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무성한푸서릿길을걷거나

나지막한산에경사지게나있는자드락길을걷을때면

무엇보다아무도없는

자그마한나뭇잎그득히덮인산길을걸을때면

길은단순한길이아니라

사람들의자취로다가온다.

그옛날어느누구가아무도걷지않았던곳에

조심스럽게첫발을내딛었을것이고

그다음사람이두번째길을걸어갔을것이다.

그렇게사람의발로만들어진다져진길은

차츰사람들에게익숙해지고

익숙해진길은자기만의모양새를지니게되었을것이다.

그러니우리가걸으며바라보는길은

당연히보이지않는역사를품고있을게아닌가,

하냥변함없을것같은길,

하지만,순식간에돌변하기도한다.

어두워진하늘아래작달비내리면빗길이되어버리고

함박눈펑펑내리면눈길이되어버린다.

목적을지니게되면

심부름길도되고학교가는길직장찾아가는길

아,연인만나러가는설레는길도될수있다.

사람의길만있는것도아니다.

비행기길도있고기찻길도있으며물론뱃길도있다.

찻길이야말해무삼하리.

모양에따라달라지고크기에따라길은이름도하많다.

보이는길뿐이랴,

보이지않는길은너무많아서헤아리기조차어렵다.

오늘도무수하게많은길을

가만히앉아서걸었다.

글로들어서는길에서여러시간홀로헤매였고

늙은엄마가가는길을바라보며

내가가야할길을아득하게바라보기도했다.

눈밝은시인이먼저들어선길에서

그가인도하는대로여기저기기웃거리기도했으며

여름상치가주는아사삭거리며시원하게와닿는

여름의맛길에서즐겁기도했다.

얼음동동띄운연한커피는코피루왁이아니라도

소리까지내는향기로운커피의여름길이다.

오후에는사위가어두워지며

갑자기소낙비가우르릉쾅소리를내며세차게내렸다.

어둡고검고스산한시간이었다.

창문밖을한참내다보다가

나를바라보는비를보았으며

빗줄기속으로거침없이걸어가는나도보았다.

소낙비간후에언제그랬냐는듯쨍한하늘이사기꾼같아

요며칠내처읽던책을집어들었다.

<백년동안의고독>은

제독의걸음처럼거침없고강하며

그러나제독의걸음과는비교할수도없이자유롭다.

마콘도에처음나타난나는양탄자를탄기분이그럴까,

즐겁고행복하다가진지해지다가도잔혹하기이를데없고

사랑은너무깊고많아

수없이새끼를까는(?)양들처럼돼지처럼보이기도한다.

죽음과삶의경계는

깊은상처를내포한사랑의경계처럼허물어져있고

셀수도없이많은사람들은

사는듯죽어있고죽는듯살아있다.

이십대초반무렵처음접한이책이너무좋아서

나는참나답지않게

(나는지금도지갑에가족사진같은것지니고있지않다)

문학사상에서오린맨발벗은그의사진을부적처럼지니고다녔다.

내게는꿈같고환상같고현실이아니던이책을

그는현실에서한발자욱도벗어나지않는글이라는표현을해서

그에대해배신감을느꼈던가,,,,,,

그러나이제물론나는이해한다.

그의거침없는발걸음은

결국인간의가장깊은근원적인고독을향해질주한다는것을,

사랑하고사랑하는것처럼보이지만

결국은사랑이없는사람들에대한이야기라는것을,

땅에발을붙이고사는사람에대한이야기라는것을,

나이가든다는것은

등산하는것과같다고말한사람은,.

그래서오르면오를수록숨은차지만,

시야는점점넓어진다고말한사람은,

잉그마르베르히만이다.

삶이라는,

인생이라는,

길은수십억수백억….무량의길이다.

사진은작년꽃무지풀무지수목원의7월

13 Comments

  1. 비비아나

    2011년 6월 6일 at 12:07 오전

    이곳을오면언제나우리고유단어의
    아름다움에감탄하고갑니다.   

  2. 해맑음이

    2011년 6월 6일 at 12:05 오후

    그렇군요.
    여러갈래의길속에나는어떤길을가면서
    사유해왔고사유하는지….목적조차희미해져버린길들속에서
    마냥걷고또걸었던것같네요.

    여러갈래길의흔적들을저도
    생각해보게되네요^^   

  3. 보리

    2011년 6월 6일 at 1:44 오후

    푸서리길,자드락길…

    푸나무님글읽으면언제나새낱말을접하게되니
    한국말고급클라스에온것같아요.ㅎㅎㅎ

    토요일딸이랑토론토놀스욕에나간김에
    영화한편봤는데제목이
    MidnightInParis,
    우디앨런이각본쓰고감독한영화에요.
    푸나무님되게좋아하겠다라는생각얼핏
    했어요.

    우디앨런의다른여느영화들처럼감칠맛나는
    빠른대사들을100%세세히이해하긴어려웠지만
    전체적인맥락만겨우겨우따라갔는데
    함께본딸이그러더군요.

    학교과제때문에억지로읽었던헤밍웨이를다시
    읽고싶어졌는데,그이유는영화속에등장하는
    헤밍웨이의대사가대부분그이작품속에나오는
    말이고소리내어그이글을읽으면
    영화속헤밍웨이가말하듯소리나게된다나요.

    일상의대화도버거운영어이다보니딸이영화를보고
    느끼는것과내가느끼는것에는확실한차이가있었고
    또예술과문학에조예가깊은영어권사람들이그영화를통해
    느끼는것과는또다른심연의차이가있겠지요.
    그래서약간의문화적언어적좌절감이가볍게스치고
    갔는데푸나무님글읽으며딱그만큼의위로를받습니다.
    음….이정도로고급한한국어의감칠맛은
    나도좀알쥐….하면서요.ㅎㅎㅎ

    좋은글잘읽었고요,
    백년동안의고독은못읽어본책이지만
    푸나무님리뷰읽고나니익히아는책인듯한
    친근함마저드네요.^^

       

  4. Elliot

    2011년 6월 6일 at 2:01 오후

    정말나이드는게"오르면오를수록숨은차지만시야가넓어진다…."라면
    아마세상이지금관170도정도다른걸요ㅎㅎㅎㅎ

    대부분은"가면갈수록계곡에빠져들어숨만차고시야는막힌다눙…."^^

       

  5. 풀잎피리

    2011년 6월 6일 at 2:34 오후

    연인만나러가는설레이는길이제일좋다고여겨왔는데
    나이듬과등산에같음이있군요.
    하여이젠야생화만나러가는길이제일설레입니다.   

  6. 모랫바람

    2011년 6월 7일 at 3:59 오전

    아주오래전에김한길작가(?)가샘터사인가거기서일했을때
    장난으로친구에게나좀소개해줭그랬더니
    그곳서일하는친구의말에의하면그는한길이아니고
    여러길이라고포기하라고해서막웃었던기억이나네~~~
    간길도많고,가지않은길도많고
    그래도여전히새로운길들이기다리고있으니사는게그리심심하진않은것같으요.
    조위,엘리어트님은본인의경우를적어놓으신듯ㅋㅋㅋㅋ   

  7. 푸나무

    2011년 6월 7일 at 6:06 오전

    비비아나님초록이야기도멋지고아름다우세요.
    우리만나면서로알아봐질까요?^^*   

  8. 푸나무

    2011년 6월 7일 at 6:08 오전

    해맑음이님
    해맑다라는단어는
    제가고등학교다닐때
    아니지금도참좋아하는단어중의하나예요.
    해맑음이님에댓글을붙여주시면
    갑자기누추한제집이
    해맑어지는것같은느낌!!!감사해요.   

  9. 푸나무

    2011년 6월 7일 at 6:12 오전

    보리님,
    제가그냥반이야길두번했지요?
    한국어하면
    김원우선생이쓴’객수산록’을보시게되면
    한면에적어도두세개의모르는단어가나온답니다.
    캐릭터도…..
    아마보리님읽으시면좋아하실것같아요.   

  10. 푸나무

    2011년 6월 7일 at 6:15 오전

    엘리엇님,
    전그분의말씀에무지동감하는데요.
    욕심작아지고(능력을알게되니)
    작은것에감사하게되고(힘에부치게되니)
    하다못해산을가다가뒤로뒤뚱넘어지려다가
    안넘어지니
    세상에이런절묘한균형감이내게아직도있다니……
    자신을바라보는눈이섬세해지고….

    그러면서도사실여전히잘삐쳐요^^*
    제취미생활중의하나라고나할까,
       

  11. 푸나무

    2011년 6월 7일 at 6:17 오전

    풀피리님은
    사징기가겁나게좋으신것가터요.
    백마도있으시고^^*….
    저는꽃을좋아하지만
    출사는커녕,
    바로길가에서
    골무꽃,만나면오메,너여기있구나안녕/
    야호세상에민백미닷!!!!
    하는정도랍니다.   

  12. 푸나무

    2011년 6월 7일 at 6:19 오전

    그러고보니그냥반이름값하는것같다.
    한길이라지으니
    당연히여러길기웃거리게되질않앗을까?
    혹시소개해줬으면
    스토리생겨났을까?하하,
    가지않은길이더많아서
    물론더살만한세상이지요,   

  13. Elliot

    2011년 6월 7일 at 1:34 오후

    고백컨데모바님을생각하며단댓글이었는데….^^

    각설하고,개인적이아닌통계적으로말씀드린겁니다.
    사람이나이가들며현명해지는것만큼자신감이생기면딱좋은데
    적지않은사람들은쥐꼬리만큼현명해지고말꼬리만큼자신감이생기다보니
    오히려열린마음이었을젊을때보담더못한인간이되지요.

    왜냐면베슨상님처럼"A는B다."라는일반적인주장을하려면
    자기만그래서도안되고또소수가그래도부족하며
    적어도과반수이상다수에게작용되는말이라야하기땜에
    함딴죽을걸어봤어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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