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물: 나의 마지막 선물(膳物) + (詩)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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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물: 나의 마지막 선물(膳物) + (詩) 나뭇잎

~ 이상봉 / 철학박사

사람들은 선물(膳物)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선물을 주는 사람(Giver)에게 보다도…
사실은,
선물 그 자체(Gift)에 더욱 더 매달리고 관심이 있는 셈이다.

하다못해 “죽도록 사랑한다” 라는 그런 사이에서 조차도, 선물이 없으면?
사랑 조차 의심을 받다 못해,
사랑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버리고…
부모와 자식 간에서도
“돈이 최고의 효자” 노릇을 당연히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와같은 엄연한 사실을, 굳이, 부정(否定)하려고만 애쓰는 사람도,
사실은 정상(正常)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아주 당연한 사실’을,
부정(否定)하려고 해 보았자,
그러한 부정(否定)은 결코 받아 들여 질 수가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자기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변명이나
돈을 아끼려는 치사한 짓으로만 비춰지면서…
결국은 사람만 추(醜)하게 보여지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농담 삼아서, 한 마디 덧 붙이면…
흔히들 ‘전생(前生)의 원수가 자식(또는 부부)의 관계로 맺어진다!’ 고 하듯이…
아마도, 前生의 빚쟁이가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전생에 빚을 많이 진 사람은, 그만치,
자식의 ‘돈달라!’라는 소리에 더 많이 시달리게 되어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와 같은 무능력과 추(醜)한 변명이
교묘하게도 덮어지는 세계가 있다.

덮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선물을 달라고 아우성칠수록,
“열렬(熱烈)한 행위”로 비춰지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고귀한 사람처럼 보여지게 되는
그런 이상 야릇한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그 곳이 어디인가? 하면…
바로, 그 “기도의 세계”라는 곳이다!

그대! 그 누구보다도, 열렬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 그대여!
그대 자신이 ‘그 이유’를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기도(prayer)를 열심히 드리는 사람들이여!
이 기회에, 자기 자신의 기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좀 더 깊이, 관조(觀照)하여 보도록 하시라!

기도라는 것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되고 있으니…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으로 저를 돌보아 주시고 계신 하느님!”
“은총이 가득하신 ….”
이라는 式으로…
우선, 그 최상급의 아부성 수식어로 치장되어 시작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기도의 내용을 들여다 보게 되면,
하나같이, 모두 다,
“애원, 부탁, 요구, 소원 성취, 문제 해결,
건강, 재산, 행복을 내려달라!”
고,
온갖 욕심으로 가득찬 요구사항만을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서는…
그러한 자기의 ‘요구 사항’을…
하느님께서, 꼭 들어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기도를 끝내야만 되기 때문에…
『이 기도가 꼭 이루어지도록 간절하게 바라옵나니…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제발 도와 주십시오!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하면서, 기도를 끝맺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하느님이라는 단어 앞에 붙이는 ‘전능하신’이라는 수식어는,
단지, 자기의 기도를 부탁드리기 위한,
‘아부성 수식어’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내가 지금 사용한 “아부성 수식어”라는 표현에 대하여…
좀 더, 깊이, 觀照(관조)하여 보기 바란다!
내가, 왜? 굳이 그 “아부성”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였을까?에 대하여.

사람들은 남에게 호의(favor)나 부탁을 할 때에는,
가능하면 정중하고 듣기좋은 수식어를 동원하게 되어 있다.
상대방의 위치와 자기가 원하는 부탁의 크기에 따라서,
아부성 수식어에서 부터, 정중한 몸가짐, 진지한 얼굴표정,
공손한 태도와 목소리, 그리고 미소 등등을…
모두 다 총동원하게 되어 있다.
거절 당할까봐 가슴을 조이면서…
가능하면, “효과”를 보기 위하여 온갖 짓을 다하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 이다!
“전지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제 아내(남편)의 암을 낫게 하여 주시고…”
라는 기도에서,
‘전지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이라는 수식어는,
단지, ‘암을 낫게 해달라!’ 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 동원된 것일 뿐이다!

“전능하시고 사랑이 가득하신 하느님!
제 아들 놈이 입학시험에 합격 할 수 있도록…” 라는 기도에서,
과연? 하느님과 입학시험이 그 무슨 상관이 있을까나?

[차라리… 그와 같이 속 들여다 보이는 기도를 하기보다는,
수많은 학부모들이 즐겨 사용한다!는… 교문에 찰떡이나 엿 붙이는 짓이,
오히려, 더 효력이 있고 또한 뱃속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오직 선물(膳物)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여!
선물을 받겠다!는 생각도 좋지만…
제발, 선물을 주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 보시라.

나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내가 “달라!”고 해서 받아 본 선물이 없다!
그렇다!
먼저 ‘달라!’고 하면, 그것은 이미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강도”이거나 “거지”일 뿐이다!

어디 그 뿐인가?
그대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전능함과 전지함을 믿는다면?”
어찌하여, 그와 같은 부탁, 요구, 애걸, 복걸, 아부성 수식어가 필요할까나?

전지전능하다는 그 神이,
저절로 알아서, 처리해 주어야만 되는 것이 아닌가!

크게 의심 하여라! 그래야만 크게 깨우칠 수 있다!

어떤 마지막 膳物(선물)

그대! 그대는, 떠나가는 사람에게, 그 어떠한 선물도 줄 수 없는
그런 경우를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었는가?
다시 말해서…
그 어떠한 선물도 줄수 없는 “그런 이별”을 해본 적이 있었는가?

나는, 나에게,
文字(문자) 그대로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가는 弟子(제자)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그 사람에 들려 주었던 것이, 바로, ‘나뭇잎’ 이었다.

나는, 내가,
그에게 아무 것도 선물할 수 없음이…
그 어떤 것도 그가 지니고 갈 수 없음이…
바로 그 점이 슬퍼서…
많이 흐느껴야만 되었다!

언젠가는?
너와 나도,
아무런, 선물(膳物) 조차도 주고 받지 못하면서…
그렇게, 이 곳을 떠나가고,
그렇게, 서로 헤어지게 되리라!

나뭇잎

~ 李相奉

사람이 살다가 가는 것도 나뭇잎과 똑같다!

나뭇잎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져 나가듯이,
사람도 이 세상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나뭇잎 하나 하나는
자기만 홀로 떨어져 나간다고 느껴지듯이,
사람도 남들은 다 두고
자기만 홀로 떨어져 나간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떨어져 나가는 사람을 도와 줄 수가 없다.
부처도, 예수도, 부모 형제도, 부부도, 숭고한 사랑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은 나뭇잎 신세라서,
자기 자신도 떨어져 나가면 그만일 뿐인데…
어떻게 나뭇잎이 다른 나뭇잎을 도와 줄 수가 있겠는가?

서로 서로 알고 지낸다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에 가까이 매달려 있게 되었기에,
서로가 서로를 기억 할 수 있게 된 것.

한때, 한그루의 나무에,
서로 가까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나뭇잎 보다는 나은 것이리라.

하지만, 나뭇잎은 한낱 나뭇잎일 뿐이니…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고 있던 없던
그 무슨 차이가 있을까나?

너와 나는…
어느 날, 마침내, 흩어질 하나의 나뭇잎일 뿐이다.

(2000년 10월 23일)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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