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보는글씨체였다.
단정하면서도아주야무져보였고오동통한가하면가느다란느낌도있었다.
무엇보다섬세한듯어여뻤다.
사실누우런바바리와상복까지해서겨우두세벌옷으로버티는
민낯의탕웨이보다자막글씨가훨씬더어여뻤다.
디자인하는사람들이고소를내뿜으시겠지만
하여간글씨체가이뻐도영화보는기분이좋구나,라는색다른경험이었다.
세번째리메이크되었다지만내겐처음이었다.
감옥에서사흘동안세상에외출을나온여자와쫒기는남자와의사랑이야기,
너무나유명한?혹은빤한?줄거리,
하지만그래선지더열심히집중하게된다.
빤한스토리를세번이나리메이크된영화를어떻게다르게보여주나가
이감독의관건이었겠지.
<만추>는적어도겉멋은없는영화였다.
멜로영화답게말랑거리거나사람의감정을요악스럽게움직이게하기보다는
그저가만히바라보게하는영화였다.
가장멜로적인요소라고한다면시애틀이란지명이지닌로망과
자주내리는비,차조차떠나지못하게붙잡고야마는
ㅡ마치사랑을잡아두고싶은열망처럼보이는ㅡ깊은안개정도다..
사실그안개도
그들의외로움,한계,앞이보이지않는절치의순간등을은유하는힘이커서
로망보다는어떤임계점으로작용하는듯했다.
현빈은시크릿가든의모습을벗고허리우드식연기를제법했다.
약간건들거리며단벌옷의미소와성큼거리는걸음걸이로배우다웠다.
그러나그보다는탕웨이의힘이더큰영화였다.
사랑에상처입고다시그사랑에배신당하는,
아무도그녀에게다가서지않는,
그래서울지도못하는외로운여인애나.
애나는훈이알아듣지도못하는중국어로자신에대한이야기를한다.
훈은하오(좋다)화이(나쁘다)알고있는중국어두마디로그녀의이야기를듣는다.
무엇인가를안다는것은전혀중요하지않다는것을보여주는대목이다.
전혀알지못해도사랑할수있다는것을섬세하게전달해주었고
아는것과사랑은전혀별개의것일수도있다는것을응시하게한다.
수많은장면들이하나의팩트를전하기위하여소모되는영화보다
한장면으로인해수많은것을연상하게하는영화가힘있는영화다.
그대목에서
얼마전에읽은김훈의<내젊은날의숲>이기억났다.
단한번도내밀한주인공의감정이기록되지않는글이다.
아니무수한내면의속을더듬는글이었지만
그내면속의어느부분에아주단단하게꼰새끼줄로금단을정해놓고
그금단속으로는절대들어가지않는글이다.
금단은<사랑>일수도<존재>일수도있다.
어느때그금단속으로들어설수있을것인가?
그래서가쁜독자의호흡을작가는특유의유려한문체에서쉬게한다.
기대와는다르게
글이끝나도록그들은서로를향해아무런행동도어떠한말도하지않은채
헤어진다.
“만난지하루사랑에빠졌습니다.”
만추의타이틀롤처럼따라다니는문구였지만
“만난지하루,그들은서로를위무하게되었습니다.”
나는그렇게바꿔읽는다.
사실사랑보다더큰것은‘위무’가아닐까,
외롭고지친자들에게사실사랑은멀고아득하다.
쉴만한의자,등을기댈만한언덕,향기로운커피한잔,구수한빵냄새,
(실제감옥에서나온애나는훈이만나자고한안개짙었던장소에서
큰그릇의커피한잔과빵을앞에두고오지않는훈에게인사말을한다.)
적막한키스와따뜻한포옹,
그들의처음이자마지막키스는짙은안개속에서이루어진다.
애나는감옥을향해가야하고
아내를사랑한,그아내가사랑한훈을살인자로몬사람과의만남,
그리고경찰차의삐요삐요소리……
짙은안개는애나와훈의상황을요약해서보여주기도하지만
어쩌면그들에게허락된마지막위무의장소이다.
모든사람,모든것들과구별된,
둘이함께해서더욱외로운애나와훈을
짙은안개가
더큰외로움으로물들여간다.
<내젊은날의숲>이결코그려내지않는‘금단’속에서
<만추>는시작된다.
또한<만추>는
<내젊은날의숲>에서펼쳐지는일상이바로<금단>이다.
인생은고독,그것이다.왜냐하면인생은남을잘모르기때문이다.
헤르만헤세의말이다.
내젊은날의숲(양장)
저자
김훈
출판사
문학동네(2010년11월10일)
카테고리
국내도서>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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