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언어로 바꿔놓은 시(詩) 승무(僧舞)|

◆승무(僧舞)조지훈

얇은사(紗)하이얀고깔은
고이접어서나빌네라.

파르라니깍은머리
박사(薄紗)고깔에감추오고.

두볼에흐르는빛이
정작으로고와서서러워라.

빈대(臺)에황초불이말없이녹는밤에
오동잎잎새마다달이지는데.

소매는길어서하늘은넓고
돌아설듯날아가며사뿐히접어올린외씨버선이여.

까만눈동자살포시들어
먼하늘한개별빛에모도우고.

복사꽃고운뺨에아롱질듯두방울이야
세사에시달려도번뇌(煩惱)는별빛이라.

휘어져감기우고다시접어뻗는손이
깊은마음속거룩한합장인양하고.

이밤사귀또리도지세는삼경(三更인데
얇은사하이얀고깔은고이접어서나빌내라.

‘얇은사’,’고깔‘,’박사’와같은의상은

인간의’미와진실’을드러내는문화코드이다.

반복형으로강조된’얇은사’와’박사’는

‘두터운무명’옷감의재질과대립되는것이고,

‘하이얀’빛갈은삶의쾌락을나타내는색동옷과

대칭관계를이루는절재와정화를나타낸다.


‘나빌레나’는고깔을나비에비유한것으로,

얇고하얀천의재질이나비의나래와동일시되고,

의미만이아니라부드러운순음과유음이겹친

‘나빌레나’의기호표현은가볍게나부끼고있는

의태어로나비의모양과결합된은유이다.


고깔의의상코드가나비의자연코드와합쳐진것이춤(舞)이며,

삭발한머리의신체코드와결합한것이불교(僧)이다.

‘의상=자연=신체’의세코드가은유와환유의시적장치를

통해서하나로수렴되고승화된것이「승무」의세계다.


조지훈의승무를읽으면고깔(의상)-나비(자연)-머리(신체)의

관계가어떻게선택,결합되어전개되는지밝혀지게된다.

신체코드로볼때,’파르라니깎은머리’가두볼에흐르는

빛(얼굴)이되고,그뒤에손과발의춤사위로변한다.

‘복사꽃뺨’과’까만눈동자’로올라가머리에이르게된다.


소매는길어서하늘은넓고

사뿐이접어올린외씨버선이여.


의상코드의고깔이여기선장삼과외씨버선으로바뀐다.

하늘로비유된그긴장삼과사뿐히위로올린외씨버선은

다시하늘로상승하려는움직임을보여준다.

의상은신체의연장이고또춤사위와관련된품위를나타낸다.


"오동잎잎새마다지는달빛"은두볼에흐르는빛과

빈대에서소리없이녹아내리는황촉의불빛과

삼중의동심원을그리면서침하해간다.

신체의빛,문화의빛,자연의빛은서로다른

코드에속해있지만,’정작으로고아서서러운’

소멸의빛이라는점에서일치한다.


손이소매가되고소매가장삼으로,장삼이하늘로

바뀌듯이두볼에흐르는빛은촛불이되고,그촛불은

다시떨어지는오동잎잎파리마다지는달빛이된다.

외씨버선이하늘을향해위로솟아오르듯이

복사꽃고운뺨에아롱지던두검은눈동자는

먼하늘의한개별빛으로향한다.

그별빛은촛불처럼녹아흐르지도않고

달처럼기울다가소멸되지도않는다.


승무(僧舞)는이렇게세사에시달리는번뇌와

복사꽃육체의들뜬열정에서벗어나기위해서

조용히그러나치열하게날아오르는몸짓인것이다.

그것은밤과침묵속에서배어나오는빛이다.


승무의아름다움이나신비함그리고그성스러움이

결정체를이룬’먼하늘한개별빛’을지상으로가져오고,

그심연속의빛을소리로옮기면승무의마지막연에등장하는

"이밤사뀌또리도지세우는삼경인데"가될것이다.


춤을굳이언어로바꿔놓은이시의경우처럼

「승무(僧舞)」의진정한메세지는한국의고전이나

불교의열반을나타내는승무자체에있는것이아니라.

시의의미는그침묵하는것들을귀뚜라미같은

갸날픈소리로옮기는데있다.


하늘의별빛을땅의귀또리소리로옮기는작업,

그것이시인조지훈이평생을두고썼던

그시승무의의미였을지도모른다.


◆사슴노천명

모가지가길어서슬픈짐승이여

언제나점잖은편말이없구나

관(冠)이향기로운너는

무척높은족속이었나보다.

물속의제그림자를들여다보고

잃었던전설을생각해내고는

어찌할수없는향수에

슬픈모가지를하고

먼데산을바라본다.


사슴은학,거북이와함께십장생(十長生)의하나로

한국인과는참으로오랫동안친숙하게지내온짐승이다.

모가지라는말속에는인간과동물이같이공유하고있는

원초적이고본능적인생명의알몸둥이가들어있다.


슬픔은짐승이든인간이든간에그존재를내면화한다.

노천명의시각으로보면초상집에서만나는

사람들의목은누구나다길어보이고조금씩은

정신적으로보일것이다.실제로노천명은

사슴의목,침묵그리고그뿔의순서로이행해가면서

슬픔에서점잖음으로,전잖음에서고귀함으로

그내면화과정을심화해가고그차원을높여간다.


사슴의속성은"높은족속이었나보다"의과거형이고,

사슴이"먼데산을본다"는것은그사슴이지금산에

있지않다는것을나타내는말이며,’잃었던전설’이나

‘향수’라는말은그’먼산’에있었던사슴을가르킨다.

그사슴과는시간도공간도멀리떨어져있음을시사한다.


이시에서’먼데’라는말은지리적인거리만이아니라.

내면적인거리,의식속의거리를가르키는것이며,
사슴의본래성과현존성의괴리를
보여준다.

동물원속의사슴은세속화한사회,물질문명속에서

사육되고있는모든시인의모습이고,동시에

목에갈기를세우고돌진해오는권력자나실력자

앞에서슬픈모가지를내밀고있는무력한

지식인들의초상화이기도한것이다.


<언어로세운집>에서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