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中의 여담 중에서)
미리하는 처벌(處罰)?
~ 이상봉 / 철학박사
터어키(Turkey)를 비릇한 중동지방에 널리 알려진 인물인
호드야(호자, Nasreddin Hodja, 1208-1284)가,
어느 날, 자기 아들에게 항아리를 가지고 우물로 가서
물을 길어 오도록 심부름을 시키면서…
“항아리를 깨뜨리지 않도록 조심해!” 라고, 주의를 주면서,
아이의 엉덩이를 세게 때리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이,
“아니? 아이가 아직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엉덩이를 때리시는 겁니까?” 라고 묻자,
호드야가,
“애가 항아리를 깨뜨린 다음에, 때리게 되면,
너무 늦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 까지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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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알고 있다시피…
징계(懲戒)라고 하는 것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그 잘못에 대한 처벌(處罰)로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호드야 처럼,
“미리하는 그런 징계”라는 것도 다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을 하였을 것이다!
“처벌까지 미리 받아 놓았으니…
저 아이는 이제 마음 놓고서 항아리를 깨뜨려도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an effable and ineff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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