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양에서는 공자(孔子)를 Confucius라고 표기하나?
[그 이유는?
공자의 이름( K’ung Ch’iu)을 라틴語(Latin)으로 표기하였기 때문이다.]
孔子를 서양에서는, 중국식 발음이나 표기를 사용하지 않고,
Confucius 라고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공자의 이름( K’ung Ch’iu)을, 라틴語(Latin)으로 표기 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공자의 중국식 발음인 ‘쿵쯔’가 아닌, 라틴語로 표현을 하여서,
서양에 소개하다 보니까… Confucius 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
孔子를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Matteo Ricci (마테오 릿치)라는, 예수회 소속(Jesuit) 神父 였는데…
그 사람은, 공자도, 그리스도교단에서 성인(聖人)으로 숭배하고
모실만한 분이라는 주장을…
그 당시의 교황청에 올리면서,
그 때의 문서(라틴어로 써야만 되었기에…)에
Latin 식(式)으로 Confucius 라고 소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한국인들이 알아 두어야만 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중국에서의 천주교 전파와
그후에 조선으로의 천주교 전파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그야말로 수준 높은 Matteo Ricci를 비릇한 예수회 소속 신부들이었지만…
그 중국을 통하여, 조선으로 전래된 조선 천주교회를 지도한 신부들은
프랑스의 외방 선교회 신부들이었다.
그런데, 이 프랑스 외방 선교회 신부들의 안목과 수준이,
‘불행하게도’ 그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주 커다란 차이를 낳게 된 것이다.
(내가 ‘불행하게도’ 라는 표현을 이곳에 사용한 이유는 아주 명백하다.)
그렇다!
그 안목과 수준의 차이가 커서,
프랑스의 외방 선교회의 영향을 받게된 조선시대와
그 후의 한국 천주교회는, 방향이 아주 많이 빗나가게 된 셈이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숭배로 본 것’을 비릇한,
‘고유한 풍속과 전통을 무시하는’ 여러가지의 배타적인 현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바람에, 그만치 많은 박해를 받게 되었고,
따라서 그만치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 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순교자들이 최근에 와서 성인품위에 올라가게는 되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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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래 전(前)에 발표한 작품 중에,
‘Condemned People (이단으로 몰려서 파문된 사람들)’ 이라는 글이 있는데…
그 속에서 Matteo Ricci 에 관한 부분 중에서, 일부만, 이곳에, 인용해 보겠다.
[출판사와의 판권 문제가 있어서…
이곳에다, 전문(全文)을 인용하지 못하게 된 점을 양해하여 주기 바란다.]
어디 그뿐인가?
동양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진 Matteo Ricci (1552-1610)의 경우도,
사정이 비슷하기는 마찬가지 이다.
Jesuit missionary(예수회 소속, 선교 신부)로 중국에 온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중국의 언어, 문화, 전통, 풍습, 재래 종교 등등을
철저히 배우고 익히는 것이었다!
‘중국의 것’을 모르면서,
어떻게?
외래종교인 천주교를 중국 땅에 전파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리하여,
그는 천주교에 대한 것은 입을 다문채,
오랜 세월을 ‘중국의 것들’에 대하여 공부와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중국 사람들이 공경하는
그 孔子에 관하여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한 후에야,
공자와 예수를 비교 하면서, 천주교를 전파 하였던 사람이었다.
그가 중국인들에게 한 말이 이렇다,
‘예수도 공자만큼 존경 받아야 될 분이다!’ 였다.
그는 결코 ‘예수만이 최고’ 라든가,
‘공자가, 예수보다, 형편없는 인물’이라는 소리를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쓴 책 “천주실의”는,
그리하여 동양 땅에 천주교를 전파하는 도구가 되었으며,
천주교리의 해설서로는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의 천주교회 건물(성당) 내에서 조차,
“공자와 조상 숭배 행위까지를 허락 하였던
(He prescribed the observance of traditional honors to
Confucius and the cult of ancestors in church)”
보기 드물게 파격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천주교단의 찬. 반론 속에서 시끄러움을 당하다가,
교황에 의하여, 교리에 위배 된다고 금지 당하였다.
(그것도 그가 죽고 나서 거의100년 후인1704년과 1715년의 일이었으니…)
바로 그 Matteo Ricci와 비슷한 시대인 1633년에,
종교 재판 (Inquisition)으로 널리 알려진 Galileo Galilei (1564-1642)가
종교 재판에서, 지동설(地動說)을 부정(否定)하도록 압력을 받고 나서,
재판정 밖으로 나와서 중얼거렸다는
“But it still moves, just the same.(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이 기회에, 참고로, 한마디 덧 붙이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대가 ‘수준 높은 사람’의 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Eckhart Meister같은 사람의 작품에 대해서는 알아 두어야 된다!
Eckhart Meister의 말 속에는 노자의 사상에 비견될 만한
깊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Christianity內에서,
그러한 인물들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Mystery 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표현대로 ‘하느님의 은총’ 일 것이다.
* 이 부분은
‘Condemned People (이단으로 몰려서 파문된 사람들)’ 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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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이야기가 그만 길어졌는데…
왜? 서양에서는 孔子를 Confucius 라고 표기하게 되었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는가?
사족(蛇足):
[혹자(或者)는-
소위 조선의 역사에 대하여 좀 알고 있다!고 자처(自處)하는 사람 중에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조선의 천주교 전래(傳來)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찌하여, 지봉유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가?” 라고.
따라서, 지봉유설에 대한 것도,
이 기회에, 아주 간단하게 나마, 언급하여 놓아야만 되겠다.]
지봉유설 (芝峰類說, 이수광, 1614-광해군 6년)이라는 책은,
요즈음 式의 표현으로 한다면, 일종의 잡사(雜事)사전-
또는 백과사전(百科事典)的인 내용을 적어 놓은 것- 으로
그 안에,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소속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으로 들어와 천주실의를 소개 하였다.” 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따라서, 그 지봉유설로 인하여,
조선 땅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전래 되었다!고, 보는 것 같은데…
비록, 그 책 속에 그런 구절이 들어 있고,
또한 그 구절이 조선(朝鮮)이 갖고 있는
최초의 ‘천주교 관련 내용’ 이라는 평가(評價)를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芝峰類說 로 인하여- 바로 그 구절로 인하여-
조선 땅에 천주교가 들어 온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적인 내용의 事典 속에 등장하는 것과
실제로 그 종교가 傳來나 傳播가 되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와같은 사전적인 소개와
실제로 전래된 사실과의 관련여부는
따로 확실하게 규명되어져야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글의 본문(本文)에 이미 언급해 놓았듯이…
조선 시대의 천주교 교리나 종교행위를 가르친 사람들은
프랑스 외방 선교사들이 맞고,
그들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고 따랐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한 것이다.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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