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물들의 딜렘마(Dilemma)

In library, 2014

위대한 인물들의 딜렘마(Dilemma)
(그대는, 그런 사람들의 아내나 식구가 되고 싶은가?)

~ 이상봉 / 철학박사

인류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인물 중의 하나에,
Socrates (470-399 BCE)는 틀림없이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대가, 그의 철학에 대하여 알던 모르던 간에…
Socrates 라는 사람은, 철학자로서 또한 모든 인류의 스승으로서,
인류의 역사가 계속 되어 나가는 한,
그의 이름과 가르침은 영원히 남아있게 되어있다!

그의 생김새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그는 핸썸(Handsome)한 남자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에 관한 묘사들을 보면, 대략,
Snub-nosed and pug-faced (들창코에다가 메주덩이 같은 얼굴)
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는 번득이는 이성(理性)과 해학과 웃음과 유모어가 있었기에,
그의 주변에는 당시의 지성인들이 모여 들었고,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3명의 자식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아내인 Xanthippe에 관한 몇가지 일화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후세의 사람들은 그의 아내 이름을
마치 악처(惡妻)의 대명사 처럼 사용하고들 있는데…

그의 아내를 惡妻(악처)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부를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물어 보고 싶다.

“그대가 만약 여자라면, 과연, 그런 남자의 아내로 만족하겠는가?”
“남편으로서, 집안 살림이나 돈벌이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이,
매일 매일 토론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의 아내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
이 세상의 어떤 여자가,
그와같이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선택하려고 하겠는가?

바로 여기에… 위대한 스승들의 딜렘마가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스승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알고 보면?
별로 위대하거나 유명하지도 못하고,
그 무슨 업적 조차도 남겨 놓지 못한,
그렇고 그런 소위 학자네 선비네 하는 사람들의
아내와 식구들이 가지고 있는
그와같은 숨은 슬픔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

세월과 시간을 ‘가정 외의 일’에 그렇게 보내야만 될 팔자라면,
차라리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말았어야만…
비난을 면할 수 있었을텐데… 에효!

그렇다!
家長(가장)의 책임이라는 것이 뭔지?
그리고 위대한 힘이라는 그 돈이라는 것이 도대체 뭔지?

그대! 그대는 아직도 그 Xanthippe 라는 여인을,
惡妻(악처)라고 부를 자신이 있는가?

그러나…
이러한 딜렘마는 ‘결혼한 스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았던 스승에게도
얼마든지 문제가 있게 되어 있으니…
이번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던 예수(Jesus)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할까?

학자인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종교인이라는 예수의 문제점은 전혀 다른 데에 있으니…

예수(? – 30 CE) 라는 사람은 살아 생전에,
자기가 그리스도(Christ) 라고 불리워지게 될 줄도 몰랐고,
자기가 Christianity(그리스도敎)의 창시자가 될 줄도 몰랐던 사람이다!

그렇다!
예수라는 사람은, ‘유태인으로 태어나서, 유태인으로 살다가,
유태인으로 죽은 사람’ 이었을 뿐이다!
알고보면…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도 아니고,
그리스도 교인도 아닌, 그냥 유태교인 이었을 뿐이다.
(필자註 :
자세한 것은 필자의 글 ‘藏(장): 예수는 바로 이런 사람’을 참조할 것.)

예수를 신봉하고 숭배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전 인류의 거의 절반 가까이에 이르게 되었다고 선전들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과반수 이상이 바로 여자들이다.
그렇다! Christianity에는
남자의 숫자 보다 여자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토록 많은 수의 ‘女子 그리스도 敎人들’에게,
나는, 이렇게 물어 보고 싶다.

“그대들은 과연 예수를 자기의 남편 감으로 환영하겠는가?”
[나에게 대답할 것이 아니라…
그대들 스스로, 그대 자신에게, 솔직하게 대답해 보기 바란다.]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갈려면?
돈이 있어야 되고, 가정 일에 충실해야만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하다못해
명(命)이라도 길어서 어느 정도 오래 살아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둘 곳 조차 없다. (마태오 8:20, 누가 9:58)”
라는, 한탄이나 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의 아내가 될 지원자가
정말로 있을까나?

그러면서도…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 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 주신다 (마태오 6:26).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마태오 6:31)”
라고 하면서… 오직 “걱정하지 말라!(Do not worry!)” 고만,
큰 소리 치고 있는
그런 사람의 아내나 또는 친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대! 그대는 ‘사람의 생활’과 ‘새, 들꽃의 생활’과의 차이조차,
구분할 줄 모르면서…
엄연한 사람의 걱정에다, 새나 들꽃의 생활을 例로 들면서…
고작, ‘무조건 걱정하지 말라!’ 고만 떠드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런 사람을 선생으로 모시고 싶은가?

어디 그뿐인가?
“예수의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아마도,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대어 주어라! (마태오 5:29, 루가 6:29)”
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예수는?
과연, 그의 말 (그의 가르침, 그의 주장) 대로, 몸소 실천을 하였던가?

그대가 Bible(기독경)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당장 요한 복음 (18:22-23)을 펼쳐 놓고 읽어 보기 바란다!

『경비병 한 사람이 “대 사제님께, 그게 무슨 대답이냐?”하며 예수의 뺨을 때렸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으면 어디 대 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하셨다. (요한 18: 22-23)』

그대! 그대는 이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 하는가?

남들에게는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대어 주어라!’ 하고 외쳐대면서,
자기 자신은 막상 뺨을 얻어 맞자
“왜 나를 때리느냐?” 하고 대드는 사람의 그와 같은 태도를?

[워낙 교육이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지만….
그렇드라도,
그런 태도(?) 만큼은… 사실상 제자로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 않은가?]

그대! 그대는 결혼을 한 사람인가?
그리고 그대에게는 자식이 있는가?
만약에 말이다…
그대의 자식이 그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게 된다면?
그대는 어떻게 느끼게 될 것인가?

『그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를 불러 달라고 사람을 들여 보냈다.
둘러 앉았던 군중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고,
둘러 앉은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마태오 12:47, 마태오 12:48) 』

그렇다!
엄연히 밖에서 자기의 어머니와 형제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Who is my mother, and who are my brothers?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란 말이오?)” 라는,
지독한 헛소리나 하고 있는
그런 아들이나 그런 형을 두었다면,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위대한 사람들의 딜렘마(Dilemma)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면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위대한 사람으로 된 것일 뿐이다!
알겠는가?

알고 보면?
전혀, 가정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위대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생활만을 하였다면…
평범한 생활만을 하는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위대한 인물의 자리에 올라 갈 수가 없다!
위대한 자와 평범한 자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蛇足(사족) :

이와같은 일들은,
그 수천년 전의 그 옛날에만 있었던 과거사가 아니다!
지금도 계속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되어 나갈 것이다.

비교적 최근의 인물을 예로 들어 보기로 할까?

20세기의 최고의 인물이라고 알려진
Albert Einstein (1879-1955)의 경우를 보기로 하자!

아인슈타인은, 그의 나이 24살 때인, 1903년에,
자기 보다, 4살 연상이자 학문적 동반자 였던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을 하였지만,
이미, 결혼 전에 ‘리제’라는 이름의 딸이 그들 사이에 있었는데…
그 아이는 두살 때에 병으로 죽었다.
그 후, 그들의 결혼 생활은 많은 부부싸움 끝에
1919년에 이혼으로 끝나게 되었고,
밀레바는 두 아들을 혼자 힘겹게 키우다가 1948년에 사망했다.

(그 두 아들중, 둘째 아들은 1965년에 정신분렬증으로 죽었고,
큰아들인 한스 알버트는
1986년도에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오고 간 54통의 편지를 공개한 일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 이혼 후, 넉 달 만에,
이미 내연의 관계였던
육촌(또는 사촌?) 동생이 되는 ‘엘자 뢰벤탈’ 이라는 여자와 재혼을 하였는데,
그 여자도 1936년에 죽었다.
물론, 그 엘자와의 결혼 기간에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비서 ‘베티 노이만’을
비릇하여 여러 여자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아마튼…
그에게는 1986년 7월에 사망한 의붓딸인 마곳이 있는데…
그 마곳이 1980년 초에 헤브루 대학(예루살렘 소재)에 기증한
1천 400통의 편지 속에 아인슈타인에 대한 것들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그 편지 속에도…
에스텔라, 에델, 토니, ‘러시아 스파이 마가리타’
그리고 M, L 등의 Initial 로만 표시된… 여러 명의 여자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자아! 이제야 내말을 어느 정도 알아 들었는가?

[필자 주:
이 글은, 필자의 ‘행복을 찾아 헤매는 불행한 사람들. Pp. 156-160’
에서 인용해 온 것임.]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무단복제 사용을 금함)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