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을 파는 사람 [7] / 패션디자이너 최범석 *-

생각을파는사람-다섯번째인물

셀러(seller)패션디자이너최범석
셀러유형드림디자이너(Dreamdesigner)
대표상품개인브랜드‘제너럴아이디어’
최신상품콜라보레이션브랜드‘헤드바이제너럴아이디어애프터게임’
드림디자이너의셀링포인트


1)실행없는생각은환상일뿐이다.
2)팔리는생각을디자인하라.
3)메이드인보다메이드바이가중요하다.

패션디자이너최범석

중졸의동대문출신이한국을넘어뉴욕,파리까지진출한유명패션디자이너가됐다?그런꿈같은남자를나도본적이있다.얼마전종영한TV드라마‘패션왕’의주인공이었다.그런얘기야드라마속단골소재니까,그런데며칠전에우리회사콘텐츠팀장이알려줬다.

“‘패션왕’진짜모델이따로있다는데요?”이런꿈같은스토리를실제로쓴사람이있다고?도대체무엇을팔았길래그의시장이동대문에서뉴욕까지무한확장됐을까.끓어오르는호기심을참지못해기어이그를찾아갔다.떠오르는패션계의핫아이콘,디자이너최범석(35)의사무실로.

그를만난곳은스포츠브랜드‘헤드(HEAD)’본사가자리한서울강남의한빌딩.이곳에서그는크리에이티브디렉터이자유일한30대임원으로일하고있다.“제너럴아이디어라는제회사가있지만일주일에사흘만출근하고나머지사흘은이곳에서월급받으며일하는중이죠.”


모델뺨치는훤칠한키,트렌디한패션등겉모습은미국물깨나먹은뉴요커같다.그러나아니다.그는중학교만졸업하고길거리에서옷을팔던‘동대문키즈’였다.가장낮은곳에서시작해모두가인정하는디자이너가되기까지세상은얼마나녹록지않았을것인가.특히우리나라처럼스펙이곧진리인‘꿈의개발도상국’에서.

학벌이나배경,스펙이꿈을결정하는것이당연시되는나라.우리는지금그런꿈의개발도상국에서살고있다.예전경제지포춘이조사한바에따르면한국은100대부자중자수성가유형이10%에불과했다.미국은90%였다.미국은한국보다자본주의역사가오래됐지만여전히열정과실력만있다면인정받을수있었다.스티브잡스나빌게이츠처럼대학졸업장없이도차고에서성공신화를쓸수있어야‘꿈의선진국’이다.그런면에서보자면최범석은‘선진국형인재’인셈이다.이왕이면이렇게불러보는건어떨까.스펙과배경없이도자신만의방식으로꿈을찾아설계하고만들어가는‘드림디자이너(dreamdesigner)’최범석.


옷이좋았던‘날라리’소년
꿈의재료,패션을만나다


“어렸을때많이놀았어요.4형제중셋째,투명인간같았죠.그래서좀삐뚤어졌어요.날라리는싸움도잘해야하지만기본은멋이에요.유행하는옷은남들이다입기전에늘먼저입고다녔죠.(웃음)”

날라리중학생최범석은그저옷이좋았다.형들에게물려받는옷이싫고가난한집형편에옷사달라고조를수도없어닥치는대로아르바이트를했다.중학교를졸업한뒤에는아예공부를접었다.남들이학교에서공부하고진로를고민하는동안옷가게누나와친해지며아르바이트로번돈으로옷을샀다.어린최범석에게‘옷’은유일한꿈이자인생의탈출구였다.그야말로운명적으로꿈의재료를찾은것이다.

여기서보통의인간과드림디자이너의행보가갈린다.대다수의사람은즉각그것을꺼내쓰지않는다.적어도고등학교,대학교를졸업한후에야꿈의재료를다시꺼내본다.혹은세상이짜놓은틀에갇혀평생써보지도못하는사람도부지기수다.그러나최범석은꿈의재료를만나는즉시자신만의방식으로꺼내쓰기시작했다.무작정패션과관련된일이라면물불을가리지않고뛰어들었다.어린나이에서울홍익대거리의벽하나를빌려옷가게를시작했다.부산으로내려가신발노점상을하기도하고동대문원단시장에취직해동대문현장의생리를몸으로익혔다.동대문상가에입성할때는나이가너무어리다는이유로가게를내주지않자매일떡볶이를사들고동대문상가협회를찾아갔다.한번꽂히면일단부딪치고보는것이다.실제로그는“생각은곧실행”이라고말한다.

“동대문에있을때아는동생들이전화를해요.‘형,가게가안나오는데알아봐줄수있어요?’그럼제가묻죠.‘너,상가에다가신청금걸고사인은하고왔니?’그럼대부분안했대요.많은사람들이아이디어가있으면남한테부탁을해요.자기가발로뛸생각을안하고.몸으로움직이지않는생각은생각이아니에요.자기위안용환상일뿐이죠.”

우리는가끔술자리에서남들의성공에대해쉽게이러쿵저러쿵한다.나도똑같은아이디어를생각했는데먼저치고나가는바람에놓쳤다는식으로.그러나모든생각의주인은그것을떠올린사람이아니다.세상에나가직접파는자다.

물론실행력만으로세상모든일이쉽게풀리는것은아니다.그도동대문에입성하고2년동안은파리만날렸다.옆골목의잘되는가게들을볼때마다번번이억장이무너졌다.그러나‘무조건1등하고그만둔다’는목표를세우고버텼더니어느날꿈같은그날이왔다.티셔츠에가방원단을매치한아이템이대박을치면서하루1000만원의매상을올린것이다.1차목표가달성됐으니이제좀고단한몸을누일법도하지만그의꿈은이미진화하고있었다.원래꿈은스승같아서1차꿈이달성되면저절로2차꿈을알려주는법이다.그렇게그는자신의2차꿈을찾아갔다.옷을파는사람에서옷을만드는사람으로.


원단삼촌·패턴이모에게익힌테크닉
‘보는디자인’서‘입고싶은디자인’으로


드림디자이너가재료를찾았다면이제본격적으로테크닉을연마할단계다.테크닉은내마음이원하는것을내몸이해내는일을뜻한다.떠오른영감을얼마나정확하고디테일하게디자인으로표현할것인가.탁월한기술이없으면콘텐츠의핵심을제대로뚫을수없다.그만큼테크닉은상당한시간과훈련을필요로한다.

▲김미경원장과인터뷰중인최범석디자이너.

디자이너로서최범석의시작은험난했다.중졸인그가할수있는것은지금까지그래왔듯바닥에서몸으로익히는것뿐이었다.그의경쟁디자이너들이뉴욕파슨스에서유학할때그는동대문원단삼촌,패턴이모들에게디자인수업을받았다.하루10개이상의스케치를하겠다는자신과의약속도칼같이지켰다.

“저는좀극단적으로동기부여를하는스타일이에요.이거아니면죽는다고나자신을세뇌시키는거죠.디자인연습할때도10개이상스케치를못한날은저녁밥을굶는식으로스스로에게벌을줬어요.”

자신과의냉혹한약속은그의테크닉에가속도를붙였다.처음동대문출신이서울패션위크에뛰어든다고했을때도자격이안된다며거절당했다.그러나그가끝까지물러서지않자한유명남성복디자이너가그에게미션을내걸었다.

“열흘안에옷10개만들어올수있어요?그럼한번해보든가.”

보통의디자이너에게이얘기는거절과똑같은얘기다.하루에옷하나씩만들라는것은프로디자이너에게도불가능한일이다.그러나하루에10가지스케치를그리며디자인콘텐츠를쌓아온그에게불가능이란없었다.보란듯이미션을해냈고동대문출신으로서는최초로2003년당당히서울패션위크에입성했다.

지금패션업계에서그는1세대앙드레김,2세대이상봉에이어3세대디자이너로통한다.2세대까지는국내브랜드가전성기를이루면서그들의옷은하나의작품,오브제로인식됐다.그러나3세대에오면서글로벌브랜드,인터넷쇼핑몰,SNS까지소비자의니즈를충족하기위한치열한경쟁이벌어졌다.이제보는옷,점잖빼는옷에서입고싶은옷,입을수있는옷의시대가열린것이다.

“이전까지는디자이너들이일단제품을만들고,그것이팔리도록소비자들을자극한뒤에야반응을보고콘셉트를만들었어요.하지만제3세대디자이너라면소비자의니즈를알고콘셉트를파악한뒤제품을제작하는것이순서고도리죠.”

디자인보다손님을먼저만났기에디자인역시입을사람을먼저생각했다는최범석.패션이곧세일즈며마케팅이라는것을동대문에서몸으로익힌그의디자인은제3세대패션계에서제대로실력을발휘했다.그가만든제너럴아이디어는유명인과대중이열광하는남성복브랜드로당당히자리잡았다.그어떤디자이너보다팔리는생각,팔리는디자인에대한테크닉을갈고닦았기때문이다.

그러나그것이단지디자이너적기술만은아니다.그밑바닥에는사람에대한남다른관심과애정이있다.얼마전친구들과의생일파티에서휴대폰에저장된사람수가누가제일많은지내기를했다.1등은그의차지.무려2011명이었다.그는사업을떠나본래사람을무척이나좋아한다.누군가와대화하고소통하고관찰하는일자체가재미고즐거움이란다.동대문에서옷팔던시절부터사람과친해지는솜씨가예사롭지않았다길래즉석에서세일즈노하우를보여달라고요청했다.그러자시크한뉴요커는갑자기사근사근한‘동대문오빠’로변신했다.

“원장님,야그안경진짜멋있는데어느브랜드예요?구두고르는감각도남다르시네요.제여자친구한테사주면딱좋을것같은데어디서사셨어요?”

물건을살사람과친해지려면관찰하게되고,관찰하면그가가진욕망이보인다.그욕망들을관찰하면거대한트렌드가보인다.이런그만의테크닉은뉴욕에서도빛을발했다.2009년글로벌진출을위해뛰어든뉴욕패션위크때그는뼈저린실패를겪었다.

당시국내에선이미명성을떨친그였지만정작뉴욕에그의쇼를보러온사람은200여명에불과했다.당시충격을받았던그는매일매일길거리에서뉴요커들을인종·연령·직업별로분류해관찰했다.그들이일상에서입는옷과취향·체형을꼼꼼히체크했던것이다.그리고마침내지난4월뉴욕패션위크에서한국인최초로7번째컬렉션을성공리에마쳤다.세계유명패션사이트인WGSN에서뉴욕컬렉션의Best5에들기도했다.


뉴욕서대형마트까지판로개척하다
메이드인에서메이드바이로

드림디자이너로서꿈의테크닉을연마한그는2차꿈을달성했다.서른중반에억대를벌어들이는유명디자이너가됐으니이제는좀편하게살아도되지않을까.그러나꿈은언제나새로운미션을던져준다.그에게떨어진다음숙제는이것이었다.‘꿈의새로운판로를개척하라.’

2006년그가만든제너럴아이디어는한국의류브랜드로서는최초로프랑스파리프렝탕백화점에입점했다.이어2009년에는영어도제대로못하는상태에서무작정뉴욕으로향했다.많은이들이반대했지만그는마침내패션의수도뉴욕에깃발을꽂았다.지금은일본·미국등10여개나라에그의옷을팔고있다.

꿈의판로가꼭바다건너에만있는것은아니다.그는대형할인마트에도옷을판다.올해부터이마트에서그가만든중저가브랜드가팔리기시작했다.디자이너가자신의이름을걸고할인점에들어가는것은이번이처음이다.

대기업과손잡고유명브랜드를함께키우는것역시그가자신의꿈을파는방식이다.그는날고긴다는유명패션디자이너들사이에서도대기업들이협업1순위로꼽는귀하신몸이다.이미여러유명브랜드들과의협업을성공적으로끝낸바있는최범석은지난해말부터코오롱FnC에서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활약하며기대를모으고있다.벌써‘헤드바이제네럴아이디어(HEADXGENERALIDEA)’컬렉션을서울과뉴욕에서성공리에마쳤다.이러한국내외활동이인정받아지난6월초에는국내패션계의노벨상이라불리는‘삼우당패션대상’에서패션세계화진흥부문을수상하기도했다.이밖에도최범석의영역은패션에만머무르지않는다.레이싱카디자인,향수및전자제품등다양한상품들과의콜라보레이션작업등분주하게자신의기술을발휘하는중이다.그는자신의회사,자신의브랜드,자신의영역만을고집하지않는다.자신의꿈,자신의콘텐츠를세상에선보일수있다면그방법과형식은얼마든지바꿀수있다.중요한것은메이드인(Madein)이아니라메이드바이(Madeby)니까.

그는힘들때면자신과직원들에게입버릇처럼말한다.

“우리,전설이되자!”

이미그는패션업계에서전설적인물이다.그러나꿈은드림디자이너에게끊임없이새로운꿈을그려내라고요구한다.그과정이때로는죽을만큼고통스럽고피곤한일이지만아마그는멈추지않을것이다.마음속꿈이현실이되는마법을이미경험했으니.‘술자리드리머’로늙어가는이땅의청춘이여,당신도죽기전에가슴뛰는마법을경험해보는것은어떨까.나도꿈이스펙을이기는통쾌한세상,꿈의선진국을빨리만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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