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에세이 3

[암벽에세이]아름다운시절3
내가슴속의레니리펜슈탈을만난후

결심


대학시절에맛만봤고제대로해보지못한암벽산행을내인생이다하기전에꼭다시제대로해보고싶다는열망앞에나는곤혹스러웠다.도대체무슨수로암벽산행을하며,그걸가족에게어떻게알린단말인가?모두들미쳤다고손가락질하지않겠는가?
그런데도결심은안으로굳어졌고,그걸나도어찌하는수없었다.

와중에도나는쓰고있던장편소설을완성해야했다.다른무엇을도모할겨를이없었다.소설가는하루하루일정분량의노동을하지않으면안된다.여섯시간이면여섯시간,여덟시간이면여덟시간줄기차게컴퓨터앞에앉아있어야하고,그창작의시간을위하여다른모든것들도바쳐져야한다.소설을쓰고있는동안에는다른누구와깊이얘기하는것도,운동하러체육관에가는것도방해가된다.나의경우에는그렇다.

나는기를쓰고소설을완성했다.일단완성하고어떻게든해보자고.

원고를출판사에넘기고허랑하게생각에잠겼다.

마음은굴뚝같지만나는예순세살이었다.그현실을모르지않았다.아무리나이를잊고살아왔다지만암벽등반은웬만한젊은이도하기어려운익스트림스포츠였다.위험을감내할용기는있었다.그러나과연내가그강한운동을해낼수있을지의문이었다.나는평생운동을해본적이없었고,체력도약골에속했다.최근2년간K등과함께산에다닌것이고작이었다.대학시절암벽을구경했다지만이미수십년이흘렀고,등반이어떻다는것조차잊어버렸다.책상앞에앉는것외에는어떤노동도해본적이없었다.글이나책과관련된일이라면모를까,느닷없이암벽등반이라니아무리생각해도무리였다.그러나…그러나…나는장차다가올내죽음앞에서후회할일을만들수는없었다.지금처해있는조건이어떻다해도.

나는비장의무기를꺼내들었다.내가위축될때마다꺼내서암송하는주문이었다.

힘을내라
용기를가져라
무서워하지말라
그들앞에서떨지말라
너희하나님야훼께서함께진군하신다
너희를포기하지도않고버리지도아니하신다

나는기독교신자가아니다.평생종교를가져보려고노력했지만되지않았다.신이없다는것을알면서도사는동안신이있다고믿고싶었다.그러나나는좌뇌가너무발달해있는인간같았다.사주명리학을배운적도있는데,적중률97.55%,오차범위±2정도나돼야믿지,안맞는것도많은것을믿을수없었다.믿어지지가않았다.그렇게따지면세상에온전히믿을수있는것은하나도없는지도몰랐다.아무튼나는미션스쿨을다녔기때문인지종교는이와조금다르다고느끼고있었다.4학년졸업학기때인가,기독교문학을강의하던교수가눈오는날종강을하며말했었다.종교란그태생기의일들이사실이냐아니냐를놓고논하는게아니라현대과학을배운우리가그걸어떻게받아들이느냐에있다고.그는당시전국민의1퍼센트밖에되지않던대학졸업자인우리가종교를저차원에서이해하지않기를바랐다.

나는그에게서깊은인상을받았고,비로소여러해에걸려성경을읽었다.그시절내안으로들어와무기가된구절이신명기31장6절이었다.그것은내가너무심약한탓에,타인과의대결구도에턱없이힘들어하는탓에,싸움이나흥정같은것은아예흉내도못내는형편이라나도모르게내안으로들어와무기가된구절이었다.나는살아오면서위기에처했을때마다,기력이쇠해눈도뜰수없을때마다그구절을꺼내주문처럼외웠다.그러면하나님을믿지않는데도가슴에화기가돌며스르르일어나게되었다.언어자체의힘이었다.힘을내라,용기를가져라,두려워하지마라….나는그날도그렇게외며산밑으로갔다.

백련사로오르는길은한적했다.평일오후의햇살이느리게지나가고있었다.배드민턴장도,웨이트트레이닝장도비어있었다.

산그림자속산사나무아래에앉았다.

조용함속으로공허와서글픔이지나갔다.세잔의‘목맨이의집’이떠올랐다.내가보고또보았던그림.화집의페이지를아무리넘겨도또돌아오고야말던고향같은그림.목맨이의집뜰과그앞길에머물러있던오후의적요,그안을흐르던공허와서글픔,애잔함…삶과죽음.그리고살아있는동안해내야할일들….

참새가포르르날아왔다.반가웠다.두세마리가더날아와내발밑에서콕콕무언가를쪼아먹었다.아이들이흘리고간과자부스러기를주워먹는것같았다.나는손을내밀었다.새들이휘이익날아갔다.아쉬움이내손끝에남았다.

라디오소리가가까이다가왔다.그소리가내옆에서머물렀다.카우보이모자처럼생긴등산모를쓴남자였다.그는배낭을돌위에내려놓고점퍼를꺼내걸쳤다.산행이끝나고걸음이느려지자등허리가선듯해진모양이었다.배낭에들어있는라디오에서사설이흘러나왔다.레니리펜슈탈에대한이야기였다.나는귀를쫑긋세웠다.레니리펜슈탈은나도아는인물이었다.나치영화를찍었고,우리가흔히보는히틀러사진이나무섭게행진하는나치군대의모습은그녀의다큐멘터리에서가져온것이라는것.그정도는나도알고있었다.라디오프로그램진행자가리펜슈탈을소개했다.그녀는애초무용수였는데,<푸른빛>이라는산악영화에주인공으로발탁되어우연치않게배우가되었다고했다.진행자의분위기로보아오후의음악프로인모양이었다.

남자가배낭에들어있는물건들을꺼내다시정리해넣었다.엄청난분량이었다.산에한번갔다오는데저렇게많은물건들이필요할까새삼의아스러웠다.음악이흘러나왔다.015B의‘슬픈인연’이었다.낮은음색의노래가산사나무작은잎새들을흔들며퍼져나갔다.‘아,다시올거야,너는외로움을견딜수없어’하는부분에서남자가노래를따라불렀다.굉장한노래실력이었다.라디오속가수는‘견딜’에서거의쉰목소리로변하며절실함을표현했는데라디오밖남자도아주유사하게흉내를냈다.그남자는노래하나는언제어디서든,누구앞에서든자신있는것같았고,그걸내앞에서도자랑하고싶은가보았다.나는말을섞는것이싫어반응하지않았다.후반부의시원스런열창을거쳐노래가끝났다.멜로디와는다르게사랑의고통을호소한내용이었다.다시그녀를만나사랑하고싶지만그렇게되면또얼마나많은눈물을흘리겠느냐(자기자신이)하며사랑했던당시의고통을끔찍해하고있었다.흔히말해예쁘고나쁜여자와연애를했던것같았다.

내가슴속의레니리펜슈탈을만난후

후주가끝나고레니의이야기가이어졌다.<푸른빛>에서강건한신체와아름다운미모를보여준그녀는일약유명하게되었고,베니스영화제에서은상을받았고,게르만민족의우수성을제창하던히틀러의눈에띄게되었다.히틀러는그녀를자기휘하로불러들여전폭적인지원아래영화를만들게했다.그래서탄생한것이1935년의나치전당대회를다룬<의지의승리>와1936년의베를린올림픽을담은<올림피아>라고.그녀는영화기술적으로누구도넘볼수없는천재였는데,특히연출과촬영면에서의혁신은지금까지도영화인들에게전설처럼구가된다고했다.히틀러를신처럼보이도록파격적으로카메라구도를잡았고,열광하는대중의모습을박진감넘치게연출했으며,살아있는환호성에바그너의음악을효과적으로조화시켜너무나도예술적인,또너무나도정치적인다큐멘터리를만들었다는것이다.나치의광기를정치선전화해최고의선동영화를만들었지만내용때문에제2차세계대전이끝난뒤전범재판을받았고,오랫동안배척당했고,숨어살기도했다.그런그녀가말년에스킨스쿠버를배웠다.무려86세에스킨스쿠버자격증을따서,87세부터95세까지물속의모습을촬영해<해저의인상>이라는다큐멘터리를완성했고,그필름을100세생일에공개한뒤이듬해에사망했다는것이다.

통큰인생이었다.

나는멍하게,무엇에얻어맞은듯앉아있었다.
그래,이거야,하며마음이크게열렸다.레니리펜슈탈은여든여섯에스킨스쿠버자격증을땄는데나는이제예순셋이잖아.예순셋에암벽등반에도전하는건아무것도아니야.어떻게든할수있다니까.당장그방법을생각해보자고….그순간우선떠오른것이등산학교였다.

등산학교


무엇을배운다하면학교밖에더있겠는가.개인지도같은것도있을수있겠지만대중이가장쉽게접근할수있는방법은학교였다.제대로,체계적으로배울수있는곳도역시학교였다.

나는집으로돌아와컴퓨터를켜고‘등산학교’라고쳤다.

그런데모든등산학교들이이미추계반을시작한뒤였다.등산학교들은1년에두번정도수강생들을모집했고,대개주말에산에서실기위주로수업하는것같았다.여름휴가철에합숙을시키면서일주일이나열흘가량스트레이트로수업하는곳도있었다.추계반들의일정은9월초에시작해서5주가량수업을했는데,벌써3주나지나있었다.정승권등산학교만10월수업일정이었고,아직마감이되지않은것같았다.나는운명같은예감을느꼈다.정승권등산학교도개강은9월말이었다.나는마음이바빴다.

인터넷서식으로급하게원서를썼다.

이름을쓰자주민등록번호를쓰는칸이나왔다.모든서식이그렇지만우리나라에서는주민등록번호를죄수번호처럼밝혀야하는것이다.나는나이가마음에걸렸다.모집요강을자세히읽어보았다.나이에대한언급은없었다.그러니까나이제한은없다고생각되었다.그러나상식적으로예순셋의나이에암벽반에지원한다는건내가생각해도어불성설이었다.아직나와같은경우가생기지않아서그렇지,등산학교측에서꺼릴게뻔했다.공연히노인을하나받았다가낙상해다치기라도하면그책임을어떻게지나고민할것이었다.직접찾아가서내체력과젊음을과시하며받아달라고사정해볼수도없었다.나는젊지도강건하지도않았으니까.

고민끝에나는친구에게의논을했다.인터넷에정통한그녀는동생이름으로신청을하라고했다.인터넷에서는그런일들이흔하다고.내여동생은나보다다섯살아래이고중학교교감선생님이었다.쉰여덟이니결코젊다고할수없었지만예순셋보다는훨씬나았다.나는친구에게물었다.그럼거기가서동생이름으로사람들을사귀고계속동생이름으로행세해?나이도다섯살아래인사람으로?그게뭐대수냐고친구는코웃음쳤다.요새는그런일이얼마든지많다고했다.나쁜일을하는것도아닌데어떠냐는것이다.그까짓거들통난다해도사정을말하면오히려동정받을거라고,배움엔나이가없지않느냐고,갸륵한열정으로상을받고교과서에실릴지도모른다고깔깔깔웃어젖혔다.

나는마음이내키지않았다.우선동생의주민등록번호를몰랐다.이러저러하니네이름을좀도용하자고,주민등록번호를가르쳐달라고전화하기어려웠다.우리형제의분위기가그랬다.우리는자라는내내모든것을원칙위주로하도록종용받았고,그래서융통성이없는편이었다.게다가내동생은국가공무원이었다.자기이름이나주민등록번호가이상하게쓰이는것을께름칙해할것이었다.나는그냥내이력사항을썼다.주민등록번호를쓰는칸앞에서잠시망설이다가맨앞의두자리수를다섯살아래로바꿔썼다.공문서위조가된셈이다.나는생전처음으로위법을행했다!그렇게까지하면서등산학교암벽반에지원한것이다.통과되는지안되는지보자고.안되면그때가서다른방법을써보자고.

그러나생각해보니쉰여덟도너무많았다.쉰여덟이라해도환갑에육박하는나이가아닌가.

나는궁여지책으로등산학교에전화를걸었다.암벽반에지원한사람인데나이가많아서걱정이라고했다.몇살인데그러시느냐는물음이돌아왔다.나는떠듬떠듬쉰여덟이라고밝혔다.한참의공백이지나갔다.그가,정승권선생이당황을다스리고있는중이었다.그러던그가부드러운음성으로대답을만들었다.

“…그,그정도면충분하십니다….얼마든지하실수있어요….수요일예비모임에나오십시오.”사람을포용하는품성이,점잖은인격이전화선을통해푹전해져왔다.<계속>

-글·이청해님/월간산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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