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시계와 법정
<백과사전에서펌>

서가의책을약오분의일쯤버렸다.

옷버리는것보다서운했고그릇버리는것과는비교할수도없이애틋했다.

허망한마음을오에겐자부로선생이잡아주었다.

석학이자소설학자도서재의책을정리하는데우리같은필부의책들쯤이야……

전화기저쪽에서언니가물었다.

너한테법정의무소유있지않았니?그것두버렸어?그게인터넷경매에서엄청나더라,ㅋㅋ

찾아보진않았지만아마버렸을껄,왜냐면내책은저냥반이솎아냈고

나는저냥반책을주로솎아냈거든,아주경쟁적으로…….

그러고보니나도법정스님을한번알현한적이있다.

일부러찾아가서만난것은아니지만돌아가신분이니알현이라함도무방할듯,

봄은당연히남쪽에서부터시작된다.

사계중에서가장소녀다운계절이라면봄이아닐까,

하여봄은특히이른봄은진중치못하고가벼우며날렵하기그지없다.

오나하면사라져버리고자리잡았나하면두리번거리게하는변덕쟁이이다.

그런봄이가장안온하게자리잡은곳이선암사뒤쪽암자마당가라고나는생각한다.

왜냐면이월중하순무렵

그때봄은어디에서도아직멀고멀었는데

그암자마루위에앉았을때나는확연한봄을보았던것이다.

마루위에서바라본마당은여전히한겨울인듯딱딱해보였다.

그러나자세히바라보니콩알만한순들이아주조금씩솟아나있었다.

햇살은마치호미같아,

굳은땅을파내주는,

같이간친구에게부드러운봄햇살과어린순들을바라보며그런말을한기억이난다.

그때승복을입은스님두분이나타나더니마루에앉았다.

한분이어디선가낯이익다는생각을했다.

기둥하나가,(혹은두개가)가운데있고우리는양쪽에약간의터울을두고앉아있었다.

그낯익은스님이호주머니에서회중시계를꺼내시간을보았다.

금장(설마순금은아니겠지)이된한눈에보아도아주고급스러운시계였다.

그회중시계를보는순간,

나는깨달았다.

아하,무소유를쓴법정스님이구나.

맞아,그분이송광사무슨암자엔가계신다고했지.

어찌해서얼굴을대할때는낯이익네,정도만생각하다가

그분의호주머니에서나오는금장회중시계를보는순간

그분이법정스님이란것을알게되었을까,

여전히그순간을미스터리하게기억하는것은그분의글탓일게다.

장난기발랄한이십대초반의나는그분에게서슴없이말했다.

무소유와회중시계가어울리지않네요.

엉거주춤한그분의미소,

아직젊은아이의단편적인질문은얼마나당황스러운가,

보나마나그분을흠모한어느분이아주많은궁리끝에선물을했을것이고

필요한물건이기도하고,

정을내치지못해아직몸에붙이고있었을터,

낯선젊은이에게그모든구비구비한과정을설명하는것도이상하고

그렇다고질문을받았으니답을안할수도없는인격체시니,

그래서그런엉거주춤한미소를지으셨을게다.

그젊은시절나는어느목사님께도비슷한질문을드렸다.

‘길가에서한무화과나무를보시고그리로가사잎사귀밖에아무것도찾지못하시고

나무에게이르시되이제부터영원토록네가열매를맺지못하리라하시니

무화과나무가곧마른지라’

이대목에서였다.

왜애꿎은무화과나무를마르게하느냐고?

예수님이아주잔인한분아니시냐고?

삶과죽음에대한도발적인질문을

속으로삭히는힘이비축되어가는것,

이것이나이들어가는태가아닐까,

송광사에서선암사에걸쳐있는조계산을넘어오셨고

다시넘어가신다는말씀도들었다.

그분들뒤를따라서조금쯤산을오르다가우리는오던길을뒤돌아다시내려왔다.

청매꽃봉오리에살이탱탱올라있는것을내려오는길에서야보았다.

오락가락하던봄은여상한모습으로올해도오락가락하며

난소녀여,

난늙지도않아,하는데

그분은세상을떠나셨고

이십대의피어나던시절그분의무소유를읽던젊은이는

이제오십대중반아지매가되어서

봄이올락말락할무렵

봄준비를한답시며낡고오래된책을고물장사에게넘겼다.

7 Comments

  1. 박산

    2011년 3월 21일 at 6:57 오전

    저역시최근사무실제방이전으로

    몇박스의책을내친적이있습니다

    버리고사는건세상사보편적이치지만

    그러기쉽지않은현실입니다

    벗흑둔지님방에서흘러들었습니다   

  2. 모랫바람

    2011년 3월 21일 at 7:53 오전

    블로글괜히열었나하는생각이드는요즘입니다.
    이어나가기가싫어서ㅋㅋㅋ
    그래서이방도아주가끔식들여다보고~

    언니에게전화가왔지요.제가남기곤온책을모대에기증해야되겠다구요.
    집이좁아서제가가득남긴책을처분해야되는데동생들도별로반가워하지않고해서
    어쩔수없이대학에기증하겠다는전화에눈물이두바케쓰나나왔읍니다.
    넘,넘서운해서요.
    독서의즐거움을몰라공짜책을마다하는동생들에게도서운했고.
    이곳에서그냥죙일울었읍니다.ㅎ
    남편의위로도소용없었고지금도그날의전화를생각하면
    가슴이콕콕찌르도록아프답니다.

    그런데지금은이곳에서책을싸놓고사네요^^
    남편이툭하면들고들어와서ㅋ
    그런데속도에문제가있어한국책처럼빨리읽지는못하지만
    그맛또한일품이라느리지만꾸준히ㅋㅋㅋ

    그나저나저책들아깝다아!   

  3. dhleemd

    2011년 3월 21일 at 5:59 오후

    그것이박스속에모든것을구겨넣어야하는삶의비애이지요.
       

  4. 랜슬럿

    2011년 3월 21일 at 10:52 오후

    아..회중시계갖고싶다.법정스님이저주셨으면ㅎㅎㅎㅎ   

  5. 푸나무

    2011년 3월 22일 at 12:21 오전

    흙둔지님과벗이면저하고도벗이될런지요?ㅋ~
    박산이란이름은본명이신지요?
    저두외자이니그또한벗이될가능성이높은터~~가아닐런지요?

    좋은책도늙어지면버리게되지만
    쓰잘데기없는책도많더이다.
    그쓰잘데기없는책을먼저버림으로
    버림에대한용기가생겨서
    과감해지더군요.
    가만,이것미래의제이야기같기도합니다.

    반갑습니다.
    qjflsms   

  6. 푸나무

    2011년 3월 22일 at 12:24 오전

    가만보면사막가차이사는그대는
    글보다더좋아하는것이분명있을것같아,.
    그러니블로그를널어놓고도후회를하는게지.

    책을버렷다는소리르듣고죙일을울었다고?
    바케스처럼눈물을흘리며?
    세상에사막가차이사는그대는
    사막의정한을가숨속에
    하늘처럼땅처럼담고사는가보이,

    그나저나다른나라말로책을읽을수있다니
    정말부럽다아!   

  7. 푸나무

    2011년 3월 22일 at 12:25 오전

    버림으로얻어지는것도있겟지만
    버림자체가

    비애일수는있겠지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