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년 전의 기억ㅡ 사막 위 묘지 샤오허

소륵으로부터동쪽으로한달을가면구자국(쿠차)에이른다.(왕오천축국전)

한달을걸어야닿는거리가도록지도에서는5센티도채안된다.

그러니가만히앉아서작게틀어놓은말러를들으며

실크로드를걷는다하여뭬그리이상한일일까,

비단길은하나도아니다

타클라마칸사막북쪽,천산산맥남쪽의신록지대를따라형성된

서역북로와

타클라마칸사막남쪽과곤륜산맥북쪽의서역남도길

그리고천산사맥북쪽을이르는천산북로길등세개의비단로가있다.

국립박물관에서하는실크로드와둔황전은실크로드의도시들,

실크로드의삶과문화

그리고둔황과왕오천축국전등으로구별되어전시된다.

수천년전의유물들을슬쩍한번눈맞춤한다하여무엇을알겠는가?

생각하면서도이상스레보통박물관의전시회에서느끼던

<박제>감은없이왠지그긴세월을통시적으로지나는듯

정다운느낌조차있었다.

맨처음본황금허리띠고리

보자,1-2세기면몇년전이냐?

그오래된시간전에서

지금봐도나같은사람은흉내도낼수없는이렇게나섬세한

황금고리띠를만들수있었다는것은사람의마음을아주아늑하게하질않는가?

시간을초월한정다움이새록새록솟아나질않는가?

긴소매실크상의,얼핏보아우리나라저고리와흡사하다.

2-5세기,2003년누란고성에서발굴된저고리란다.

그러나내가가장오래서서바라보고있었던곳은

누란의샤오허묘지앞이었다.

2002년타클라마칸사막동쪽에서발견된4000여년전의묘지다.

황량한사막가운데자그마한둔덕위의수백개의무덤들,

요새나성대신혹은비석대신메마른나무들이촘촘히박혀있는묘지

그렇다면저모래밭위에세워져있는메마른나무들이

아그나무들은백양나무라고했다.

무려4000년을지나왔다는이야기가아닌가?

살아있는생명체라할지라도살아있기힘든시간을

죽은나무가지나왔다니,

자세히바라보면부스러지고넘어져있는나무들도보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얼마나경이로운가,

도대체저모래밭속을얼마나깊게파고저나무들을심었다는말인가?

사막의모래위에세워진메마른나무가무슨힘이있어

담하나없는사막가운데에서저렇게나굳건하게자리하고긴시간을버텨왔다는말인가?

‘들어가면나올수없는곳’이라는의미를가진타클라마칸사막

그사막위의묘지샤오허!

샤오허묘지에서출토된나무미이라도있었다.

나무를깎아얼굴과몸통,

다리를만들고눈과입을조각해만든사람형상의미라.

나무미라는출토당시배모양의나무관에매장돼있었다고한다.

사람이타지에서사망해시신이없을경우

나무미라를대신해안장한것으로추정되는

세계적으로매우진귀한사례라는설명이있었다.

가족중의누군가가숲이나사막에서돌아오지않으면

대신나무로미이라를만들어장례를지낸것이다.

남자의관앞에는여음상을조각한노기둥을,

여자의관앞에는남근상모양의노기둥이세워져있다고한다.

성기를표현한노를무덤앞에둔것을보면

생식숭배사상이있었을거라고추론이적혀있다.

배모양의관.

사막에서사는사람이당연히그리워할것은

물이나바다가아니었을까?

사막같은삶은이생에서족하니

저생에서만큼은배를타고다니라는염원이었을까?

거침없이미련없이물을타고흐르듯배를타고이곳을떠나라는기도였을까?

무덤을지키는수호자나죽은자를대신할용도로만들어진

사람얼굴을한목각도무덤과연계된존재라고하기에는

너무친근했고

어느부분코믹함까지느껴졌다.

혹죽음과삶의간극을메우기위한저들만의유모어였을까?

앞부분을가늘고뾰쪽하게깍은나무다섯개의중간을

짐승가죽띠로묶은성긴빗도있었다.

거친모습이지만누가봐도빗인,

누란의묘지에서출토된수많은목제품들은

그옛날에는그곳에도울창한수림이있었거라는추측을가능하게한다고,

보통

삼천년사천년오천년단위의

오래전유뮬들을대하다보니

내인생오십여년

좁쌀.

거대한강물의한방울물

모래사장속의모래한알,

그래서

갑자기

왠지살만해졌다.

혹시일미리그램정도자랐을까?

크게보았던것들이대단찮아보였다.

괜히코웃음한번쳤다.

흥,

사진들은못찍게해서전부퍼온사진들인데
도록속의샤오허묘지는
정말아름답고스산하다.
맨아래쪽이성긴빗이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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