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601-32
[주차장 쪽에서 담은 진천 농다리 전경]
[안내판의 진천 농다리 안내도]
[진천 농다리 안내판 글 내용]
[농다리 수변 탐방로 안내도]
[복구 중인 농다리와 임시 신설된 다리]
鎭川(진천) 籠橋(농교)는 진천읍을 관통하는 백사천과
이월면을 적시는 덕산 한천천이 합류해 흐르는 백곡천에 놓인 돌다리이다.
농다리. 수월교라고도 하며,
지네를 닮았다고 하여 지네 다리라고도 불린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농다리는 조성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료가 없다.
삼국시대 김유신 장군의 부친 김서현 장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놓았다는 설과 구곡리 출신 임연 장군이 고려 후기에 고향인 세금천에
놓았다는 설이 전한다.
‘常山誌(상산지) 1932년에는 ‘고려 초기에 임 장군이 축조하였다.’ 기록되어 있다.
진천 농다리는 본래는 28宿(수)를 응용하여 28칸으로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 때 3칸이 유실되어 25칸만 남아 있다가, 2008년 8월 15일
충청북도와 진천군이 28칸 전부를 복원하였다.
길이는 93.6m이며 너비는 3.6m, 두께 1.2m, 교각 사이의 폭 80㎝ 정도이다.
중간에 돌들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길고 넓적한 돌을
교각 사이에 하나씩 얹어 과학적이면서 특이한 양식으로 짜였다.
진천 농다리의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2001년부터 매년 여름 농다리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농다리는 문화재적 가치뿐만 아니라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복을 받고 소원을 이룰 수 있으며, 아낙네가 건너면 아들을 낳고
노인들은 무병장수한다고 하여 관광명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천여 년 세월을 버텨온 돌다리이며, 과학적 공법의 우수함을
짐작하게 할 만큼 특이한 양식으로 짜인 이 다리는 전국적으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2017년 7월 16일 충북지역 기습 폭우로 일부가 유실 및 손실되었다.
농다리에 얽힌 전설 한 자락
임 장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세금천 건너편에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여인에게 물으니 여인이 답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셔 친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장군은 여인의 지극한
효심과 그 모습을 딱히 여겨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만들었습니다고 합니다,
이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고 하며,
용마의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용바위(쌍바위)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전설로는
옛날 굴티 임 씨네 집안에서 아들, 딸 남매를
두었는데 둘 다 훌륭한 장사라서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습니다.
아들(임장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로 갔다가 오기로 했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여,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고 딸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갔다.
[진천 농교 쪽에서 담은 주차장 쪽 전경]
어머니는 아들을 살릴 묘책을 내어 딸에게는
뜨거운 팥죽 등 먹을 것을 해다 주며 일을 늦추게 하였습니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온 것에 화가 난 딸은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는데, 아직까지도 그 돌이 그대로 박혀있습니다.
약속대로 딸은 죽게 되었고, 딸이 마지막
한 칸을 놓지 못해서 나머지 한 칸은 일반인이 놓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장수가 놓은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일반인이 놓은 다리는 장마가 지면 떠내려간다고 합니다.
지금의 다리 높이는 어린아이의 키보다도 낮습니다.
하천의 바닥에 세월의 무게 마냥 토사가 쌓인 탓이라 합니다.
진천 농교의 경우는 조성에 관한 이렇다 할 사료가 없이
전설과 같은 신비로운 이야기만 넘쳐날 뿐이라 합니다.
데레사
2018년 4월 30일 at 2:02 오후
언젠가 장마때도 농다리가 유실되있다는
보도를 본것 같아요.
진천쪽에 오래 멍술었나 봅니다.
초아
2018년 4월 30일 at 9:17 오후
당일치기였습니다.
새벽일찍 출발해서 정해진 답사지를
가다가 농다리를 지나치게되어 예전에 들려봤지만,
잠깐 들렸다 가자 하고 들렸지요.
후다닥 다녀오느라 찬찬히 둘러보지 못하여 좀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