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1]

길위의인문학.제18회원주,횡성현장탐방

승자의미소,패자의눈물.홍인희강원대초빙교수

연암김씨의민공종회와종택을방문하여홍인희교수의설명을듣고있는모습(의민사문앞에서)

‘승자의미소와패자의눈물’이라는타이틀을가지고찾아가는’길위의인문학’이번탐방의진행은홍인희교수가진행하는강원도’원주,횡성1박2일'(11월28~29일)탐방코스이다.홍인희교수의저서"우리산하에인문학을입히다.1,2권"을토대로홍인희교수와함께진행되었다.참가회원52명과주체측에서8명모두60여명이관광버스두대에나누어타고,지난11월28일오전7:40분쯤에국립중앙도서관에서출발하였다.가을이지나가고겨울에접어든이날비가주절주절내리는데,역사속에살아숨쉬는그맥을찾아가는마음은날씨만큼이나을시년스럽기만하였다.우리나라역사와역대왕조와의관계가소원할것같은강원도원주와횡성으로그흔적을찾아‘길위의인문학’에서우리는’승자의미소와패자의눈물’이스며있는그현장을찾아나섰다.

의민공의묘소를찾아비석을보면서설명중

우리는먼저부론면손곡리에있는①’연안김씨의민공종회와종택’을찾아갔다.의민공은선조의공빈김씨의부친이다.부론면손곡리태생인공빈김씨의차남인광해군이부왕의옥좌를물려받았다.그리고인접지역인지정면에서인목왕후가선조의계비가되어영창대군을낳고,또부론면노림리출신으로인조의비가되었던인열왕후는아들효종이조선왕조의계보를면면히이어간다.한편세월이흘러인근문막에살던엄귀비가조선의마지막황태자영친왕을낳아대한제국황실의대미를장식하였다.그만큼이곳부론은조선왕실과깊은인과관계가서려있는곳이다.종택을지키고있는주인은낯이설게도의외의외국여인이나와서우리를맞아주었다.홍인희교수는역사적사실을해박한안목으로설명을해주었다.그리고조금떨어진산기슭을우산을받고올라가의민공의묘소도찾아갔다.

벽계수이종숙의묘소를방문하여벽계수에얽힌설명도들었다.

다음은’황진이와벽계수’에얽힌이야기를들으며②’벽계도정이종숙’의묘를찾아갔다.벽계수하면우리는서경덕을먼저생각하는데,그보다먼저종실의벽계수이종숙(李終叔)은세종대왕의17번째아들영해군의손자로결코황진이의유혹에넘어가지않는다고말해왔는데,이이야기를들은황진이가사람을시켜그를개성으로유인해온데서부터이야기는시작한다.벽계수이종숙(李終叔)의호언장담을전해들은황진이가개성까지만데리고오면,그다음은불문가지(不問可知),과연개성인근까지말타고도착한벽계수를그유명한’청산리벽계수야수이감을자랑마라한번가면다시못온다’는시조를읊는황진이의자태에넋을빼앗기고낙마했다는이야기가전하고있다.

또다른벽계수이야기는화담(花潭)서경덕이바로송도부근의성거산(聖居山)에은둔하고있을때이야기가전한다.황진이가서경덕을아무리유흑을해도끄득도하지않으므로황진이는서경덕에게큰절을올리며제자로삼아달라는뜻을밝혔다.그리고황진이가문득서경덕에게이렇게말했다.<송도에는꺾을수없는것이세가지가있사옵니다.>서경덕이황진이를쳐다보며다음말을기다렸다.<첫째가박연폭포요,둘째가선생님이십니다.>서경덕이미소를지으며셋째를물었다.<바로저올시다.>송도에있는것중도저히꺾을수없는세가지혹은가장뛰어난세가지.송도삼절(松都三絶)은그렇게황진이의입을통해만들어졌다고전한다.

강원감영관찰사가집무를보던선화당

강원감영안내도

그리고찾아간곳은원주에있는③’강원감영’이다.강릉과원주가합쳐강원도가되었다는것은이미아는일이지만,조선시대강원감영에들어서니궁궐에들어가는것같은느낌을받았다.조선팔도의감영건물중에서가장그원형이잘보존되어있는곳이라고한다.1395년부터1895년까지500년동안강원도전체를다스렸던관찰사가머물렀던이곳감영은궁궐같은규모로1665년관찰사가집무를보는선화당(宣化堂)이세워지면서많은관리들이일하는건물들이지어지기시작했고1895년에당시에는사방약16km에이르는관찰사영역에총57개의건축물이있었다고한다.감영의정문인포정루,관찰사를만나기위해거쳐가야했던중삼문과내삼문으로이어지는세개의문을통과하게되어있다.관찰사의일을돕는사람들이살았던행각과내야건물이남아있다.강원감영은강원도유형문화제제3호로지정되어조선초기에설치된강원관찰사의집무처로건물규모는70여칸이되었으나,임진왜란때전소되고그뒤다시중건하였다.6.25전쟁중큰피해를입은선화당은임진왜란후1667년에중건된정면7칸측면4칸의겹처마단층팔작지붕건물로평범한관아건물의형태를취하고있다.선화당문기둥에적혀있는주련편액의글은관찰사들의실천덕목이적혀있었는데,그글들이지금의공직사회에서도실천되었으면하는뜻에서내용일부를인용해본다.‘산처럼무겁게’‘물처럼깨끗하게’‘칼처럼날카롭게’‘거울처럼맑게’진정한명예를위해서사는우리의현재에도규범이될수있는글귀들이기둥마다붙여져있다.강원감영의모든역사를알고있을수령이600년된느티나무는오늘도묵묵히600년의역사를품고서있었다.비가내려추운기운을따뜻하게녹여준진행팀의커피한잔의배려가고마웠다.

우리는점심식사를한후횡성으로출발하였다.

④’고형산묘역’고형산은조선중종때의명신고형산이중앙에서벼슬을하던중횡성에살고있는노모가병환에시달리자사직을청하였으나그를아낀임금은강원도관찰사로임명해내려보내어머니를보살피면서백성을다스리도록배려하였다.그는관찰사로서각지역을순방하다가대관령길이2인교가마하나겨우지나다닐정도로협소함을보고는사재까지털어가며수개월만에이를4인교가마가통과할만큼넓혔다.지금으로치자면2차선도로를4차선으로확장한셈이다.조정으로부터선정을펼친목민관으로칭송을받던그는이후로도호조,형조,병조판서와우찬성등고위직을두루거치고76세를일기로사망하였다.그가죽은지100년이훨씬지난1636년병자호란이일어나조선강토가청나라군사들의말발굽아래놓이게되고,’전도굴욕’이라는인조의치욕스러운항복이있고나서야전란이일단마무리되었다.그러나이때지하에묻혀있던고형산에게는예기치않은불운이닥친다.호란이발발한초기주문진으로상륙한청나라군대가대관령을쉽사리넘었기에한양을조기에장악할수있었다며,결국이길을편리하게닦아놓은고형산에게책임이돌아간것이다.대관령길을넓혀놓았기때문에청군이빨리한양에도착할수있었다는죄목으로묘가파헤쳐지고부관참시를당했다고전한다.그리고그후에공적이바로평가되고복권되어’위열공(威烈公)이라는시호와함께횡성고씨후손들에게는고향마을사방10리땅이하사되었다고한다.

대관령에얽힌이야기를하나더하면,강릉새색시가영서지방으로시집을갔다.어느날친정어머니가편찮으시다는전갈을받고신랑과함께대관령을넘던중집채만한호랑이를만났다고한다.꼼짝없이죽었다고생각하는순간,색시가신랑에게’내가무슨짓을하던흉보지말고비밀로해달라’며다짐을받고는갑자기치마와고쟁이를내리더니허리를구부리고뒤걸음으로걷는다.호랑이가의아해하며생각하기를‘나를만나저리천천히걸어가는걸보니매우센놈임에틀임없다.더구나가만히살펴보니모든짐승들은입이옆욿찢어져있는데,저놈은위아래로찢어졌고주변의수염도구불구불하니범상치않다’며스스로물러나숲속으로사라져벼렸다고하는이야기도전한다.

⑤세덕사(世德祠)는횡성조씨(橫城趙氏)중시조인조영인(趙永仁)3대의공훈을기리기위하여건립되었다고한다.조영인은고려명종,의종,신종의3대에걸쳐국가의기틀을잡는데큰공을세웠으며,그의아들충(沖)은고종때여진족을압록강변에서크게무찔러서북면원수가되었고손자계순(季珣)도나라에큰공을세웠다.후세사람들은이들이태어난지역을삼원수(三元帥)골이라이름하였으며,후손들이사당을세워춘추로제사를지내고있다.세덕사신당은한국의전통적인사우의양식을지니고있다.

⑥횡성공원은군청바로뒤쪽에있다.눈에먼저뛰는것은3.1운동의발자취를알리는조형물이다.횡성에서의만세운동은양양과더불어민초들의가장격렬하고규모가큰투쟁으로평가되고,원주,평창영월은물론도내전역으로만세운동을확산시키는기폭제가되었다.횡성읍장날인4월1일을기해일제히만세운동을일으켜상인들까지동참의의미로일제히철시를단행하였고,술집을하던김순이(황소아줌마)는칼까지들고다니며적극적으로참여를독려하였다고한다.횡성사람들은그녀를기려세워놓은<애국지사김순이여사의묘비문>에당시활약상에대해기록되어있다.주막을경영하면서푼푼이모은돈으로독립운동을도우며3.1운동때는주막을거사모의장소로제공하면서만세운동에열성적으로가담하여결국투옥되었다가출소되었으나일제의지속적인감시와방해로생업인주막을꾸리지못하고홀연히종적을감추었다가해방후1952년74세로별세하여,횡성지역의한공동묘지에묻혔다가횡성지역인사들이그녀의애국혼을기리기위해비를세웠다.강원도내에현존하는여성독립은동가묘소로알려져있다고한다.

횡성지역3.1운동조형물

이중환의택리지에’횡성현은두메속에터가할짝열려서환하게밝고넓으며물이푸르고산이평평하여형용하기별스러운맑은기운이있다’고기술하고있다.횡성사람들의강인한기질을일컬어’횡성3횡’이라는말이회자되어오고있으니,산횡(山橫),천횡(川橫),인횡(人橫)이그것이다.여기서횡(橫)이란’가로지른다’는사전적정의를넘어’빗겨있다’,’삐딱하다’는등의의미를내포하고있는데,우선산세가빗겨나있으니산횡이요,그산을따라냇물도빗겨있어천횡이며,이러한산과내가있는자연속에서살아가는사람들의품성또한호락호락하지않으니인횡이라는뜻이다.횡성은또한지리적으로도과거동서로뻗은서울-강릉간육로교통및물류의중간경유지역할을하게됨으로써‘동대문밖200리안에제일큰장이열렸다.’고할정도로성시를이루고있었다.횡성사람들은용의주도하고남에게지지않으려는그들의전통적기질과맞물려타지상인들에게속아넘어가지않고자기것을지키기위한지혜와장사수완을터득하게된다.여기서,어리숙하고순진하다는강원도인들에대한일반적평가와는달리약고깍쟁이라는이미지를갖게되기에이른다.’횡성에서잘난체하다가는코피터진다’는속담까지전한다.

⑦횡성군청3층회의실에서군수님이직접횡성을찾아온’길위의인문학’탐방팀을위해환영해주었다.군수님은인사말을통해횡성이살기좋은고장으로발전을하고있다고전하면서평창동계올림픽의개막에맞추어서울-평창간KTX로선이건설되면횡성을통과하게되어횡성이더발전할것이라고하면서의욕적인미래의횡성청사진을피력하기도하였다.횡성에깃들어있는역사적인사실들을홍인희교수의설명을들으며2시간동안흥미롭고인상적인인문학의발자취를더듬어가면서승자의미소도보면서,한편으로는패자의눈물에공감을하면서오늘하루일정을마치고횡성한우를즐기면서맛있는저녁식사를한후팬션에서여정을풀었다.

연안김씨종택에서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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