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엄마 좀 보세요

아버지,
엄마좀보세요.
아무리붙잡아도기어이차를타고마시네요.
벌써이렇게어두워졌으니보성역에내리시면
아주아주깊은밤일텐데,
캄캄한길홀로걸어아무도없는집에들어서시면
아버지안계신빈집
밤길보다더어둡고적막할텐데…..

가뭄에나는콩처럼드문
서울나들이길에도아버지진지때문에선걸음총총옮기시던
엄마가오늘미경언니딸결혼식에오셔서도그냥가시겠다는거예요.
아이들이외할머니기다린다며
손자들도보고싶지않냐며엄마팔을끌었지요.
그래도듣지않으시길래그냥불쑥말이나와버렸어요.
“엄마,이젠아버지진지차릴일도없으시잖아요.”

아버지,
아버지도엄마의그런표정보신적있으신가요?
쓸쓸하고처연하고금방이라도눈물이흐를듯한,
그순간,
내눈길을피해고개를돌려먼곳을바라보는엄마의모습이
얼마나슬퍼보이던지
그냥또눈물이흘러버렸어요.

하긴요즈음혼자있을때마다
아버지생각나고
마치눈물은아버지그림자라도되듯뒤따르곤하니……

고개숙인제게엄마가말씀하시더군요.
"진지차릴일이없어서가불라고한다.
느그집서며칠있다가믄더쓸쓸할것같어서…."

사실
아버지떠나시던때도엄마별로울지않으셔서
언제나씩씩하고대범하신대로
아버지떠나가시는길도의연하게배웅하시는구나생각했지요.
아버지가미리준비해놓으신집으로
아버지좌정하실때도
엄마는그저무심한눈빛으로노랗게익어가는탱자나무만바라보시길래,
아버지연세도있으시고,
아프셨으니,
그동안마음준비잘하셨나보다.
그렇게생각했지요.

예배도파하고하관식도끝났지만
새로지어진아버지집을쉬떠날수없어서
우리모두서성거리는동안
엄만우리에게등을보이며앞서서산을내려가셨어요.
허리가다른날보다유별나게꼿꼿해보여서
오히려안쓰러워보이긴했지만말이에요.

그즈음이른아침이면하얀이슬이풀잎에맺히곤했지요.
아버지떠나시던날
하늘은어쩌면그렇게구름한점없이파란지….
그날밤달이그렇게맑고밝을려고그랬나봐요.

아버지빈자리를의식하면서도
아버지영정사진에대고아버지아버지,속삭이듯불러보기도하면서
그래도살아있는우리는먹고마시고도란거리다가
모두들일찍잠이들었어요.
제가막내니깐엄마곁에누워서요.

자다가무엇인가가허전해서잠이깨었는데
엄마가곁에계시지않았어요.
화장실엘가셨나한참기다려도돌아오시질않아가만히일어났지요.
창문으로들어오는달빛이얼마나환한지불을켜지않아도환했어요.
마당으로나가보았지만엄만계시지않았고
소살거리는달빛만아버지가키우시던
뜨락의나무들을어루만지고있더군요.특별히귀하게여기시던
오래묵은동백나무를바라보면서
이젠다시는너희들도아버지손길을못느끼겠구나
싶으니
목이메이면서눈물이흐르는데………..

그때무슨소린가가귀에자그마하게들려왔어요.
엄만가싶어소리를따라가보니아래층창고였어요.
억눌린울음

엄마가생전에아버지가출입하실때마다
타고다니셨던오토바이를어루만지며
수건으로입을틀어막은채울고계셨어요.

아버지.
그제서야엄마가남편을잃었다는것을,
일흔아홉살의엄마가과부가되었다는것을,
부모보다더오랜동안,
자식보다길고긴세월을함께지내온,
마치엄마의몸같은,
살같은,
생명같은,
남편을잃었다는것을……
아버지잃은슬픔은
엄마의슬픔에비하면아무것도아니란것을…….

아버지,
아버지는모르시지요?
아버지가먼길떠나실때
엄마의’재미’를
호주머니에넣고가버리신것말예요.

며칠전언니가엄마에게다니러갔대요.
엄마가언니와장기두는것을얼마나즐기시는지
아버지도아시잖아요.
이른저녁뒤에장기판을펼쳤대요.
겨우두판을놓았는데.엄마가그만두자고하시더래요.
아무리허리가아프셔도장기하면벌떡일어나
몇판이고상대방이그만두자고할때까지즐기시던그장기를요.
그러시더니엄마가그러시더래요.
“야아,느그아부지가내재미를가져가부렀는갑서야,
장기도재미가없고세상에아무것도재미진것이없서야..”

아버지.
마지막숨을내어쉬실때서야,
처음으로아버지사랑해요,사랑해요라고
고백한이막내딸의수줍은고백도사랑이지만
아버지안계신세상속에서
아무재미를느끼지못한다는엄마의사랑고백은
이세상어느시인도흉내내지못할
아버지를향한엄마의사랑고백이아닐런지요.

아버지,
엄마를실은차가떠나가네요.
엄만그제서야아주잠깐나를바라보시네요.
벌건눈보면막내딸가슴아플까봐,
마지막엔그래도보고싶어서말예요.

쓸쓸함도사랑이겠지요.
소란스런딸네집에서아버지를잊고있는것보다
쓸쓸함속에서아버지를느끼고싶은,
어둡고적막하더라도아버지계셨던빈집의쓸쓸함이
더견디기가쉬운
그리움이요.

아버지가신곳도혹엄마가없으셔서쓸쓸하신가요?

엄마가가셔선지깊어가는가을밤막내딸도참쓸쓸하네요.
아버지.

(04,11.전국편지쓰기대회대상작)

4 Comments

  1. 느티나무

    2011년 1월 14일 at 12:50 오전

    처음엔보통읽어내려가는속도로…
    두번째는아주천천히음미하면서읽었어요.
    그분위기속에빠져있다가댓글을씁니다.

    먼저,이렇게좋은글을올려주시어
    읽을수있음에감사드립니다.
    글을다읽고남는여운이상당하네요.
    역시…6년전에’대상’을받은글이셨군요.

    이글읽고다른글도모두읽었습니다.
    뭐…8편밖에안되었으니.
    하지만범상한글솜씨와날카로운판단력…ㅎㅎ
    만나게되어반갑습니다.

       

  2. 좋은날

    2011년 4월 19일 at 7:15 오전

    신경숙의"엄마를부탁해"를읽는느낌이었습니다.

    아니?그소설이상으로무릎으로다가앉았습니다.
    돌아가신아부지를눈앞에그리워하면서요.

    퇴근하면서막걸리한병사서
    아부지산소나또댕겨와야쓰것습니다.

       

  3. 벤조

    2012년 3월 16일 at 1:08 오후

    재미를다가져가부렸다고…
    그재미워찌다잊을까…
    얼릉
    엄마에게편지를써야겠습니다.
       

  4. 푸나무

    2012년 3월 17일 at 1:54 오전

    뒤에까지찾아오시느라힘드셨겟다^*^
    근데
    벤조님은사투리스셔도안어울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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