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날씨
차갑고맑고명료했어.
바람은그늘과합세해서겨울의위세를맹렬하게내보이고있었고
변심한애인처럼보이는,
겨울과의동거를청산한햇살은유유자적봄을품고있었어..
차를기다리는휑한거리에서는
겨울이활보하고있었고
경의선지하철안에서원당,구파발,지축가좌,신촌약간…..땅이아닌곳을지날때는
햇살을껴안은봄은노릇한기운을여기저기풀어놓고있더군.
봄은누가무어라해도그노릇한기운에있지.
가지만있는잎떨어뜨린나무들사이에서생강나무에연노랑꽃물들이는것도그이며
사람들이웃하며사는나뭇결거친산수유에게가장먼저다가서는것도
노랑이지.
아니그보다더일찍,
아마도지금쯤어디서고개를이미내밀었을
눈속에서솟아나듯강림하는복수초는노릇노릇의단초일거야.
어제,
몸에다가오는것은겨울이었으나
봄은이미지척이었어.
속해있는모임의좌장격인은퇴하신할부지목사님들과서울역그릴에서만나
그중싼만팔천원짜리정식을시켜서먹었어.
푸짐하기그지없었지.
야채샐러드의소스도괜찮고막구어낸마늘빵도바삭거리며맛나.
데쳐진각종야채의뭉근한맛도마음에들고,
감자조금생선가스조금스테이크조금돈가스조금……
밥은아예손을안대도배가너무불러,
식사후
거품하얗게인막갈아서내린커피도향기롭고,
서울역그릴이라는오래된것같은이름과는다르게경쾌하기그지없는식사이지.
그러나오늘아침그대의쪽지,
사모님,안녕하세요.
1층방입니다.
죄송해서몇번을망설였는데…
저쌀이나김치를조금만더얻을수없을까요…
번번이정말죄송합니다.
2월중하순에는밀린돈들을받을수있을것같아서
전기세꼭정산해드릴수있게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해서죄송합니다.
항상도와주셔서정말면목없고죄송하고…감사합니다.
-1층드림
빛나는청춘32살이면내조카들나이지,
요즈음아이들아무한테나사모님소리안해.
더군다나같은동네같은집에사는사람이라면
아줌마아니면할머니일텐데,
그대의공손하기그지없는사모님소리가
설흔두살과맞물리니참정말슬퍼,
쌀이나김치를얻으려하는상황도낯설어서……더욱슬프고,
무엇보다그대가그대자신을지칭하는단어가슬프기그지없네.
처음에는그댄일층방이었고
나중에는그대,그저일층이되더군.
일층방은그래도그대조금,아주조금그림자만큼이라도들어있었는데.
쪽지를거의다쓰고난후
그댄그저일층이되어버렸어.
방에서조차그대자신을완전히소멸시켜버린것이지.
그리고얼마후
그댄세상에서사라져갔고,
아마그대자신도채느끼지못했던,
그러나그대글속에숨겨있던삶에대한메타포였을까,
엄마는아침에
여전히춥다는내말에대답하셨어.
‘아야,설지나믄아무리추와도암것도아니여야,’
여전히춥다는내말에는설흔두살그대의죽음이들어있었는데,
가늘고섬세한연필로적혀진(혹샤프펜슬일지도모르지만)
글씨를보며그대에게말했으니.
나도연필을좋아하는데…..
단정한글체는성품을표방하는듯,
그래서아무에게나손내밀수없었던게지,
정말고독해서그아무나조차정말주위에없었던거니?
생면식은커녕도무지알길없었던그대,
그대가쓴몇마디글을하염없이바라보면서
그대에게말을건네고있는나,
그추위가나를춥게한다는이야기였는데,
하기는아마울엄마도그러실거야.
삶과죽음이하냥백지장한장만큼이라는것을아실나이니,
내가말한추위에엄마가말한암것도아니라는대답은
아주적절했을지도,……
추위가맹위를떨친다한들,
슬픔이가슴속에그득고여있다한들
암것도아닌세상은어제처럼그제처럼평이하게흘러,
언제부터밥한번먹자는사람하고날잡은시간이오늘이라,
그집연어샐러드가특히맛있고스프와천사채샐러드도열량이없으니
먹는기분이삼삼해.
메인디쉬인소고기샤브는오히려뒷전으로밀리고
무엇보다환한창으로내비치는호수공원길바라보는맛이쏠쏠하지.
아침에느꼈던슬픔은콩알만큼도내안에없는건가?
아니보다더정확해보자면그아릿한슬픔이있긴한데
내삶에아무런영향도미치지못한채
나는내빈뱃속을음식으로채워넣는다는거지.
그게한심하고싫어서,
그래서무심코말이나왔을거야.
적어도푸짐한음식을앞에두고
그대에관해이야기한다는것은그대에대한배려나예의가없는짓일진대
‘사실아침에무지슬펐어요.’
‘왜요?’
‘세상뜬설흔두살시나리오작가가쓴쪽지를보구요.’
‘아,근데그녀는왜알바라도못한걸까요?’
식탁건너편의총명한여자의말을듣는순간
녜에…..
대답흘리며얼른자리에서일어나접시에다다시이것저것음식을챙겨담으며
그녀가흥미있어할이야기의주제를궁리한후자리에돌아왔어.
엄청난눈이강원도에내렸대.
호들갑스러운신문은
하얀감옥이래나…….
그래,저런깊고고독한눈속에서나
그대의사라짐을이야기해야지이런번다한세상사속에서는
어떻게이야기한들,격없을뿐이지…
내기억속에그대저장했다는얄팍한말이지닌위로는
나처럼엷은,
이세상사람에게나필요한말일거야.
적어도그대가속한세상은
그대를배척해서
그대를떠나게한이세상의위로는필요없는곳이지?
그러길빌어.
총총<최고은을기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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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둔지
2011년 2월 14일 at 2:22 오전
요즈음가난한예술가들의죽음으로인해
자주우울한날을맞곤하는것같습네다~
시나리오작가라니곽지균감독의죽음도다시살아나고…
어떤이들은막노동이라도하지
어떻게굶어죽을수가있냐고비양거리더만요~
그런이들이예술을향한사랑의열정을알까요?
예술가들의자존심을알까요?
뭐자존심이밥먹여주냐고따진다면할말은없지만요…
과연그들을죽음으로몰고간것은무엇일까요?
자존심?수치심?배고픔?
여튼삼류소설같은이현실이부끄럽지않습네까?
이런우라질…돈이뭐라구…
슬픈게아니라씅질만납네다…ㅠㅠ
푸나무
2011년 2월 14일 at 2:38 오전
씅질이요?
하하,
여전히아직도나보담더절므신갑다.
이글을그제시작해놓고
머바빠서오늘아침에마무리해서올려놓으니
동아에는
소설가김영하가
아사가아니다했군요.
갑상선기능항진증,우울증……
알바하나도안한무책임한사람도,예술가의순교도아닌…..
평범한죽음도어렵군요.
4me
2011년 2월 14일 at 5:40 오전
누가어떻게죽었거나…이유와상관없이마음이싸아해집니다.
글을읽으며왠지처연한느낌이옵니다.
잔잔한피아노소리가더욱더….
의미있게출발하는한주간되시길…..
이나경이었습니다.
푸나무
2011년 2월 15일 at 3:59 오전
아,이름을바꾸셨어요.
댓글도막아놓으시고
나경님본받아열심히하려고했는데…..
하기는가끔이망상의세상이
현대의요뮬이지싶기도해요.
그래도자주뵈는거지요?
이제막친구되었는데^^*
느티나무
2011년 2월 15일 at 4:49 오전
인터넷으로이뉴스를듣던날,
홀로죽음을맞이하여야했던한젊은영혼,
그시간들이자꾸떠올라
많이많이아프고슬펐더랬습니다.
부모,친척,친구들을곁에두고도홀로죽음과맞설수밖에없었다니…
그분의명복을빌어드립니다.
푸나무
2011년 2월 16일 at 7:05 오전
젊은그이의죽음이
사람들의마음을두드렸어요.많이…
그래도슬프지만
그래도….
그렇지요.
아무리그래도
이곳은조금봄기운이생겨나요.
아,차에서산자락을보니
어머산이요.
임신한,
임산부처럼약간태가달라보였다고나할까?
약간수런거린다고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