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인정한 대화법-
Mahavira(마하비라)의 대화법
~ 이상봉 / 철학박사
이 세상의 윤리(倫理)네, 도덕(道德)이네 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형식적인 것이라서…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의 행동을, 절대로, 옹호해 주지 않는다!
전통(傳統)이라는 것이 뭔가?
알고보면, 맹목적(盲目的)으로 전수(傳受)되어
전해져 내려 오는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예법(禮法)이라는 것도, 형식적인 예의범절(禮儀凡節)일 뿐이 아닌가?
그렇다! 그런 것들은,
形式的인 종교행위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나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결코, 가만두지 않는다!
傳統이네, 禮法이네, 倫理네, 宗敎라고 하는 것들이,
물론 표면적으로야,
“다른 사람이나 다른 종교에 대하여, 존엄성을 갖지 말아라!” 라고,
그렇게 내놓고서 가르치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자기네가 定해 놓은 것만
“옳은 것이고, 진리(眞理)”라고, 하면서,
“자기네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죽이라!” 고 까지,
선동하고 있지 않은가?
인류의 모든 역사가, 엄연히,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사람은,
모든 사람은 “잘못될 수도 있고,”
또한 인간이기에 “그럴 권리도 갖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따라서,
어느 누가 “잘못되는 결정을 하였다!”고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결정일 뿐이다.
그의 결정이, 바로, 그의 삶이고 그의 철학이기에…
어느 누구도, 그의 결정에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만약에, 그의 決定이 잘못되어서,
“남에게, 또는 사회나 국가에, 피해를 끼치는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 잘못에 해당되는,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절대적인 것만을 내세우고, 그것을 고집하면서,
그것을 꼭 지켜야만 된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바로, 형식주의자(形式主義者)들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결코 相對性(상대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神은 있다! 오직 하나의 神만 있다!”
“唯一無二한 신, 그것이, 바로, 우리의 神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단면(單面-한 면)만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可能性(가능성)이나 多樣性(다양성)을,
아주 몹씨, 두려워하고 있고…
또 다른 가능성, 다양함, 모순(矛盾)이 엄연히 존재 할 수 있음을,
몹씨 두려워 하면서…
오직, 단면(單面 한 면)만을 보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다른 面이나, 또 다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음을 인정해야만 되게 되어 있다.
제대로 된 對話나 토론(討論)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面의 질의응답(質疑應答)이, 당연히, 오고 가야만 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열린 대화법(對話法)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 中의 하나에,
Mahavira(마하비라)가 있다!
만약에, 그대가,
마하비라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그대는, 그가 7가지의 방식으로,
응답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자! 내가, 아주 알아듣기 쉽게, 그의 대화법을 설명하여 보면…
1) 그대가, 마하비라에게 “神은 있습니까?” 라고, 묻게 되면…
그는,
“아마, 신은 존재할 것이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그는 늘 “아마” 라는 말을 사용해서, 시작을 하는데…
“아마” 라는 말은, 대화를 열려있게 해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단호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도 옳고, 나도 옳을 수 있다!” 라는, 말이 되는 셈인데…
“아마, 신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대 역시 절대적이지 않으니까… 뭐, 서로 서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그런 의미의 말이라고 보면 된다.)
2) 이어서, 그대가 “그럼 神은 없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면…
그는,
두번째의 대답을 이렇게 하게 될 것이다.
“아마, 神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누가 알겠는가?
무신론(無神論)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아무도 神을 본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아마 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3) 그대가 두번째 대답을 듣고나서… 그대는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신을 믿어야 합니까? 아니면 믿지 말아야 합니까?”
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아마, 둘 다 옳을 수도 있으니…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되겠지!”
4) 그러면, 그대는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아니? 어떻게 둘다 옳을 수가 있습니까?
저는 믿어야 할지? 또는 믿지 말아야 할지?를 물었는데요!”
그러면, 그는
“아마, 둘다 옳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7번째 까지, 질의 응답을, 계속하여,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7번이나, 질의 응답을 하다보면…
그대는, 매우, 혼란스러워 질 것이고…
차라리,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옳았을 것” 이라고 까지,
생각하게 될 것이리라!
그렇다!
마하비라의 대화법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다원적인 대화법이다!
그것은, 대화나 대답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물론, 論理的으로야…
확실한 토론과 추적이 될 수는 있겠지만서도…
그러한 식으로 말을 하는 마하비라를 따르는 사람이,
실제로는 아주 극히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마하비라,
그는, 전혀 종교인 답지 않게…
자기 스스로, 그 어떠한 觀念이나, 理念이나, 主義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살았던…
그리하여, 그 누구와의 대화에서도 “열린 대화”를 하였던,
그런 성격의 사람이었다.
[마하비라 (Mahavira, c, 599-527 BCE, Jainism의 창시자)
Maha (great) + vira (hero)는, 그는 30세 때에 출가하여,
12년간의 수행 끝에, Jina(spiritual victor, 영적인 승리자)로 불리워짐.
세계의 사물을 ‘생물과 무생물’로 구분하였으며, 해탈(解脫)을 목표로 삼았음.]
~Sang Bong Lee, Ph.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Iconoclasm,
Sang’s Meditation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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