왜냐하면사색이줄어들고행위만난무하는시대라는증거일것이기때문이다.사색없는행위는얼마나건조하고위험한노릇인가.노래방이퍼져서아마추어가수들이넘쳐나게되었듯작문교실이라도퍼져서글쓰기의유행이라도불어닥쳤으면싶다.

정확한글을쓰려한다

나는무슨글이든탈고하려면거짓말조금보태서열댓번을뜯어고친다.

그러면서도언젠가는과학을시로쓰리라꿈꾼다.최재천(동물학자)

나는어려서부터글쟁이가되고싶었다.자연과학을하는사람의고백치곤좀어쭙잖겠지만아홉살때부터시를쓰기시작했다.학교교지에몇편실은것을빼고는어디변변하게시다운시한편발표한것도아닌주제에감히어려서부터시를썼노라고떠들수있으랴만,단몇줄의시를쓰기위해며칠씩가슴을졸인경험정도는있다는말이다.

고등학교시절한동안은조각에푹빠져한때미대에가려는꿈을꾸기도했다.문과를가려다무슨운명의장난인지이과에배치된이불행한소년에게그래도가장문과냄새가나는자연과학분야는생물학이었다.어려서아버지를따라상경하여학교는결국서울에서다녔지만방학이란방학은거의깡그리고향할아버지댁에서보낸나에게동물을공부할수있다는것은상당한위안이었다.

문학도의꿈을접은지여러해가지난오늘나는동물행동학자가되어돌아와어느문인못지않게왕성한집필활동을하고있다.내가쓰는글은거의모두생명이그주제다.돌이켜보면나는늘생명에대해고민하며살아온것같다.생명의아름다움을시로표현하려했고,생명의모습을깎아보려하다가이제는아예그속을헤집고있다.

나는내가자연과학을하게된것을무척다행스럽게생각한다.과학자치고제법글흉내를낸다고생각해주는덕에여기저기겁없이글을뿌리며산다.또자연과학,그중에서도동물행동학을공부한덕에그냥글만써온이들에비해소재가풍부한편이다.저광활한자연에서퍼오는내글의소재는쉽게마르지않을것이다.

하지만과학이내글에준가장큰선물은뭐니뭐니해도정확성이다.과학논문의글이란문학적수려함보다내용의정확한전달이더중요한법이다.미국에서공부한죄로나는과학논문을영어로연습했다.영어에비하면우리말은아름답긴해도그리정확한언어는못된다.많은경우주어가없어도그만이고여러모로느슨한구조를지녔다.영어로배운글쓰기가내게준가장큰교훈은쉽고정확하게쓰라는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그의책들이번역되어잘알려진하버드대학의진화생물학자스티븐제이굴드는크고화려한붓을휘두른다.그러나가끔서평가들로부터그가도대체무슨얘기를하려는것인지모르겠다는비판을듣는다.자신의박식함을알리는데급급한나머지때로글을쓰는본분을잊는다는것이다.

그에비하면하버드대학의내스승윌슨은어느서평가로부터다음과같은평을얻었다.“윌슨의글을읽은후‘그래서그가무슨얘길하려했느냐’를묻는사람은아무도없다.”

몇년전결코짧지않았던미국생활을청산하고귀국하여처음으로원고청탁을받았을때며칠밤을꼬박새우며괴로워했던기억이난다.어려서흉내내던문학적인글쓰기와영어로배운과학적글쓰기가내안에서서로뒤엉켜싸움질만할뿐도무지게워지질않았다.

컴퓨터가아니었더라면나는아직도그전쟁에휘말려헤어나질못하고있을것이다.일단이술저술실컷들이키곤컴퓨터에모든걸왈칵토해버렸다.그러고나서차근차근주워담기시작했다.몇번의산고를겪으며그렇게끄집어낸내글은어릴때의문학적감성은조금잃었을지모르나대신간결함과명확함을얻었다.

아직도우리문인들중상당수는컴퓨터가두려워원고지에글을토하고있다들었다.나로서는상상이가질않는일이다.컴퓨터는내가미처잊기전에마구쏟아놓은낱말들을그리어렵지않게자르고,옮기고,붙이고,꿰매준다.

나는무슨글이든탈고하려면거짓말조금보태서적어도열댓번은뜯어고친다.그래도아직한번도컴퓨터를구겨쓰레기통에던져보지않았다.한문장한문장소리내어읽으며글이내귀에음악이되어구르는가점검하는가하면주어,동사,형용사,관사가제가끔틀림없이자기자리에앉아있는지를확인한다.

남의글을읽을때문장이정확하지않으면글맛이딱떨어지기때문이다.그러면서도언젠가는과학을시로쓰리라꿈꾼다.

문체와사고에대한몇가지단상

글의설득력은곧그인격의설득력으로연결된다.

그래서쉼표하나에도개성을담는게가능해진다.정은숙(시인)

1.말은잘하는데글은못쓴다

디지털시대,하이퍼텍스트시대가되기전부터직업적으로타인의글을읽어온사람이보기엔현재너무많은글이난무하고있다는느낌이다.흡사봇물이터진것처럼많은사람이자신의이야기들을글로적어출판사로투고하고있다.

이제출판사들은투고원고만을전문적으로읽어주는사람을고용해야할상황이다.디지털혁명이글쓰기혁명을불러온형국인데문제는타인의글을읽고나면내자신이먼저착잡해진다는것이다(보내온원고의내용들도착잡한경우가많다).

무슨채팅방이나게시판을기웃거리지않아도도처에설익은말을글로바꿔놓은숱한문자들(글이라고하기에는너무함량미달이라는뜻에서)을만나게되는데,그순간연옥이따로없구나하는감상속으로빠져드는경우가한두번이아니다.세상모든일이그렇듯남앞에나서려면어느정도공력을쌓은후라야한다.언제까지문화가‘어린것들’의재롱을보는것과같은날것취향에빠져있어야하는가.

그것도십대에한정되는듯하지만글을쓰거나매만지는사람의입장에서볼때너무나말은잘하는데글을못쓴다는느낌이든다.이름만대면누구나다알만한유명인사의글을본적이있는데브라운관에서자신의생각을피력할때와는너무딴판인글쓰기앞에황당했던기억이난다.물론그것은글쓰기보다는말하기를더큰가치로두는작금의상황이작용하고있다는것은모르는것은아니지만.

2.사는만큼쓴다

기능적인글쓰기에대한나자신의혐오는글쓰기란결국삶쓰기이고사는만큼쓴다는고전적인생각에바탕을두고있다.기능적인글쓰기,단지의사전달위주의말을대신하는글쓰기가위세를드높이다보니쓴것은많은데그어디에도그사람의생각이들어있지않은경우를쉽게발견하게된다.

흡사누군가머리속에서불러주는것을저19세기말초기다다이즘의초현실주의적자동기술법으로받아적은것이아닌가하는의문이드는것이다.그런데다다이스트의언어는기능적인언어가아니라예술적인언어였잖은가.

따라서글쓰기는결국독창성,사고력에바탕을둔삶쓰기이고,글의설득력은곧그인격의설득력으로맥락지어진다.필자가운데는쉼표하나에도개성을담는이가있는데이런이들은곧그삶의태도가그속에스며있다고판단되는것이다.

물론여기에서하늘아래새로운것이어디있느냐고말할수있지만상호텍스트성에기대면인용조차자신의독창적인글쓰기의연장임을우리는추측해볼수있다.어느비평가의‘인용만으로된글짓기를해보고싶다’는토로는바로이것을말한것이다.

그런데우리의현실은생각의독창성보다는사고의편이성때문에남의생각을베끼는글짓기가성행하고있는것이다.결국은모든것이글쓰기이전으로환원되고마는것이다.

3.쓰는것이삶이되면불행하다

글을쓴다는것은삶을쓰는것이고삶을쓰는것은삶을부단히애쓰며산다는의미라고나는생각한다.글쓰기와삶쓰기는이처럼분리할수없는그무엇이다.그러나동시에문학적인언어에서는위반해야할그무엇도된다.

삶의불행은문학의축복이된다.물론모든불운했던삶이위대한문학이되지않는다는것은새삼말할필요가없다.시를쓰는눈으로바라보는삶,문학을하는눈으로바라보는세계는그전과는다른시각을갖는다는뜻이다.

역설적으로불행이뜨게하는눈은문학적인시각을갖게한다.위대한시인,작가들의삶을한번들여다보라.삶의불행을담보로하지않은작가들을찾아보기어렵다.이제는그런삶의제한적인의미가,제한적인또다른삶에서만공감을주는희소성의시대,순응의시대가되어버렸다.많은기능적인글쓰기가난무하는시대,그런시대에만족하지못하는사람들이참으로새로운글쓰기의진경시대를열어갈것임을나는희구한다.

‘연애편지적글쓰기’

연애는인간을성숙시킨다.글쓰기도그렇다.

일단쓰면,삶은다른옷을입고당신앞에나타날것이다.김영하(소설가)

어느날내가작가가됐을때,가장많이받은질문중하나는,어떻게습작을했느냐는것이었다.그러니까특별한문학수업방법이있었냐는질문이었는데,그때마다나는이렇게대답해왔다.

“연애편지를많이썼다는것밖에는별다른게없었습니다.”

질문을던졌던사람들은농담으로생각했을테지만농담만은아니었다.

연애편지는우선,독자가분명하다.독자의취향과성격,수준이분명하다.단한명의독자만만족시키면되는글,그것이바로연애편지다(때로는상대방의친구나부모까지도겨냥하는사람들이있지만그런경우는예외로하자).타깃독자가분명하다는것은글쓰기에있어매우중요한요소가된다.누가읽을지모르는글을쓰는것만큼힘든일도없다.

또한연애편지는,목적이분명하다.연애편지는대체로‘읽는사람의마음을사로잡는다’라는확실하고명쾌한목표를가지고있다.목표가분명해지면글쓰기는한결쉬워진다.작자는독자의마음을사로잡기위해서다양한비유와인용을동원하게되며,그것을통해점점더자신의글을발전시켜나가게된다.반대로목적이불분명한글은쓰는사람도괴롭고읽는사람도힘들다.

마지막으로연애편지는,작자가가지고있는역량을총동원하게만든다는점에서좋다.그러니까연애편지는대충대충쓸수가없는글이라는얘기다.욕망이너무강하기때문에,그욕망이나로하여금,아는것모두와가진재능모두를소비하게만들었던것이다.사랑에빠지면뭔들못하겠는가.

밤을새워가며시집을뒤지게만들고수십번에걸쳐글을고치게만든다.연애편지의이런특성은글이언급하고있는대상,즉화제(話題)를사랑한다는사실에서비롯되는것이다.

나을정말로사랑하는사람의글이라면,그의문재(文才)가아무리박약하다해도어쩔수없이전해져오는따사로움이있게마련이다.개를싫어하는사람이단지애견협회에서청탁을받았다는이유만으로개에관한글을쓸수는있다.그러나그런글로사람들을감동시키기는어렵다.

나는좋은글을쓰는일이연애편지를쓰는일과결코다른것이라고생각하지않는다.감동적인연애편지에해당하는덕목들은고스란히멋진글에도들어맞는다.그러니까혹시지금부터라도글쓰기를시작하려는분들은연애편지적인글쓰기에대해한번쯤생각해보라고권한다.

그러니까이런식이되겠다.우선,독자를한정한다.연애편지처럼한사람이라도좋고,아니면가족이나회사동료도좋다.네루도자기딸에게보내는편지형식을빌려‘세계사편력’이라는명저를완성한바있지않은가.

두번째로글쓰기의목표를명확하게정한다.‘가족의역사를정리한다’‘내인생을반성한다’‘등산의즐거움을사람들에게널리알린다’‘사람들을울린다’등등무엇이든좋다.목표없는글쓰기처럼공허한것이없다.

목표를드러낼필요는없지만적어도글쓴이만큼은확고한목표를가지고있어야한다.김구의‘백범일지’나이순신의‘난중일기’가지금도읽히는것은그들의글이독립정신고취나방어임무완수라는분명한목표를가지고있었기때문이다.반면,얼마전자살한한고위공직자의유서가별다른감동을주지못하는것은그글이궁지에처한자신의처지를변명한다는,자기스스로도납득못할어설픈목표를가지고있었기때문이다.

연애편지적작법의마지막은간단하면서도어렵다.자신이사랑하는대상을택하라.아이,꽃,나무,자전거,오토바이,여배우,뭐라도좋다.사랑하는것에대해서쓰는일은일단즐겁고유쾌하다.적어도싫어하는것에대해서쓰는것보다야얼마나좋은가.

이정도면연애편지적글쓰기의요체는다정리된셈이다.

이제는그저쓰기만하면된다.아,한가지빠트릴뻔했다.연애의장점은그과정만으로도인간을성숙시킨다는것이아닐까.글쓰기도그렇다.일단쓰시라.그러면삶은다른옷을입고당신앞에나타날것이다.때로는따귀를날려오는경우도있겠지만,그것도다성숙의길이아니겠는가.

출처: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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