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할머니,할아버지도흥남에서배타고내려오셨어?
아니,할아버지는지주의자식으로일본유학까지다녀오셨으니
공산당밑에서는살수없다고생각하시고일찌감치몰래월남하셨대.
아마1946년쯤아닐까싶어.
그래서할머니는너희아빠를데리고북에혼자남아있는데
할머니친정에서는빨리아가데리고남으로내려가라고하시고
(어디가서점을보면한나무에꽃이두개라고..)
시댁에서는며느리마저내려가면아들볼기회는영영없어질것같으니
살림내준집이팔리면그돈으로보내주겠다고차일피일미루시는데
토지개혁등으로어수선한세상에서그집이팔리리가없었다는구나.
그래서할머니친정아버님께서돈을장만하고남으로내려가는안내인을사서
할머니속고쟁이에는돈을두둑히넣어주시고안내인에게는물론돈은주었지만
서울가면팔아서돈좀만들어자네도쓰고애엄마도주라고
북어여러짝를짊어지게해서내려보내셨대.
그때는남과북의경계가38도선에서그어져있기는했지만
지금처럼철조망으로막혀있는거는아니고눈을피해오르락내리락할때고
편지도오가던시절이어서할머니는할아버지에게서온편지에적힌주소만믿고
남으로남편을찾아내려오신거지.
고향과영원히이별이될줄도몰랐고서울가서남편하고살다보면
세월이좋아져함흥에돌아갈수있을거라생각하셨대.
엎치락뒤치락고생끝에죽을고비에는돈도다털어주고하며
너희아빠를업고의정부어딘가에도착해서피난민수용소에들어가서
D.D,T라는소독약하얗게뒤집어쓰고얼마간있다가풀려나오셨대.
할아버지가취직했다는회사의주소가서울역근처라고해서그곳으로가보니
서너명있는회사사람들말이그사람이연락도없이며칠째나오지않고있어
자기네도무슨일인지그사람이나오기만기다리고있다고하더래.
그러니할머니가얼마나기가막히셨겠니.
함흥에서서울로시집온여고동창친구집이청파동무슨공장이라는것을
들은기억이있어너희아빠를업고거지꼴로물어물어찾아갔더니
그친구분이서울이어떤덴데이렇게혼자왔느냐고다정하게맞아주며
남편연락닿을때까지있으라고해서할머니는겨우숨을돌리게되셨단다.
그리고는날마다서울역앞에나가남편회사만바라보고있을려니
며칠만인가에비쩍말라해골같은형상으로할아버지가나타나시더래.
학질을앓고나왔다며죽다살아났다고하시더란다.
호랑이담배먹던시절이라건물도별로없고사람도별로없으니
이렇게사람찾는일이가능했던거겠지.
그렇게할머니,할아버지가만났어도할아버지월급이라는게나왔다안나왔다
거의없다고봐야할지경이어서할머니가을지로6가계림극장앞에서껌도팔고
과자도팔아보셨대.
그러다가난한대로조금안정이되어가는가보다했더니전쟁이난거야.
피난이고뭐고도없이순식간에공산치하가된곳에할머니할아버지처럼
북에서내려온사람들이어떻게살아갈수가있겠니?
할아버지는땅굴에들어가숨어살고할머니가어디가서품을팔아서쌀을얻어와
할아버지와너희아빠가굶어죽지않고살았다더라.
할머니가평생너희아빠를가여워하시고어느아들보다도사랑하는이유가
삶과죽음사이를같이이겨낸어린아들,못먹이고굶주리게한그일이
끝내마음에걸려서였을거야.
지금할머니할아버지로호칭하지만그때그분들나이가20대초반,중반이었단다.
서울이수복되고다시북한군이밀고내려온다하니이번에는다들피란가야한다고
피란길에나서서바로저부산으로내려가신거야.
할머니는딸둘인집의장녀였으니북한에여동생이한명있겠지?
그동안친정아버지는돌아가셨다는소식을들었고어머니와여동생이혹시흥남부두에서
배를타지않았나..하고매일국제시장에나가셨대.
함흥사람들만만나면동생소식을물어보셨는데,다들모른다고하던중에
누군가가그모녀가흥남부두에나와있는걸보기는했다는사람이나와할머니는
국제시장을완전헤집고다니셨단다.
그런데어느분이그사람들아마안내려왔을거다,동생남편이체육선생이라사람들동원하고
그랬는데국군이들어와빨갱이앞잡이라고처형했으니그사람들이남쪽에오고싶겠나,,
안왔을거다라는말을해주어그후부터는찾는것을고만두었다고하시더라.
이데올로기로갈라진땅에사는힘없는백성들이겪는고통을온집안이당하신거지.
남으로내려간가족이있어북의가족이어떤피해라도볼까봐
할아버지는이름까지바꾸고살으신것알지?
그리고할아버지친척들중에는광장시장에서포목장사하시며또순이로집도사고
아들딸다좋은대학보내고하시는분들도있으셨잖아.
참힘들게살으신분들이시지.
국제시장그영화보니까엄마는흥남부두장면에서부터눈물이나더라.
응,,,그래서옛날에많이듣던말투가영화에서나오는거였구나.
우리딸의영혼없는결론이다.
그래,니가뭘알겠니?
난들어머니,아버지세대의아픔을제대로알겠니?
왜맨날옛날이야기만하는거냐고했었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