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안당의 첫 손님, 쓸쓸하겠다

같은경기도면서도남쪽으로내려가는길에는봄기운이짙다.

무엇보다한강물살이햇살과함께빚어내는은빛일렁임은아,눈부셔,봄이네.를

저절로중얼거리게한다.

투명한햇살은마에스트로,흔연하고부드러운바람은오케스트라,

고요하게흘러가는강물은봄만이빚어낼수있는순전한악상.

그리하여빛나는물살의편린들은틀림없이강림하시는봄의여신이휘날리는옷자락,

그모든것들이합하여거대한플로어가되고화려한왈츠의제전이시작된듯싶다.

실제깊은땅속보이지않는곳에서움터오르는여린순이나나무의꽃눈보다

오히려저빛나는은빛물살은봄의생기로가득차고발랄하다.

며칠전보다확실히산빛도다른것같은걸요.

동승한지인의은근한말에도봄을안은아련한산빛들어있다.

초등학교일학년즈음이었을까,

따악이때만한계절이었다.

서울보다는훨씬더봄의기운이이르게오는남쪽인데도내고향보성은

지대가약간높아봄이아주짧은곳이었다.

봄오나,기웃거리며옷소매깃여미다보면여름이와있었다.

더불어근접한바다탓에안개는자주출몰했고그안개덕에

차맛이깊어지는곳이었다.

엄마뱃속에서부터다니던예배당은옛날의예배당이거의그러하듯

약간높은산위에홀로있었다.

사람이잘다니지않는호젓한산길을걸어가노라면진한소나무향기처럼무서움도

짙게풍기는길이었다.그래서누군가와꼭함께그길을가곤했는데그날은혼자였다.

혼자라는사실을모르는채무심코걷다가혼자구나,라는사실을인지한순간의공포를

무어라표현해야할까,

사위는따뜻한햇볕이환하게내리비치고있어밝고환했지만또한무섭도록고요했다.

혼자다.무섭다.가슴도근거리는소리가귀에들려온다.

어린발자욱이나뭇잎스치는소리에도온몸이긴장한다.

달리고싶지만쉬달려지지도않는다.다리는갈수록뻣뻣해온다

지금생각해보면그붉은흙은아마눈이얼어있다가녹으면서같이무너져내린흙이

아니었을까,혹순간의착시인지도모른다.

왜냐면그상황이썩그리논리적이지가않기때문이다.

약간휘돌아진산길을막벗어났을때였다.

갑자기흰소복을입은할머니들이나타났다.셋,넷?몸은아주자그마한,

모두하나같이머리에흰수건을쓰고있었다.

그할머니들이붉은흙구덩이에앉아서

무엇인가를먹고있었던것이다.

그순간의공포는지금도매우선명하다.

숨이훅들이켜진뒤내쉬어지지않았고그놀라움이얼마나컸던지

잘걸어지지도않던다리가마치날기라도하듯저절로달려졌던것이다.

두번정도넘어지고다시일어나고숨도쉬지못하면서달리고난후에야

산길이끝나고마을길이보였다.

할머니들은아마무덤에사람을묻고오는길이었는지도모른다.

흰소복에머리수건,틀림없이젊은이들은잰걸음으로걸었을것이고

나이드신할머니들은뒤쳐져서쉬는길이었을것이다.

하지만만약에그렇다하더라도왜하필붉은흙구덩이속인가말이다.

햇살따스하게비치는마르고건조한풀밭위를놔두고,

그리고내기억이정확하다면

내오른쪽그할머니들이앉아있던쪽은분명응달진곳이었다.

햇살은따스했지만그늘진곳에서는아직도옷깃을여며야하는날씨임에도…..

봄의왈츠가시작되는눈부신강줄기를드문드문바라보면서

나는오래전의그서늘함을기억해내고있었다.

공포와함께각인되어있는붉은흙구덩이속의할머니들,

사실이던사실이아니던그것은이미중요하지않다.

새로운조합을통하여새로운이미지를창조해내는

기억의저장창고는그누구도침범할수없는곳이니,

할머니들이앉아있던그붉은흙구덩이는

내게언제나죽음과함께무덤을연상시키곤했다.

오늘의산책지가아마도납골당이어선지도모른다.

사람을만나러납골당에간다는지인을따라카메라를들고나선것은.

아직한번도실제납골당을가보지못한것이이유라면이유였다.

봉안당(奉安堂)이란케이에스규격단어대신여전히납골당이란일본식어휘가강세이다.

그이유가어디에있을까,

봉안당이란조심스럽고부드럽지만주는이미지가약한막연한단어보다는

납골당이라는실제적이면서도강렬한,

뼈를모신다라는귀기어린어감이현대인의구미에더맞는것일까,

양평두물머리근처의막국수집에서늦은점심을먹고

이제막공사가끝난납골당으로들어섰다.

거대한돔형식의입구,휘황찬란한대리석,

십여년가까운긴세월동안얼른계산되지않는많은돈을들여지었다는

(건물때문이아니고동네사람들과의문제해결때문에)

죽은사람의집은차갑고거대하고화려하면서도을씨년스러웠다.

바깥보다훨씬더차가운것은추위탓일까,

죽은사람의음기탓일까,를

설왕설래하며이곳저곳을들여다보았다.

뼈를담은항아리를넣게되어있는납골당은죽은뒤에도여전히

현세의돈에따라그위치가결정되었다.

가장눈에잘보이는중간층인로얄층은비싸고

천정아래나바닥위몸을구부리거나길게늘여야볼수있는자리는싸다고했다.

모든뼈들을장악하고도남을중앙의거대한자리는물어보지도않았다.

아주조그맣고섬세한이야기하나가있다.

잘들여다보면거기사후의세계가설핏보이기도한다.

부자의잔치상에서떨어지는부스러기를먹던거지와

날마다잔치상을차리던부자가죽었다.

그둘사이의거리가사후에서는얼마나멀던지부자가말한다.

거기그거지나사로의손끝에물한방울만….

얘,너는살았을때온갖복을다누리고저거지는온갖불행을다겪었다.

그래서그는여기에서위안을받고너는대신고통을받는거란다.

죽음뒤의세계가있다면,

그리고모든사람이그것을인지한다면세상은얼마나달라질까,

세상에남아있는자가

죽은자를위하여하는모든행위는

엄밀하게본다면

자기위안이고자기위로가아닐까,

영혼이떠나고다시物이되어버린육체를상상할수없는높은온도로

녹여내고남은뼈를다시가루내어썩지않은아름다운항아리속에넣어

홀의정면가장눈에잘띄면서도다른뼈들과는전혀다른위치에넣는다한들

그리하여

남아있는자의애달픔이나그리움,슬픔은조금상쇄될지몰라도

죽은자와는아무런상관이없다는것을

우리모두알고있는것이다.

삶과죽음처럼분명한것하나는

죽음뒤의세계는온전히죽은자의몫이라는것이다.

납골당주차장을막빠져나오는데검은장례차량이들어서는것이보였다.

아첫손님인가봐,쓸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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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시작되고뭔가가끝난다.

시작은대체로알겠는데끝은대체로모른다.

끝났구나했는데또시작되기도하고

끝이아니구나했는데그게끝일수도있다.

아주오랜세월이흐른후

아그게정말끝이었구나알게될때도있다.

그때가가장슬프다./황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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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골당건너편의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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