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시를아무리좋아한다해도암송할수는없다.
기억난다고해도겨우단어몇개와이미지그리고주제정도다.
가령천양희시인의아래시가
앙코르왓에서문득생각났는데
겨우데데데….와‘부판’만떠올랐다.
짐질負와널판지板이합친부판은등에매다는상복천조각인데
슬픔자는어디에도없는데
슬픔을등에짊어진다는뜻이라는데
시인은시인다운직관으로이부판을벌레로치환시킨것일텐데
부판이라는벌레가있는데이벌레는짐지고
다니는것을좋아한다는데무엇이든등에지려고한다는데무거운
짐때문에더이상걸을수없을때짐을내려주면다시일어나
또다른짐을진다는데짐지고높이올라가는것을좋아한다는데
평생짐만지고올라간다는데올라가다떨어져죽는다는데
히스테리아시베리아나라는병이있는데이병은시베리아
농부들이걸리는병이라는데날마다똑같은일을반복하다
더이상견딜수없을때곡괭이를팽개치고지평선을향해
서쪽으로서쪽으로걸어간다는데걸어가다어느순간걸음을
뚝,멈춘다는데걸음을멈춘순간밭고랑에쓰러져죽는다는데
//오르다말고걸어가다마는어떤일생//천양희
………
그런데이렇게사람의마음을흡족하고너그럽게만들어준시도
오래된유적앞에서면나작아지듯이작아지더라.
어쩌면나는무의식속에서나를작게만드는폐허가두려워
어깨동무할시를불러냈는지도모른다.
앙코르왓에도착했는데비가더욱거세졌다.
스콜은금방그치니조금기다렸다가가겠다는가이더의말대로
비는이내주춤해졌다.
우비를들고버스를내렸다.
연꽃처럼두둥실하늘로솟아있는탑을향해해자를건넌다.
보통해자는성을지키기위한기능이우선인데
앙코르왓의해자는신을구분짓기위한목적이라고한다.
그러니이다리를건너면우리는신의영역으로들어서는것이다.
다리의난간은전부뱀의몸통이고우중충한날씨와뱀,
그리고물색가득먹음은어두운검은돌빛은한속이되어
나그네에게신비롭게다가온다.
갑자기한아이가다리난간조금튀어나온부분에서멋지게다이빙을했다.
어머,카메라를들이대니물속에서뛰어나와다시멋진모습으로다이빙을한다.
몇발자국걷다보니그아이내곁에와손을내민다.
해자를다건너갈무렵
갑자기뒤에서난생처음듣는기묘한소리가들려왔다.
뒤를돌아다보았다.
아니저게무엇인가?저게지금구름아닌가?
초등학교교과서에실린사람옷벗기기란옛이야기속에서
심술궂은바람에게심술궂은표정의사람을그려졌던그림이생각났다.
구름인데그냥구름이아니었다.
소리를지닌
표정을지닌살아있는생물체였다.
부판이란자그마한벌레정도가아니라
하늘과땅을가로짓는움직이는아틀라스처럼보였다.
그구름이저기있었는데금방내곁으로다가섰다.
정말순식간의일이었다.
비옷입으세요.가이더가소리쳤다.
그렇게뒤돌아본시간이몇초나되었을까?
가이더가소리를지르고나서비옷에팔을껴기도전에
그구름은또다른소리를질러대기시작했다.
슈슈슈삭삭샥샥쓔슛…….
소리는이내거침없이굵은비가되어버렸다.
검은구름의신이강림하듯사위는갑자기어두워지고내리는빗줄기는
사정없이우리의온몸을적셨다.
비에몸을맞겨버린때가언제였던가,
언제우리가그렇게세찬비를온몸으로맞아보았을까?
굵직한작달비는우리몸의세포를알알이깨어내는것처럼여겨졌다.
정신이몸이라는공간을벗어나새로운공간속을날아가는듯,
해방을맞이한독립투사들이두팔을벌리고만세를외치듯,
베토벤의피아노협주곡황제2악장을눈감고듣는듯,…….
그렇게내몸은기쁨에겨웠고희열에찼다.
가만이런몸의생동감을느껴본적이언제이던가?
열대우림지역의스콜은
우리모두에게난데없는자유로움을선물해주었다.
거침없이내리는비는나만변화시킨것이아니었다.
긴세월을살아나온돌에게도
비는빛깔다른생명력을부여해주고있었다.
그렇지않아도검은빛을띠고있던앙코르왓의무수한돌들에게
비의섬세한손길은
흑단처럼빛나는검은빛의윤기라는옷을새로덧입혔다.
폐허는더욱페허처럼신비로워졌고
나무들은마치광기에물들어가는듯삽시간에움직이기시작했다.
우리는사원안으로들어섰다.
자연상태의돌들만서로유기적으로연결되어있는사원안이다.
거센비는형체만남아있는창을통해
문의자국조차없는입구를통해사정없이들이친다,
세상에는온통비와바람의소리뿐이다.
창문이라고도할수없는빈공간에가까이다가서서바라보는정원.
아주오래된사원의정원을
당신도한번상상해보라.
거대한나무에매달린수억겹의나뭇잎들은
하나하나떨리듯살아있음에대한애달픔을토로하고
바람은
오래된나무와
오래된돌들
그리고오래된길을휘감아돌며
나그네에게다가선다.
여전히비는거침없이세상의마지막이라도되듯
마치그를슬퍼라도하는듯하염없이내린다.