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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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 이상봉 / 철학박사. 문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또는 그 누가 만들어 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나는 국민학교를 1958년 3월에 졸업했고, 4월에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 당시에는 학기가 그 때에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우리의 소원’ 이라는 노래를 열심히 가르쳤고 또한 자주 불렀다.

[필자 주:

이 노래는 1947년- 南과 北이 갑자기 분단된지 얼마되지 않은 때- 에 나온 것으로,
1948년에는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6.25 사변이 일어나기 前의 일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6.25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불려지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이상스러울 뿐이다.

노래 가사는 이렇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위의 가사는, 최근에 인터넷에서 인용해 온 것이고…)
내가 국민학교 때에 부르던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였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 이라는 그 노래를
듣거나 부르게 될 때마다,
“아니? 조국의 원수들이 쳐내려 온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처참한 6.25 전쟁을 치룬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휴전상태(休戰狀態)에 들어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북한 괴뢰(北韓傀儡)하고 통일을 하자고 하고 있는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정말로 우리의 소원이 ‘저런 북한과의 統一’ 일까?
과연 그럴까?”
라고, 아주 의아스럽게 여겼다.

[나 혼자서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아이들- 또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 때나, 지금이나, 나로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따라서,
나는, 그런 가사의 노래 를 좋아하지 않아서,
국민학교 이후에는 부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노래가 얼마나 많이 불려졌는지…
무려 60여년이 지나간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뇌리(腦裡)에 박혀있다.

하긴, 그 당시에,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배우고 부른 노래가 어디 그뿐이었는가?
‘전우야 잘 자라’ ‘6.25의 노래’ ‘승리의 노래’ 도 있었는데…
노래의 가사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우리의 소원’과는 정반대 되는 내용들이었고 또한 합당한 내용들이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 전우야 잘 자라)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 6.25의 노래)

무찌르자 공산당(오랑캐) 몇 천만(백만)이냐
대한 남아(男兒) 가는 데 초개(草芥)로구나
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 ~ 승리의 노래)
[* 두번째 줄에 나오는 초개(草芥) –
풀이나 지프라기 처럼 쓸모없는 것, (예) 草芥같은 목숨- 라는 단어는
어려운 한자어이기에… 노래의 가사가 변형되어서
“대한 남아 가는 길 저기로구나”로 널리 불려졌다.]

알고보면…
한반도(韓半島)라는 땅 덩어리 위에-
단군(檀君)이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는 나라를 세운 이후에-
그 곳에다, 가장 큰 피해(被害)를 입힌 인간이 누구일까?
그곳에다, 역사상 가장 참담한 일을 저지른 인간이 누구일까?
그 인간이, 바로, 김일성(金日成, 1912-1994)이다!
그렇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는 처참한 6.25 전쟁을 일으킨 작자가
바로 金日成이다!

아무튼,
그동안, 적지않은 세월이 흘러서, 세상이 아주 많이 바뀌었고…
나도, 나이가 들어서, 이제, 내 나이 72세(歲) 이지만…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소원은, 저런 북한(北韓)과의 통일(統一)이 아니다!
그렇다! 생시에서든 꿈속에서든…
나는 저런 北韓과의 統一을 원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그대에게 진지하게 묻겠노니…
“그대가,
북한체제(北韓體制)를 얼마나 좋아하고 숭상(崇尙)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대 같으면, ‘저런 북한과의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가?
과연 ‘꿈속에서 까지 통일을 이루자!’고 정말로 원하고 있는가?
과연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고 정말로 원하고 있는가? ”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1 Comment

  1. 고성학

    2018년 3월 13일 at 11:30 오전

    아직 오십도 안 된 나이지만 제가 어렸을 때 노래로 부르던 통일은 무력•적화통일이 아닌 민주•평화통일이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냉전시대가 지나고 민주화과정 속에서 이념논쟁을 거친 이후에도 참다운 민중은 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 억압받고 있는 이 땅의 프롤레타리아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일당독재 속에서 생존을 위해 굴종할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들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6.25의 책임을 묻지 않고 기존체제를 영속시키는 연방제통일은 절대 거부합니다. 핵포기가 대화의 조건은 될 수 있지만 통일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원폭직후 일제의 무조건 항복처럼 통일은 북한 지도층의 총사퇴와 6.25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및 전범자들 처벌이후 민주적 과정에 의해 실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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