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보아라! 세상의 소리를 보아라 – 관세음(觀世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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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보아라!
세상의 소리를 보아라 – 관세음(觀世音)

~ 이상봉 / 철학박사

사람들은 자꾸만 묻고 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라고.

이와같은 질문이, 비록, 엉뚱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런 수준의 질문은- 남에게 물어보고 말고 하는 질문은-
이미 병든 마음- 병적인 정신-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現在(현재) 엄연히 살아있는 몸이고,
또한, 現在에 충실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후(死後)와 내세(來世)에 매달리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더군다나,
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
죽어 보지 않아서,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그 죽음을…
어느 누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런 질문(質問)으로만 그치고 마는 사람들은,
차라리 순진한 편이다.

어떤 者(자)는, 너무나도 교활하여,
자기가 “사후의 세계, 천당과 지옥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들고 있으며,
또한,
직접 갔다 온 것처럼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이고 있지 않은가?

하긴, 교활한 것도, 그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만…
“선지자 • 예언자 • 선택받은 자 • 하느님의 아들…” 하는 따위의
거창한 호칭(Title)까지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에효!

하지만…
잊지 말고 꼭 기억해 두시라!

이 세상에 실존(實存)하였던 그 어떠한 인물도,
그리고, 앞으로 存在하게 될 그 어떠한 인간도,
이곳(Here)에서 저쪽(There)을- 죽음 너머의 세계를- 알 수가 없다!
그렇다!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활한 자들이 만들어 내는
“정신병적인 가설”이나 “황당무계한 엉터리 설명”에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도 많을 뿐만이 아니라…
단지, 속아 넘어 가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그런 황당한 말을 지껄인 者들을,
오히려, “예언자네 • 성인이네” 하면서,
숭배(崇拜)까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이다!

그뿐만이 아니고…
그런 式의 말 같지도 않은 내용들의 이야기가
“經典(경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절대 진리이고 또한 가치가 있다!고,
빡빡 우기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인들이고,
또한, 일반적인 신자(信者)라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알고보면…
그 經典(경전)이라는 것이야 말로…
그러한 수상한 者들의 말을,
그 者들보다도, 더욱더, 교활한 자들이,
이리저리, 손질하고 각색하여, 만들어 놓은 조작된 작품이 아닌가!

하지만…
단지 토론의 목적上,
그들의 그런 황당한 주장을 다 받아들여 준다!고 쳐도…

그와 같은 경전 속에 들어 있는,
“지옥 • 천당 • 영생 • 구원” 등등의 설명이,
인간들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공허한 것이라면…
그 점만큼은, 얼마든지, 문제 삼아야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숭배 행위 外에는 그 어떠한 비판도 받아 들일 수가 없다!고,
종교쟁이들은 버티고 있으니…
그것이, 과연,
제정신이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와 같은 믿음만을 강요하고 있는 맹목적인 崇拜行爲(숭배 행위)가
어떻게, 수천 년 씩이나 계속되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토록, 밝기만 한 대명천지(大明天地)에도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얼마나 더 계속되어 나가야 된단 말인가?

제발, 크게 의심하여라!
크게 의심해야만, 크게 깨우칠 수 있다!

자! 이제야 내 말을 어느 정도나마 알아 듣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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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란 무엇일까?

죽음(Death)이라는 것은,
삶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죽음이라는 것은,
삶을 떠나서 따로 存在(존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음과 동떨어져서 외따로 存在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단지, “삶의 끝부분 • 삶의 끝남”을 일컫는 말일 뿐이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에, 그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Death

~ By Sang Bong Lee, Ph. D.

Whenever someone dies we are talking as if
It has been an accident.
Always talk about death as if it is an accident.

Everything else is accidental
But death is absolutely certain.
Only death is not an accident.

You have to accept that birth and death are both gifts.
Death has been a fixed phenomenon with birth.
It is already happening.
Actually it is a process.

So you have to die.
You are dying every moment,
And death happens before you die.
Die before you die.

그대가 믿거나 말거나…
“오늘이 지나가면 ‘내일’이 오고,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온다!”라고 하고 있지만…

오늘과 내일이, 따로따로,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봄과 여름의 사이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구분도 없고, 또한 경계도 있을 수 없는,
단지, 물의 흐름처럼,
서로 서로 이어진 것을, 그렇게, 이름만 따로 붙여서,
그냥, 편의상, 그렇게 구분하여 놓은 것일 뿐이다!

그 점은,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시계를 보면, 똑 딱 • 똑 딱 하면서…
시계 바늘이 멈추었다 가고, 멈추었다 움직이지만,
그것은 사람이 만든 기계이기에 그런 것 뿐이지…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게 멈추었다 가고 • 또 멈추었다 가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이어져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그대의 시야(視野)가 미치는 부분을
地平線(지평선)- 또는 水平線(수평선)-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그곳에, 진짜로, 그 수평선이라는 實體(실체)가
고정되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과 똑같다.

그대는, 과연, 구분할 수 있는가?
봄과 여름의 사이를…
육체와 정신의 경계를…
사랑과 미움의 차이를…

그런데도…
“예수의 말”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을 수 밖에 없다!니,
그것이, 과연,
상식과 이성(理性)이 있는 사람의 현명한 처사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
賢明(현명)한 마음이라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상식과 이성(理性)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마음을 일컫는 말인데…
그러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태도와 행위가 ‘인간적이고 인간스럽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과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賢人(현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깨달은 사람들의 눈에는,
물이 흐르면 그것이 냇물이고,
고여 있으면 호수일 뿐이지,
냇물과 호수의 물이, 서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이라는 것도, 그와 같이, 보아야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삶과 죽음’ • ‘현세와 내세’ 라는 것에 대한 나의 대답은,

“죽음이라는 것은, 단지, 삶의 끝부분을 일컫는 말이고…
내세라는 것은, 단지, 이 현세의 끝을 일컫는 말”일 뿐이다!
그렇다!
단지, 서로 서로, 구분하기 위하여
그어 놓은 경계선에 해당되는 이름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이와같이, 단지, 이름 뿐인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實體(실체)는 없이, 단지, 이름 뿐인
“천당 • 지옥 • 영생 • 부활 • 구원” 따위가,
그대에게 먹혀 들어가는 이유는…
그 누구보다도, 그대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러한 말은,
이렇게 듣는 것만으로는…
또는, 이렇게 내 글을 읽는 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또는, 내 글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그대 스스로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야만 된다!

——————————–

자! 이렇게 생각해 보도록 하시라!

虛堂雨滴聲(허당우적성: 텅 빈 집에 빗소리가 들린다) 라는,
유명한 詩가 있는데…

내가, 불 때에는,
“詩로서는 아름답고 그럴듯하지만…
眞實(진실)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내가, 지적하는 것은 “빗소리가 들린다”라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텅 빈 집이라면, 아무도 없는 빈 집인데,
과연, 어느 누가 빗소리를 듣겠는가!

그 시인이, 먼 발치에서, 비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詩를 썼다면…
그 시인은, 빗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본(觀) 것이다!

그렇다!
그대들이 진정으로 이 “세상 소리(世音)”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소리조차도, 직접, “보아야”만 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말을, 꼭 명심하여 두도록 하시라!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세상 소리를 제대로 보아야(觀 해야) 한다!”라고,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소리(世音 세음)을 직접 보는 것,
그것이, 바로, “觀世音(관세음)”이다!

마찬가지이다.
현세 • 삶 • 세월의 흐름 • 육신과 영혼은,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느껴야만 되는 것이다!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Seeing is knowing!
Seeing is believing!

글쓴이:
이상봉 (Sang Bong Lee, Ph. D):
이상봉은 서울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70년대에 생물학을 강의하다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의 Digi-Log Co, Bell- Shaw Institute를 거쳐,
La Salle Graduate School (라살르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Ph. D) 학위를 받았음.
교수로 재직하면서, 50여 편의 철학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그 外에, 이상봉의 철학과 사상 강좌 Text 모음(1990-2006),
The Science of Self-Realization Text (2000, 2006) 등등이 있음.
그리고, Poetry(詩작품)으로 국제시인협회 특별회원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s, Distinguished member)로 추대되었다.
현재, Philadelphia와 New York에서 문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內의 신문과 잡지에 여러 개의 고정 칼럼을 가지고 있다.

~Sang Bong Lee, Ph.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An ineffable but certain (설명하기가 힘들지만 확실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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