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理大(문리대), 文理大 자리

1958, 졸업식
(1958년도, 졸업식)

1963, 교정
(1963년, 교정)

1965, 교정
(1965년, 교정)

1965년, 본관 건물
(1965년, 본관 건물)

1965, 교문 옆 개나리 small
(1965년, 교문 옆, 대학천 개나리)

교정 안의 시계탑
(교정 안의 시계탑)

1967, College life (me) (2)
(1967년)

1973년
(1973년 교정)

文理大(문리대), 文理大 자리

~ 이상봉 / 철학박사

내가 東崇洞(동숭동)에 있는 “文理大(문리대)”를 다닐 때에는,
文理大 학생들만이 지니고 있는
그 어떤(?) 자부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랬는지…
문리대를 ”College of College”라고 불렀다.
(그야물론, 나 보다, 먼저, 入學한 사람들이 붙여 놓은 것이겠지만.)

[或者(혹자) 中에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College of college가 아니고, College of colleges가 맞는 것이라고.
그야물론, 영어에서 God를 뜻할 때에는 King of Kings가 맞는 것이듯이…
College of Colleges가,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되기는 하겠지만…
한국에서, 그 때의 우리들은, College of college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 “Television”을, 한국에서 “테레비”라고 부른다!고 해서,
같은 한국 사람끼리, 그것은 “잘못된 것, 틀린 것이다!”라고,
영문법적으로 트집 좀 잡지 말아 달라!)

그 동숭동 교문(校門) 안에는, 文理大와 함께,
서울대학교 본부가 있었고, 총장실이 있었지만…
그 당시의 서울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곳을 “서울대학 본부”라고 부르지 않고…
모두들, 그냥, “문리대”라고만 불렀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서울 市內에 大學校라는 것이 몇 개 되지도 않았고.
또한, 하다못해, 中 高等 학교만 해도,
소위 “門 안”에 있는 학교만 “학교로 쳐줄 때”였다!
그래서, 一流(일류) 中학교에 입학하는 것 조차도
아주 어렵고 또한 치열할 때였다.
(요즈음에는, 名門(명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때에는 一流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아마도, 요즈음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이, 알아듣기(?) 조차도 어려운 말이, 되겠지만서도.]

그리고,
학교 뱃지(뺏지, Badge)라는 것도 서울대학교 뱃지가 아니라…
“文理大”라고만 적혀있는 뱃지를, 달고 다니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교무과에서는 팔지도 않는 뱃지였는데…
아마도, 선배가 붙이던 것을 물려 받아서 붙인 것이리라.)

그 때, 그 당시에는,
그런 것도, 하나의 “멋”이고,
하나의 “浪漫(낭만)”이라고 생각하고서…
그곳에서, 그렇게, 대학 생활을 보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곳 外의 다른 한국의 “대학이나 Campus”에는,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도 대학들이 아주 많이 생겼겠지만…)
아무런 관심 조차도 가고있지 않은 것을 어떻하나? 에효!

(나는, 1976년에, 직업상, 6주간,
서울대학교(관악 캠퍼스)에서 연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졸업한 科에 가면,
교직원과 대학원생들은, 거의 다, 낯익은 얼굴들이었기에,
퇴근시간에는 그들과 함께, 그 학교의 통근버스를 타고서 퇴근을 하면서,
어울리기도 하였는데도…
그 학교가, 내가 졸업한 학교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문리대生 끼리만 통하는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문리대生의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어쩌다가, 出身 대학이라도 묻는 경우를 만나게 되면…
문리대 출신은 “서울大를 졸업했다! 또는 서울大를 나왔다!”라고,
대답을 하지 않고… “文理大 나왔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서울대 文理大”라고도 하지 않고, 그냥 “文理大”라고만 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저절로, 그렇게 대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대학 4년 동안 “文理大”라는 말만 사용하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서울대학교에 “文理大”라는 단과대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합 캠퍼스 계획에 따라, 1975(?)년에,
동숭동의 文理大가 관악 캠퍼스로 이사를 가면서…
文理大(文科와 理科)가,
3개의 단과대학-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로 되면서…
소멸된 것이다!

文理大를 졸업한 사람들이,
文理大를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文理大가 소멸 되어서 없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더, 그리워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

이렇게 해서…
지금은 완전히 없어진 文理大와
文理大가 있었던 東崇洞(동숭동)의 그 자리를 보면서…

비록, 그곳이
지금은 엄연히 “다른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곳을, 아마도, “文理大 자리”라고 부르고 있지나 않을까?

蛇足(사족):
서울에는, 과거에, “서울 문리사범대학”라는 이름의 대학이 있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듣게되면,
“서울대학교 문리대(동숭동)”와 “서울대학교 사범대(용두동)”의
이름을, 합쳐서, 만들어 놓은 듯한… 그런 이름의 대학이 있었는데…
그 대학은, “근화 여자초급대학(1952)”- “서울 여자초급대학(1955)”에서,
“서울 문리사범대학 (남여공학, 2년제 초급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1956-1963년 까지 있다가…
1963년 부터, “명지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학교 재단 측에서 이름을 그렇게 ‘바꾼 것’이다!)

~Sang Bong Lee, Ph.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Dr. Lee’s an effable and ineff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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