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에세이 6

[암벽에세이|아름다운시절6]
나는은영이가뒤돌아나오며우는것을보았다

‘강여울’의밤

우리는‘강여울’이라는민박집을찾아갔다.그곳이집결지요오늘우리의숙소였다.말그대로강가에2층으로지어진꽤큰집이었는데,주인이보이지않았다.종업원도없었고,대신주인이사용하던것인듯한온갖종류의스포츠용품들이구석구석에먼지를덮어쓴채방치돼있었다.등반장비는물론이요낚시,스쿠버장비들,각종장화에슈트들까지엄청난분량이었다.하루키의소설에나옴직한집이었다.더구나1층에는당구장을했던모양으로여러개의당구대가놓여있었고,쓰지않는현수막들이덮여있었다.현재영업을하지않는것같았다.주인은장사가목적이아니라스포츠를즐기는게목적인사람임이분명했다.

나는뒤란으로가서샛강에여울이있는지를살펴보았다.물비늘만반짝일뿐멀어서보이지않았다.여울…나는그단어를조그맣게읊조려보았다.여울은물살이소용돌이치며빠르게흐르는곳이다.물이긴장없이잔잔하게흘러오다가강폭이좁아지거나바닥이얕아지면갑자기세차게흐르게되고,굴곡진곳을만나면폭폭폭소리를내며아름답게솟구친다.나는변화가좋다.그리고특히이물의변화가좋다.나는물빛이좋아평생투명한유리그릇을마음껏샀고그걸늘감상하며사용했다.깨끗하고투명한물은부연수증기가되기도하고하얀얼음이되기도한다.나는수증기의부연빛깔이우아해서좋고,눈빛이포근해서좋고,얼음빛이환상적이어서좋다.물이흐르는부드러운소리는또어떤가.‘여울’이라는음감에이르면까무러칠정도로우리말의아름다음에감읍하게된다.나는‘여수’라는음감이좋아서혼자여수에여행간적도있고,강남에가면별볼일도없는데‘이수’근처에가서서성거리곤한다.다시한번그아름다운음감을,어떤정서를느끼고싶기때문이다.나는‘수유리’라는이름이좋아서,시인이상이화전놀이를왔던화계계곡이바로옆에있어서수유리로이사온어처구니없는사람이다.나는지금도딸의별명을‘꽃송이’,‘파랑이’라고지어새가노래하듯부르는여자들을경이로운눈으로바라본다.

‘강여울’의주인도‘여울’이라는단어를특별하게느끼고이름을지었을까.

간현역을지나오며‘간현’이‘艮峴’이어서놀랐었다.왜냐하면한자‘艮’은괘이름을뜻하고다른뜻은일반화돼있지않기때문이다.간괘(艮卦)는팔괘중의하나로맨위에한일자를긋고(양효)그밑에가운데가끊어진효(음효)두개를긋는형상이고,태극기에는들어있지않다.그것은북동방향이며,늦겨울에서초봄에이르는시기이고,오행으로는수(水)와목(木),육십갑자의천간은갑(甲),지지는축(丑)과인(寅)을뜻하며,색깔은진초록이고,혈육으로는작은아들,나라를지칭하자면우리나라,곧한국을가리킨다.지명에왜이런글자를가져다썼는지알수없었다.서울에서볼때이곳이북동방향인가?짐작도해보고,산골짜기여서겨울이긴가?생각도해보았다.그러나뒤늦게‘艮’이‘山’을뜻한다는것을알아차렸다.‘艮’의괘의는‘山’인것이다.숯을많이굽던‘숯고개’를‘炭峴’이라쓰는것을빗대보면‘艮’은‘山’이요‘峴’은‘고개’라는뜻이니‘산속의고개’라는의미였다.하긴‘간현’이라는이름이지어지던당시에는이곳이첩첩산중이었으리라.향토문화연구소같은곳에문의해보지않아확언할수없지만글자뜻은그렇다는말이다.

주인도없이집을지키고있는흰둥이를쓰다듬어주고집앞으로돌아나왔다.
어느새동기생들이거의다와있었다.

2층으로올라가빈방에짐을풀었다.주인은없지만객들이그냥마음대로숙박하도록약조가되어있는모양이었다.

날이어두워졌다.
앞뜰에불이피워졌고,바비큐파티가시작되었다.등산학교를먼저졸업한선배들이후배들을환영한다고고기를짝으로사왔다.선배들과인사를나누며내일있을졸업시험에대한정보를얻어들었다.졸업시험루트는간현암의‘독주길’인데,난이도가5.10a라했다.내게는난이도에대한개념이없어별다른느낌이없었다.그러나다른친구들은웅성웅성술렁거렸다.

큰방에모여슬라이드를감상했다.정승권등산학교개교20주년을기념해2010년에진행되고있는산하산악회들의7대륙최고봉원정에관한것이었다.아시아의에베레스트와북미의매킨리,유럽의엘브루스,아프리카의킬리만자로,오세아니아의코시어스코는이미등정을마친뒤였고,남극의빈슨매시프는다음달에,1차등정에실패한남미의아콩카구아는연말에재도전을앞두고있었다.5,000,6,000,8,000m가넘는고산에서야생의생명체로변한대원들의모습이생생하게담겨있었다.등반이무엇인지,정복이무엇인지모골이송연해졌다.

졸업시험

졸업시험이시작되었다.일요일오후였다.정승권교장선생님이독주길정면의자에앉아심판관준비를마쳤다.평소와는아주다른분위기였다.매섭다고할까,엄하다고할까,마치포청천같았다.이마에달만그려져있지않을뿐.

한명한명호명되어독주길앞으로나아갔다.클래스번호반대순이었다.그러니까나이순인셈.나이가어린사람부터순서대로나아가독주길에오르는것이다.

맨처음은영이가올라갔다.스물한살인은영이는자기번호가제일나중이어서맨나중에하게될줄알고방금직전까지연습루트에서씩씩대며연습을한터라숨을고르지못했다.그래서언더상태인크럭스에서고전하다가결국홀드를놓쳤다.두번슬립하면가차없이톱로핑줄이늘어져버렸다.시험을치던학생은부득불내려와야하는것이다.은영이는땅에내려와서발을구르며다시한번하게해달라고졸랐다.정말귀여운은영이었다.그러나강사선생님들도포청천이상이었다.나는은영이가뒤돌아나오며우는것을보았다.

시험이란무엇일까?

우리는일생동안몇번시험을치를까?

사람마다다를터이고,시험종류에따라긴장도가다를것이다.나는등반에대해무지했기때문에무식한자의특권상마음편할줄알았다.그런데그게아니었다.서서히내차례가다가옴에따라긴장감이몰려왔다.역시시험은시험이었다.나는긍정의효과를노리려고그동안내가치렀던성공적인시험들을머릿속에떠올렸다.대개는필기시험들이었다.그때그때마다긴장했지만지금같지는않았었다.필기시험은어느정도예상이가능하고특별히실수하지않는한예상범위내의점수를받기마련이었다.장시간의공부와여러차례의연습시험을통해내가어느정도수준인지를미리알고있었으므로걸맞은자신감이있었다.자신감이유독없었던시험도있었는데,그건운전면허실기시험이었다.의외로나는그시험에단번에붙은행운아였다.그러니까운이라고할수밖에없었다.따지고보면그운에는나만의전략이들어있었다.나는내가운전면허실기시험에충분한실력을다지지못했다는것을알았다.같이운전면허학원에다닌친구중에는이미신랑에게운전을배워동네에서자유자재로차를몰고다니는사람도있었고,다른이들도운전대를놀리는솜씨가나보다나았다.그러나나는시간이없었다.빨리시험에패스해서차를몰아야했다.나는시험치르기전날실기시험장에가서하루종일시험의전모를관찰했다.코스시험은비교적정직했다.그려놓은코스의선을차바퀴가넘어서지않으면되니까.그러나주행시험이복잡하고어려웠다.나는황단보도에서의일단멈춤은배점이몇점이고앞바퀴를황단보도선어디쯤머무르게해야감지기가득점신호를낸다는따위를내나름대로분석해머리에넣었다.제공되는차의운전석이남자들에맞춰뒤로빠져있으므로언덕배기를넘어갈때여자들은엉덩이를앞으로빼고죽어라액셀러레이터를밟아야한다는것도.나는시험당일등받이쿠션을가지고가서등뒤에받치고실기시험을쳤다.그렇게해서운전면허시험에단번에붙었고,주위사람들을놀라게했다.나보다실력이현저히나았던이들이모두떨어져원성을사는일까지겪었다.

그러나암벽을오르는이시험은순전히몸으로만치르는생소한시험이었다.힘과기술이필요하다는건알겠는데,나로서는아직접근도안된상태여서분석이불가능했다.나는불안스레태연한척동기생들이차례차례시험대에오르는것을보았다.고통스러운시간이흘러갔다.필기시험같은건모든경쟁자들이한꺼번에치르므로일단종이울리고시험지가나누어지면내용에몰입하게되고다른건생각할틈이없어진다.그런데이런실기시험은남이내눈앞에서시험치르는것을보며내게닥칠순간을미리내내조마조마해하는것이다.안치러도되는시험을공연히사서고생한다는생각이들었다.짙은후회가부정적느낌을몰고왔다.나는내옆에앉아있는박시현에게부정적정보들을흘렸다.간현에와서이사람저사람에게들은확인되지않은풍문이었다.졸업시험에패스하는사람은,그러니까완등하는사람은한기에한두명정도라든가,그들은이미암벽등반에상당한경험자들이고,실내암장에도오래다녔다는것등.그러므로우리들은거의모두떨어질거라는얘기였다.내말대로동기생들이줄줄이도전에실패하고암벽에서내려왔다.그러나박시현은강인한정신력의소유자였다.그녀는어린이집의교사였는데,예의가바르고건실한생활태도를가진아가씨였다.내가옆에서쉼없이부정적사인을주는데도그녀는굳건하게자기는할수있다고뇌까리며스스로에게다짐을주었다.아냐,할수있어!아냐,나는할수있어!…그러더니자기차례가되어정말놀라운힘으로완등에성공했다.그녀의등반솜씨로보아끝까지오르기어려운루트였다.나는긍정의힘에한대얻어맞았다.
나의뇌에도긍정의신호를보내고또보냈다.

시험치르는친구들을뒤에서계속바라보고있자니그사람의성품이고스란히드러나보였다.완등할만한실력이어서완등하는친구도있었고,실력은좀부족한데억척스럽게달려들어아등바등성공하는경우도있었다.남이보기에는충분히완등할만한데대강대강하다가그냥내려오는친구도있었다.

내차례가되었다.로프를묶고바위에달라붙었다.몇미터올라가자약간오버행상태인암벽이사선의처마처럼나를맞았다.나는손을뻗어홀드를잡았지만발짚을자세가되지못한상태에서몸이허공에붕떠버렸다.허둥거려보았지만역부족이었다.나는결국내려오고말았다.긍정의힘도실력이어느정도는돼야발휘된다는느낌이들었다.기초가없는상태에서다른여건만으로성공할수는없었다.

역시등반은내분야가아니었다.분석이나요령보다는확실한체력과감각,훈련과정이필요하다는느낌이왔다.타고난재능이야어쩔수없지만.

시험은한국사람에게절대적가치를지닌무엇같았다.그래서필요이상으로무서웠다.무조건잘치러야되고,붙어야되고,1등을,수석을해야좋으니까.그렇게우리모두의머리에입력돼있는모양이었다.그래서어떤시험이건대상자에게는절박한상황이되었다.남을모두물리치고1등이된다는것만큼매력적인것이있을까.인간의본능,생명체의본능을생각해보는순간이었다.

고백

졸업식직후우리들은각자가원한산악회에배정되었다.

나는고민이생겼다.

등산학교지원서에는나이를다섯살줄여썼으므로선생님들은내가실제나이보다다섯살어린줄알고있었다.그런상태로내가배정받은골수회에가려고하니거기사람들과의상하관계가문제였다.상하관계가아니더라도거짓나이로사람들을사귀고싶지않았다.나는동기였던양규옥군에게고민을털어놓았다.그는지금당장,산악회에가기전에나이를밝히라고했다.이미관계가맺어지면형아우를바꾸기어렵고또예의가아니라는것이다.그의말이옳다는생각이들었다.그는후리후리한체격에긴팔다리를가진패셔너블한멋쟁이였는데,광고회사에다니는사람답게사회경험이풍부하고인간관계도폭넓었다.그를통해나는한국사회에서는,특히남자들에게는나이가아주중요하다는인상을받았다.

내가속한사회에서는나이가그다지중요하지않았다.작가들에게는어디서성장했는지,어떤작품을썼는지,어떤성향인지따위가나이보다훨씬더중요했다.짐작으로나이를느낄뿐그걸물어위아래를따지는일은여간해서없었다.하긴궁금하면상대의이력을어디서든찾아볼수있었다.나이가아무리많아도,혹은아무리어려도자기가감탄할만한작품을썼으면마음으로존경했다.이미죽은자들도우리는엄청나게많이사랑하고존경하고있었다.

나는교장선생님께메일을썼다.이러저러해서나이를낮추었다고.사실은예순세살이라고.

그러셨군요…약간의충격이느껴져왔다.그런열정이라면충분히잘하실수있을겁니다….그렇게마무리되었다.

그러나막상산악회에가보니내가나이로첨예하게위아래를가릴만한상대는없었다.가자마자나이로는모두를평정해버린것이다.50대초반이한두명있을뿐,전부그보다어린사람들이었다.<계속>

  • 글·이청해님/월간산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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