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朝鮮王陵) 건원릉健元陵

세계문화유산조선왕릉(朝鮮王陵)건원릉健元陵

동구릉건원릉

조선왕조500년능제의시원이자기준이되는능은태조이성계의’건원릉’이다.고려의찬란한불교석조예술을이어받아조각이섬세하고화려하며다른능에서는보기힘든신도비까지볼수있다.15세기새로운이상국가를건설하려는태조이성계의건국기상은무엇보다도동구릉(東九陵)안에있는태조의건원릉(健元陵)에잘나타나있다.태종이고향인함흥에묻히길원한아버지태조의뜻을받들어함흥의흙과억새를가져와봉분을덮어주었다고하는데,건원릉만이보여주는아주특별한릉의모습은드라마정도전에나오는이성계(유동근분)의수염을깍지않아텁수룩한모습그대로인것같아처음보는사람은누구나한번쯤의아하게생각하게만든다.

동서고금을막론하고인간은삶의공간을어떻게만들것인가못지않게죽음의공간에대해서도고민해왔다.조선시대사람들이내린결론은자연속에묻히는것이었고,그것이국가적의전(儀典)으로발전한것이왕릉이다.따라서모든왕릉이갖고있는홍살문[紅箭門],정자각(丁字閣),능침(陵寢)에이르는공간구성과문신석(文臣石)과무신석(武臣石),석호(石虎)와석양(石羊)의조각들에는조선시대전체를꿰뚫는정신,즉자연에의순응,도덕적가치로서경(敬),윤리로서충(忠)과효(孝),그리고미적(美的)덕목으로서검소(儉素)등이들어있다.

동구릉은조선왕릉의다양한능의형식을볼수있어‘조선왕조500년의왕릉전시장’이라불러도손색이없다.9기의능은제각각사연과곡절,애틋한사랑이야기까지간직하고있다.동구릉을답사하려면문화유산해설사의실감나는해설을들으며답사를하는것이유익한왕릉답사가될것이다.

조선조의왕릉(王陵)은27대왕(王)과왕비(王妃)혹은계비(繼妃),그리고추존(追尊)된왕들을포함해전체44기의능(陵)이조성되어있다.이중태조(太祖)의비(妃)신의왕후(神懿王后)의제릉(齊陵)과정종(定宗)과비(妃)정안왕후(定安王后)를모신후릉(厚陵)만북한지역개성시에있으며,강원도영월에조성된단종(端宗)의장릉(莊陵)을제외하고는모두서울과경기도에산재(散在)해있습니다.

동구릉에는건원릉(태조),현릉(문종),목릉(선조),휘릉(인조계비),숭릉(현종),혜릉(경종비),원릉(영조),수릉(익종-추존),경릉(헌종))등9릉이있다.동구릉에있는원릉(元陵/영조)은21대영조와계비정순황후의능이다.영조의손자인22대정조는아버지사도세자를굶겨죽인할아버지영조가죽을때까지미워했다고한다.골수에사무친정조의영조에대한원한을영조의묏자리가그것을여실히보여준다.원래영조는부왕숙종이영면한서오릉명릉가까이묻히길원했다.그러나정조의뜻에따라동구릉에묻혀야했다.원릉의그자리는17대효종이안장되었다가석물에금이간다는이유로파묘됐던자리이다.사가에서조차파묘한묏자리는기가다했다하여쓰지않는법인데,정조는할아버지능지를굳이그곳으로정했다고한다.

그리고경기도양주의흉지에있던정조의아버지사도세자의묘는경기도화성으로이장해지성으로보살폈다고전한다.해마다아버지사도세자의능행때는소를잡아인근백성을배불리멱였다는설에서수원왕갈비가유래되었다는전설같은이야기도전한다.

조선왕릉을답사하려면최소한동구릉과서오릉,서삼릉,그리고여주영릉을필수답사(踏査)지역이라할수있다.동구릉의능과여주영릉은높이대를쌓아그위에봉분을설치하였다.그러나서로릉,서삼릉은높이대를쌓지않고봉분을설치한것이다르다.동구릉은능의봉분에접금이불가능한데,유일하게건원릉우측에있는목릉(14대선조와원비의인왕후,계비인목왕후)은직접능앞에올라가서능의모습을살펴볼수있어다행이다.올라가는길은없고,옆으로해서올라가왕릉의참모습을살펴볼소있다.

여주영릉(4대세종)은동구릉보다는답사객들이능의접근이가능하게능에올라가는계단과내려가는계단을분리하여설치가되어있다.동구릉의능은능의대를얼마나높이쌓았는지정자각앞에서면능의모습은보이지않는다.조금멀리떨어져보아야겨우능의봉분이조금보일뿐이라답사객의마음을답답하게하는면이있다.봉분에접근을못하게나무와줄로연결을해놓아접근이금지되어있다.동구릉에도여주영릉과같이접근이가능하게새로계단을설치해서라도답사객들이조금이라도가까이서접할수있게조치를취해주기를바라는마음이다.

동구릉은9기의릉이산재하여있는데,봉분앞에가기전에홍살문앞쪽에조그맣게안내판이설치되어이곳이몇대왕의릉이라는것을인지하고가야한다.릉앞에는상석과석물이거창하게설치되어있으나그곳에는누구의묘인가표시가없다.이런점도능앞에몇대왕이며능의특징과답사객이눈여겨보아야할사항등을기록한안내판이라도설치해주면더없이좋겠다.

정자각뒤로출입금지선

릉의곡장과부속석물들

왕릉의위엄이보이는릉

왕과왕비의쌍분릉

홍살문은홍문(紅門)이라고도불리는데,본래궁전(宮殿),관아(官衙),능(陵),원(園:세자나대군,공주등의묘)등의앞에세우던붉은칠을한신성한곳을알리는문(門)이다.형태는30자이상되는둥근기둥2개를세우고위에는지붕이없는붉은살을쭉박았습니다.능의정문이라고도할수있는홍살문을지나면서역사속으로여행을떠나보는것은아마도우리의존재를다시한번되새기게하는이성과저성을통하는문이아닌가한다.이문을통해야능앞에이를수있다.

정자각(丁字閣)은왕릉(王陵)앞에있는제전(祭展/묘에제사를지내는건물)으로건물형태가’장정정(丁)’자모양을하고있기때문에명명된명칭이라한다.오른쪽과왼쪽에올라가는계단이있는데,제향(祭享)을하는곳이기에제례(制禮)의식(儀式)에따라동쪽으로올라가고서쪽으로내려오는동입서출(東入西出)의의례(儀禮)를따랐다.건물의구조는일반적으로정면3칸과측면1-2칸정도이고맞배지붕으로이루어져있는데,건물내에는본래신좌(神坐)를두고오향제(五享祭)나한식제(寒食祭)를지내는부속건물이다.


정자각동쪽에는능의비(碑)를안치하기위해비각(碑閣)을조성했는데,능의주인이누구인지는이비각(碑閣)을통해서알수있다.실제로정자각(丁字閣)에서부터봉분(封墳)까지는심한경사(傾斜)의사초지(莎草地)가있어봉분(封墳)까지직접볼수있는곳은없다.능의비(碑)라도자세하게살펴보는것이제대로된관람일것이다.

왕릉(王陵)의모습은각각의능마다특징적인면을지니고있다.봉분(封墳)이있는능원(陵原)의전형적인모습은다음과같이조성되어있다.봉분(封墳)자체만조성된능이많지만봉분밑을12각의병풍석(屛風石)으로둘러봉분(封墳)을보호(保護)하는호석(虎石)을준경우가있고,데체적으로봉분주위는다시난간석(欄干石)으로둘러보호하고있는능들도있다.봉분앞에는상석(床石)을두고상석좌우에는망주석(望柱石)한쌍을두었으며,한단아래중앙에는상징적등불인장명등(長明燈)이릉앞정면에있다.

봉분전체를둘러동서북3면의담장을쌓았는데이를곡장(曲墻)이라하고,봉분의난간석(欄干石)바깥쪽에서곡장을바라보고있는형상으로4마리씩의석호(石虎)와석양(石羊)을번갈아두어능을호위(護衛)를하는수호신(守護神)격으로삼았습니다.(추존(追尊)된왕릉(王陵)의경우는석호,석양의수를반으로줄여일반왕릉과차이를둔경우도있다.)

봉분앞장명등(長明燈)의한단아래에는관(冠)을쓰고홀(笏)을쥐고있는문인석(文人石)1쌍이좌우로뒤에각각석마(石馬)을대동하고서있으며,그아래단에는갑옷에검을들고있는무인석(武人石)이역시각각석마를거느리고세워져있습니다.(대한제국(大韓帝國)성립후조성된고종[홍릉(洪陵)]과순종[유릉(裕陵)]의경우는황제릉(皇帝陵)의형식으로조성되어기존의능과는큰차이가있다.)


조선왕릉이우리에게전해주는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가치는우리의전통문화가세계적으로인정을받은우리만이간직한고유문화임을자부한다.조선왕조의세계관과종교관,자연관에의해유교문화권의왕릉으로자연친화적이며,독특한장묘문화를보여주고있다.역사의중요한단계를보여주는건조물의유형,건축적,기술적총제적인경관의탁월한사례이며,500년이상지속하여만들어진조선왕릉은시대적사상과정치사,예술적가치의압축이쌓여서공간구성과건축물,석물등이가지고있는예술적독창성이뛰아나다는것이다.왕의신위를모시고제례를지내기위한공간인종묘가설립되어조상숭배의전통이우리가지켜나아가야할고유문화이다.

-참고1)유홍준의국보순례조선왕릉(朝鮮王陵)-

참고2)조선왕조500년을이어온왕릉전시장동구릉/한국관광공사제공-
-참고3)설사하다죽은세자황제되어누웠다.신정선조선일보기자-

-참고4)조선왕릉엔‘다빈치코드’뺨치는‘컬처코드’윤완준동아일보기자-

-사진5)소나무3월6일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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