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살아 있는 말과 죽어 있는 글


<월간한민족>연재를시작하며…

어느모임에서있었던일인데

모임주최자가나를

“이분은철인(哲人)이십니다,철학자이며석학이십니다!라고

사실적인소개인지아니면과분한(?)소개인지를하자

줄에앉아있던어떤여자분이

“살아있는철학자는처음보네요!라고,하는것이었다.

그래서내가

“그러면,죽은철학자는많이만나보셨습니까?하고물었더니

장내가웃음바다로적이있었다.

그런데,여자의말에도일리가있으니,

그것은?우리들이배워서알고있는유명한철학자들은

모두죽은사람들이라는사실이다!

살아생전에인기를끌었던사람으로,죽은후에도

명성을그대로지니고있는사람은철학사에는거의없다.

(살아있을당시에,시대의일반대중에게두루통하고,

그들의인기와영합되는수준이라면그것은바로높지도,

깊지도못한수준이라는표시.)

수백년또는수천년전에죽은철학자들의이름과업적이

지금현재에도기억되고영향을미칠있는것은

그들의수준이세월동안계속통할있었고

지금도통할있는수준이기때문이다!

깊이생각해보기로하자!

어떤분야에서활동을하고있든간에

지금지구상에살고있는수십억의인구중에서

앞으로1백년후에기억될만한사람은과연몇이나될까?

나아가,수천년후에도이름이기억될만한사람이,

과연오늘의생존자중에있기나할까?

사실상,시대에는철학자만죽어없어진것이아니라

사고(思考),사유(思惟)라는조차없이도

다들먹고살아있게되었다.다행한일이다.

그러나

인간의밑바탕에자리잡고있는

본질적인문제에대한갈증까지사라진것은아니다.

그러한갈증들은사람들의머릿속에서

‘삶,사랑,종교,행복’모습으로여전히아롱거리고있을뿐이다.

그래서

나는,나의속에서,그러한갈증들을,

두가지면에서접근해보고자노력을하고있다.

한가지는Why?(그럴까?)이며,

한가지는How?(어떻게해결해볼까?)라는것이그것이다.

그리하여

이곳‘월간한민족’독자들과함께

‘왜?그리고‘어떻게?’에대한해답을찾아보며,

사유의즐거움을서로공유해보고자하는마음에서,

곳에칼럼을맡기로하였음을밝히면서

첫번째의이야기로들어가보기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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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살아있는말과죽어있는

~이상봉

입에서나오는‘말(words)’과

말을적어놓은‘글:문자(letters)’는같은것이아니다.

그렇다!

입에서나오는말을,그대로적어놓은일지라도말과글은전혀다른것이다.

그대들의이해를도와주기위하여,

우선우리들이흔히있는것을예로들어볼까?

이따금TV에서,어떤사람과의인터뷰내용을그대로들려주면서

동시에녹음내용을글자로화면에옮겨놓는경우를보게되는데

그럴경우그대들은어느편이낫다고느끼는가.

입에서나오는말에는,

높고낮고,강세와약세가있고,멈춤과침묵이있다.

거기다가,말하는사람의감정까지곁들여있다.

그러나,화면에나타나는글자들은

단지기계적으로만일정한형태로나열되어지고있을뿐이다.

더욱이상한것은,

귀로는소리를들으면서,

동시에눈으로화면에나타나는글자들을읽으려고하면,

글자도제대로읽혀지지도않고,말소리또한제대로들리지않는다.

문학이라는것처럼,

처음부터읽는사람을겨냥하여써내려경우는

그만치의사전달을염두에두고문장을의도적으로써놓았기때문에

그나마의사전달이나은편이지만

강의,강연,좌담,대화나수다떠는등등을녹음하여

그대로글자로옮겨놓은것은읽기가힘들고의사전달은더욱힘들다.

그리고,그렇게문자로만써놓았다고해서

문학작품이되는것은더더욱아니다.

마찬가지이다!

선생의강의내용을직접선생앞에서듣는경우와

선생이써놓은설명을글로읽는경우는전혀다르다.

속에는어느정도생명이들어있으나

글자는생명이없는죽은것이기때문이다.

더군다나

앞에서듣는말에는언제라도질문할있는길까지열려있으나

글은일방적일뿐이다.

그러나,

말로서도전달이되지않는것들이얼마든지있다.

그렇기때문에말과글자의중간중간에들어가있는

‘공간과침묵’이중요한것이다.

더군다나

진리라는것은말이나글로주고받을있는것이아니다.

진리나깨달음은말이나속에들어있는것이아니고,

본인자신이직접깨달아야만되는것이다.

우리의삶은전체적인것이지만…

우리의언어라는것은전체를포용할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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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저와관련된이야기로들어가보기로할까요.

글을읽어어떤독자분이있었다.

글이마음에들었는지

아니면,글이나나에관하여직접물어보고싶은것이많아서그랬는지

전화번호까지알아내전화를걸기시작했다.

토요일오후같은때에는1시간씩이나전화로

이것저것질문을하기도하였다.

그러다가,마침내나를직접만나서,

온갖질문을마음놓고있는기회가그에게주어졌다.

내가사람을위하여그러한기회를만들어주었다.

,사람이나에게말이제법인상적이다.

“이제야,말과글의다른점을확실하게있게되었습니다.

글에서는전혀없었던것들을

직접하시는말씀의강약과특히군데군데의멈춤과침묵속에서…

저에게전혀다른의미로전달되어오는것이군요!

선생님이하시는말씀자체는,

단지,멈춤과침묵을생산해내기위한도구같이만느껴집니다!

실제로선생님이하시던말씀을‘딱멈추었을때’에,

바로,,의미가전해져옵니다!

“…???

하지만,사람의(음성)이라는조차도,

사실은절대로()이상을표현수도없고또한전달될수도없다!

내가무슨말을하든지간에,

말이라는것은내가의도한것의‘절반이상’을전달할수가없다!

점이아주중요한것이다.

간단하게나마예를들어서설명하여보기로할까?

Godiswithin(神은안에있다)이라고내가말한다면

말은Godisnotanywhereelse,onlywithinwith.

(신이란오직안에만있을,外의다른어느곳에있을없다!)

라는의미로된다.

하지만,

나는,Godiswithin이라고만하였을,

“신은다른곳에는전혀있을없다!라는의미의말을것은결코아니다.

그런데도불구하고

듣는사람은‘신은오직내부에만있을,다른곳에는없다!라고

한정적으로듣게된다는점이다.

모든언어라는것은이와같다.

내가언급한외의모든것들이부정적으로되어버리는

그러한모순을지니고있다.

우리의삶은전체적인.

하지만우리의언어라는것은전체를포용할수가없다!

그래서

내가전체를포용한답시고

GodiswithinandGodiswithout!이라고한다든지

“그것도옳고,이것도옳다!따라서모두옳다!라고말을한다면

이번에는아무런의미도없는말이되어버린다!

바로,여기에,표현의근본적인문제점이있는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언어는어쩔없이어떠한경우에도선택일뿐이다.

그렇다면?

제법철학적인내용에만그런의사소통의문제가있는것인가?
아니다!알고보면,모든언어가그렇다!

쉬운것을예를들어보겠다.
내가“좋다!라고하였을,

과연,“좋다!라는것이얼마나좋은것을나타내는지

제대로있는사람은사람도있을없다.

왜냐하면,“좋다”라는의미가,

“단지싫다고수가없어서마지못해좋다!”고것인지

“싫지않은정도만큼의좋은것”인지?

“그냥,보통정도로좋은것”인지

“정말로좋은것”인지?

아니면“더없이최고로좋다!인지

어느누구도정확하게수가없기때문이다.

따라서,

선택이없는언어모든것을수용할있는언어라는것은,

있을조차없다.

그래서어쩔없이

언어로,생각을,내가선택하여놓은,

그것이바로‘나의글’이다!

기억하여두시라!

말이나,글은,단지나의어쩔없는선택일뿐임을…

그리고,

그대들은수많은중에서,

바로나의이러한글을지금선택하여읽고있는뿐임을…

글을읽는독자님들이여!

가능하시면,

글자와글자사이에들어가있는간격의침묵속에서,

제가하고자하는이야기의본뜻을느껴보도록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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