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P_Widget에서 호출한 생성자 함수는 4.3.0 버전부터 폐지예정입니다. 대신
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리틀 야구단의 명량 대첩 - 김태훈 기자의 아침에 읽는 시
리틀 야구단의 명량 대첩

한국인의 몸에는 분명 ‘일당백(一當百)’의 유전자가 존재한다. 그 유전자의 능력은 우리가 압도적인 중과부적(衆寡不敵)일 때 더욱 잘 발현된다. 최근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우리 대표팀에게서 그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지난여름 영화 ‘명량’을 볼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이번 월드시리즈 준결승에서 한국팀에 패한 일본에는 약 2000개의 리틀 야구단이 있다. 우리는 158개에 불과하다. 야구의 저변만 놓고 보면 우리 팀이 이기기 힘든 경기였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은 일본에 이어 다시 그 열 배인 2만개의 팀을 보유한 미국마저 격파하고 우승했다. 운동 경기와 전투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번 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은 명량해전의 성과도 능가했다. 12척의 전선(戰船)으로 왜선(倭船) 133척을 물리친 명량해전은 1대11로 싸워 이긴 대첩(大捷)이다. 우리 리틀야구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미국과 158개 대 2만개로 맞붙었으니 1대126의 대결이었다.

  • 명량대첩을 그린 김기창의 민족기록화.

    명량대첩을 그린 김기창의 민족기록화.

이런 승리를 가능하게 한 비결은 무엇일까. 충무공은 패배를 두려워하는 장병들에게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며 정신 무장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도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당부가 승리를 불러오는 주문(呪文)일 수는 없다. 충무공은 부하들을 사지(死地)로 내몰면서 립서비스나 하는 무책임한 장수가 아니었다. 그는 일자진(一字陣)과 함포 사격이라는 필살기(必殺技)로 무장하고 적을 명량의 좁은 바다로 유인했다.

우리 리틀야구팀 선수들은 일본·미국과의 경기에 필사즉생의 각오 대신 ‘신나게 즐긴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동료가 홈런을 치면 모두 달려나가 우사인 볼트의 번개 세리머니를 펼쳤다. 한 선수는 우승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승부와 관계없이 즐기면서 하면 좋다”고 비결을 털어놓았다. 최고의 즐거움을 위해 온 힘을 다한 것은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승전하기 위해 혼신의 투혼을 발휘한 것과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충무공이 필승의 전략을 마련했듯, 우리 선수들도 일본·미국 팀과 교류전을 펼치며 꼼꼼하게 대회를 준비했다. 우리 선수들에게 “정신력으로 체력의 열세를 극복하라”는 식으로 대책 없이 주문했다면 우승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 12척으로 133척을 맞선 상황을 상상한 장면

    12척으로 133척을 맞선 상황을 상상한 장면

     

역사에선 정신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일을 그르치거나 비극을 초래한 사례가 허다하다. 일제(日帝)가 태평양전쟁 당시 “1억 일본인이 모두 옥쇄(玉碎·옥처럼 부서져 죽음)를 각오하면 전력 열세를 뒤집고 미국에 이길 수 있다”고 속인 것이 대표적이다. 가타야마 모리히데 게이오대 교수는 ‘미완의 파시즘’이란 책에서 옥쇄를 ‘전멸을 미화하는 일종의 광기(狂氣)’이자 ‘구시대적인 정신주의’로 규정하며 왜곡된 정신력 예찬을 경계했다.

우리 몸속의 일당백 유전자에 정신력만 앞세우는 무모함 같은 건 없다. 필사즉생을 각오하든, 즐기며 경기하든 중요한 것은 합리적 판단과 세밀한 준비다. 그 가치를 돌아보게 했다는 점에서 이번 우승이 더욱 값져 보인다.

 

1 Comment

  1. 해외방문객

    2014년 9월 3일 at 2:32 오후

    대견하고 기분좋은 아이들의 이야기 다시 봐도 반갑고 흐뭇하고 장하네요 잘 읽었어요~~^^

댓글 남기기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