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ㅡ 지루하고 길다란 리뷰

‘새로움’은예술의속성중에서큰부분을차지한다.

접하기쉬우면서도문화적으로풍성한만족감을주는영화예술도마찬가지다.

새로운대상과새로운소재새로운스토리와새로운결말을찾는것이그리녹녹하지는않다는것이다..

하여익숙한것들의비틀기가시작되고

성스러운것에서조롱거리를찾아내며

진지함에대한경멸과무시는익숙한포맷이되었다.

잔혹하게사람을죽이는방법은범법자들의텍스트가되기도하며

버젓한포르노가영화라는이름으로포장되어사람들의시선을끌고있다.

그러나이런제증상들역시금방익숙해지고단조로워질수밖에없다.

도요토미에게다도를가르쳤던일본의다성(茶聖)센리쿠는

자기집의나팔꽃이아름답다는이야기를했다.

도요토미가센리쿠의집을찾았을때,

나팔꽃은꽃병에꽂힌한송이뿐이었다.

히데요시의황금다실에서마시는차한잔의맛과나팔꽃한송이앞에두고마시는차한잔의맛은

어떻게비교해야할까?

그만족도는?

그풍미는?

평생을화려함의극치에서살았던솔로몬의영광이들에핀한송이백합화만도못하다는비유를체감하기란

현대인에게는매우난해한대목일것이다.

그렇다면우리에게아주익숙한동화치르치르와미치르의파랑새를기억하면서

가능하다면일단의함의ㅡ

모든삶의의미와가치,즐거움행복은그대상에있지않고대상을바라보는나라는주체에있다는ㅡ

를견지하며다큐멘터리야스쿠니를바라보도록하자.

야스쿠니신사는천황을위해죽은약250만명의사람들의이름과출신,

그리고죽은날짜와장소가적힌위패를지닌일본에서가장큰신사이다.

매년8월15일이면야스쿠니신사앞은

과거와현재뿐아니라미래까지혼재된역사의소용돌이가휘몰아치곤한다.

리잉감독은십여년의짧지않는세월동안야스쿠니신사앞에서벌어지는일들을관망하듯조망해낸다.

자신의의견을개진하거나정치적인어떤의도도표현하지않은채

그저많은사람들의이야기를가만히서서듣고바라볼뿐이다.

얼핏흔들리는카메라워크는답답할정도로단순하고정직하다

전형적인마초이즘에젖어있는남자셋은대영박물관이야기를하며

그들은큰해적이고일본은아주작은해적일뿐이라고호탕하게말한다..

두여인도기억속에서죽은형제와어머니를그리며고이즈미의신사참배는옳다고소곤거린다.

누군가는난징대학살,종군위안부,야스쿠니(아마야스쿠니참배반대세력을말하는듯)가

일본을위협하는새로운3개의핵이라고도말한다.

대다수의일본인들은그렇게확신에차있다.

그러나야스쿠니신사앞에서도소수의정의는존재한다.

식을행하는경직된다수앞에서젊은이셋은정의를외치다가피투성이가된다.

대만의원주민유족대표는명징한목소리로묻는다.

당신이라면당신의가족이원치않는다른나라전쟁터에가서죽었는데그곳에그대로두겠느냐고,

야스쿠니신사에는대만사람들은2만8천명,

한국사람들은2만2천명정도가유족의동의없이합사되어있다고한다.

유족들의반환요구에신사쪽은

지금은모르지만죽을때는일본인이었다.

라고한결같이대답한다고한다.

내부비판자인어느승려는군복을입은아버지의영정을절의벽에걸어두고있다.

그의아버지는당시스님이었으나일본이패전기미를보이던1943년징집되어전쟁터로끌려갔다.

그젊은스님은살생의현장에있어야한다는사실을고통스러워했고

그의아들은국가가종교인까지징병하는군국주의에기반을둔통치를비판한다.

일본의비열한한단면을나타내는데이보다더한예는있을수없다며

아들주지는덧붙여말한다.

훈장을주며그훈장과칭송으로가족을잃은슬픔을풀수도없게만든다고,

<다큐멘터리든픽션이든,핵심은우리가엄청난거짓말을하고있다는것이다.

영화예술이란거짓을말하고그것을믿게만드는것이다.(략)

중요한것은일련의거짓을사용하여더큰진실에도달하는것이다.>

이란의감독압바스키아로스타미(AbbasKiastrostami)의말은

영화의단면을정확하게직시한말이다.

키아로스타미의말처럼(그의의도와는혹다른방향일지라도)

야스쿠니는진실이라고포장한거짓된사람들의이야기를사용하여커다란진실에이르게한영화이다.

야스쿠니는진실을외면하는수많은사람을보여준다.

믿고자하는사실을진실이라고외치는사람,

진실은불편하고거짓이편해서진실로믿어버리는사람,

거짓인줄알면서도진실이라고외치는사람,

맹목도있을것이며애국심으로위장된거짓도있고다수라는태풍속에갇힌사람도있을것이다.

그러나진실조차자리하기어려울진대진리는어떠할까,

투명한진실조차자신의삶에합하지않다는이유로거침없이버리는데창조의섭리와구원,

리고미래를저들이깨달아알것인가,

야스쿠니신사앞의무수한사람들은갈바를몰라여기저기헤매는군중이다.

일련의거짓을사용해더큰진실에도달한다는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말은지극히성서적이다.

이세상에의인은없다하나도없다는말씀을정확하게관통한다.

다만우리는의인으로인정받을뿐이다.커다란진실=진리에도달할때,

이영화의실제주인공은90살의야스쿠니도를만든장인가리야나오하루이다.

주인공가리야나오하루의공간은하염없이정적이다.

칼을만드는대장간임에도불구하고타오르는불은오히려정적을강조해준다.

아마도틀림없이그가수십년동안해왔을

작은병에나뭇가지를씻어담을때들리는수돗물소리조차적막을더해준다.

그는소란스러운세상과는벼리된존재인듯보이고

잘늙은노인들이그러하듯

인자해보이며어느순간아이처럼천진해보이기도한다.

감독은가리야나오하루에게야스쿠니도의정신과동아시아전쟁에서의검의역할에대해질문하지만,

검에대한이야기에는대답하고즐거운듯말하면서도

그검이사용된대목에서는깊은침묵으로일관한다.

참을성많은감독역시그의침묵을길게응시한다.

그제서야관객은그침묵도답이라는것을알게된다.

그리고침묵의대답이얼마나두둑한뱃장의소산이며부끄러움을처리하는,

진실을외면하는약삭빠른처신이라는것도느끼게된다.

그가만든칼은난징대학살당시두일본인장교의포로100명베기경쟁시합에동원된바로그야스쿠니도다.1

백명을베고일백다섯명을베고….

사람의목숨을짚단처럼베는게임을했던시절,사람을많이벨수록

위대해지는칼을든군인들의묵은사진들이주는섬뜩함이란….

루스베네딕트가쓴일본문화서(文化書)<국화와칼>은

모순적인일본인의성품을한마디로표현한제목이다.

일본인은사나우면서도얌전하고섬세한미감과는달리냉혹하며군국적이나탐미적이라고했다.

이이중적인모순을손에는아름다운국화,허리에는차가운칼로표현해냈던것이다.

무엇보다일본인은죄나악에대한개념이일반의정서와배치된다.

가령성적쾌락은자연스러운것이므로죄가아니라고생각한다.

죄나악을극복하거나피해야할것으로여긴다기보다는

상황에따라적응하고그적응에따른일이므로죄에의해평가받지않아도문제가없다고여긴다.

어떤음악을들으세요?

야스쿠니도의장인이아주오래된테이프를튼다..

노래가아닌천황의목소리가그곳에서흘러나온다.

천황이지었던시와함께.

그는진지하고소박한모습으로아주오래된천황의목소리를아름다운찬양처럼경청한다.

칼을벼리는그의소망은명검을만드는것이다.

그러나그는.

보이는칼만이아니라여전히보이지않는칼을만들어내고있었다.

야스쿠니의한획을담당하고있는고이즈미는멋진수사력을지닌사람이었다.

신사참배는그저‘마음의문제’라며

전몰영령앞에서다시는이런전쟁이없어야겠다고다짐하는문제를

왜일본인이혹은외국인이왈가왈부하는가,

당당하게묻는다.

그의논리는인간적이며매력적이고여여하다.

그리고그는당당하게야스쿠니신사에와서참배한다.

그러나정말마음의문제에그치는가?

정말평화를원하는마음으로다짐하는가?고

이즈미의현란한수사는활짝핀국화였다.

야스쿠니는평화로운나라를의미한다고한다.

평화를위해그들의삶을희생한사람들을숭배하고애도하기위해세워진신사에서

1933-1945년동안무려8100자루의검을만들었다.

그리고그검은수많은사람들의목숨을베는데사용되었다.

야스쿠니도는일본인의평화에대한전혀다른시각을엿보이게하는확연한빙증이었다.

고이즈미가많은사람의반대를무릅쓰고신사앞에서고개를숙이는순간

아,섬광처럼깨달음이왔다.

그는칼에게고개를숙였고전쟁을우러러보았고수없이죽어간무구한생명앞에서

긍휼이없는사람이었다.

영혼을기억하는묵념이아니라죄를합리화한세련된포즈였다.

그는자유를말했으나자유가아니었다.

죄에의한속박이었고죄에의한구속이었다.

무엇보다그에게는회개가없었다.

국화속에감추어진그의날선검은회개없는자의열매였다.

오호라,회개가없이는자유함을얻을수가없구나.

죄에서놓임받을수가없구나.

그래서그분께서그렇게우리에게간절하게외치셨구나.

자유함을주기위해서회개하라,회개하라,외치셨구나,

사람이되는첫째방법으로회개를외치셨구나.

구원도은혜지만회개도하나님의은혜구나.

사실이영화는단순히야스쿠니의신사참배에대한옳고그름에대한이야기가아니다.

전쟁을일으킨일본인들의깨달음없는작태를여상히보여주고

극한이기적인모습이어떠한가에대한고발영화만도아니다.

자신의일에정진한장인의모습뒤에드리워져있는

수많은죽음의그림자를

바라보게하는것에서그치지도않는다.

일본인속에마치야스쿠니도처럼섬뜩한모습으로자리하고있는

천황에대한새로운각인만도아니다.,

감독의말처럼그가일본에띄우는러브레타만도아니었고

단순한반일은더더욱아니었다.

내겐이다큐멘터리가

내게서사라져가고있던어떤선(線)옳고그름에대한판단,

아닌것은아니라고말할수있는용기와지혜,

악과전혀다른선에대한투명한묵시처럼다가왔다.

우리가하는모든행위가비록약하고보잘것없다할지라도확신하는진리에대해

더견고해야한다는잠언처럼여겨지기도했다.

무엇인가를알아간다는것,

배워간다는것,

느낀다는것은이해한다는일이다.

이해한다는것은어느부분매우소심해지는일이다.

소심은취약하긴하지만‘인간적’인부분이기도하다.

러나야스쿠니를보고난후아는자의소심함이인간적인것이아니라역겨운일이라는생각이들었다.

올바르지못한신념앞에서도저리당당할진대

진리를앞에두고권면하는힘이없다는것은

용기가부족함이요

지성이마름이요

어리석은지혜탓이아니겠는가.

야스쿠니를지지하는수많은다수앞에서소수의용기가새로운길을만들어가는것은

지극히곧고침착하며아름다워보였다.

야스쿠니합사싫어요소송’항소심도패소 오사카지법,“야스쿠니합사는종교활동일뿐” <여성주의저널일다>후루카와케이코

[2010년12월21일,일명‘야스쿠니합사싫어요소송(靖国合祀イヤです訴訟)’항소심이오사카지방법원에서또다시기각되었다.정식소송명은‘영새부에서성명말소등청구사건’.야스쿠니신사에친족이합사된유족9명(그중1명은항소심에서원고본인소송으로분리되었다)이야스쿠니신사와국가를상대로합사의취소를요구한재판이다.페민회원이자,오빠들이야스쿠니신사에모셔져있는것이고통스럽다며합사취소를요구한소송당사자이기도한후루가와케이코씨가항소심패소와관련된소식을전한다.―편집자주]

그날도쿄야마구치에서멀리떨어진오사카까지달려와줬던많은방청자들이비오는오사카재판소현관앞에서입장을위한추첨을기다렸다.2층대법정에올라가는입구에서나를기다리던K씨가“감기기운이있어바로돌아가야한다”면서도나의찬손을양손으로감싸덥혀줬다.고마운일이다.

오후3시개정.마에사카미츠오재판장이우물거리는목소리로“본건각항소를모두기각한다.항소비용은항소인들이부담한다.”고말하고는바로사라졌다.방청석에서는“이유를말하라!”는성난목소리가빗발쳤다.

우리들원고8명의주장은두가지이다.첫째,전후신(新)헌법하에서국가의적극적인지원에의해야스쿠니신사합사가추진되었던것의위법성.둘째는야스쿠니신사합사와그지속행위는원고들이합사된희생자와가족의인연으로느끼는경애추모(敬愛追慕)의정에기인한인격권의침해이다.따라서영새부(신사,특히야스쿠니신사에모셔진사람들의이름,본적등을기록한명부-역주)등에서아버지나오빠의이름을삭제하라는것이다.

신교(信教)자유방패로합사취소불인정

▲판결후기자회견하는원고단.왼쪽에서두번째가필자후루카와케이코.사진제공-야스쿠니합사싫어요소송단

전후구(舊)후생성은전사자의정보를신사에제공하고,그비용을국비로충당하여합사가원만히이루어졌다.이번판결은그점에대해서는“합사라는종교행위자체를원조,조장”하는것이라고하여헌법의정교분리원칙에위반한다고분명하게인정했다.합사가국가의적극적인관여로이루어졌다는점을인정한첫사법판단으로서,큰성과라고할수있다.그렇다면전후의무단합사는모두정교분리원칙을위반하는것임에도우리의합사취소요구에고집스럽게응하지않는것은왜일까.

오사카지방법원은야스쿠니신사에도마찬가지로신교(信教,종교를믿는일)의자유가인정된다고말한다.합사및합사지속행위가신사의입장에서는그야말로교의와직결되는종교활동그자체라는것이다.따라서이러한활동이타인에대한강제나불이익을부여하는것이아닌한,자유로운종교활동으로보장되어야한다는논리다.

원고들은전사자와의사이에서느끼는‘경애추모의정에기인한인격권’이‘전사자를칭송하고감사하는’야스쿠니합사에의해지속적으로침해되어왔다고주장하지만,(법원은)사회일반의기준에비춰봤을때합사에의해‘칭송받고감사되는’사자의사회적평가가저하됐다는원고의주장을인정할수없고,따라서전사자에대한명예훼손이라고도인정할수없다는것이다.‘경애추모의정에기인한인격권’은이경우마음속자유의영역에머무르는문제로,법적으로보호할가치가있는권리나이익이라고는말할수없다는것이다.

즉알기쉽게설명하면,①야스쿠니합사를국가가지원했다고해도합사자체는신사가자율적으로행하고있다.②합사는야스쿠니의교의에따르는신교활동으로영령을현창(밝게나타냄.칭송하는행위)하고모시는것은야스쿠니신사의신교의자유에의한것으로당신들에게그것을강요한적은없다.이는재판관이국가와야스쿠니의옹호에열심이라는인상을주는판결이다.

“야스쿠니의감옥에서풀어달라”

▲일본제국국가신도의중추였던야스쿠니신사.

야스쿠니는패전까지국가신도(일본제국정부의황국사관적정책에의해성립되었던국가종교)의중추였다.정교분리를규정한헌법에서하나의종교법인이되었다고는하나,국가신도시절의합사를전통으로서계속유지하고있다.

신(新)헌법으로획득한사상의자유나종교의자유하에서야스쿠니의합사나전쟁관을견디기힘들어하는사람들이나타나는것은당연하다.특히유족이라면,사랑하는육친이침략군인인채로영구적으로제대하지못하고야스쿠니의감옥에갇혀있는현실을진지하게생각했을때,굴욕과분노가끓어오르는것이당연하지않은가.

이번소송의원고들은“국가신도시대와아무것도달라지지않은국가가준특권을받아합사를계속해온야스쿠니신사가주장하는‘신교의자유(모시는자유)’란대체무엇인가.”라고강하게반문한다.“나는삼촌이천황제와침략전쟁의찬미선전에사용되는것을용서할수없다.야스쿠니는전쟁신사다.”“전사는애도되어야할뿐칭송될수는없다.”유족들의말이다.

야스쿠니신사의합사자는244만6천명,그중전후합사는37만5천명,나머지는전후의신(新)헌법하의합사이다.그중에한반도출신자는2만636명,대만은2만7656명이일본군으로서모셔졌다.

한국인유족이희자씨등은현재도쿄에서합사취소를요구하는재판‘노(No)!합사’를계정중이고,오키나와에서도합사취소소송이1심패소를딛고3월에있을항소심을준비중에있다.‘야스쿠니합사싫어요’소송은12월29일대법원에상고했다.

※이기사는<일다>와제휴관계를맺고있는일본의여성언론<페민>에실린2011년2월5일자기사입니다.고주영님이번역하였습니다.

2 Comments

  1. Elliot

    2011년 3월 30일 at 1:58 오전

    일본인들이경제부흥에도불구하고서구인들에게갖고있는뿌리깊은열등감을
    떨쳐버리지못하는이유가바로이런후진적이고비이성적인사회구조때문이아닐까
    생각합니다.요즘은한국도그뒤를따르고있는듯한인상을지울수가없구요.

       

  2. 푸나무

    2011년 3월 30일 at 8:03 오전

    어느나라나그렇기도하지만
    특히일본은굉장히다층적인면이많은것같아요.
    감을잡기어려운….

    오늘은정말완연한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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