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뒷마당, 03-22-2020)
신 • 구세주 • 천당과 지옥 :
그런 것은, 모두 다, 장치(裝置)일 뿐이다!
~ 이상봉 / 철학박사
[그렇다! 신 • 구세주 • 천당과 지옥 같은 것들은…
모두 다, 그대를 돕기 위한, 하나의 Device(장치,도구)일 뿐이다!]
There is no God.
God is just a method to help you surrender.
There is no God as a person;
God is a just a way, a method, a technique.
God is talked about just to help you to surrender.
~ Lee, Sang Bong: “Philosophical Problems in Theism” 1999, P.145
나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
Device (裝置, 考案)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나 본 사람들 중에서,
내가 이야기 하는 “장치”라는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특히, 종교인들 중에서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느껴지고 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미 神, 종교 제도를 “Device(장치)” 라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종교인(宗敎人)이 될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이해력을 도와주기 위하여 예(例)를 들어서 설명하여 볼까?
내가 “당신을 내맡기시오! (Surrender!)” 라고 말하면,
그대들은 꼭 되묻게 되어 있다.
“누구에게? (To whom?)” 라고.
마찬가지로…
“기도를 드리시오! (To pray!)” 하면,
“누구에게? (To whom?) • 어디에 다가?” 라고, 꼭 묻게 되어 있다!
그대들에게는, 기도를 하던, 숭배를 하던, 사랑을 하던…
『그냥 내맡기고, 그냥 기도하고, 그냥 사랑한다
(Simply surrender, simply pray, simply love.』는 것은,
있을 수 조차도 없기에…
언제나, 꼭, 그 ‘대상(對象)’이 있어야만 된다! 그렇지 않은가?
[예(例)를 들어서,
명상가(冥想家)에게 “冥想을 하십시오!”라고 하면,
명상가는 “누구에게 명상을 합니까?”라고 묻지 않고, 그냥 명상을 한다!
명상을 하는 사람에게는 ‘冥想의 對象’이 전혀 필요치 않기 때문에…
그 어떠한 대상도 찾아야 할 이유 조차도 없다.]
이와같이…
“대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神(God) 에게” 라는 기도의 대상이 되는,
소위 그 神이라는 ‘장치(Device)’가 필요한 것 뿐이다!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는, 뭔가의 대상(對象)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대들이 꼭 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기에…
그대들의 그러한 요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바로, 그러한 만족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도구와 장치’로
“신(God) • 창조주(Creator)”라는 고안품(考案品)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장치나 고안품은 효과(效果)만 있으면 되는 것일 뿐이지…
그 장치 자체가 옳으냐? 틀리냐?
또는 惡이냐? 善이냐? 하는 토론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또한 필요도 없다!
[신은 악마라는 것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신은 악마라는 것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 둘은, 한가지 일에 함께 참여하는 동반자일 뿐이다.
그래서, 신과 악마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대, 그대는 한쪽만 있는 동전을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악마도 믿을 수가 없다.
신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악마도 부정할 수 있다.]
종교에 대하여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Christianity(그리스도敎)와 Islam(이슬람敎)에서는,
우리의 삶은 ‘단 한번 뿐’이라고 하고…
Hindu (힌두敎) • Buddhism(佛敎) • Jainism(쟈이나敎)에서는
‘윤회설(輪廻說)’을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옳은 것입니까?
서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모두 다, 옳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라고,
그럴듯한 질문을 하고 있는데…
그런 질문은 그 근본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같은 질문은, 모두 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 처럼…
바로, 그 “Device(장치, 고안품)”의 차이점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장치를 사용할 것인가?는,
고안자가 어떤 대상을 상대로 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달라 질 수 밖에 더 있겠는가?
따라서… 그 장치가 옳으냐? 틀리냐?
또는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느냐? 는 식의 질문은,
아무런 의미도 또한 가치도 없는 것일 뿐이다.
그대들이 “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물론 어렵겠지만…
어떤 장치 • 어떤 도구가 맞고 틀리고…
어떤 장치가 더 좋고 말고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고 또한 소용도 없다!는 것 만큼은,
가슴 깊이 새겨 두시라!
좀 더 쉽게 설명을 하면…
어떤 무대 장치나 소품들의 가치와 의미는?
오직 ‘어떤 내용의 연극에 사용되는 것인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와같은 예비 지식이나마… 미리 머릿 속에 지니고서…
내 글을 읽어 보기 바란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들의 영성 계발을 위해서
좀 더, 지적이고 영적인 면에 충실해졌으면 좋겠다.
소위 그 종교적인 맹신과 맹목적인 충성심은 일단 접어두고서 말이다!)
Moses (모세) • Jesus (예수) • Mohammed (마호멧)이
활동하던 무대와 목표로 하던 대상(對象)들과…
Buddha (부다) • Mahavira (마하비라) • Krishna (크리슈나)가
활동하던 무대와 목표로 하던 對象은 전혀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무대에서, 서로 다른 관객들을 대상으로 만든 장치가,
서로 다른 것이야… 오히려 당연한 일 아닌가?
이와같이…
그 근본 부터가 전혀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어떤 것이 옳으냐? 어떤 것이 더 좋으냐?” 하는 따위의 질문은,
그 근본 부터가 잘못된 이유를 이제야 알겠는가?
아무튼…. 이와같이 그 근본부터가 ‘잘못된 질문’ 이기는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충실하게… 그대들을 위하여 대답을 해주기는 하겠다.
자! 나의 대답은 이렇다!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종교들의 근원에는,
Hindu(힌두인)과 Jew(유태인)이 자리잡고 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인도(India) 內에서 발생한 종교와
인도 밖에서 발생한 종교로 보면 된다!
따라서,
인도 內에서 발생한 종교에서는 “다회성의 삶”을 내세우고 있고…
인도 밖에서 발생한 종교에서는 “일회성의 삶”을 내세우고 있다!
다시한번, 더, 상기 시키지만…
“어느 것이 맞는 것이냐?” 하는 것은,
나의 이야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둘 다,
단순한 “Device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장치, 도구 라는 것은, 그때 그때 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고…
지난번에는 효과를 본 장치가, 이번에는 전혀 가치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Device 자체는, 善(good)도 아니고, 惡 (evil)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고, 불의도 아니고,
도덕적인 것도 아니고 부도덕한 것도 아닌…
그냥 장치(device)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어떤 장치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만 하면 되는 것일 뿐이지…
어느 것이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것에는 관심도 없다. 알겠는가?
Jew(유태인) 에게서 나온 종교들은,
그 종교의 창시자들이 한결같이 가난한 사람이었고,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The poor and not educated.)
그렇다! 모세 • 예수 • 마호멧은 하나같이,
모두 다, 가난한 출신이었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목표로 삼고, 對象으로 삼은 사람들은,
모두 다, 그들과 똑같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서,
어렵고 힘겹게 살아 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것’이 더 잘 먹혀 들어 갈까?
“인생은 단 한번 뿐이다. 왕국이 가까이 왔다.
너희들은 곧 구원될 것이다! 낙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일까?
아니면,
“인생의 수레 바퀴는 수천번 수만번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일까?
당장 배고프고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Jesus)가 던진 장치(device)는,
“구세주가 왔다! 너희들에게 곧 王國이 주어질 것이다!
죽기만 하면 즉시 천국(天國)을 차지하게 된다!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니, 지금 곧 준비하라!” 였다.
그렇다! 그 예수가 살아 생전에 한 말:
“지구의 종말이 가까우니 준비하라!” 는,
이미, 2000년이 지나갔는데도…
아직도 예수교에서는 매일 매일 써먹고 있다.
(사실상, 2천년 동안에 윤회가 일어 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적지 않은 윤회가 있었을 것이리라…)
어디 그뿐인가?
지구의 종말이네 • 말세(末世)네 하는 것과 함께 쓰여지는 말인,
천지개벽(天地開闢) 이라는 소리는…
한국 사람들의 귀에도, 옛날 부터, 낯설지 않은 것이다!
사실상, 사람들의 생활이 극도로 비참하고,
더 이상의 아무런 희망 조차 없는 시대일수록…
지구의 종말이 효과가 있고,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판을 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안락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사회에서는…
‘지구의 종말’ 또는 ‘천지개벽’이
효과를 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닌가?
따라서… device(도구, 장치)를 사용하더라도,
그 대상을 보고서 알맞게 써 먹어야 된다.
지금, 당장, 연명하기가 어려운 사람들,
하루 하루가 지겨운 사람들,
단 한번의 인생 조차도 눈물겹고 지겨운 사람에게는…
단 한번의 인생 조차도, 이미, 지겹도록 충분한 것이리라!
(One life is more than enough!)
그와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In your life time, you will see the Kingdom of God!
(네 살아 생전에, 틀림없이, 하느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이다!)”
“천국(天國)이 가까이 왔다!” 라는,
Catch phrase (캐치 프래이즈)가 적합한 것이다.
그 반면에… 인도內에서 발생된 종교의 창시자들은,
모두 다, 한결같이, 부유한 집안의 출신들이었다.
부유할 정도가 아니라… 왕족이었고, 왕자들이었다.
Krishna도, Jainism의 창시자도, 불교의 창시자도,
선불교의 창시자인 달마도, 모두 다, 왕족과 왕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도 잘사는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혹자는, 지금의 인도를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연상 하겠지만,
그 옛날의 인도는 부유한 나라였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 Indus 강가의 문명이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않된다.
지금 그대들이 사용하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 라는 1,2,3…도
사실은 아라비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나온 것임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 시절에는 잘사는 대륙도 아에 없었지만, 유럽지방도 형편이 없없다.]
그와같은… 왕족 출신들이…
부유한 사회를 향하여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내놓을 수 있는 장치(device)는?
“왕국, 천당, 구원, 내가 너희를 편케 하리라!” 하는
안락함의 보장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왕국이 싫증나서, 출가를 한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그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상류층의 부유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일 것 같은가?
이미, 천국과 같은 풍요함과 사치 속에서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Heaven, Kingdom, 구원, 안락함 따위의 약속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이미 주색잡기와 온갖 종류의 쾌락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가 있다.
그런 사회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나태와 권태감(boredom)” 이다.
그렇다! 일상 생활 자체가 나태하고, 시시하고, 무료하기 때문에…
찾아오게 되는 권태감!
바로, 그것이, 상류층이 갖게 되는 가장 큰 문제다.
따라서… 그와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만이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정반대(正反對) 편으로 이동 하려는 본성(本性)이 있어서,
현재 상태의 반대편으로 늘 이동 하려고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독신자들에게는 성생활(性生活)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되고,
반대로 Sex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금욕생활(禁慾生活)이
큰 매력으로 닥아 올 수 있다.
모든 풍요와 사치에 젖어있는 사람에게는
무소유의 생활이 큰 관심을 끌 수 있고…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고,
늙으면 어렸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와같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끊임없이 이동 하려는
마음의 속성(屬性) 때문에,
현재의 처지와 반대되는 생활이, 추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권태감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매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진수성찬, 값비싼 장식품과 의복들,
춤과 연회, 언제나 주변에 깔려 있는 여자들…
이와같은 것에서 오는 권태의 원인은 바로 반복(repetition) 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권태감이 없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늘 움직여야만 되고,
수많은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데…
어떻게 권태감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Repetition 때문에 권태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것이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단 하나도 없다!
우리들의 삶도, 생노병사도, 수레바퀴 처럼,
끝없이, 계속 돌고, 또 돌 뿐이다.
그러니…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 나도록 하라!
지금의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 나도록 하라!”
그렇다!
“바로, 지금의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훈시를 하는 데에도,
그 대상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달라지게 되어 있으니…
『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이니,
학생들이여 열심히 공부하라! 고 하는 사람도 있고…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라고,
젊었을 때에 열심히 놀아라! 하는 사람도 있다! 』
마찬가지 이다!
예수는 일회성을 강조하여서…
“지금 당장 회개하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라!” 라고 가르쳤고,
석가모니는 반복(윤회)의 위험을 상기시켜서…
“이 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정진하라!”고 가르친 것 뿐이었다.
그렇다!
석가모니는, 이미 권태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윤회(輪廻)의 위험을 동원하여,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기를 강조한 것이었다.
언뜻보면… 전혀 반대의 것으로 보여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가르침의 목적 만큼은 똑같은 것이다!
결국은, 둘 다, 가르치는 장치(Device)였을 뿐이다.
The device is different; but the purpose is the same.
목적이 중요한 것이지, 장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 이다!
그대들이 그토록 궁금해 하고 있는 그 ‘천당과 지옥’ 이라는 것도?
그 내막을 알고 보면… 단지, 하나의 Device(장치)일 뿐이다!
그렇다! 지금 현재의 삶을… 그대들의 현재생활을…
좀더 계훈적으로 끌고 나가 보려고 만들어 놓은,
‘초등 교육과정에서나 잘 통하는 그 상(賞)과 벌(罰)처럼’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장치가, 바로, 그 ‘천당과 지옥’일 뿐이다.
자! 이제야 내말을 어느 정도 알아 들었는가?
You are the savior
~ Sang Bong Lee, Ph.D.
You are the savior.
Nobody else can do that for you.
If somebody else can redeem you,
Somebody else can push you back into the Hell.
You can create Hell for yourself,
You can create Heaven for yourself,
Or you can go beyond both.
No one enters Heaven,
No one enters Hell,
Because Heaven and Hell are not the doors!
They are not the places but only burdens:
They are the burdens that you created for yourself.
Wherever you enter, you enter with your own burdens.
Even in Hell there is no fire at all,
They carry in their own fires with them.
You are the only creator for your own burdens,
You are the only savior for yourself.
그렇다!
천당과 지옥은,
그 무슨 지도상(地圖上) 위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도 아니고,
사실상,
천당과 지옥으로 들어가는 The door(門)이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니다!
[천당과 지옥은 따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삶 속에 함께 들어 있는 것일 뿐이다.
단지 상황에 따라서 서로의 구조와 위치가 수시로 바뀔 뿐이다.
한마디로 하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있게되면, 그곳이 지옥이고…
그 반대의 경우가 천국이다.]
천당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가 만들어 걸머진 하나의 “Burden (짐, 부담)” 일 뿐이다.
자기 자신이, 의식적으로 만들게 되는 모든 행위와
무의식적으로 행하게 되는 모든 삶의 기록들이,
그대에게 부담감으로 남게 되어서…
바로, 그러한 부담감에서 생기게 된 “Burden (짐, 부담)” 이,
바로, 그대가 그 어디를 가더라도 따라 다니게 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 이다.
종교 단체에서 그토록 겁주고 있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Hell Fire)” 조차도,
지옥에 원래 소속되어 있는 불이 아니다!
사실은, 그 곳으로 들어 가는 자들이
“제 불을, 제 스스로 짊어지고 들어 가는 것” 일 뿐이다!
자아! 이제야 내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 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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蛇足(사족)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의 지적(知的)인 배경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대의 영어 해득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내가 모르겠으나…
우선 ‘Burden’ 이라는 영어 단어에 대하여 깊이 알아 보고 나서,
위의 영문 Poetry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대에게 Device 라는 단어에 대한 지식이,
이 글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생기게 되었듯이…
‘Burden’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스스로 공부하여, 제대로 알게 되면?
그 때에는
“천당과 지옥도, 단지, 그대 스스로 만든 Burden 에 지나지 않음”을
충분하게 이해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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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dage
Sang Bong Lee, Ph. D
Every desire is bondage.
Even if you desire God, it is bondage;
Even if you desire liberation, it is bondage.
Attachment is a burden and bondage.
So liberation cannot happen unless the desiring goes away totally.
Look at the sick people they are longing for health.
When you’re sick, then you longing for health.
That longing for health is part of your illness.
If you are really healthy, you’ll not long for that.
When you are healthy, you never feel that you are healthy.
“That Messiah will come only when he is no longer necessary.”
If you didn’t exist, God would not exist,
You are the cause that God is ‘God’;
So love yourself, accept yourself as you are,
Then the divinity is revealed to you.
Excerpt from The Lyre’s Song, ISBN: 1-57553-418-5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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