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는 골수 도박꾼이다

이제생각해보면우리모두그꽃을난초라불렀으나
정확하게는노랑붓꽃이맞다.
Iriskoreana.어렸을때우리집화단가로그노랑붓꽃은가득피어났고
꽃이지는자리에서통통하고먹음직스러워보이는삭과가자라났다.
노랑붓꽃이피어있는화단가에서두손을오므리고찍은
아주오래된사진이있다.
무려사십오년혹은육년전사진인데
곱실거리는파마를했고통통하고뽀얀것이
그시절의다른사진들과는좀달라보이기도한다.
(옛시절의사진은왜하나같이까맣고말라있지않은가.)
아마도틀림없이입고있는간딴꾸는엄마의바느질솜씨일것이다.

사진은시간의감옥이란말을누가했던가?
그러나엄밀하게이야기해본다면사진속의시간은정지된것처럼보일뿐이지
실제로는무수한가지와꽃열매를시시때때로맺혀내고있다.
내어릴때의사진한장만해도그렇다.
아이는사진찍기를두려워하고있다.
혹은이렇게서라,저렇게해라,
낯설은아버지의친구분들앞에서있는것이두려워선지도모른다.

그사진이
아니그사진속에서어느순간부터무성의흑백영화가펼쳐지는것이다.
현재의나보다훨씬더젊은엄마가장독대와부엌을들락거리고
아버지의웃음과아버지친구분들의소요.
여름햇살,그리고난데없이마당가귀퉁이뒷간의참외모종이등장한다.
거름으로쓸쌀겨가쌓여있고
막내인나는요강대신혹은나무로엮어진높은화장실대신
일을보는곳이기도했다.
그러니그참외모종은아마도내가심은것이었는지도모른다.
한참동안자라나던그선명한초록잎새들……
그무성의영화는내마음대로확장할수도있고
끝없이이어갈수도있는내가감독하는나만의영화이기도하다.

아버지의깃발이란영화에서도사진한장이등장한다.
이차대전중가장많은사상자를냈던이오지마섬의전투현장이다.
수라바치산정상에성조기가세워져가는아직은다세워지지않는비스듬한깃대,
그리고그깃대를세우는다섯명의군사들.
사진의진실은실제정복한뒤성조기를올리는진짜사진도아니고
진짜깃발을소유하겠다는참모의의견에따라
다른깃발로바꿔세우는사진이었다.
그런데그사진한장이전쟁에지친사람들에게
아주새로운모습으로다가온것이다.
희망의모습으로.

사실도아니고진실도아닌데사람들은열광하기시작한다.
자신들이보고싶어하는것만을보게되는
맹목의순간을그사진이제시하였던것이다.

나는나자신에게속삭였다.
모든인류를품고
모든인류를먹여가며
모든인류를살려내는자연이
어느날거대한폭풍을내보내듯
회오리바람을일으키듯
쓰나미를분출하듯
사진한장속에도거대한태풍이숨어있구나.

진실을알고있는관람객들에게
영화속의그수많은정치인들그리고장사치들은
전부하나같이꼭두각시나하잘것없는인간군상에지나지않는다.
오히려그영화속에서는천대받고낮은자들
혹은이미말하기를그쳐버린죽은자들만이진정한영웅이고진실한인간이었다.
그러나우리모두는알고있다.
그리고나자신도역시그러하다.
천대받고낮은자들이되기보다는
혹은이미말을그친자가되기보다는
허황한것에감격하고스스로에게의미와가치를묻지않은채
그저현실적인상황을극복해가는꼭둑각시나하잘것없는인간군상인
유능해보이는현실적인사람이되고싶어한다는것을……..

“난초는골수도박꾼이다”
라는표현은나탈리엔지어라는뉴욕타임지의과학기자가쓴
‘살아있는것들의아름다움’이란책에서나오는문장이다.
난초는예의가없는꽃이라고한다.
거의모든식물들이벌과나비에게수정을도와주는대신
꿀을제공하나난초는인색하게도.
꿀인것처럼보이는물질을내놓을뿐실제꿀을주지않는다고한다.
결정적인수정의시기가다가왔을때만
그순간에올인을한다는것이다.
모아니면도라는도박꾼다운면모를난초는생식능력에지니고있다는것이다.
그대신난초는긴시간을품위있게기다릴줄아는식물이다.
신선하지않는가?
난초의도박이.
난초앞에선두려움깃든어린시절의나처럼.

과연우리의삶
삶의결어디에진실은존재하는것일까?

4 Comments

  1. 흙둔지

    2011년 1월 29일 at 1:20 오전

    부드러운곡선과녹색의안정감!
    그생명력이주는약한듯하면서도강인함!
    그리고그받은사랑에대한답을할줄아는蘭!

    녹색은싱싱한색이며
    희망과무한한가능성을지닌젊음의빛이며
    사그러들지않는생명의빛이지요.

    그런빛을가까이하게될때
    사람은절로감흥을받고정신이안정되며,
    긍정적인사고방식으로기능성에도전하는
    차분히사색하는사람이되곤하는것같습니다.

    이제는내가蘭을재배하는것이아니라
    蘭에게재배되어진다는느낌이들기도하니까요…
       

  2. 綠園

    2011년 1월 30일 at 2:39 오전

    난초,노란붓꽃이평상시에는아나로그시스템이지만
    결정적인수정의시기에는디지틀시스템으로바뀌는군요.^^
    난초에서도신묘막측한창조주의사랑을느낄수있네요.

    저는젊을때부터사진찍기를참좋아합니다.
    추억을사진에남기겠다는것이동기였지만아직도옛사진을보는기회는별로…

    워싱턴디씨에서살때미국해병대가성조기를이오지마섬에꽂는상을
    처음으로보았고사진도찍은것이있습니다.
    이장면을보면전투후에찍은것은아님이확실하지만
    감격적인승리를실감하게됩니다.
    아마도미국인들은더할거구요.
    진짜건가짜건간에요~^^*   

  3. 푸나무

    2011년 1월 31일 at 1:33 오후

    흙둔지보다는새벽이제겐훨씬더익숙하군요.
    정말새벽아저씨자나요.^^*

    난에게재배되어진다?
    만약에정말그리한다면
    도사되시는것아닌교?ㅎ~   

  4. 푸나무

    2011년 1월 31일 at 1:36 오후

    녹원님
    우리의붓꽃과
    밀림속의난은
    같은종류긴하지만그생김새부터가현저히다른것같습니다.

    진짜건
    가짜건…..
    정말그래요.
    가짜가더우리를슬프게혹은혹하게도
    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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