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지금도여전히그렇지만

어릴때도몸으로하는일에느리고굼떴다.

운동회날엄마가새로만들어준부르마

(다리쪽에고무줄을낀운동회용반바지를이리불렀던것같은데정확한지는잘모르겠다)를

입고수업을하지않는것은좋았지만

여러가지순서,

특히달리기같은종목에서는싫은감정을넘어두렵기조차했다.

분필로그려진흰줄위에모두들나란히서고선생님이작은깃발을들고있을때,

그깃발이내려올때순간적으로차고달려나가야하는그찰라,

그짧은순간에뛰는가슴은몸조차흔들거리게했다.

소풍도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내내틈만나면가는곳이‘다원’이었다.

지금은모든사람들이꼭한번가고싶어하는초록세상의대명사

‘보성녹차밭’이란명소가되어있지만

어린나이의내게무슨초록이보였을것이며

정돈된차나무의선이랄지

아름찬삼나무길같은것이뭬좋았으랴,

뿐이랴,

초등육년동안도대체한번도보물찾기에서보물을찾아본적이없으니

소풍에관한기억에서는‘무서운길’밖에없다.

지금도나는자갈이섞인그신작로길을선연히기억하고있다.

아차하면금방뒤처져반에서이탈되고

다시정신차려서걸어야같은반아이들과걷게되는,

십리나되는신작로길은왜그리걸어도걸어도끝이나오지않았는지,

타박타박걸어가는내발소리는상기도귓가에선연하다.

그러니굳이성격의여러갈래중제법굵직한가지하나를들어보라면

나는‘목적지향적’이아닌,

‘과정지향적’속에서만족을얻는소심한성격이라는것이다.

등산보다는언저리산행을즐겨하고

영화를봐도느리고완만한영화,

작은것에오래앵글을들이대며

아무것도아닌풍경을대단한것처럼여기게만드는,

거대한액션이나환타지가없어도

감독만의독특한화법이없더라도

다른사람의인생을소박하게보여주면

마음이풍성해진다는것이다.

아주쉽게비유를해보자면에베레스트???,

아니언감생심너무높은이런산은감히비유로도적절치않다,^^*

삼천사쪽으로올라가는북한산비봉길에서내려오는지인들과

중간어디쯤서만나다시내려온다하드라도

충분히행복할수있다는말이다.

그들이산꼭대기까지가는동안

나는돌틈에서솟아나는돌단풍을만나서

앵글를들이대며속삭이고

한뼘이나될까말까한애기나리랑조우하며

서툴기그지없는동정으로나무들과만나서

그들의살을슬쩍슬쩍만져보기조차하니

이런섹시하고숨가쁜비밀의산행이어디있다는말인가.

정상등반이란목적하에서는절대이룰수없는일아닌가,

고레에다히로카즈의영화는

익숙한산길에서고상한향기가득품고

서있는정향나무한그루를우연히조우하는듯한기분과흡사하다.

그가그리는사람은특별한듯,

그러나지극히평범한우리의이웃이다.

싫은,

그러나어디에나있는,

그러면서도미워할수없는사람들,

그들이빚어내는소소하면서도결국은매우인간적인관계.

그관계를포착하는데에그는탁월한능력이있는것같다.

‘아무도모른다’에서도아이들을방치하고남자와함께떠나버린여인이나오는데

자신이낳은아이들을돌보지않는다고해서누가감히그녀를미워할수있으랴,

아버지가전부다른네형제는도시의작은아파트안에서버림받은채

러나서로를지극히사랑하는관계를자양분삼아씩씩하게살아간다.

다큐멘타리로시작한감독답게

그의영화는판타스틱하지도드라마틱하지도않다.

아니오히려너무평범해서설핏지리멸렬하게보일정도이다.

‘걸어도걸어도’

(아제목은왜이리멋진거야,인생을,삶을,

무엇보다내어린시절의추억을한가득담고있질않는가)에서

나이든딸과늙은엄마와의대화,

대화보다오히려반지와팔찌를낀가늘고길다란딸의팔목과손은

딸의성격을여실히보여주고있다.

여름끝무렵에피어오르는목백일홍,

그백일홍꽃을향하여아이들의손들이솟아나고

깊은밤백일홍꽃한송이는죽은큰아들의영정사진앞에놓여있다.

깜깜한어둠을배경으로살풋이고개숙이고있는백일홍꽃한송이…….

그한장면이연상시키는수많은사념들,

드라마의어느복선이이다지도섬세할수있을까,

드문드문흐르는기타의단순한선율은

영화를보는사람의정서를증폭시키거나왜곡시키지않고오히려다둑이는,

절제하게하는역할을하는듯했다.

가장평범한모습으로순종적인아내,

헌신적인엄마로만비치던영화속마더(?)의케릭터는

마치인생의반전처럼실로다양한변주를울려준다.

평생을폼잡으며아내위에군림하던남편의지적교만과클래식함을

블루라이트요코하마라는엔카,

그노래속에배인비밀한마디로박살(!)을내버린다.

겸손하고지극한모습으로아들을죽게한젊은이를대접하며

다시또내년에오라고간청한다.

그러나그깊은속내는너때문에내아들이죽었으니

적어도너는일년에한번이라도힘들게

내아들을기억해야한다는자식잃은부모의생생한분노이다.

아이를데리고둘째아들에게로재혼한새며느리에게

끝없이부드럽고헌신적으로대하면서도

살짝살짝가하는언어의린치는참대단하기도하다.

‘걸어도걸어도’를엄마에게보여주면참좋을텐데

아마엄마는번역된글읽어가며

영화못보실거다..

걸어도걸어도속에나오는엄마는

일견우리들의엄마같지만

엄마와는다른엄마이야기이기도하다.

5 Comments

  1. 성학

    2011년 5월 15일 at 2:31 오후

    일요일이어서제법먼길을외출하고돌아와서는…

    그래서잠시찾아뵙는다는것이,
    이렇게1시간이넘게여기저기글마다담겨있는따뜻한님의품에안기다갑니다…
    감사합니다.
       

  2. 푸나무

    2011년 5월 19일 at 12:58 오전

    아랫녘은이제신록의시간을살짝넘어
    녹음속으로진입하고있더군요.
    겨우사흘이었는데도
    심어놓은화분속의상치가많이자랐어요.

    아름다운시간이구나…..
    상치를보며생각들어오더군요.

       

  3. 2011년 8월 2일 at 11:13 오후

    걸어도걸어도
    조그만쪽배와같이

    歩いても歩いても
    小船のように。。。。

    불루라이트요코하마라는노래가사의일부인데..
    아마도주인공의흔들리는마음을나타낸것같습니다.
       

  4. 2011년 8월 3일 at 6:03 오전

    이영화참좋죠.걸어도걸어도는윗분말씀대로"아루이떼모아루이떼모~"이시다아유미의부루라이또요코하마에서따온것맞을껍니다.영화속에노래가나와요.아베히로시의엄마가틀죠.   

  5. 푸나무

    2011년 8월 3일 at 12:02 오후

    밥님글읽으며여러번웃었어요.

    녜,이영화참좋았어요.
    내가아는사람도밥이란닉을지니고있는데
    아이를셋을낳았고
    지금도아마홍콩에있을거예요.
    그래서밥이란닉은밥처럼친근하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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