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처럼 흐르는 유월의 어느 날

해저물녘이다.

같이차를타고가는검은옷의여인은탄식처럼말한다.

’나는이시간이참좋아’

대부분의중년여인들에게하루중가장좋을때가언제냐고묻는다면

열에여덟아홉은해저물녘이라고대답할것이다.

낮도아니고그렇다고밤도아닌,

낮의자태를신비로운베일처럼거느리고밤의기대감으로풍부해있는시간,

여유있는듯,

포만한듯,

그러면서도우수가깃들어있는시간,

개와늑대의시간이라기보다는마치중년의시간이아닌가,

젊음을회한처럼뒤로하고노년의지름길이보이는시점에서

약간의피로를걸친채잠시머뭇거리는찰라,

더군다나우리는누군가의부음에따라그녀를아니그녀의가족을만나러가는길이었다.

이제육십을갓넘긴그녀는지금어디쯤있을까?

유월의저물어가는햇살은장엄하다.

벚나무잎들사이로스며들어녹음의빛에더짙은그늘을드리우는일몰.

차들은길게늘어서있고

그사이에서어느젊은아이는어깨를다들어낸채짧은치마를입고걸어가고있다.

사람들의시선이햇살보다더뜨겁게저어깨와다리에게꽂히리라.

햇살이꽃을피우게하는에너지를숨기고있듯이

사람들의시선역시저희디흰어깨에강인한젊음의힘을부여해주고있는것이다.

맨살을꽃피우게하는에너지.

조그마한아이는엄마손을힘겹게잡으며신호등이지기전

꽤나넓은길을종종걸음으로달려간다.

인생이란저런걸음걸이로평생을살아가는건지도몰라.

언제신호등의초록빛이바꿀지도모른다는초조감,

능숙하게걸어지지않는걸음걸이

눈부릅뜬채바라보고있는저수많은차들의시선.

아이는뒤뚱거리며불안한걸음걸이로아슬아슬하게초록불이다하기전건너편에도착한다.

그러나거기가길의끝은아니니.

안녕,아가야,

지금처럼그렇게아주열심히걸으렴.

그러나엄마의손을놓고너혼자걸을때명심해야할것은

소를몰고밭갈이하는노련한농부처럼눈앞만보지말고

먼데를바라보면서걸어야하는거란다.

모여서弔歌를연습한다.

같은시대,

비슷한처지,

그래서알게된그녀를위한조가이다.

검은옷의여인들목소리가다른때보다조심스럽다.

항해의끝에부두가보이고거기가우리가가야할길의귀착점이라는단순한스토리의가사.

조가는조용하다가일순격렬해진다.

그리하여인생길이항해라는소박한비유가빚어내는은유가놀라울정도로풍요롭다.

죽음이라는후광탓이리라.

입관예배를드리러장례식장가는길.

서울길에도농촌의동네길처럼제법접시꽃이여기저기두둥실피어올라있다.

옥수수잎에빗방울이내립니다/옥수수잎을때리는빗방울소리가굵어집니다/

나는당신의손을잡고당신의곁에영원히있습니다/

접시꽃당신이란아픈아내곁에서아내를지극히사랑하는시구절이자연스레연상되어오고…….

시는여전히그렇게시인의접시꽃당신을목메어하며그리워하고있지만

그시인은아내가떠난뒤일년이채안돼재혼을했다고하니,

는시일뿐인생이아니란것을시와시인은우리에게선명하게알려주고있는셈이다.

관에그녀를담는,

전혀다른세상으로의이주를기념하는예배인데어디에도그녀보이지않는다.

아무도그것을이상해하지않는다.

그냥무수한흰꽃들이일단이단삼단으로화려하게

마치그녀의죽음이그렇게화려하기라도한듯높은데서내려다보고있을뿐이다.

그녀를기리기위해모인자리이지만

그녀의남편은핸드폰을귀에서떼지못하고

사람들은서로아는척하기위해눈인사로바쁘다.

아,그녀의딸래미가분명한젊은여자둘지쳐있구나.

슬픔으로진해있는그모습에서야그녀와의별리가생생해진다.

죽음은산사람과의헤어짐이다.

돌아오는길.

여전하다.

젊은아이들은짧은치마를자랑하고아

이들은종종걸음을치며

접시꽃은햇살의저뭄에따라조금입을다물었을뿐이다.

내가죽음에서배우는것은언제나그런냉혹할정도의여전함이다.

울아부지돌아가셨을때도초가을햇살은여전히눈부시지않았던가,

탱자는저홀로그햇살에익어가고있지않던가,

아부지를땅에묻고돌아와서배부르게저녁밥을먹었고단잠에빠지지않았던가.

언젠가나숨을그치는날,

내남편은죽은나보다는찾아오는사람이나핸드폰에신경쓰지않겠는가?

그저딸아이만잠시슬픔에겨워할것이며

그러나그날밤그아이도피곤에지친몸으로깊은잠속으로들어갈것이다.

징기스칸은평생전쟁으로얼룩진삶과는

대조적일정도로평온한죽음을맞이했다고한다.

죽음이도대체무엇인지알수없을정도로충분히잡을잤구나.”

그의마지막말도이러했다고하나

무덤의흔적을감추기위하여

수천명의기수들로하여금자신의

무덤위를활보하게한치밀함과는참으로벼리된순간이기도하다.

유월이강물처럼흐르는어느날이다.

서오릉의길과귀룽나무와꼭두서니


3 Comments

  1. equus

    2011년 6월 18일 at 1:28 오후

    그렇죠.
    우리모두떠나고없다한들
    뒤에남은모두들과이세상은
    또한강물처럼여전히흘러가겠죠.
    내가그렇게흘러왔듯이-   

  2. 푸나무

    2011년 6월 18일 at 2:48 오후

    잠깐앙코르왓트에다녀왔어요.
    그곳은나무들이엄청나게크더군요.
    앙코르톰에서
    스콜ㅡ구름이지척에서내는소리두듣구요.
       

  3. 보리

    2011년 6월 20일 at 3:56 오전

    앙코르왓트다녀오셨어요?
    여행후기기대해도되나요?

    ^^

    삶과죽음에관한이야기는나에게
    언제나많은화두와화제를불러일으키지만
    그냥가만히물러갑니다.

    그런데징기스칸의이야기인상적이네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