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깊게 숙이거나 다리를 접게 되는 순간

전주한옥거리를여기저기기웃거리다가
나지막한대문이있는찻집으로들어섰다.
흙바닥에여나믄개의돌이박혀있어
이리오세요,

여기는본채여요,
여기는사랑채여요,

인도하는친절하고다감해보이는집이었다.
무엇보다담곁에바짝붙어있는손바닥만한뜨락이미소를짓게만들었다.

겨울이라식물들은깊은잠속에빠져있어발만조금내비치고있었고
소소거리는작은대나무몇그루가위로솟아있는
정원이란단어가무색한뜰이다.
아,정말작다.
저절로감탄사가나오는데사실그<작음>이주는만족감은
넓고잘꾸며져있는부잣집정원의것과는비교할수없는충일함이있었다.

엉덩이붙이고허리대면딱맡는툇마루에한참앉아서손바닥뜨락과
대나무를이윽히바라다보았다.
저물어가는햇살이그자그마한집안으로손색없이들이차고
아마조금있으면어둠도그러하리라.
툇마루밑에는흰방구신과낡은듯한털신
그리고손님들의구두와하이힐이가지런히놓여있었다.

아름다움을느낄때마음은슬퍼진다.적요해진다.깊게가라앉는다.
시간을정지하고싶은욕구가마음속에들이찬다.
이는아름다움에대한격렬한소유욕이다.
그러나그누구라도진정한아름다움을소유할수는없다.

그러하지않는가?

어느장엄한산위에올랐다고치자.
가파른산길을걸어올라온피곤한다리를잠시멈추고
걸어온길을바라본다고치자.
거기단한번도보지못한구름의바다가아득히펼쳐지고
그구름위로자그마한산봉우리들이저기저먼데까지
야트막하게솟아있다고치자.
그순간내속으로온몸무너질정도의
색다른광풍이휘몰아치듯들이찰게아닌가?
그표현해낼수없는아름다움이너무커서울고싶지않겠는가?
두고내려오기힘들어서아무리뒤돌아보아도
산을내려와야하지않겠는가?
아니산을내려오기전

이미그장엄한아름다움은

사라지고없을것이다.

영국의미술학도이자건축가이며비평가인존러스킨은
부모그늘이넓고행복한사람이었다.
그들가족은아름다움을찾아수시로여행을찾아떠나곤했는데
알프스산맥이랄지프랑스북부와
이탈리아의중세도시를마차로순례했다고한다.
그것도그냥스쳐지나가는것이아니라
아름다운풍광이펼쳐지면거기멈춰서서한참동안구경을했으며
하루에40키로이상을가는법이없었다.
그리고이여행방법은러스킨이평생동안사용했던방법이기도했다.
당연히러스킨은아름다움에대한특출한시각을지니게되었고
아름다움을소유하는방법에대해끊임없이사고했다.

러스킨은아름다움을소유하려는단하나의방법은
우선아름다움을이해하고
아름다움의원인이되는요인들을의식한뒤
그아름다움에대하여쓰거나그리는것이라고결론지었다.
이어서그는글쓰는방법을배우듯데생하는법을배워야한다고도말했다.
데생을연습해야만하는이유는화가가되기위해서가아니라
<보는법>을알려주기때문이라고말했다.

나는이<보는법>에주목한다.
사실러스킨처럼특별한행운의사람도있지만
대다수의사람들은아름다움에대한선한의도와갈망을
마음속깊이감추인채일상의되풀이속에서살아가고있다.
평범한일상과반복되어지는시간들,
그리고무수하게보아온풍경속에아름다움이없을것인가?

이른봄햇살이조금길어질무렵
양지바른쪽에는짙은청보랏빛의
이름도약간코믹한큰개불알풀꽃이피어난다.
열매의생김새가개의그것과비슷하여그런이름이부쳐졌다고하는데
그이름이주는뉘앙스때문에말무리되어있지는않지만
소수의사람들은봄까치꽃이라부르기도한다.

키도작고꽃송이도작아<보는법>을모르면
수많은봄이스쳐지나가도이꽃은보이지않는다.
그러나어느날이꽃을알게되고
이꽃을<보는법>인
허리를깊게숙이거나다리를접게되는순간,
짙은초록사이에서꽃대궁약간솟아올라피어있는
네잎청보랏빛의꽃은당신(you)앞에현현하게된다.

겨울의끝자락속에서여전히땅은어둡고단단하다.
특별히겨울땅은차가운온도와습기없는시간들로인하여
다른어느계절보다강파르고견고하다.
그런데이작은풀들은어떻게이단단하고견고한땅을뚫고
이렇게솟아오를수있는가?
도대체이연약하면서도지극히강한힘은어디에서비롯되어지는가?
이아름다운보랏빛은어디에숨어있다가이렇게나타나는가?
도대체

이작은꽃을향해불타오르는매혹점은
꽃과나사이

어디쯤에있다가점화된것일까?

러스킨은말했다.

제자가그린형편없는그림을앞에두고.
“나는보는것이그림보다더중요하다고믿습니다.
학생들이그림을배우기위하여자연을보는것이아니라
자연을사랑하기위하여그림을배우라고말하겠습니다.”

우리집뒤안에서찍은작년봄까치꽃

2 Comments

  1. 모랫바람

    2011년 3월 29일 at 6:20 오전

    아름다움은가슴속에소유해두면
    두고두고음미할수있답니다.~~~   

  2. 4me

    2011년 3월 29일 at 10:22 오후

    저도러스킨처럼하루에40킬로이상을넘기지않는그런여행이하고싶어집니다.
    카메라하나들고오솔길이라도걷다보면
    어느새삐져나온새순들과반가운만남을가질수도있겠지요.
    봄맞이를작정하고나서야할듯합니다.
    푸나무님의정성처럼정갈한글잘읽은행복한아침입니다.
    좋은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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