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꽃- 앙스블뤼테

불안의꽃(양장) 저자 마르틴발저(MartinWalser) 출판사 문학과지성사(2008년05월09일) 카테고리 국내도서>소설

가끔익숙한길에서생경한풍경과건물을만나는경우가있질않은가,

아,저기저게있었던가?언제부터지?

어제도일산엘가는데낯익은길에서처음보는건물이눈에띄었다.

분명묵은동네였으므로본래있었던건물이틀림없다는추론이가능한데

그럼에도불구하고새롭고낯설어보였다.

아마도개와고양이의시간인푸르른이내탓인지도모른다.

책도하나의세상이니같은현상이존재한다.

예를들어독일작가마르틴발저가쓴‘불안의꽃’을한번읽고난후

한번더성긴눈빛으책을읽어나갈때

처음과는다른느낌들이수시출몰했던것이다.

스쳐지나갔던장면들이오히려강한포스로자리하고있었으며

아,하며읽었던곳은흠,하며지나가게되더라는것이다.

처음카를의사랑이장렬하게그려진대목은깊고길었으며슬펐다.

그런데두번째들여다본그곳은짧은듯했고서슴없이기록된적나라한단어들이

공기빵빵든공처럼통통튀어오르는듯했다.

주인공카를이책의말미에서아내헬렌에게쓰는편지도그러했다.

‘당신은알고있소,내가모방자라는것을,나는살아간다는행위를모방하면서살아왔소.’

이대목을처음엔그저스쳐지나갔다.

모방이라는의미를가볍게여겼던것이다.

그러나두번째책을읽을때는모방이란이단어가선명하게보이더니

바로이모방이카를의삶을일관되게보여주는명료한키워드라는것을깨달았던것이다.

살아간다는행위를모방하는삶이란자신이없는삶을말함이다.

그러니그는아내에게이제까지의삶은올곧은자신이아닌

그저흉내내는삶이라는선언을하고있는셈이다.

더불어아내와의결별을부른젊은여인요니와의사랑은

방이아니라는것을역설하고있는셈이다.

카를은요니에게말한다.

‘나는통제할수없는감정속에휩쌓여있소,

당신을너무사랑해,(략)열시간동안이라도계속해서말할수있을것같아,’

카를의내면이다.

<한남자와여자간의차이가크면클수록,그들사이의사랑은증가한다.

이제껏그어떤남자도너를이렇게까지는사랑한적이없다.

이사실을절대망각해선안되리라.>

이런지독한사랑의고백이들어있는

‘불안의꽃’은칠십넘은노인카를의이야기다.

카를은유능하면서도건강하고지적능력이출중하며통찰력을겸비한신사이다.

그는실패를모르는투자가로돈을소비하기위해서증식을하는것이아니고

자유롭기위하여‘복리이자’에서극상의아름다움을느끼는남자이다.

666쪽이나되는,한권으로는꽤나부피가나가는이장편소설은일단재미있다.

소설가배수아가번역한문장이라선지그다지번역투의거슬리는문체도없을뿐더러

날카롭게사람의심리상태를파헤치는

저자의매서운혹은통찰력있는문장은읽는재미를배가시킨다.

그러나칠십세가넘은노인과이제갓삼십이된젊은여인과의사랑은

흥미롭고매혹적이면서도어쩔수없이통속적이다.

통속을뛰어넘기위해서작가는여러가지허들을여기저기배치해논다.

무엇보다칠십노인이라고는믿을수없을만한걸음.

젊은여인은따라오지못할상승욕구가그의걸음에는풍성하게존재한다.

그리고냇물속에서의환한대낮의정사.

슬프게도카를은세상사람들이다볼만한위치에서사랑을하면서도

요니의뒤라는것에안도한다.

오직요니의젊음이자신의늙음을바라보지못하는것에대해만족하는것이다.

(아,눈감고아웅은칠십넘은노인에게도꼭필요한것이다)

요니가그의늙음을알아챌까봐옷갈아입는모습을보이지않으려애쓰고

그녀와사랑을하는중에도

그의모든의식은요니에게‘나는늙지않았다’는의식심어주기에집중된다.

혹시라도자신의늙음이보이는푸른정맥이솟아난다리를요니가볼까두려워하고

우연히거울앞에서같이이를닦다

거울이라는무정한존재가투여해내는

젊음과늙음을보며다시는한거울앞에서지않겠다.

이런어리석은짓을,하며그는후회하고스스로에게분노한다.

그리고다짐한다.

단순한시각적인쇼크만으로도

요니와의사이에시작된연계가끝나버릴수도있다는점을염두에두어야한다고.

젊을때는미남이셨네요.라는요니의가벼운칭찬에서도카를은늙음을확인하고……

그러니눈물겨운노인의사랑이란얼마나자신을비우는일인가,

그녀가자신을바라보게하기위하여

(사랑하게하기위하여가아니라)

온통그녀의눈으로자신을만들어가는것,

(사실이것은더극심한모방이아닌가).

책의말미에서그는아내헬렌에게자신을그라는삼인칭으로지칭하며이렇게고백한다.

“요니가한말때문에그가사막처럼황폐해져버렸다는것이오.

그말들이휩쓸고지나간땅은오직그말에대한그리움말고는

다른아무식물도자라지못하게되어버린것이오.”

겨우세번의만남에서비롯된사랑은

건강하게살아가는여유로운한노인에겐거대한태풍이었던것이다.

그리움말고는아무것도자라날수없는사막.

요니뿐이랴,

젊은여자는늙은남자하고의사이에절대사랑이필요한것이아니다.

늙긴했지만그래도사람인(?)사람의

숭배나혹은위로가필요할뿐이다.

혼자있는시간을견디지못할때

잠깐만나서늙고흐리멍텅한눈빛이반짝거리는것을지켜보며

자신의빛나는젊음을확인하는것이다.

리고늙은그에게서마지막남은에너지를빼앗은후

자신의젊은연인에게로향하는것.

이것이삶의법칙인것이다.

전나무가이듬해자신이죽게될것을감지하면

그해에유난히화려하고풍성하게꽃을피워올리는현상을가리켜

‘불안의꽃-앙스블뤼테’라말한다고한다.

앙스뷜리테는임학용어인데

배수아는옮긴이의말에서

‘두려움으로인한만개,완전한소멸을눈앞에두었을때나타나는살아있음의알람,’

이라는멋진표현을썼다.

하기는작가도,아니글의주인공인카를도물이빠져나가고있는욕조-

최후의순간에이르면욕조의하수구멍으로더욱세차게빠져나가려고아우성을치는물이

안빠져나가려고발버둥을치는물보다훨씬더나은일이라고말한다.

카를의넋을앗아가는,

나이와체면을잊게하는,

모든사고를정지시키는이무섭고도잔혹한사랑,

아주짧고거친사랑에대한담론ㅡ

쪽수로친다면약5%도되지않을ㅡ을위하여사실이책의95%는존재하는것이다.

인생의날수로계수해보면어떨까?

그는겨우세번요니를만날뿐이다.

그것도시작할때부터100%예견된배반의사랑,

아니그에게는사랑이었겠지만그녀에게도사랑이었을까,.

결국이사랑이야기의종국은늙음에대한쓸쓸한화두인것이다.

거리와책뿐이랴,

사람들과의거미줄같은관계속으로들어가면그무수한갈래들,

익숙함이품고있는생경함이많을수록,

알고있는글에서나타나는전혀다른낯선빛깔을자주바라볼수록,

어둠속에서더욱솔직해지는그림자를바라볼수록

삶은유약해지고우유부단해진다.

아무것도확신할수없다는불확실에대한갈증만슬픔처럼존재할뿐이다.

그리하여독서를한다는것은슬픔으로의귀환일지도모르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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