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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자식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 - 김태훈 기자의 아침에 읽는 시
자식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

유언장

  

하상만

 

종수네 아버지가 돌아가시려 할 때

어머니가 엎드려서 또박또박 유언을 받아 적었다

형은 집 두 채

누나는 집 한 채와 현금 삼천만 원

종수에게 남긴 것은 없었다

평생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던 아버지가

숨겨 둔 재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수십년 전 친구에게 빌려 준 돈을 돌려받기라도 한 걸까

가족들은 한순간 흠칫, 했지만

없었다

아버지는 관 값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서 가셨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유언장

그 유언장 때문에 제삿날마다

종수네 가족들은 웃는다

하늘나라에서 아버지가

집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몸가짐을 잘 해야 한다

현금 삼천만 원을 주신다고 했으니

꿈속에서 로또 번호를

불러 주실지도 모를 일이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고 단속들을 한다

언제부턴가 정갈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잠드는 버릇이 종수네 가족에게 생겼다

회사에 다니는 형과 누나는

잠자는 자세가 바뀌니

일이 잘 풀린다고 맞장구쳤고

아무 유산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아버지가 믿었다고 생각하니

종수의 어깨엔 절로 힘이 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재력가 할아버지가 손주들 교육비 턱턱 내놓았다는 얘기 들은 적 있으신가요. 애들 과외비에 허리가 휘는 저는 그런 얘기 들으면 배가 살짝 아픕니다. 저라고 무슨 성인군자여서 그런 부자 아버지를 마다하겠습니까. 많이 가진 부모 밑에 태어나 유복하게 자라고 결혼 후 애프터서비스로 든든한 후원까지 받을 수 있다면, 그걸 두고 바로 복을 타고 났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런 복을 타고나지 못했습니다. 복은 커녕 다소 아슬아슬한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인생의 장래는 까마득히 높은 벼랑끝같았고, 고교와 대학시절은 그 끝에 걸린 낡은 다리와도 같아 건너는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런 현실을 일찌감치 받아들이고 고등학교 때 동생들과 한 다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준비한다는 각오로 살자.”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교육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고, 어머니는 늘 다정하게 우리 삼남매와 대화를 자주 나눴습니다. 돈에 관한한 부모님은 물려줄 게 별로 없어서 허전하고 아쉬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 사는데 돈이 다는 아닙니다. 우리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고, 알뜰하고 검소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자랐습니다. 이처럼 돈 못지않게 소중한 가치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가꿀 수 있었으니 모자란 게 있으면 넘치는 것도 있는 게 세상 이치같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꽤 오래 전에 읽은최고의 유산 상속받기라는 책을 떠올렸습니다. 부자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손자에게 재산을 넘기는 기발한 방법이 소개돼 있습니다. 억만장자 스티븐스는 죽기 1년 전 자손에게 남길 유산목록을 작성했습니다. 그중 가장 사랑하는 24살 손자 제이슨에게는 특별히 최고의 유산을 남깁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1년 동안 자신이 남긴 과제를 완수해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이슨은 게으르고 방탕한 청년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남긴 과제가 제이슨의 삶을 기적처럼 바꿔놓습니다. 첫 과제는 할아버지 친구의 텍사스 목장에 들어가 한 달간 울타리를 치는 노동이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제이슨은 난생 처음 땀의 가치를 경험합니다. 이어 할아버지가 안배한 과제를 하나씩 완수해가는 사이 우정, 사랑, 가족, 겸손, 희망, 인내 등을 배웁니다. 마침내 1년이 지나고 그의 앞에 최고의 유산이 공개됩니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하나는 새사람이 된 자기 자신. 또 하나는 할아버지가 남긴 자선재단 운영권이었습니다.

종수네 가족은 아버지의 기상천외한 유언 때문에 행복이라는 최고의 유산을 상속받았습니다. 형과 누나는 저세상에서 올지 모를 조상의 음덕을 받기 위해 평소 바른 몸가짐으로 삽니다. 막내 종수는 돈 한 푼 물려받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아버지의 신뢰를 유산으로 받았으니 앞으로 다가올 어떤 난관도 자신있게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도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 아이들에게 물질만 남겨주는 것은 사상누각과도 같다는 것을 잘 압니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고도 10년 안돼 거지꼴로 전락하는 사람 여럿 봤습니다. 종수 아버지의 유언장이야말로 그 불행을 막는 최고의 유언장인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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