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da in Israel’s Judean desert)
Bible(바이블)에서 내가 웃은 곳은…
~ 이상봉 / 철학박사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Bible이라는 것을 읽을 때에,
미소나 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없다!
나에게, 그 미소나 웃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Bible 속에는 웃음이라는 것이 원래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대들이 믿거나 말거나…
내가 볼 때에, 유태인들은 농담이 아주 많은 민족이다.
내가 실제로 대해 보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도…
유태인들은 그 어느 민족 못지않게 웃음과 농담이 많은 민족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예수라는 사람은 늘 심각했다!
30살 전후의 그 젊은 나이에…
하다못해… 마누라도 없고 자식도 없는데…
그 무슨 이유에서 그다지도 심각해야만 되었을까?
더군다나, 12명의 제자들과 공동생활을 해나가면서…
그토록 웃음이 없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의 소위 公生活은 30-33세 까지의 3년간이 전부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스승들이 있는데,
이름이 남아 있는 대부분의 훌륭한 스승들은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Humor도 풍부했고, 인간미 풍기는 웃음이 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예수는 ‘재미없는 선생’ 이었던 것 같다!
[다른 어떤 종교의 창시자에게서도… 그 어떠한 스승에게서도…
그토록 웃음이 없었던 예를… 나는 볼 수가 없다!
하긴, ‘例外(예외)’ 라는 것이야… 언제나 있는 것이니까,
예수의 경우는 “예외에 해당된다!”고 보면 되겠지만…]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나는, 지금, “예수의 험담(險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 한, 웃을 일이, 나에게는 적다!” 라는,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하긴, 예수는 살아 있을 때에도 웃음이 없었지만…
또한, 죽어 갈 때에도, 그 어느 누구 보다도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죽어가지 않았던가?
아무튼, Bible을 읽을 때에
‘웃을 일도 없고, 미소가 떠오르게 되는 장면도 없다!’ 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Humor가 없는 사람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딱 질색이다!
그렇다! 나는 사람이든… 글이든… 그 어떤 내용의 이야기든 간에…
Humor, Wit, 농담이 없는 것은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다!
따라서, 나 자신도 “상식, 농담, Wit 와 Humor가 없는 사람” 이라는 소리는,
결코, 듣고 싶지도 않다!]
Bible이라는 책의 내용들이야,
나 자신도, 읽어 볼 만치, 읽어 왔고…
또한, 직업상,
이런 저런 내용과 여기 저기를 자주 들춰 보게 되어 있지만…
그 책을 보면서… 내가 웃었던 곳이 딱 한군데 있기는 있었다.
그 부분이, 바로, 다음의 구절이었다.
Pilate had a notice prepared and fastened to the cross.
It said: Jesus of Nazareth, The King of The Jews.
The sign was written in Aramaic, Latin and Greek.
The chief priests of Jews protested to Pilate
“Do not write ‘The King of the Jews,’
But that this man claimed to be King of the Jews.”
Pilate answered, “What I have written, I have written.”
~ John (19:19-22)
(빌라도가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 라고 씌어 있었다.
그 명패는 히브리 말과 라틴 말과 그리이스 말로 적혀 있었다.
유다인들의 대사제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 ‘유다인의 왕’이라 쓰지말고
‘자칭 유다인의 왕’ 이라고 써 붙여야 합니다”하고 말하였으나
빌라도는 “한번 썼으면 그만이다’ 하고 거절 하였다.)
바로, 이 단어 ‘자칭(自稱)’이,
나에게 웃음을 자아 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유태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나는, 예수가, 진짜로 ‘유다인의 왕’ 이냐? 아니냐?
또는 ‘자칭(自稱) 유다인의 왕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으니…
그것은, 다음의 시(詩)를 읽어 보고,
그것에 대하여 관조(觀照)하여 보기를 바라면서…
이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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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대답 좀 해보시게나…)
~ 李相奉 / 철학박사
유태인 친구여,
나에게 대답 좀 해 보시게나.
자네가 온 근원(根源)과 내가 온 근원(根源)이
서로 달라야 할 까닭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자네의 제자 • 추종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자네의 어머니 • 아버지가- 즉 자네의 根源- 이
나의 어머니 • 아버지 보다- 즉 나의 根源- 보다,
더 높고 • 더 낫고 • 더 聖스럽다!” 고, 우기고 있는가?
자네의 어머니 • 아버지가,
나의 어머니 • 아버지 보다,
더 높고 • 더 낫고 • 더 聖스러워야 될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항차, 자네의 어머니 • 아버지가,
그 무슨 일을 나에게 하였기에…
그들이, 나에게도 그토록 중요하다!고,
강권(强勸)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 무슨 이유에서,
자네의 어머니 • 아버지를,
내가 숭배해야만 된다!고 하고 있는가?
자네가 온 자연(自然)만 특별나다!고 주장 하여서,
자네에게 이로운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자연 조차도, 서로 다르다!고 우겨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유태인 친구여!
“그토록 선(善)하고 • 무죄(無罪)하고 •
더군다나 완전(完全)했다!” 는 친구여!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는가?
어떻게 해서… 일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제발, 나에게 대답 좀 해보시게나!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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