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유형드림디자이너(Dreamdesigner)
대표상품개인브랜드‘제너럴아이디어’
최신상품콜라보레이션브랜드‘헤드바이제너럴아이디어애프터게임’
드림디자이너의셀링포인트
1)실행없는생각은환상일뿐이다.
2)팔리는생각을디자인하라.
중졸의동대문출신이한국을넘어뉴욕,파리까지진출한유명패션디자이너가됐다?그런꿈같은남자를나도본적이있다.얼마전종영한TV드라마‘패션왕’의주인공이었다.그런얘기야드라마속단골소재니까,그런데며칠전에우리회사콘텐츠팀장이알려줬다.
“‘패션왕’진짜모델이따로있다는데요?”이런꿈같은스토리를실제로쓴사람이있다고?도대체무엇을팔았길래그의시장이동대문에서뉴욕까지무한확장됐을까.끓어오르는호기심을참지못해기어이그를찾아갔다.떠오르는패션계의핫아이콘,디자이너최범석(35)의사무실로.
그를만난곳은
모델뺨치는훤칠한키,트렌디한패션등겉모습은미국물깨나먹은뉴요커같다.그러나아니다.
학벌이나배경,스펙이꿈을결정하는것이당연시되는나라.우리는지금그런꿈의개발도상국에서살고있다.예전경제지포춘이조사한바에따르면한국은100대부자중자수성가유형이10%에불과했다.미국은90%였다.미국은한국보다자본주의역사가오래됐지만여전히열정과실력만있다면인정받을수있었다.스티브잡스나빌게이츠처럼대학졸업장없이도차고에서성공신화를쓸수있어야‘꿈의선진국’이다.그런면에서보자면최범석은‘선진국형인재’인셈이다.이왕이면이렇게불러보는건어떨까.
날라리중학생최범석은그저옷이좋았다.형들에게물려받는옷이싫고가난한집형편에옷사달라고조를수도없어닥치는대로아르바이트를했다.중학교를졸업한뒤에는아예공부를접었다.남들이학교에서공부하고진로를고민하는동안옷가게누나와친해지며
여기서보통의인간과드림디자이너의행보가갈린다.대다수의사람은즉각그것을꺼내쓰지않는다.적어도고등학교,대학교를졸업한후에야꿈의재료를다시꺼내본다.혹은세상이짜놓은틀에갇혀평생써보지도못하는사람도부지기수다.그러나최범석은꿈의재료를만나는즉시자신만의방식으로꺼내쓰기시작했다.무작정패션과관련된일이라면물불을가리지않고뛰어들었다.어린나이에서울홍익대거리의벽하나를빌려옷가게를시작했다.부산으로내려가신발노점상을하기도하고동대문원단시장에취직해동대문현장의생리를몸으로익혔다.
“동대문에있을때아는동생들이전화를해요.‘형,가게가안나오는데알아봐줄수있어요?’그럼제가묻죠.‘너,상가에다가신청금걸고사인은하고왔니?’그럼대부분안했대요.많은사람들이아이디어가있으면남한테부탁을해요.
우리는가끔술자리에서남들의성공에대해쉽게이러쿵저러쿵한다.나도똑같은아이디어를생각했는데먼저치고나가는바람에놓쳤다는식으로.그러나모든생각의주인은그것을떠올린사람이아니다.세상에나가직접파는자다.
물론실행력만으로세상모든일이쉽게풀리는것은아니다.그도동대문에입성하고2년동안은파리만날렸다.옆골목의잘되는가게들을볼때마다번번이억장이무너졌다.그러나
디자이너로서최범석의시작은험난했다.중졸인그가할수있는것은지금까지그래왔듯바닥에서몸으로익히는것뿐이었다.
“저는좀극단적으로동기부여를하는스타일이에요.이거아니면죽는다고나자신을세뇌시키는거죠.디자인연습할때도10개이상스케치를못한날은저녁밥을굶는식으로스스로에게벌을줬어요.”
“열흘안에옷10개만들어올수있어요?그럼한번해보든가.”
보통의디자이너에게이얘기는거절과똑같은얘기다.하루에옷하나씩만들라는것은프로디자이너에게도불가능한일이다.그러나하루에10가지스케치를그리며디자인콘텐츠를쌓아온그에게불가능이란없었다.보란듯이미션을해냈고동대문출신으로서는최초로2003년당당히서울패션위크에입성했다.
지금
“이전까지는디자이너들이일단제품을만들고,그것이팔리도록소비자들을자극한뒤에야반응을보고콘셉트를만들었어요.하지만제3세대디자이너라면소비자의니즈를알고콘셉트를파악한뒤제품을제작하는것이순서고도리죠.”
디자인보다손님을먼저만났기에디자인역시입을사람을먼저생각했다는최범석.패션이곧세일즈며마케팅이라는것을동대문에서몸으로익힌그의디자인은제3세대패션계에서제대로실력을발휘했다.
그러나그것이단지디자이너적기술만은아니다.그밑바닥에는사람에대한남다른관심과애정이있다.얼마전친구들과의생일파티에서휴대폰에저장된사람수가누가제일많은지내기를했다.1등은그의차지.무려2011명이었다.그는사업을떠나본래사람을무척이나좋아한다.
“원장님,야그안경진짜멋있는데어느브랜드예요?구두고르는감각도남다르시네요.제여자친구한테사주면딱좋을것같은데어디서사셨어요?”
당시국내에선이미명성을떨친그였지만정작뉴욕에그의쇼를보러온사람은200여명에불과했다.당시충격을받았던그는매일매일길거리에서뉴요커들을인종·연령·직업별로분류해관찰했다.그들이일상에서입는옷과취향·체형을꼼꼼히체크했던것이다.그리고마침내지난4월뉴욕패션위크에서한국인최초로7번째컬렉션을성공리에마쳤다.세계유명패션사이트인WGSN에서뉴욕컬렉션의Best5에들기도했다.
2006년그가만든제너럴아이디어는한국의류브랜드로서는최초로프랑스파리프렝탕백화점에입점했다.이어2009년에는영어도제대로못하는상태에서무작정뉴욕으로향했다.많은이들이반대했지만그는마침내패션의수도뉴욕에깃발을꽂았다.지금은일본·미국등10여개나라에그의옷을팔고있다.
꿈의판로가꼭바다건너에만있는것은아니다.그는대형할인마트에도옷을판다.올해부터이마트에서그가만든중저가브랜드가팔리기시작했다.
대기업과손잡고유명브랜드를함께키우는것역시그가자신의꿈을파는방식이다.그는날고긴다는유명패션디자이너들사이에서도대기업들이협업1순위로꼽는귀하신몸이다.이미여러유명브랜드들과의협업을성공적으로끝낸바있는최범석은지난해말부터코오롱FnC에서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활약하며기대를모으고있다.벌써‘헤드바이제네럴아이디어(HEADXGENERALIDEA)’컬렉션을서울과뉴욕에서성공리에마쳤다.이러한국내외활동이인정받아지난6월초에는국내패션계의노벨상이라불리는‘삼우당패션대상’에서패션세계화진흥부문을수상하기도했다.이밖에도최범석의영역은패션에만머무르지않는다.레이싱카디자인,향수및전자제품등다양한상품들과의콜라보레이션작업등분주하게자신의기술을발휘하는중이다.
그는힘들때면자신과직원들에게입버릇처럼말한다.
“우리,전설이되자!”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