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디언 여인 사카가위, 그리고 Lewis와 Clark 탐험대
BY 이 상봉 ON 5. 24, 2009
인디언여인사카가위(Sacagawea),
그리고Lewis와Clark탐험대
<$1.00금화에새겨진‘젖먹이애를업고있는여인’>
(사진은,파일첨부를보시면됩니다.)
WashingtonState(워싱튼州)에는롱뷰(Longview)라는도시가있다.
이Longview는목재산업으로성장한도시이고,
이도시의한가운데에는아름다운공원이있다.
그공원의이름이LakeSacagawea(사카가위호수)다.
1달러($1.00)짜리금화에들어가있는‘젖먹이애를업고있는여인’이,
누구인지?전혀관심이없는사람들이많이있듯이…
이공원의이름에,왜?Sacagawea라는이름이들어가있는지에대하여
전혀관심이없는사람들도많이있을것이다.
롱뷰(Longview)에서서쪽으로계속나아가면콜럼비아강(江)을만난다.
바로,그강물을따라서,1805년가을에,
루이스(Lewis)와클라크(Clark)탐험대는태평양에이르게되었다.
그점은,지금도마찬가지여서,
그콜럼비아江을타고내려가게되면…
루이스와클라크가바라보았던그경치를여전히볼수가있다.
(Longview는,I-5선상에있으며,그곳에서4번도로를따라서
서쪽으로가면Longbeach라는바닷가에이르게되는데…
이길은,강변을따라서바다에이르게되는참으로아름다운길이다.
그렇다!
이길은,나에게도,가장아름다운추억으로고이간직되어있는길중의하나다.)
콜럼비아강가의가을풍경,그것은가히절경이라할수있다!
그러나,요란하고산만한가을풍경이아니라,조용하고평화로운절경이다.
바로,이곳을루이스와클라크는1805년의가을에방황하였던것이다.
제퍼슨대통령의지시로,50여명의서부탐험대가
St.Louis를떠나,Missouri강줄기를따라서탐험에나선것은
1804년봄이었다.
[그것을일컬어루이스(Lewis)와클라크(Clark)탐험대라고하는것이다.]
그들은,그해겨울을,현재의NorthDakota에서
Mandan인디언들과지내야만되었다.
그곳에서,Shoshone인디언여자인Sacagawea를통역자로삼아서,
그여자의안내로험난한길을뚫고,가장힘든곳인
ContinentalDivide와BitterrootRange를통과하여,
마침내,콜럼비아강에도착하게되었는데…
그때가,바로,1805년11월이었다.늦가을에해당되는때였다.
(사진은,파일첨부를보시면됩니다.)
(사진:200년전에Lewis-Clark가지나갔던길에붙어있는안내표시판)
그러나,
그들은,그토록아름다운콜럼비아강의가을경치도즐길수가없었으니…
식량이떨어져서겨울을어떻게지낼까?의걱정이앞을가리고있었기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늦가을에줄기차게쏟아지는그지방의비[1]를이곳콜럼비아강에서
만나게된그들은더욱더낙심할수밖에없었으리라!
하지만…
이토록힘든탐험을이곳까지성공적으로이끌게된사람이,
바로,‘아이를등에업고있는그여인’이었고,
그여자의이름이사카가위이었다.
[나는그동전에새겨져있는,아이를등에업고있는그여인을보면,
한국의어머니들의모습처럼느껴진다.
내가알기로…아이를등에다업고서다니는여인들은,
한국여자들,인디언여자들,그리고아프리카여자들뿐인것같다.]
<LakeSacagawea(사카가위湖)>
‘롱뷰(Longview)의보물’이라고불리워지고있는사카가위호수는,
롱뷰市의한가운데에자리잡고있다.
물론,그사카가위의이름을딴지명이야,
루이스와클라크가지나친길도처에남아있다.
아이다호주,몬타나주,와이오밍주여러곳에그녀의이름이남아있지만.
이도시의이름-Longview는캔사스시에서온
‘로버트알렉산더롱(Long)’이롱벨목재회사를차리는것에서시작된것이다.
그는콜럼비아강가에거대한목재회사를차리는계획을세웠고,
오랜세월의노력끝에마침내성공할수있게되었다.
그회사는이도시의한가운데에호수를세웠고,
그호수의이름을사카가위의이름을따서
LakeSacagawea(사카가위湖)로命名(명명)했다.
루이스와클라크의탐험대에기여한사카가위의헌신적노력을
기리고자하는사람들의마음이표현되었다고볼수있을것이다.
그렇다!이공원을개발하여시에헌납한그목재회사도
사카가위에대한공헌을잘알고있었고
그에대한고마움을그렇게표현했을것이리라!
<탐험대에가담하게된16살의인디언여자>
탐험대가미조리를떠나,NorthDakota에있는,
만단인디언마을에머물고있을때였다.
통역으로일한털가죽교역상투쌍샤르본느의인디언부인이,
바로,통역관으로나섰는데…
루이스는,여자를탐험대원으로선발함이,무리라고생각은했지만…
인디언통역관이꼭필요했기에,그인디언여자를고용할수밖에없었다.
(사진은,파일첨부를보시면됩니다.)
그인디언여자의이름이,Sacagawea(사카가위)였고,
그당시그여자는16살이었고,또한임신중이었다.
(그녀의첫아이죤배프스토가태어난것이1805년2월11일이었다.
그리고,그탐험대가태평양에도달한날짜가그해11월달이었으니…
결국은모든여행을그엄마와갓난애가함께한것이었다.)
그녀는약초로탐험대를치료하였고,
식량이떨어졌을때에는풀뿌리를찾아서대원들을먹였고,
통역자로인디언들과교류하도록도와주었으며,
특유한육감으로어려움에빠진탐험대의갈길을인도하였던것이다.
(기록에의하면…그녀는근2년의험난한여행동안,
한번도불평을하지않았다고한다.
루이스클라크의일지에그녀의헌신적인모든노력이그대로실려있다.)
그러나…마지막탐험의끝부분에…
그녀가불평하며강력하게항의하였다는내용이짤막하게기록되어있는데…
그것은,그들이,마지막지점인태평양에도달했을때였단다.
그때의Clark의기록에는이렇게쓰여져있다.
“Menappearedmuchsatisfiedwiththeirtrip
Beholdingwithastonishment….
ThisemenceOcian.”
마침내,태평양근처에도착한그들은,바다를구경하기위하여나섰다.
그런데…
탐험대장인클라크는,전부,한꺼번에가는것이좋지않다!고판단하여
몇명만을골라가기로하였다.
바로,그때에,그여자가이렇게말을했다,
"나는,이어렵고긴여행을,
오직바다와그곳에있다는고래를보기위하여참고견디어왔다.
이제,그바다에도착하였는데고래와바다를보러가지못한다면,
나는견딜수없다.나도같이가게해주어야한다!"
그녀의그말에감동을받아서그랬는지…
대장인클라크도마음을바꾸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