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ㅡ 강화

강화에들어서면왠지마음이고요해진다.
마치누군가가뭉근방망이로날선마음을
부드럽게무두질하는것같다고나할까,
강화의키작은집들탓인지도모른다.
야트막한뒷산을배경으로나지막이자리하고있는오래된집들,
자그마한텃밭사이로서있는뒤안의고만고만한감나무,
지붕위로고개내민붉은감들은지나가는사람들과무연한눈길을마주한다.
넓은들판에서불어오는바람이무시로흔들어도무안하지않게받아주는대문.
개나리줄기나조그마한편백나무몇그루로표시된담장들.

섬이라고는믿기어려울만큼넓은들판이다.
추수가끝난들판은비어있어더넓어보인다.
빈공간은여여해서아무나주인이될수있다.
하늘이주인인가하면스치듯불어오는바람의나라같기도하고
공간의편액이라도되듯획을지어가며날아가는철새들의거처같기도하다.

겨울철새인기러기들이정교한몸짓으로날아가고있다.
작은날개로먼거리를이동하기위하여
서로에게힘을나누고보태주며함께하는모습들이눈물겹다.
떠돌아다니며사는것도외로울진대어찌추운곳만을찾아다니는것일까?
가물거리다가결국사라져버린다.
일순가슴이먹먹해온다.
어디서와서어디로가는지도모르는,
순간에사라져버리는그표현할수없는가벼움이
마치내인생처럼여겨졌기때문이다.
열심히살다가도갑자기적요하여뒤돌아보면아무런흔적없는….

마니산.산의정기가모여있다는계단로나유명한단군로가아닌
이름도없는작은산길로들어선다.
강화에있는지인의집을방문했다가우연히알게된이산길은
동네사람들이나다니는길이라거의언제나사람이없어적막하다.
나무들만이지닌향기가훅코로스며든다.
길게심호흡을해본다.
이맑고청랑한기운이저안폐부깊숙이들어가어둡고탁한것들을
다소쇄시켰으면하는마음으로깊고넓게호흡한다.

사람의발자국만으로만들어진산길,
이런길을걷노라면고단하고지친사람들의발걸음소리가들리는듯하다.
얼마나많은사람들이이길을지나갔을것인가?
무한의시간들이라하여그냥지나가지는않았을것이다.
사람들의미소와한숨그리고셀수없는
체념과기쁨은길을단단하게돋아주지않았겠는가?
줄기차게내리는소낙비는이길을지나계곡으로흘러들었을것이고
함박눈은겨우내내포근한이불이되어주었을것이다.
바람과꽃들은길에게속삭였을것이고
낙엽들은길과하나되어여기에다다른것이아닌가?
어쩌면길은과거와현재를아우르는,
혹은삶의미묘한단추하나를끌러내보이는
치밀하고촘촘한역사서일지도모른다.

무덤이나타난다.
길바로옆이다.
한많은사람의무덤은길가에자리해준다는말을어디에선가읽었다.
한이란결국소외를일컬음인가?
그래서죽어서라도사람의시선을받을수있다면
덜외로울것이란배려탓인가?
그리하여당신도외로운삶을살아서이렇게길가에자리하고있는가?

관속에누워있는죽은사람을생각해보다가
슬며시그관속에나를뉘어본다.
차디차게식은몸,묶어지는몸.관속에뉘어지는몸,어두움,못질.
더어두워진땅속….
외로울까?
생각의답이나오질않아서사진을찍는다는핑계로
한참이나무덤주위를서성인다.
산자의기억을위한존재거나산자를위한위로의행위로존재함이아니겠는가?
미래의내무덤에게말해준다.

갈잎나무들사이에서드물게소나무한그루서있다.
기골이장대하다.근육질의멋진남성같기도하다.
오래산나무들은하나같이남성적이다.
하늘을향해박차고올라가는선의흐름이여느소나무와는좀다르다.
마음이설렌다.
걸음을빠르게해가까이다가간다.
그리고가만가만목피를만져보다가(일종의전희다)품에안는다.
내가기대는지혹은내가안기는지도모르겠다.
나무를안아보라.바라보는나무와안아보는나무와는분명차이가있다.
사람들과의스킨십못지않게나무와도교감을이룰수있다.
모든나무를다안을수는없지만
이렇게특별하게마음에와닿는나무를안아보게된것은
작년봄‘조안말루프’라는여인의나무에대한사랑의기록을읽은후이다.
나무를정말사랑하는그녀는생물학선생이면서
생물학만이아닌열정과사랑을가르치고싶어한다.
그러면서학생들에게나무를안아주라고이야기한다.
나무에열정과사랑이있는가?
혹은나무를안은행위자체에열정과사랑이있는가?
그것도아니면열정과사랑은
나무를안는반복된순간들속에서발현되는
창조적모티브인가?
나는결심했다.안아보자!

어쩌면내가이렇게홀로산길을걷는행위도
잘생긴나무를만났을때안아보기위해서인지도모른다.
사실나무를안고있는사람의그림이란얼마나우스꽝스러운가.
그럼에도불구하고나는나무안기를시도해보았다.
그리고이제는나무들에게내마음의속삭임을들려주기도한다.
우리세번째다.너도기억하겠지.
사람들에게너를생각하며말했다.
새로운애인이생겼다고,
아주잘생겼다고,
너를이리바라보니반갑고홀로있을때면
네가생각나니우리는연애하는사이라고.

사람의동맥은하나이지만그동맥이신체를향하여뻗어나갈때
모세혈관의단계까지이르면무려10억개의분지가형성된다고한다.
어디몸만그러랴,
몸보다훨씬더섬세하게대응되는주체로서마음을해부할수있다면
그리고그갈래들을세볼수있다면모세혈관의수와비슷하지않을까.
가령사랑을하나의굵은동맥으로본다면
사랑이라는동맥에서파생되는
숱한생각과느낌들은그얼마나다채로운가말이다.

사랑의줄기중하나인연애를백과사전은소극적으로기록하고있다.
“인간의육체적기초위에꽃피는남녀간의자연스런애정”이라고.
아니,나무를안아보라.아마도연애에대한개념은이렇게달라질것이다.
“모든대상들의기초위에꽃피는자연스러운애정”으로.

나무라고하여성품이없을까?
활엽수의넉넉함은없더라도
소나무는날카로운성정답게생존의식이강해서척박한땅에뿌리를내리고
아주힘겹게숲을일구어내곤한다.
소나무가일궈낸살기좋아진숲을다른식물들이넘보기시작하면
소나무는아주서서히절벽이나난간쪽으로자리를옮겨가기시작한다.
풍성한햇빛이아니면존재하기어려운성정탓도있지만
북적대는저잣거리가싫어서스스로물러나는지도모른다.
늙어가는것도비슷한일이아닐까,
누군가에게밀려가는것이아니라
스스로한적한곳을찾아갈수있는여유로움.

솔방울하나가투욱떨어진다.
호주머니에주워담으며소나무에게말한다.
정표라는거지?
솔방울이단순히솔방울로보일때가좋을때인지도모른다.
무엇인가를알고깨달아간다는것은슬픔을알아가는일일것이다.
솔방울이저물어가는생명의투혼이라는것을,
기억되고자애쓰는안타까운사랑의표현이라는것을,
역사를이어나가고자하는지대한몸짓이라는것을
몰랐을때가좋을지도모른다.

편안해보이는바위에앉는다.
바람이서늘하다.배낭에서보온병을꺼내뚜껑에물을따른다.
따뜻한김이오르다흔적도없이사라진다.
작은플라스틱병에서마른차몇잎물에넣는다.
향기처럼연한물을한모금마신다.
박다(薄茶).맛없는차의이름이면서도
자신이만든차를겸손히부르는호칭이기도하다.
그러니참으로지금이차는박다이다.
더불어,혼자마시는차를이속(離俗)이라이름했는데
속세를떠남보다는속세의일을잠시접음의상태이려니
그역시차를마시는지금의나이다.
돌아가야만하는.

길위에서.(07,1.전북중앙신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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